제주도 낚시 7부, 한림 판포 방파제에서 원투낚시와 할머니 사연


    오늘 이야기의 주 무대는 낚시꾼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방파제입니다.
    이 날은 뭔가를 잡겠다란 생각보단 흔히 '처박기 낚시'라 해서 지렁이를 꿰어 던지는 원투낚시와
    오징어 에깅낚시를 위해 제주시 한림에 소재한 판포 방파제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낚시하던 도중 할머니를 만났는데 한눈에도 허름해 보이는 할머니는 제 옆에 앉더니 말동무가
    되어줬습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비닐봉지를 꺼내드는데..




    한림 판포 방파제

    갑자기 원투낚시가 하고 싶어 충동적으로 찾아 간 곳은 한림의 판포 방파제.
    작년 이맘때였죠. 판포 방파제는 처음 제주도 낚시를 접한 우리부부에게 문어 두마리를 선사해 준 고마운 장소였습니다.
    그렇다고 문어를 노리고 간 출조는 아니였어요. 그냥 저녁찬 꺼리를 마련하기 위한 말그대로 '생활낚시'였습니다.

    이 날 우리부부의 저녁메뉴는 순두부찌개로 정해져 있었어요.
    다만 뭔가를 잡으면 그걸로 반찬을 해먹고, 잡지 못하면 없는대로 끼니를 때울 생각이였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두분이 내항쪽에 카드채비를 담그고 계셨어요. 이 강풍에 무얼 그리 잡나 봤더니..


    자리돔이 가득합니다. ^^


    이 날은 엄청난 바람에도 불구하고 낚시하는 현지꾼들이 있어 어안을 벙벙케 했다, 한림 판포 방파제에서

    사실 이 날은 낚시를 할 수 있는 기상은 아니였습니다. 정 하고 싶을때 억지로 할 수 있는 수준이였죠.
    예보된 해상날씨는 풍속 8-12m/s, 파고 1~2m였지만 바람만큼은 그 이상으로 느껴집니다.
    낚시대를 가누기 힘든 강풍과 물보라까지 일으키니 카메라를 든 저는 그때마다 등을 돌려 몸으로 막아야 했습니다.
    포인트는 외항쪽을 바라본 후 난바다로 던져야 하는데 맞바람에 파도까지 튀어 캐스팅이 곤란한 상황.
    할 수 없이 내항쪽을 공략해 보지만 밑걸림 아니면 어랭이 정도만이 낚여 올 뿐입니다.


    결국 밑걸림과 어랭이의 등살에 못이긴 입질의 추억.
    맞바람에 맞서가며 원래 공략하고자 했던 곳으로 캐스팅을 해보지만 쉴 새 없이 얼굴을 때리는 바람과 튀는 파도에 두 손 두발 들었습니다.


    던져진 20호 짜리 추는 잘 날라가다 맞바람에 곡사포를 연상케 하듯 40m전방에 안착됩니다. 그래도 이 바람에 나름 선방했네요.^^;
    하지만 풀려나간 원줄은 속수무책 제어가 힘든 상황. 잠시라도 방심하면 옆으로 줄줄 풀려나가거나 둥그렇게 휘어지기 쉽상.
    대상어는 감히 "참돔"을 노리며 지렁이도 3마리씩 푸짐하게 꿰매서 던져봅니다. 혹시 아나요? 이런 날궂이에 대물 참돔이라도 걸려줄지..^^
    그러나 우우우웅~ 하며 몰아치는 바람은 잠시라도 초릿대를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아주 춤을 추네요. 이래가지고 입질 파악이 가능할까..


    아내도 내항에서 재미를 못봤는지 맞바람에 맞서가며 던질 준비를 합니다.
    오징어 한마리 잡겠다고 이게 왠 고생이람. ^^;




    도저히 채비를 날릴 수 없네요. 3.5호 에기지만 힘껏 던져도 20m이상 안날라갑니다.


    바람에 두드려 맞으며 휘청거리는 초릿대에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워봅니다.
    입질 파악은 거의 힘든 상황이다 보니 일정 시간이 지나면 채비를 걷어 미끼를 점검하는 식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딸려 온 건 용치놀래기나 어랭놀래기들 뿐. 얘네들이 언제 입질한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번은 빵 좋은 용치놀래기를 잡았습니다. 초록빛깔이 선명한 수컷이고요.
    하지만 저는 가져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방생하려고 했지요. 이때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제게 다가와 말을 겁니다.

    "그거 놔 줄꺼면 나 좀 줘"
    "아~ 넵!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는 얼른 바늘을 빼다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이미 비닐 봉지를 준비해 갖고 오셨군요.^^
    할머니는 제 옆에 쭈그리고 앉으시더니 어디서 반쯤 피다 남은 담배 꽁초를 입에 물고선 잘 켜지지도 않은 라이터를 몇 번이고 돌리더니 겨우 불을
    붙이셨습니다. 안그래도 바람이 센데 왜 이런데 나와 계신걸까?


    멀리 비양도가 보이는 바다 풍경이 그림이다, 한림 판포 방파제에서

    부산 출신이라고 소개한 할머니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처지를 줄줄이 늘어놓는 모습에서 왠지 외로워 보였습니다.
    바로 앞이 집이라며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할머니. 이미 술 한잔 걸치신 듯 보였고요.

    "내가 여기서 산지 십년이 넘어 잘 알지. 가만있자 오늘이 열세물이지? 고기는 잘 잡힐 날인데 바람이 너무 쎄~"
    "그렇군요 ^^;"
    "방금전에 소주 한병을 샀는데 안주가 없어. 그러니 잡히면 나 좀 줘~"
    "그럼요~ 잘 잡힐지는 모르겠지만 잡히면 할머니 드릴께요"
    "그런데 육지사람같은데 어디서 왔어?"
    "서울에서 왔습니다"
    "둘이 부부야?"
    "네 ^^;"
    "새댁도 어지간히 낚시 좋아하나 보네. 이 바람에...새댁 잘해줘 알았지?"
    "아..네 그래야죠 ^^;;"
    "그런데 여기 좋은건 어떻게 알고 왔어? 어지간해선 (알고 오기가) 힘들텐데"
    "낚시를 다니다 보니 어떻게 알게 됐습니다"


    어느새 해는 수평선 너머로 저물고 있다


    그렇게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낚시에 대해 신경을 덜 썼습니다. 
    점점 더 강해지는 바람, 그리고 휘청거리는 초릿대, 옆으로 흩날린 채 널부러진 원줄...
    채비를 다시 감고 미끼를 새로 꿰어 던지고 싶지만 지금은 할머니와의 대화로 인해 그대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파제에 홀연히 나타나 말을 건네 온 할머니는 또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 꽁초를 꺼내시더니 불을 붙입니다. 
    언제 샀는지도 모를 꼬깃꼬깃한 담배각 속에 피다 만 꽁초만 여러갭니다.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것은 형편이 넉넉치 못해 이곳을 자주 찾게 된다며 꾼들이 낚는 걸 구해다 반찬꺼리로 떼우시는 것 같습니다.

    이럴때 근사하게 한마리 낚아다 드리면 오죽 좋을까?
    지금 이 시간, 입질을 기다리는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니였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흔한 어랭이 조차도 이럴땐 안나와 주니 바다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해가 저무는 시각, 아내는 있는 힘껏 바다를 향해 던져보지만 돌아오는 건 빈 바늘 뿐..

    오늘따라 침묵하는 바다. 그럼에도 아내는 꿋꿋하게 던지고 감고를 반복합니다.
    아직까지 잡아보지 못한 무늬오징어를 기여코 보고 가겠다는 걸까? 
    오징어 한마리를 낚아 할머니를 드릴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오늘은 도통 입질이 없네요. 
    결국 철수하기로 맘 먹습니다. 할머니께 뭔가를 낚아 드리면 좋으련만..

    아쉬운 맘에 낚시대를 접는 아내.
    저 역시 한참을 방치해 놓은 채비를 회수하며 철수준비를 서두르는데..
    릴링하는 손에서 뭔가 묵직함이 느껴집니다. 입질은 없었던거 같은데 뭘까?

    추는 무겁고 바람으로 인해 손맛을 느끼는 건 쉽지 않지만 이따금씩 쿡쿡하는 진동이 전해져 오는걸 봐선 사이즈가 제법 나가는 어랭이가 분명하다!!
    이거라도 할머니께 드릴까?



    30cm가 조금 안되는 참돔이 바늘에 걸려 있었다

    채비를 올려보니 생각과 달리 상사리급 참돔 한마리가 물고 올라옵니다.
    평소 같으면 방생했을지도 모를 상사리 한 마리가 오늘따라 왜 이리 반가운걸까?
    순간 생각이 든 사람.

    "할머니..이거라도 좀.."
    .
    .
    .
    참돔을 들고 뒤를 돌아봤지만 그 자리에 할머니는 안계셨습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날이 어두워지자 말없이 자리를 떠나신거 같아요.



    결국 막판에 낚은 참돔 한마리는 할머니에게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놔 주자니 바늘은 삼켰고 이미 기진맥진해 있으니 살 보장이 없고..
    결국은 우리부부의 저녁 식탁에 오르고 말았습니다만 그것을 먹을 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왜 자꾸 그때의 할머니가 생각나는 걸까요?
    판포 방파제에서 만난 할머니! 조만간 날 좋을 때 다시한번 찾아가서 뵐 수 있다면 그땐 맛있는거 많이 낚아서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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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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