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벵에돔 낚시] 한 시간 동안 폭풍 입질(벵에돔 초밥, 벵에돔 숙회)


부제는 "007작전을 방불케 했던 제주도 벵에돔 낚시"

그 날은 그랬습니다. 4박 5일 제주도 여행의 종지부를 찍던 마지막 날.
이렇게 서울로 올라갈 수는 없다며 허탈해하던 저는 대책 없이 아침부터 밑밥을 개었습니다.

"어쩌려고?"
"몰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의 모든 스케쥴은 사전 계획과 예약 하에 이뤄져야 마음이 편하다는 평소 제 생각을 깨고 이날은 과감히 없던 계획을 시행.
첫날은 우도에서 열린 벵에돔 낚시 대회에서 고수들과 분전을 펼쳤으나 끝내 떨어지고 그 아쉬움을 둘째 날 지귀도에서 풀고자 했지만, 
동갈치와 점다랑어의 습격에 쓸만한 벵에돔을 낚는 데는 실패로 돌아가고. 세째 날과 네째 날은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 낚시를 못 했고.

"그래 이판사판이다."

마지막 날 일정은 정말 007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긴박하였습니다.

11:20 : 마라도 잠수함
12:30 : 마라도 관광
15:30 : 사계항에 도착


비행기 보딩타임은 21:20분. 그런데 랜터카 반납시간이 20:00분
낚시를 위해 잘 서두르면 16:00시부터 두 시간가량 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마지막 한 시간 낚시를 위해 형제섬으로 향하는 중

날이 덥다 보니 오전에 개어 둔 밑밥이 차 안에서 발효되고 있습니다. 마라도 관광을 마친 우리 부부는 서둘러 렌터카를 몰고 사계항으로 달렸는데 
뒷좌석에서 심한 악취가 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렌터카 빌릴 때 낚시 가방을 본 직원이 그러더군요.  

"밑밥 냄새가 시트에 배서 고생한 적이 있다. 만약 냄새가 배거나 더럽혀지면 추가로 내부 시트 세척비를 청구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스치는 것도 잠시. 곧바로 저는 길성호 선장님께 연락했습니다.

"선장님. 저희 사계항으로 가는 중인데 지금 넙데기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지금요? 시간이 4시가 돼가는데요. 지금 들어가 봐야 낚시 얼마 못할 텐데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해창만 보고 빠질 생각이니까."
"그래요 그럼. 나 여기 있으니 승선명부 받고 해경에 신고하고 오세요."


(속으로 앗싸)를 외치며 해경에서 출항 신고서를 접수하고 사계항으로 가니 배를 준비 중입니다.
서둘러 구명복을 입고 아내에게 장화 신기고 낚시 짐을 빼서 배에다 올리고 나니 초장부터 이마에 땀이 흐릅니다.

만약 넙데기에 못 들어간다고 하면 저 많은 밑밥은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사계항을 오며 가며 봐둔 도보권 포인트가 있거든요. 여차하면 거기서 남은 두 시간을 낚시할 생각이었으니 어찌됐든 밑밥을 미리 개어 놓은 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렌터카 내부는 밑밥 냄새가 밸 것을 우려해 나중에 공항으로 갈 때 창문 네 짝을 모두 열어둘 생각이고요.
가지고 있는 방향제를 시트에 뿌려 어떻게든 냄새를 뺄 생각입니다.


형제섬이 보인다.

아직 전날의 여파가 남아 있는지 너울기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전방에 보이는 작은 여가 우리가 내릴 형제섬 최고의 포인트, 넙데기입니다. 이때 시각은 오후 4시.
아직은 그런대로 순조로웠는데요.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 넙데기 앞으로 접근했는데 갑자기 시동이 꺼지고 만 것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 선장님이 제차 시동을 걸어보지만, 배는 미동이 없습니다.
어차피 철수 시간은 오후 6시로 정해져 있어 지금은 1분 1초가 금인데 웬 고장이란 말인가?

그렇게 배는 조류에 떠밀려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만약 시동이 안 걸리면 낚시고 뭐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니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네요.



"탈탈탈탈"

어떻게 했는지 간신히 시동이 걸리고 배는 통통배 마냥 느린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부품 중에 뭐가 나갔는지 제 속력을 못 내는 배. 그나마 다행인 건 거의 다 와서 이렇게 됐으니 곧바로 갯바위 접안을 시도합니다.
보니깐 넙데기에는 이미 두 명의 낚시꾼이 계시네요. 넙데기는 넓어 보여도 실은 낚시할 공간이 좁습니다.
조류에 태워 한 방향으로 계속 흘리는 낚시이므로 2~3명이 서기에 충분한 공간이고요.
서로 마음이 맞아 협공할 수 있다면 4~5명까지는 로테이션으로 커버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고집을 부리거나 협공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채비가 엉키는 등 트러블이 생기겠지요.


먼저 온 조사님이 한참 파이팅 중이다.

포인트에 내려 분위기를 살펴봅니다. 살림통에는 25~27cm의 벵에돔이 서너 수 들어 있는 걸 보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이제 막 입질이
들어오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채비를 준비하려는 찰나 먼저 오신 조사님이 강력한 입질을 받고 파이팅 중이네요. 올려보니 점다랑어. 

"안녕하세요!"

협소한 공간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낚시해야 하므로 일단은 인사부터 건네봅니다.
행여나 낚시하다 작은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는 좁은 공간입니다. 이때는 인사부터 건네 말을 트는 게 현지에서는 가장 좋다고 생각.
조과라든지 현재 상황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분위기를 만들어 봅니다.
그랬더니 "혹시 여름에 매물도에서 낚시하던 부부 조사 아니냐?"며 인사를 건네십니다. 하여튼 낚시 쪽이 좁긴 좁은가 봅니다. ^^;
뜻밖에도 이곳에서 조행기 잘 보고 있다는 조사님을 만나 반가웠고요. 우리 부부는 서둘러 채비를 만듭니다.


찌는 대회에 사용했던 모델로 쯔리겐 토너먼트 아크로 01번을 사용했다가 급류심장 0호로 교체했다.

사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 못 했습니다. 본 모델의 부력은 01번으로 기존의 부력으로 치면 00(투제로)에 해당합니다.
원투력보다 예민성과 섬세한 낚시를 구사할 때 잘 맞는 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장의 분위기는 좀 거칠었습니다.
채비를 마친 시각이 오후 4시 30분 경이었는데 이제 막 초들물이 받쳤을 때입니다. 이곳 형제섬 넙데기는 초들물에도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해요.
바람은 잔 편이었으나 전날의 여파인지 너울기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조류가 시냇물 수준입니다.
본류대가 직접 와 닿기 때문에 채비가 가벼우면 순식간에 떠내려갑니다. 그래서 이 찌로 몇 번 던져보다 아니다 싶어 급류심장 0호로 교체.
좀 더 무겁고 여부력이 있는 제로찌로 3~4m 층을 공략해 봅니다.

<<입질의 추억 채비>>
낚싯대 : N.S 클로져기 1-530
릴 : 오쿠마 2500번 LB
원줄 : 쯔리겐 프릭션 제로 2호 (서스펜스 타입)
어신찌와 수중쿠션 : 쯔리겐 급류심장 0호 / 조수우끼고무 M 사이즈
목줄 : 쯔리겐 제로 알파 1.5호 3m를 원줄에 직결
바늘 : 하야부사 오니가께 벵에돔 전용 바늘 6호
봉돌 : g5번 두 개 분납

<<아내의 채비>>
낚싯대 : 머모피 사이버티탄3 1-530
릴 : 다이와 엑셀러 2500번
원줄 : 쯔리겐 프릭션 제로 2호 (세미 플로팅 타입)
어신찌와 수중쿠션 : 쯔리겐 N원투 0호 / 조수우끼고무 M 사이즈
목줄 : 토레이 SS 토너먼트 1.5호 3m를 원줄에 직결
바늘 : 가마가츠 아와세미장 7호
봉돌 : g6번 두 개 분납


첫 캐스팅부터 물고 늘어지는 이 녀석은 물동갈치.
밑밥 치기가 조심스러우네요. 무슨 조류가 시냇물보다 더합니다. 채비를 던지면 10초에 20m 이상 떠내려가 버립니다.
밑밥은 최대한 조류 상류 쪽에다 투척하고 찌는 그보다 하류인 곳에 던져 놓고 흘려봅니다.
먼저 온 현지꾼 두 분이 넙데기의 각 모서리에 계시니 우리 부부는 그 사이에 끼어서 낚시하니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낚싯대를 세우는데 표정 함 보세요. 초심을 잃은 듯한 저 표정. ㅎㅎ
이제는 어지간한 물고기를 잡아도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 아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꼬. 표정 보니 딱 동갈치네요. ^^


아내도 동갈치로 신고식을 올린다.

아내는 이빨 때문에 뒷 처리가 신경 쓰이나 봅니다. 다행히 삼키지는 않았고요 .
빨리 찍고 저는 다음 캐스팅을. 아내는 잽싸게 바늘을 빼고 녀석을 바다로 던집니다.
흘림낚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옆 사람과의 협동심이랄까? 아무리 포인트가 좁고 사람이 많아도 이렇게 조류가 잘 가는 곳에는 순차적인 캐스팅과
채비 회수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먼저 캐스팅한 사람이 채비도 먼저 회수하면 서로 엉킬 일이 없어요.
그렇게 하면 굳이 로테이션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각선 캐스팅으로 서로 간의 원줄이 교차해도 회수를 먼저 캐스팅한 사람 순으로 걷으면 되는 겁니다.

그걸 알고는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과 함께 낚시할 때는 그게 잘 안 지켜집니다.
그럴 땐 어느 정도 교섭력이 필요한데 이것도 서로 죽이 맞아야 가능하단 사실. 우리 부부가 늦게 왔으니 포인트 우선권은 먼저 오신 분에게 있는 게 당연한
일이고 어찌 됐든 우리 부부은 최대한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 흘림낚시를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마음껏 흘리고 싶어도 옆 사람과 엉킬까 봐 흘리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조금만 더 흘리면 입질이 올 것 같은데 이쯤에서 채비를 걷으려니 아쉬운 거죠.
이때였습니다. 채비를 걷으려는 찰나 갑자기 원줄을 빨고 나가는 시원한 입질이 전해집니다. 
베일을 닫자마자 턱! 하고 낚싯대가 휘어지더니 몇 차례 꾹꾹 하고서는 곧바로 퍼져버리네요.

"뭐지?"

제차 캐스팅해 녀석의 정체를 확인해 보는데 좀 전에 들어온 입질과 똑같이 패턴으로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
낚싯대를 세우며 베일을 닫자 역시 턱! 하면서 들어오는 전율.



"오~ 뭔가 제대로 된 녀석임이 틀림.."

없기는 개뿔. ^^; 힘은 그럴싸한데 옆으로 막 째네요.
낚싯대를 2~3번가량 좌우로 비틀며 어루고 달래니 수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 예상대로 점다랑어입니다.


포인트 주변으로 많은 개체수의 동갈치와 점다랑어가 들어와 있었다.

"자자~ 빨리 찍자! 오늘은 왠지 바쁜 낚시가 전개될 것 같다."

하지만 이후로 우리 부부는 동갈치와 점다랑어에 시달리며 좀처럼 벵에돔 입질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점다랑어가 물어 재끼는 바람에) 옆 사람과 채비가 엉키고, 또 우리 부부끼리도 줄이 엉켜서 풀고 앉았고. (지금은 시간이 금인데)
옆 사람과 두어 번 채비가 엉키자 늦게 들어온 우리 부부가 민폐가 될 것 같아 낚시 자리를 반대편(안테나여를 바라보는 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흘림낚시가 한결 편해집니다. 다만, 씨알 면에서는 홍합여를 바라보고 하는 주 포인트에 비해 이곳 안테나여를 바라보고 흘리는 쪽이
다소 딸린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넷이서 나란히 흘리다 채비 엉키는 것보다는 앞 뒤로 두 명씩 서서 흘리는 게 현재는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때가 오후 5시.

"이제 남은 시간은 단 한 시간!"


자리를 옮기자마자 입질받은 아내

자리를 옮겨 안테나여를 바라보고 채비를 흘려봅니다. 우리가 선 자리와 안테나여가 자리한 중간쯤에 채비를 던져 넣고 흘리면 사진에 보이는
작은 형제섬 쪽으로 채비가 흘러가다 입질을 받습니다. 철수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우리 부부는 아직 벵에돔을 보지 못한 상황.
이때 먼저 캐스팅한 아내에게 어신이 닿았습니다. 그런데 낚싯대 휨새를 보니까 또 옆으로 째네요.

"점다랑어야?"
"응. 그런 거 같... 아! 아니다."



첫 벵에돔(그것도 긴꼬리)을 낚은 아내

조류가 콸콸콸 흘러가니깐 초반에 째는 힘이 점다랑언지 벵에돔인지 헷갈렸다는 아내.
게다가 입질 파악이 좀 아리송하답니다. 베일을 열고 풀려나가는 원줄을 손가락으로 터치하면서 낚시하는데요. 
조류가 워낙 빨라 입질이 없어도 원줄이 쭉쭉 풀려나간다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게 입질 때문인 건지 조류 때문인 건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네요.


그러다 보니 입질이 와도 바로 챔질하지 못하고 나중에 채비를 회수하는데 뭔가 쿡쿡하고 쳐박습니다. ㅎㅎ

"언제 문 거야?"

라며 파이팅에 들어간 아내.


한참을 끌고 와 렌딩하려는 순간, 제주도 형제섬에서 벵에돔 낚시


"또 한 마리 했습니다!"

이 정도면 먹을 만한 씨알이네요. 채색이 상당히 밝은 걸 보아 상층으로 부상한 걸로 보입니다.
이걸 찍고 있는데 갑자기 제 낚싯대도 쿡쿡합니다. 어라?


독가치시(따치)

올려보니 독 지느러미를 한껏 치켜세운 독가시치.
발로 살짝 밟아 못 움직이게 한 뒤 플라이어로 처리한 후 그대로 방생합니다.


슬슬 해가 지고 있어 긴장감이 더해지는 가운데 또 한 번의 입질이 왔다, 제주도 형제섬 벵에돔 낚시

아내 채비에도 여지없이 물고 늘어지는 독가시치.

지금까지 몇 마리 잡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어느새 5시 30분. 혹시 시간이란 건 상대방 사정에 따라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하는 건지.
군대서 얼차려 받을 땐 죽어라 안 가드만, 이럴 때는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가나요? 안 그래도 촬영하랴 캐스팅하랴 밑밥 던지랴 정신없어 죽겠는데 독가시치가 물고 늘어지면서
버리는 단 몇 분의 시간조차도 지금은 아깝기만 합니다.

뒤쪽을 보니 여전히 점다랑어가 설치는 분위기이고, 이쪽 또한 본류대가 너무 빨라 지류에다 찌를 태우니 독가시치가 성화를 부리고. 
벵에돔은 대체 어디에 있는겨!!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원줄이 쭈우우욱~~!! 풀려나갑니다. 
원래 원줄이 빠르게 풀려나가고 있었지만, 확실히 입질이 들어올 때는 다릅니다. 
일정한 패턴을 가지지 않고 사정없이 풀려나가는 원줄은 스풀에 대던 손가락을 경쾌하게 치고 나갑니다. 
이런 건 타이밍 잴 것도 없이 바로 챔질이지 뭐!



"오예~ 한 마리 추가하시고"

시간이 촉박해 손맛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습니다. 이 정도 되는 씨알도 힘이 제법이에요.
특히, 이렇게 조류가 빠르면 흘린 거리 + 물살의 세기가 더해져 더 파워풀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반강제집행 식으로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한 마리라도 더 건지겠다는 일념으로 말이지요.
이제 시간은 오후 5시 45분. 슬슬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ㅠㅠ

"자자~ 더도 말고 두 마리씩만 더 잡자"


드디어 벵에돔 낚시에서 고대하던 해창이 왔고 아내는 물속의 녀석들을 바깥 세상으로 빼내려 하고 있다.

30cm가 조금 못 되는 벵에돔을 마릿수로 뽑아내는 그녀, 제주도 벵에돔 낚시

누가 낚시를 여유 있는 선비들이나 즐기는 레포츠라 했던가?
누가 낚시를 기다림의 미학이라 했던가?


벵에돔 낚시는 그런 게 없다는 것! 시간 때문에 똥줄 타고 정신도 없고 그러다 녀석들이 갑자기 입을 닫아버리면 혼란의 연속이고 ㅋㅋ
해질 때 벵에돔 낚시 한 번 해보시길 권합니다. 너무 바쁘고 정신 없고 혼쭐나지만, 참으로 익사이팅한 낚시가 될 겁니다. ^^
특히, 이번 형제섬 출조의 경우는 평소와 달리 밑밥통을 하나만 사용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각자 밑밥을 던져 공략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제가 아내 몫까지 밑밥 지원을 해야 했어요. 그 순서를 간략히 적어 보자면.

1) 캐스팅 전, 아내가 캐스팅할 곳에다 3~4주걱의 밑밥을 뿌린다.
2) 아내가 캐스팅하면 찌 주변에다 3~4주걱의 밑밥을 뿌린다. (이때는 조류가 워낙 빨라 찌보다 훨씬 더 상류 쪽에 뿌려야 했다.)
3) 곧바로 내가 캐스팅할 곳에다 3~4주걱의 밑밥을 뿌린다.
4) 캐스팅 후 찌 주변에다 3~4주걱의 밑밥을 뿌린다.
5) 기다린다.
6) 입질이 오면 빠른 릴링으로 벵에돔을 솎아낸다.
7) 사진을 찍는다.
8) 빠른 갈무리 후 라이브웰에 넣어둔다.
9) 1)부터 8)번까지 반복

한 번의 캐스팅에 제가 던져야 하는 밑밥이 무려 12~15회가량 됩니다. 정말 손목과 팔이 쉴 새가 없습니다. (벵에돔 낚시하다 엘보 걸릴만 함)
이렇게 정신없는 낚시를 해도 즐거울 수 있었던 건.


저의 밑밥 지원과 아내의 협공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 ^^


어쨌든 아내가 잘 잡아주니 기쁘기만 하네요. 저 표정 보십시오. 처음 동갈치 낚았을 때랑 완전히 비교되지 않습니까? ^^;
"대상어에 집착하는 낚시야말로 낚시를 망친다."라고 말한 게 누군데 ㅋㅋ


작은 형제섬이 우두커니 지키고 있는 사계리 해안

철수배에서 바라본 안테나여(넙데기는 왼쪽 끝에 살짝 보인다.)

저녁이 되면서 살랑거렸던 너울이 다시 거세지려고 합니다. 적당한 시점에 들어와 적당히 치고 빠지는 낚시를 했던 우리 부부.
온종일 입질도 못 받고 땀과 비린내에 절어버린 그간의 낚시를 생각하자면, 정말 쾌적하고 효율적인 낚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벵에돔 낚시에 정신 팔린 우리 부부는 배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아내가 "저기 온다."며 손가락을 가리켰고, 뭔가 2% 부족한 이번 제주도 낚시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입질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임에도 낚싯대를 접어야 하는 아쉬움이 항에 도착해서도 남아 있네요.
그래도 잘 싸웠습니다. 제대로 낚시한 시간은 한 시간이 뿐이었지만, 그 한 시간 동안 충분히 즐겼습니다.


PM 6시 30분, 사계항

항에 들어서자 거대한 물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가 낮에 탔던 바로 그 잠수함이네요.
마라도 잠수함과 계류정이 동시에 인양되어 이곳 항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진풍경도 보게 되네요.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매일같이 이동하는 걸까요? 아니면 주의보가 터질 때만 항에 갖다 놓는 걸까요?


제주도 낚시를 마무리하는 한 시간의 조과

잔 씨알 벵에돔과 독가시치, 점다랑어 등은 방생하고 먹을 것들만 챙겼습니다.
특별히 아내와 낚시대결을 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5 : 5 동점이 돼버렸군요. 낚은 벵에돔은 모두 긴꼬리벵에돔이었습니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한 여정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비행기는 밤 9시 40분이라 시간이 넉넉합니다만. 랜터카 반납 시간이 8시 정각이었습니다. 8시가 지나면 직원들도 퇴근하고 반납시간이 지체되면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을 내야 하므로 우리는 못해도 저녁 7시에는 시동을 걸고 여기서 떠나야 합니다.
사계항에서 공항까지의 소요시간은 약 50분. 좀 밟으면 40분까지 단축할 수는 있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40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입니다.
그 사이 아내는 트렁크에 여행 짐을 꾸리고 저는 항에서 벵에돔 손질을 마쳐야 합니다.
우선 아가미를 찔러 살림통에 담가 피를 뺍니다. 5분은 있어야 충분히 빼는데 시간상 3분 만에 핏물을 버리고 새 물을 갈았습니다.
곧바로 비늘을 치는데요. 해는 이미 떨어져 눈앞이 침침해져 오니 속이 바짝 탑니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손질이고 뭐고 어려울 것 같아요.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낚시하는데 많은 신경을 써서인지 팔에 힘이 없습니다.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은 캄캄해져 오고.
한참 손질 중인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부부가 와서 손질하는 걸 구경합니다.

"이걸 다 잡은 거에요? 이게 무슨 고기예요?"

대충 그런 말들이 오간 뒤 저는 대가리와 내장을 한꺼번에 분리하는 손질법으로 열 마리를 처리, 깨끗한 바닷물에 한 번 헹궈줍니다.
그 사이 짐 정리를 마친 아내는 인근의 낚시점에서 각얼음을 사서는 헐레벌떡 뛰어오는군요.
트렁크에 낚시가방과 짐을 정리하고, 라이브웰과 밑밥통은 겹쳐 넣은 뒤 거기다 벵에돔과 각얼음을 넣습니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그동안 참았던 볼일을 시원하게 본 뒤 시동을 걸자 정확히 오후 7시를 가리킵니다. 
공항으로 달리면서 창문을 여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ㅋ

뒷좌석 시트에 방향제 몇 방 뿌려주고 발판도 꺼내 탁탁 털어주고, 그렇게 해서 공항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7시 50분. 헉헉.
직원이 와서 차를 둘러보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아니다 티켓팅이 남았지!
최대한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티켓팅도 빨리빨리. ^^

그리하여 앞에서 세 번째 창가 좌석으로 비행기 표를 받고 공항 내 식당에 들어서니 오후 8시 30분.
보딩시간까지는 앞으로 한 시간가량 남았으니 그제야 느긋하게 식사하며 긴장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친 벵에돔 회

서울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20분. 대충 짐 정리하고 회를 치니 자정이네요.
지금이 아니면 먹기 어려운 벵에돔 회 맛을 보기 위해 피곤함을 무릅쓰고 회를 쳤습니다. 동생도 부르고 주무시던 어머니는 깨우고 ^^;
생선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시는 어머니를 위해 이렇게 회를 치고 나니 좀 전에 정신없이 낚시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네요.
 


요건 토치로 그을려 불 맛을 가미한 벵에돔 숙회

벵에돔 숙회 중에서도 으뜸은 뱃살 ^^

당일 날 오후 5시~6시 사이에 낚인 벵에돔을 항공편으로 공수한 벵에돔 회입니다.
어때요? 싱싱함이 보이시나요? 저 섬세히 퍼진 섬유질과 얇은 힘줄을 보십시오.
저것 때문에 잘근잘근 씹히는 벵에돔의 차진 회 맛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안다죠. ^^
회의 식감은 활어회에서 이제 막 숙성회로 접어든 단계라 아직은 살에 탄력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는 얇게 썰어 봤는데요. 이제 늦가을이고 제철로 가는 길목이어서 맛이 적당히 베여있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메뉴로 초밥을 쥐었다.

당일 날 손질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몸이 피곤해 굳이 회를 안 먹더라도 하루 이틀 뒤에 먹을 초밥을 생각하자면 어찌됐든 당일 날 손질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열 마리 중 세 마리는 구잇감으로 챙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포를 떠 키친타올에 돌돌 만 뒤 김치 냉장고에서 숙성하였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초밥용으로 적당히 숙성되어 있었어요. 이걸로 초밥을 쥐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밖에서 절대 못 사 먹음.^^)


일반인들은 먹기 어려운 긴꼬리벵에돔 초밥 되시겠다.

적당히 불을 가해 껍질을 익히면 약간은 농후한 지방 탄 맛이 느껴지는 벵에돔 껍질회 초밥.


이것을 맛보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기도 하다. ^^

저는 초밥 전문가는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이 초밥이 시중에 파는 어지간한 초밥은 모두 KO 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맛은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맛은 제가 내는 게 아니라 바로 이 긴꼬리벵에돔이 내는 맛이지요. 모름지기 원재료가 좋으면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틸라피아 초밥이 생각나네요. 요리 실력이 부족한 건 용서가 되나, 재료를 속이고 신선도를 가리는 건 용서가 안 됩니다.
그런 걸 먹고 초밥 먹었다고 하는 분들을 위해 저는 이 초밥을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습니다.
한때 제주도에 내려가 횟집을 차릴 생각도 했습니다만, 음식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얽매이는 것이고 정말 잘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 꿈은 포기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잡혀있다가 시간은 어느새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소주 한잔 했더니 몸이 노곤해지고 눈도 풀리네요. 그대로 침대에 누웠더니 천정이 살짝 도네요.
그리고는 달군 팬에 버터 마냥 제 몸은 침대 속으로 스르륵 녹아들었습니다.

제주도 여행 마지막 날, 아직 포스팅을 안 한 마라도 잠수함과 마라도 관광. 그걸로 일정이 끝나는가 싶었죠.
막판에 한 시간 반가량 벵에돔 낚시를 위해 선비를 내고서라도 들어가려는 제 의지가 이러한 결과를 만든 것 같습니다.
낚시 시간은 짧았지만, 시간과 물때를 보고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좀 더 집중했더라면' 더 많은 마릿수를 타작할 수 있었을 텐데
촬영 때문에 그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벵에돔 낚시는 제 인생 중 "가장 짧은 낚시 시간"이라는 진기록이 되어버렸군요. ^^ 

※ 추신
다음 편 예고입니다. 일주일 후, 저는 감성돔의 저주를 풀기 위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고흥 나로도로 향하였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미리 예고했으나 페친이 아닌 분들은 모르실 거에요. 우주센터의 고장 나로도에서 2박 3일 감성돔 낚시!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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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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