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몰랐던 스테이크에 대한 오해 - 고든램지의 레어 스테이크 굽는법


오늘을 끝으로 스테이크 굽는법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스테이크는 크게 다섯 가지의 익힘이 있습니다.

"레어, 미디움 레어, 미디움, 미디움 웰던, 웰던"

이 중에서 '레어'의 익힘은 어지간해서는 도전하기가 망설여지는 굽기지요.
설익은 살에서 핏기가 줄줄 나오는 특히,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기를 바짝 구워먹는 한국의 식문화와 대입해도 이건 좀 아닌 거 같고. 결국, 일부 레스토랑, 일부 스테이크 마니아만이 레어 스테이크를 즐기는
그들만의 '음식'이라는 인식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그 레어 스테이크란 게 '육질이 받쳐줘야 가능'한 음식이라 등급 높은 한우만이 그 맛을 제대로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부지기수일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한 통념을 깬 쇠고기를 이용해 레어 스테이크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셰프 '고든램지'가 말하는 레어 스테이크 굽는 법을 90% 수용해 따라잡기에 나서보고요.
아울러 스테이크에 관한 오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스테이크 가니쉬

먼저 가니쉬(곁들임 음식)부터 준비합니다.
볼에 토막 낸 감자, 표고버섯을 넣고 올리브 오일, 바질, 소금, 후추 등으로 버무립니다. 이것을 호일을 깐 오븐에 넣어 돌려놓고요.
그 사이 스테이크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육우 2등급 채끝 등심

1) 고기 두께는 2~2.5cm가 적당하다. (여기서는 좀 더 두껍게 했음)
2) 올리브 오일을 친다.
3) 후추를 뿌리고
4) 천일염을 뿌린다.
5) 위 과정을 고기 뒷면에도 반복해 준다.


지난 시간에는 각종 허브로 시즈닝했지만, 이번에는 소금 후추만 뿌렸습니다.
고기는 지난 시간과 마찬가지로 한우가 아닌 육우 채끝 등심을 사용하였습니다. 등급은 2등급입니다.
2등급답게 마블링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고기를 가지고 주로 스테이크를 해 먹지만, 한국과 일본은 유독 마블링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확실히 마블링이 많은 고기일수록 기름기로 인한 고소함이 있지만, 대신 높은 가격을 내야 합니다.
지금 사용하는 고기는 100g당 3,600원 정도인 육우 2등급으로 레어 스테이크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숙성 기간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15일, 20일가량의 숙성육으로 스테이크를 했는데요. 이번에 사용한 고기는 25일가량 숙성한 고기입니다.


※ 스테이크에 대한 오해(1) -  오래 숙성하면 고기가 썩는다?
숙성 방법은 '웻 에이징'으로 정육점에서 아예 진공 포장을 해서 가져왔습니다. 그것을 1도씨로 맞춘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였습니다.
진공 포장 숙성은 모든 정육점이 하는 숙성법입니다. 법정 허용기간으로는 최대 60일 정도지만, 그 이상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혹자는 25일이나 숙성하면 '고기가 썩지 않을까?'라며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숙성 과정이 올바르면 25일이 아니라 30일, 40일을 숙성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진공 포장(웻 에이징)으로 숙성했을 때의 장점은 고기가 연해지고, 속은 촉촉해지며 아미노산과 같은 여러 단백질 성분이 응축돼 육향이
진해진다는 데 있습니다. 만약, 한우 1등급 이상을 사용한다면 굳이 장기간 숙성을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한우 1등급 이상이면, 마블링에서 오는 '고소함'이 육향을 대신해 어느 정도 맛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마블링이 주는 고소함(많이 먹으면 느끼함)과 육향은 비례하지 않는다."

육우 2등급이 가지는 핸디캡은 역시 부족한 마블링에 있습니다. 이를 '장기간 숙성'을 통해 '육향'으로 커버하는 것이므로 마블링으로 인한 육즙은 못할
수 있지만 육향 만큼은 더 풍성해집니다. 비록 태생은 육우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어느 레스토랑 못지 않은 맛을 '장기간 숙성'을 통해 낼 수 있다는 것.
만약, 이러한 육우를 구입하자마자 굽게 되면 자칫 질겨질 수 있으니 '부드러운'  레어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숙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렇게 숙성을 거치면 고기 표면이 검붉은 색을 띠게 되며, 단면을 썰면 마찬가지로 검붉은 색을 띱니다.
하지만 실온에 30분 정도 놔두면 본래의 고기 색을 찾으니 이 점은 염려마십시오.

※ TIP  
스테이크용 고기는 조리하기 전 1시간가량 실온에 둬서 숨을 트게 해줘야 합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고기는 중심부 온도가 매우 차갑습니다. 그 상태에서 조리하면 겉만 익고 속은 안 익어 굽기 조절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스테이크용 고기는 반드시 1시간 전에 미리 꺼내 실온과 비슷한 온도로 맞춰주는 게 좋습니다.
또 한 가지는 '소금에다 절이지 말 것' 입니다. 소금을 뿌려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삼투압 현상으로 육즙이 빠져나옵니다.
소금, 후추는 조리 시작 30분 안에 뿌리고, 될 수 있으면 바로 조리하세요.



연기가 올라올 정도로 팬이 달궈지면 고기를 올립니다.


1분에서 2분 가까이 지지면 뒤집습니다.


통마늘도 같이 구워주고.
고든램지의 스테이크 굽는법에서는 마늘을 손으로 으깨서 넣는데 그렇게 해서 고기를 문질러주면 마늘 향을 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고기 색이 적당히 갈색이 되면, 옆 면도 익혀준다.

※ 스테이크에 대한 오해(2) - 겉면을 익히는 이유는 육즙을 가두기 위해서다?
많은 분이 이렇게 겉면을 지지는 것에 대해 '육즙 가두기'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1850년대, 리비히라는 독일의 화학자는 "끓는 물에 고기를 넣고 익히면, 단백질 성분인 알부민이 겉에서 속으로 굳으면서 껍데기를 형성해 수분이 침투하지
못하므로 내부의 육즙이 밖으로 스며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로 오면서 여러 실험을 통해 '육즙 가두기 신화'는 깨졌다고 해요.
문제의 핵심은 '단백질을 열로 지졌을 때 방수가 되느냐의 여부'. 
스테이크를 구울 때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나는 이유는 고기 안쪽의 육즙이 빠져나오면서 뜨거운 팬에 닿아 수증기로 변할 때 나는 소리입니다.
만약, 겉면을 지져 완벽하게 방수가 되었다면 육즙이 빠져나오지 않을 것이며 지글거리는 소리 또한 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실험의 결과였습니다.
또한, 스테이크를 구워 접시에 담은 후 바닥에 육즙이 고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는 조리가 잘못돼서가 아니고 육즙이란 것은 어떻게 조리해도 일정
부분은 빠져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검색을 통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 참고로 해두시고요. 이제 제가 느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스테이크 레시피를 쓸 때 "겉면만 빨리 익혀 육즙을 가둬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도 위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간혹 접시에 고인 육즙을 보고 "육즙이 다 빠져나갔네."라고 하는 것도 오해에서 불거진 일입니다.

"스테이크 굽기에서 육즙은 일정 부분 빠져나가는 게 정상, 다만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기 겉면을 크러스트화 시키는 것"

팬 프라이 방식으로 스테이크를 굽는 유명 레스토랑은 팬에 고인 육즙으로 소스를 만듭니다.
육즙에 레드와인을 넣고 졸인 그레이비 소스가 대표적이죠. 만약, 고기의 겉면에서 육즙이 전혀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육즙을 이용한 소스 또한 없을
것입니다. 다른 스타 셰프는 고기를 레스팅하는 과정에서 팬에 고인 육즙을 뿌리기도 하죠.

고기 겉면을 강한 불에 익히는 이유는 이것 말고 또 있습니다. 
열을 가해 탄수화물이나 아미노산이 반응해 색이 변하면서 복잡한 맛의 화합물이 생긴다고 하는데요.
이를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하는군요.(저도 검색하다 알게 된 용어임) 스테이크 겉면을 지지는 이유는 육즙을 가두기 위함이 아닌 껍데기(Crust)를 만들어
촉촉해진 속과는 다른 치감을 주기 위함이라는 게 정설로 보입니다.


버터 두 쪽을 잘라 넣습니다.


고든램지는 고기가 버터에 흥건히 젖을 정도로 많이 넣는데요. 저는 '무염 버터'를 사용해 그 양의 절반만 넣었습니다.

※ 스테이크에 대한 오해(3) - 버터를 넣으면 고기 본연의 맛을 헤친다?
버터를 넣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한국인의 식문화와 정서를 고려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만, 팬 프라이드 스테이크에서 버터를 사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입니다. 팬 프라이에서 버터를 넣은 것에 대한 기원은 정확히 모르지만, 현재는 뉴욕 스테이크가 대표적인 스타일로 알려졌습니다.
고기의 크러스트(Crust)는 버터가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주는데 여기서 버터의 의미는 단지 스테이크의 풍미를 살리기 위함으로 알고 있어요.
실상 저렇게 조리해도 막상 고기를 썰어 드실 때는 버터 맛이 잘 안 납니다.
버터 때문에 고기 본연의 맛을 그르치지는 않으니 이 점 안심하셔도 될 거에요. ^^


고기 표면에 로즈마리를 골고루 문질러준다.

고든램지의 스테이크 굽는법에서는 '타임'을 사용했지만, 제 수중에 없어 그냥 화분에서 자라는 로즈마리를 몇 개 꺾어다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고기 표면에 대고 앞뒤로 문질러주면 향이 표면에 베여 풍미를 더합니다.


버터와 육즙의 혼합물을 끼얹어 주며 익힘을 조절합니다.
익힘을 조절할 때는 손가락으로 고기를 눌러 느껴지는 탄력으로 판단하세요.
물컹한 느낌일수록 레어, 단단한 느낌이 들수록 웰던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육우 채끝 등심으로 스테이크 만들기 를 참조.
어느 정도 익혔으면, 불을 끄고 잠시 기다립니다.(레스팅 과정) 

※ TIP
스테이크는 레스팅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게 거치지 않는 것보다 맛이 좋습니다. 한 마디로 뜸을 들이는 시간이라고 보면 쉽습니다.
식힘 망이 있으면 팬 위에 올리고 고기를 담아 표면에 붙어 있는 육즙을 떨어트리게 합니다. 시간은 약 3분이면 충분.
이렇게 하면 고기 안팎의 온도가 안정화되면서 육즙이 자리 잡게 됩니다. 플레이팅할 접시도 달굴 수 있다면 달궈서 온도를 높여주세요.



썰어서 플레이팅 하였습니다. 로즈마리는 잎 부분만 떼서 뿌려주고요.
속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썰어서 플레이팅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썰어서 담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고든램지 방식으로 레어 스테이크 완성

아직 팬에 육즙이 남아 있다면 위에다 살살 뿌려주세요. 
소스는 세 가지로 언제나 그랬듯 미네랄 천일염, 홀그레인 머스타드, 블랙페퍼소스 입니다.


가니쉬는 웨지감자와 표고, 여기에 길거리에서 주은 은행알 몇 개를 기름치지 않은 팬에다 굴려가면서 구운 것을 올렸습니다.


덩어리째 올린 다른 접시입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촉촉함이라고 보이네요. 육우 2등급을 감안해서라도 ^^

※ 스테이크에 대한 오해(4) - 고기 안에 핏기는 핏물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주로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고기 안에 핏물이 고여 있으면 비린내 나서 못 먹습니다. ^^;
이는 핏물과 육즙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아서 오는 오해인데요. 고기는 도살할 때 피를 빼지만, 이후에도 핏기는 남아 있으며 근육에 붙어 있습니다.
정육점에서 산 고기를 오랜 시간 체에 밭치거나 물에 담가 놓으면 빠져나가는 것이 '핏물'입니다. 핏물을 열로 가열하면 하얗게 일어나죠.
주로 냉동 삼겹살을 팬에다 굽게 되면 하얗게 일어나는 것을 봤을 겁니다. 핏물의 주성분은 '헤모글로빈'.
이것이 빠지지 않으면 고기에서 누린내가 작렬하겠지요. 반면에 육즙은 고기의 수분기와 지방(마블링)이 열에 녹은 것의 혼합체입니다. 
이것이 열에 가열되면 하얗게 일어나지 않고 맑고 투명한색이 되며, 흡사 '조미료'이 납니다.
육즙의 주성분은 '미오글로빈'으로 핏물(혈액)과는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스테이크를 썰었을 때 줄줄 흘러나오거나 고기에 고여 있는 액체는 핏물이 아닌, 육즙이니 안심하고 드십시오.



접시에 고인 육즙에 푹 적셔 있는 마지막 한 점까지 싹싹 긁어먹게 되는 레어 스테이크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마블링(기름기)이 많지 않아 1등급 이상에서나 느낄 수 있는 흥건한 육즙은 덜했습니다.
대신 25일가량의 숙성을 통해 육질이 아주 부드러워져 있었고 특히 육향이 진해 쇠고기의 씹는 맛과 감칠맛이 모두 좋았습니다.
부드러운 육질은 사각사각 씹히는 감촉을 주었던 레어 스테이크. 저렴한 가격의 쇠고기로도 이 정도 맛을 낼 수 있었던 건 역시 '충분한 숙성'을 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러분도 미리 고기를 사 두었다가 숙성 스테이크 해 드시기 바랄게요.

이제 곧 있으면 연말입니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한껏 기분 내는 것도 좋지만, 그러기가 어려운 실속파들에게는 이러한 스테이크 레시피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쇠고기 숙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더보기를 참조하십시오.

<<더보기>>
쇠고기 숙성 방법과 기간(웻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 숙성에 관하여)
숙성 쇠고기의 참맛,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 굽는법
류태환 셰프의 노르웨이 연어 요리 in 류니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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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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