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도 먹기 힘든 진짜 도다리, 회 맛은? (담배 도다리)


"자신의 본명을 잃어버린 불운한 생선, 도다리"

우리는 본래 소수 종족이었다. <도다리>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지키며 우릴 찾는 이들에게 천상의 회 맛을 자랑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문치>라는 녀석들이 물량공세를 하더니 어느새 우리의 이름을 빼앗아 갔다.
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매년 3~4월이면, 배 엔진 소리로 동네 전체가 시끄러웠다. 
하루는 자고 있는데 바로 옆까지에 그물을 내리더니 우리는 물론, 옆집 <문치>아가씨를 마구 잡아갔다.
도대체 그걸로 뭘 만들어 먹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본래 횟감이지만, <문치>아가씨들은 산후조리 중이기 때문에 횟감은 아닌 듯 보였다.
<문치>는 정말 흔했다. 해마다 봄이면 <문치>가 수천 마리 들어와 닥치는 대로 지렁이며, 새우며 잡아먹었다.
너무 많다 보니 가끔은 내 등짝을 밟고 지나가면서 힐끗 쳐다보기만 하더라.
그들이 그렇게 들어와 난장판을 만들 때 우리 종족은 구석에서 쥐죽은 듯이 살아야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문치>가 유명해졌다고 하더라. 그때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치를 <도다리>로 부르더니 이제는 진짜 도다리인 우리를 <담배쟁이>나 <담배 도다리>같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딜 봐서 담배를 닮았단 말인가? 이름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엉뚱한 이름까지 붙여놨으니 기분이 무척 억울하다.

- 어느 진짜 도다리의 한탄 - 


재미로 썼지만, 실제 도다리는 억울할 만합니다. 
반대로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쑥과 궁합을 맞춘 문치가자미는 도다리 쑥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전국구 <도다리>란 명칭을 얻었습니다.
세상이란 게 그런 거 같아요. 누구 입에 좀 들어가 줘야 입소문이 날 텐데, 진짜 도다리는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주목을 못 받는 동안 문치가자미는
수적 우위를 점하면서 오늘날 도다리로 굳혀져 버렸습니다.
저는 이날 도다리 조업배에서 전 국민의 0.001%도 맛보지 못한 진짜 도다리, 문치가자미와 함께 맛을 보았습니다.


<<목차>>
1. 통영 봄도다리 낚시, 성공적인 첫 탐사
2. 도다리쑥국, 왜 3월인가?(중국산과 국산 도다리 구분법)
3. 봄도다리 조업 현장을 가다(상), 사람들은 잘 모르는 도다리 상식
4. 봄 도다리 조업 현장을 가다(하), 어부가 챙기는 생선
5. 전국민의 0.001%도 맛보지 못한 진짜 도다리, 회 맛은?



도다리 조업배에서 잡은 도다리와 문치가자미

가운데 마름모꼴 모양이 어류도감 상에 기재되어 있는 진짜 도다리란 녀석입니다.
그 주변으로 체형이 길쭉한 것들은 오늘날 <도다리>란 이름으로 군림하고 있는 문치가자미. 
선장님은 이른 아침, 새참으로 이 녀석들을 회 치기로 합니다. 저는 너무 많다고 손사래 쳤지만,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며 기어이 회를 치시네요.


사모님은 간재미까지 더해 손질에 들어가고.
간재미 1, 도다리1, 문치가자미 3으로 다섯 명이 먹어야 지경이니 이 정도면 입에서 도다리 냄새가 나도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


도마를 깨끗이 씻고

표준명 도다리

참 억울한 녀석이죠. 문치가자미에게 도다리란 타이틀을 빼앗겨버린 진짜 도다리.
이 녀석들은 개체 변이가 있어 무늬가 오락가락합니다. 등에 무수히 난 점박이는 마치 표범 무늬를 연상시키는데 이게 개체에 따라 굵은 게 있고
녀석처럼 자잘한 게 있습니다. 고로 도다리를 구별할 때는 그런 무늬의 변화를 고려하여 마름모꼴 체형을 보고 판단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먼저 이 녀석부터 회를 치겠습니다.


포를 뜨니 순백의 때깔을 자랑하네요. 벌써 군침이 도는데요.

벗긴 도다리 껍질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떡. 정 가운데 <담기골살>이 한 조각 붙어 있네요. ^^
넙치와 가자미 종류를 통틀어 가장 맛있는 부위를 꼽으라면 바로 담기골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느러미살입니다.
일본어로 '엔가와', '엔삐라'로 불리는 이 부위는 가장 활동량이 많아 씹는 식감이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맛을 냅니다.
한 점 붙어 있는 귀한 살점을 사알 뜯어 먹어봅니다.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 뒤에는 미려한 단맛이 느껴지네요.


간재미

간재미는 제철을 지나 이제 끝물로 향하고 있습니다. 뼈째로 길쭉하게 써시네요.
저 우둘투둘한 모양에서 식감이 보이십니까? ^^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컵라면. 그리고 사모님이 담그신 경상도 김치.
뱃전에서 뭘 먹어도 안 맛있겠냐마는 배 위에서 먹는 라면과 자연산 회는 진정 꿀맛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회 맛을 봐야 하므로 라면은 뒷전입니다. 라면을 먼저 먹고 회를 먹으면 회 맛 배리기 때문에 기다리는 중입니다.
옆에는 문치가자미 포 뜨기가 진행 중이고.



이것이 돈으로도 먹기 어려운 오리지널 도다리 회

사진은 초고추장을 찍어 먹음직스럽게 촬영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찍고 그냥 먹어 보았습니다.
활어를 즉살했으니 쫄깃한 식감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식감 자체는 제철의 문치가자미와 다를 게 없으나 광어, 도미보다는 탄력이 훨씬 좋습니다.
탄력은 좋은데 질기지 않은 식감. 계속 씹으니 단맛이 느껴집니다.


#. 회의 제철과 맛의 근간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실 진짜 도다리도 맛이 들려면 두어 달 지나야 합니다. 제철은 뜻밖에도 가을이라는 사실.
왜냐하면, 산란을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하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생선의 회 맛은 살과 지방이 들었을 때가 가장 맛있으므로 산란을 준비하는
시기가 제철이 됩니다. 예를 들어, 4월에 산란하는 물고기가 있다면 그보다 2~3달 전인 12~1월에 회 맛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봄에 산란하는 물고기의 제철은 겨울이고, 겨울에 산란하는 물고기의 제철은 가을이 됩니다.
농어나 민어처럼 가을에 산란하면, 그 물고기의 제철은 여름이 됩니다. 물론, 모든 어류가 다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제철이라 함은 '회 맛이 가장 좋을 때'를 기본으로 하지만, 지금의 문치가자미처럼 어획량이 많아서 제철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도루묵처럼
회로 안 먹는 생선은 알이 꽉 들어찰 때를 제철이라 합니다.
알이 꽉 차면 지방을 비롯한 대부분 영양분이 알과 이리(정자 주머)로 집중되기에 살 맛이 밍밍합니다.
또한, 산란 직후에는 몸이 홀쭉하고 살밥이 안 차 회가 볼품없습니다. 결국, 산란 전후 어느 쪽이든 횟감은 별로입니다.

최상의 횟감은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는 시기로 이때가 되면 살이 탄탄하고 만져보면 두껍습니다.
비육 상태가 좋아 썰어보면 살점이 두껍게 나오고 적당한 기름기도 있어 씹을 때 맛이 나죠.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오래 씹지 않고 대충 씹어 식감만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회 맛의 반밖에 못 보는 셈입니다.

회 맛이 들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찍지 말고' 그냥 먹는 것입니다. 간장도 찍으면 안 됩니다.
그냥 드시되 서른 번은 씹어보세요.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침과 섞여 죽이 되었을 때 그제야 내어주는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이 해당 어종이 가지는 본연의 맛입니다. 이는 '분쇄'를 통한 '숨은 맛 끌어내기'로 원리는 단순합니다.
좋은 쌀밥을 오래 씹으면, 침과 섞여 죽이 되면서 녹말의 단맛이 느껴지는데 회도 마찬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도다리와 간재미 회

이로써 진짜 도다리와 간재미가 한 접시에 모였습니다. 왼쪽 흰살이 도다리이고 오른쪽에 불그스름한 살이 간재미. 간재미는 맛이 싱겁네요.
도다리의 회 때깔을 기억해 두었다 아래 나올 문치가자미 회와 비교해 보십시오.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문치가자미 회

이것이 요즘 '봄도다리'로 각광받고 있는 문치가자미입니다. 쑥국 재료지요.
남해는 3~4월에 어획량이 많고, 동해와 서해는 그보다 한두 달 늦습니다. 문치가자미가 3~4월에 집중적으로 잡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어류는 산란을 마치고 영양 보충을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산후 조리'에 해당하므로 가까운 해역으로 들어와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합니다.
이때 낚시와 조업에 많이 걸려듭니다. 아직 살을 찌우는 과정에 있으므로 횟감으로는 메리트가 떨어집니다.
그 증거를 <회의 색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좀 전에 도다리 회 친 것과 때깔을 비교해 보라고 하였는데요.

맛있는 회는 색택이 밝고 윤기가 나야 합니다. 여기에 '오로라' 효과라고 해서 무지개 빛이 도는 게 좋은 회입니다.
회 색깔의 밝고 어두움을 보면 맛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원래 회 색깔이 어두운 어종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만, 같은
어종으로 한정했을 때 제철에서 벗어난 회는 무색이며 거무튀튀하고 어둡습니다.

반면, 맛있는 회는 일단 밝아야 하고 완전한 흰색보다는 누르스름한 현미색이 들어갑니다.
누르스름한 색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당분'으로 씹을 때 단맛을 내는 근간이 됩니다.
혹자는 쫄깃한 식감으로만 회를 먹어왔다고 합니다. 그런 분에게는 도다리든 문치가자미든 다 맛있게 느껴질 겁니다.


이제 모든 회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왼쪽에는 진짜 도다리와 간재미가 있고, 오른쪽은 문치가자미 회입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없어지는 회는 무엇일까요?


진짜 도다리가 가장 먼저 사라졌습니다. 이날 촬영팀과 함께 먹었는데요.
회 맛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사람 입맛은 정직한 법입니다. ^^
물론, 양이 적어 먼저 없어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정말 압도적인 차이죠.


#. 진짜 도다리 vs 문치가자미, 어느 게 더 맛있나?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진짜 도다리의 압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도다리도 지금은 살이 덜 찼고 제철이 아닙니다.
문치가자미 역시 산란 직후라 살을 찌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두 어종은 모두 여름부터 맛이 들기 시작해 가을로 이어집니다.
진짜 도다리든 문치가자미든 회 맛이 가장 좋을 때는 최소 5월은 돼야 하고 6~9월이 좋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10월부터는 맛이 빠집니다. 이유는 다른 어종과 달리 월동과 산란을 준비하면서 살에 든 지방을 소비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12월에 먹은 문치가자미는 질기고 밍밍합니다.

이번에 맛 본 문치가자미도 오래 씹어보았으나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싱거웠으며, 살은 씹히지 않고 끝까지 남아 질겅거렸습니다.
씹다가 씹다가 넘기기 어려워 뱉어 낼 정도였는데 이는 살이 아직 덜 여물어서 물컹거리는 현상입니다.
반면, 진짜 도다리는 고탄성이지만 잘 씹혀 부드럽게 넘어갔습니다. 아직 살이 덜 찼는데도 단맛이 느껴졌고요.
둘 다 이대로라면 6월 이후가 더 기대되는 횟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두 어종의 승부는 둘 다 제철일 때 맛을 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므로 잠시 유보해 두기로 합니다.


통영 수협삼덕위판장

오전 9시 30분. 항으로 들어온 배들이 그날 잡은 생선을 분주히 나르고 있습니다.
이제 곧 경매가 있을 텐데요. 그 전에 어떤 고기들이 들어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봄 전어

불볼락(열기)와 쥐노래미

볼락

등가시치(현지에서는 고랑치로 부름)

문치가자미(전국적으로 도다리라 부름)

잡동사니들

우럭, 등가시치 등 다양한 어종을 모아놨는데 바로 정 가운데 진짜 도다리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손으로 잡아서 건진 후 촬영하려 했지만, 그 주변으로는 무시무시한 쑤기미가 있어 포기.


도다리(현지에서 담배쟁이라 부름)

표준명 도다리입니다. 문치가자미가 몇십 상자 들어올 때 진짜 도다리는 한두 상자꼴로 들어옵니다.
이 녀석들은 표범 무늬가 크고 진해 알아보기 수월하네요.


이날 선장님이 잡아들인 문치가자미

그리고 도다리 조업에서 올라온 각종 잡어

고기 분류하느라 바쁘다.

부부가 합심하여 일궈낸 소중한 결과물들

이어서 경매가 시작되고 한 사람이 흥을 돋우려고 '이이~오오~' 신기한 소리를 냅니다. ^^



다들 눈치작전에 들어가며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저분이 들고 있는 문치가자미 씨알이 정말 좋네요. 한 800g은 족히 나오겠습니다.
이렇게 샘플을 들어 상태를 확인해 주면 그것을 보고 구입을 결정합니다.



이곳에서 경매를 마친 문치가자미는 일부 쇼핑몰, 대도시 횟집으로 가지만, 대부분은 통영, 거제 등 산지로 빠집니다.
거기서 한 그릇에 15,000원가량 하는 '도다리 쑥국'으로 변신하겠지요. 일부 업소는 값싼 중국산 돌가자미를 들여놔 쑥국을 끓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은 수조를 봐도 이게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알기 힘들겠죠. (지금까지 제 글을 정독했다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날 진부곤 선장께서 잡아들인 문치가자미(도다리) 가격은 kg당 28,000원. 10kg에 280,000의 시세를 받았습니다.
문치가자미 2~3마리가 1kg이니 그걸로 15,000원짜리 3~4그릇은 끓일 수 있습니다. (서울은 한 그릇에 18,000원 하죠.)
생각해 보면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닙니다. 봄도다리 쑥국이 워낙 유명하니 공급이 달려 몸값도 천정부지로 오르는군요.

이렇게 해서 도다리 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는데 (선장님의 신들린 도다리 손질법 ^^) 그것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고
이번 연재로 봄 도다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상식이 널리 전파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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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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