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의 황당한 오해, 임산부가 회를 먹으면 위험할까?




"30대 초반의 주부입니다. 임신 3개월인데 회가 너무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임산부가 회를 먹는 게 아니라고 해요. 잘못 먹으면 태아에게 해를 끼치거나 탈이 날 수도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검색을 해봤지만, 다들 의견이 분분해서 어떤 게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속 시원한 답변 좀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 이러한 질문을 받은 저는 '임산부 생선회' 문제와 관련해 글을 쓰기로 하였고 주변 지인들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전원이 "임산부는 회를 먹으면 안 돼"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설명해서 이들의 생각을 바꾸게 해볼까? 도 생각했습니다만, 몇몇 분들은 완전히 그렇게 믿고 있어 그냥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임산부가 회를 먹으면 해롭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힌 상황입니다. 
사람은 고정관념이 확고히 자리 잡을수록 귀를 닫게 됩니다. 그러니 제가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하지만 이럴 때 산부인과 원장이 나서서 설명해주면 그 말은 철석같이 믿을 겁니다. 
'산부인과 원장'이라는 이름이 이들에게는 공신력을 행사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산부인과 전문의라는 이들도 임산부가 회를
먹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전문의는 '먹으면 안 된다.'면서 그 근거를 <기생충>과 <식중독>을 들었는데요. 
정말 임산부는 회를 먹어도 될까요?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풀이해보겠습니다.

 



■ 부정확한 정보가 비상식을 만든다.
이 문제와 관련해 검색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 하는 이야기가 <기생충>과 <식중독>때문이라고 합니다. 
생선을 '날 것'으로 먹으면 기생충 감염이 있고 균의 증식도 빨라 탈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에 먹는 생선회에는 기생충이 있었단 말인가?"

아마 이 질문에 속 시원히 답변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민물고기에는 뭐가 있고, 바다고기에는 뭐가 있으며 감염 경로는 뭐가 어떻다는 둥.
이런 건 잘 몰라도 '날 것'이니까 막연히 불안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회로 먹는 건 붕어나 가물치가 아닙니다. 대부분 바닷물고기입니다. 우럭, 광어, 줄돔, 농어, 도다리, 놀래미, 도미, 등등. 전부 양식이죠.
양식은 사료를 먹고 자랍니다. 다시 말해 기생충에 감염된 2차 숙주(작은 물고기, 갑각류 등)를 먹지 않고 고등어, 멸치, 정어리 분쇄육에 갖가지 영양이
섞인 사료를 배합한 것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는 양식 어종에서 기생충이 나올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 아니사키스 때문에 회를 안 먹는 건 말이 안 돼.
그렇다면 자연산에서 기생충이 나올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바닷물고기에서 나올 수 있는 기생충 종류, 혹시 아십니까?
대표적인 게 아니사키스(고래회충)입니다. 아니사키스는 하얀 실처럼 생겼는데 주로 내장에 기생하며 숙주가 죽으면 수 시간 내로 근육에 파고들죠.
하지만 살아있는 생선으로 회를 치면, 설사 아니사키스가 있다더라도 내장과 함께 버려지니 근육으로 감염되지 않습니다.
바닷물고기에 기생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회를 떴고 그것을 섭취했다면,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습니다.
아니사키스에 감염된 사례는 일반 횟집보다는 자연산을 취급하는 산지의 수산시장이거나 혹은 낚시꾼이 죽어버린 생선으로 회를 쳤을 때 생깁니다.
설사 아니사키스에 감염된 회를 먹었다 하더라도 이 기생충은 성체가 아닌 유충이므로 사람 몸속에는 알을 까거나 기생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은 위액에 녹아 사멸되죠. 그러나 가끔은 활력 좋은 아니사키스가 위장을 뚫고 나가려 하므로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경우 회충약은 안 듣고, 오로지 위내시경을 통해 제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횟집과 일식집에서 회를 먹고 아니사키스에 감염될 확률은
지극히 멀쩡한 음식을 먹고 배탈 날 확률과 맞먹을 정도로 낮습니다. 그 낮은 확률 때문에 회를 꺼리기 보다는 먹고 싶은 걸 먹음으로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참고로 아니사키스는 태아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 그 외 기생충에 관하여
아니사키스 외에 흡충류가 있으며 최근 문제가 불거진 쿠도아충이 있습니다.
흡충은 연어와 꽁치 등에서 나타나지만, 우리 입에 들어갈 확률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꽁치를 회로 먹는 이들도 없고요.
연어의 흡충 보고는 캘리포니아와 벤쿠버 앞바다에서 잡히는 개체에 발견되며, 산란기를 맞아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개체군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현재 한국으로 수입되고 있는 연어는 칠레산과 노르웨이산으로 전량 바다에서(해상 가두리 포함) 잡힌 것들입니다.
물론, 강에서 잡힌 연어를 횟감으로 파는 비양심 상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강에서 잡은 연어를 일부러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려운 확률인데 그 때문에 연어를 꺼린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쿠도아충은 생선 근육에 기생하는 충으로 원래는 육안 식별이 가능한 크기였습니다.
최근 제주산 광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충은 쿠도아충 변종으로 현미경을 통해서만 관찰되고 있으며 모양은 '꽃'모양으로 아주 예쁘게 생겼습니다.(?)
이것이 배속에 들어가면 설사와 복통을 일으키다가 하루이틀 만에 자연 치유되므로 증상 자체는 경미합니다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찜찜하죠.
그러니 제주산 광어에서 쿠도아충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조심해서 먹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쿠도아충이 제주산에만 나타나는 이유는 수온과 환경적인 요인이 큽니다. 이 이야기까지 하면 지면이 매우 길어지므로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광어회는 개인적으로 완도나 충무, 거제산을 선호합니다. 


#. 디스토마 염려가 있다?
혹자는 일명 세꼬시(뼈째썰기)를 먹었을 경우 간디스토마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뼈째썰기로 먹는 회는 붕장어, 도다리, 줄돔, 그 외 작은 바닷물고기들입니다. 디스토마는 민물 생선에만 기생하는 흡충이죠.
바다 생선회를 먹는데 왜 민물 기생충을 염려하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 식중독에 걸릴 위험은 없나?

살모넬라가 있기는 한데 이는 생달걀과 가금류(닭), 그리고 죽은 선어를 먹는 경우에만 해당합니다.
어느 정신 나간 임산부가 이것을 생으로 먹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생선회를 먹고 식중독을 염려해야 할 증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 비브리오 패혈증
- A형 간염


비브리오균은 해수 온도가 상승하는 여름에 쉽게 발병하는 균으로 활어의 아가미, 지느러미, 비늘에 붙어 있습니다.
활어는 기본적으로 생체 방어기능이 있습니다. 비늘은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하겠죠.
그러므로 해수에 포함되 있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생선 근육으로 침투하지 못합니다.
전에 활어를 고를 때 비늘이 온전히 붙어 있고 상처 없는 것을 고르라고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위생'입니다. 
도마, 칼, 식기 등에서 기본적인 청결을 지키지 않는다면, 생선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온갖 균들이 회로 옮겨붙습니다.
회를 뜰 때는 손질할 때 도마와 칼이 따로 있어야 하며, 포를 썰어내는 최종 작업에서도 도마와 칼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도마와 칼은 여러 개를 사용하며, 늘 소독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정상적인 횟집이라면 다들 지키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러한 기본을 잘 지키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주로 재래시장, 수산시장에서 즉석 활어회를 파는 좌판이 그러합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좌판에 앉아 회 치는 걸 구경하다 보면 위생관념이 빵점인 아주머니들이 더러 계세요. 
손님은 몰리고 회는 빨리 쳐야 하니 생기는 병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결도가 좋고 검증된 횟집이나 일식집을 이용하라고 권합니다.
또 한 가지 상식은 우리가 비브리오균을 먹었다 하더라도 면역력이 정상인 성인 남녀에게는 발병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로 간질환, 당뇨병, 알콜중독자, 위절제술 받거나 제산제 혹은 위산 분비 억제제를 복용 중인 사람, 그리고 백혈구 감소증, 만성 신부전증과 같은
환자가 오염된 생선회를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질병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간혹 임산부가 이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면, 회를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A형 간염은 B형이나 C형처럼 혈액으로 감염되는 게 아니라 오염된 음식을 먹었을 때 발병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매우 제한적으로 발병합니다.
특별히 간 기능이 좋지 않거나 혹은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오염된 생선회를 먹으면 A형 간염 바이러스가 면역력을 이겨 간염을 일으킵니다.
이 증상은 일반적으로 4~5주의 잠복기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섭취한 지 일주일 후 황달 증상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임산부는 어떤 병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약물 치료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생선회를 먹고 A형 간염에 걸리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 건강한 여성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A형 간염이 걱정돼 생선회를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믿고 먹을 수 있는 횟집을 수소문해서 먹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는 게 임산부로서는 더 이득입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임산부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는 태아에게 매우 좋지 않으니까요.


■ 임산부가 건강하게 생선회를 먹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선회가 위험한 음식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과거의 상식이 현대의 변화된 상황에 쫓아오지 못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운송수단과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생선회를 먹고 기생충 감염이나 식중독 발병이 잦았습니다.
그때는 위생관념도 지금처럼 좋지 못했기 때문에 여름에 생선회를 먹으면 민물고기는 디스토마에 노출되고, 바다고기는 비브리오 패혈증에 노출됐습니다.
옛 문헌을 보면 <동의보감>에 "임산부가 회를 먹으면 탈이 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민물고기를 염두하고 작성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생선회 문화는 고려시대 중기가 시초입니다, 그 시절 선비들이 낚시로 낚은 것으로 회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주로 잉어나 붕어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연히 디스토마나 식중독의 위험이 있겠죠? 그것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회는 무조건 해롭다.'와 같은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생선 근육은 기본적으로 '무균'상태로 태아에게 이로운 단백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오염된 생선회'이지 생선회 자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지간해서 활어회를 취급합니다.
선어회도 죽은 생선으로 친 게 아니라 활어를 손질해서 냉장고에서 숙성한 것입니다.
활어를 잡아다 바로 떠서 내면 '활어회'이고, 그것을 저온에 하루쯤 숙성해서 내면 '선어회'입니다.
이 둘은 공통으로 산 생선을 잡아서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횟감 자체가 아닌 <업소의 위생관념>입니다.
그러므로 임산부가 생선회를 먹기 위해서는.

첫째 : 위생과 양심이 검증된 횟집과 일식집을 이용할 것.
둘째 : 손님 많은 횟집을 이용할 것. (더불어 수조가 깨끗하고 테이블 회전율이 좋은 곳)
셋째 : 위생이 검증되지 않은 수산시장 좌판은 피할 것.
넷째 : 몸이 안 좋거나 간질환, 당뇨, 위산 관련 약 복용자는 회를 피할 것.
마지막으로 신체 건강한 임산부가 "회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떨쳐버릴 것.


일부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임산부는 회를 먹어선 안 된다."고 막연히 말하는 이유는 생선회 전문 상식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설명했던 기생충
종류와 회를 통한 식중독 감염경로를 꿰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심해서 나쁠 게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데요.
이는 지극히 자기 편리적인 주장입니다. 확률상 극히 적은 발병률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고정관념에 연연해 먹어야 할 음식을 먹지 못한다면.

"사고 날까 봐 버스 타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 정도로 오늘날 생선회는 과거와 달리 운송, 보관, 처리가 빨라졌고 위생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생선회와 초밥 종주국인 일본은 오히려 임산부에게 회와 초밥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태아에게 좋은 영양분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어회 문화로 산 생선을 잡아다 즉살시킨 뒤 포를 떠서 냉장 보관합니다. 그리고 1~3일 숙성해서 손님상에 내는 게 일반적인데요.
만약, 임산부가 회를 먹고 큰일이라도 난다면,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회와 초밥이 적잖은 사회문제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이 우리 주변에서는 통하고 있습니다. 귀가 얇은 아줌마들도 문제지만,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전문의들이 더 문제입니다.
결론은 생선회와 초밥은 "위생이 검증된 횟집, 일식집이라면" 얼마든지 드셔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임신 초기, 중기, 말기 상관없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 추신
누가 그러더군요. 1% 확률이라도 위험하다면 먹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다면, 우리는 1% 사고 위험이 있는 배도 타지말아야 하고, 지하철도 타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외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고 원인이 배와 지하철에 있나요? 아니면 사고를 직접적으로 내는 다른 무언가에 있나요? 생선회는 죄가 없는데 사람들은 원인을 생선회로 돌립니다. 
임산부가 생선회를 먹고 탈을 일으키면, 그 원인은 생선회에 있나요? 생선회를 비위생적으로 만든 횟집에 있나요?
마흔 넘은 일본인 친구가 그럽니다. "임산부가 회를 먹으면 안 된다."는 말, 자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고.
생선회 종주국도 모르는 낭설, 왜 한국에서는 논란거리가 되는 건지 좀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더보기>>
모두가 경악한 '광절열두조충', 생선회는 억울해
생선회 오해, 찬물에 사는 생선이 더 맛있다?
그동안 몰랐던 스테이크에 대한 오해 - 고든램지의 레어 스테이크 굽는법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의 허와 실
노르웨이 고등어와 국내산 고등어의 차이점

정기 구독자를 위한 구독+
추천은 글쓴이에게 원동력이 됩니다.^^




Posted by ★입질의추억★
:

카테고리

전체보기 (3981)
유튜브(입질의추억tv) (589)
수산물 (635)
조행기 (486)
낚시팁 (322)
꾼의 레시피 (238)
생활 정보 (743)
여행 (426)
월간지 칼럼 (484)
모집 공고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04-20 14:55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