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 농어 기행] 간재미 농어 된장 라면, 들어는 보셨소?



3kg짜리 농어

지난주 간재미 조업 현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전남 가사군도를 찾은 저는 간재미 조업배에 올랐습니다. 산 보리새우를 꿰어 던져 놓은 주낙에 간재미가 쏠쏠하게 걸려들었는데요.
이제는 농어 주낙을 걷으러 갈 차례. 물칸에는 전날 잡아 놓았던 3kg짜리 농어가 은빛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꿀꺽'할 정도로 맛있게 생겼더군요. ^^; 

서울은 물론, 대다수 지역의 횟집과 일식집에서 고급 횟감으로 통하는 농어는 그 태생이 90% 이상 양식입니다. 
그중 다수가 중국산이고요. 그러니 특별히 자연산 농어를 취급하는 횟집이 아니면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녀석일 겁니다. 
3kg 정도면 길이 60cm가량 나갈 텐데 가끔은 80cm 이상, 무게 8kg에 달하는 일명 '따오기'급 농어가 들어오기도 하지요. 아주 가끔 말입니다.
그런 녀석을 맛봐야 할 텐데 가격도 가격이고 인원도 필요한지라 횟집에서 사 먹는 건 개인적으로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차라리 그런 녀석은 낚시로 직접 낚아서 먹는 편이 훨씬 수월하겠다는 생각이에요. 
얼마 전 농어 루어낚시 기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가지 못한 게 생각났습니다. 


 

농어가 올라오자 뜰채질에 나서는 선장님

이제 주낙을 하나씩 건지면서 농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날은 물때가 3물로 한 달 중 조류가 가장 약할 때입니다. 그만큼 농어 씨알도 잘았죠.
주로 나오는 사이즈는 40~50cm급이 많았습니다.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80cm급 이상 '따오기'급은 역시 사리 물때가 돼야 하나 봅니다.

그나마 경험 많은 선장은 농어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내 주낙을 깔았고 그 결과, 크지는 않아도 이제 겨우 '깔따구(어린 농어를 지칭하는 말)'를 벗어난
농어를 여러 마리 낚을 수 있었습니다. 농어 포인트는 일단 물속에 여(암초)가 깔려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에 물살이 빠른 해협이나 섬과 섬 사이의
물골이어야 하는데 이날은 가사군도의 작은 섬과 섬 사이의 물골에 주낙을 설치해 소위 '농어 놀이터'라 불리는 이곳 일대에서 재미를 봤습니다.


약 3.5kg급 농어

봄 농어가 살이 제법 올랐네요. 가을부터 산란에 들어가는 농어는 겨우내 먼바다로 나가 있다가 이듬해 봄이 돼서야 가까운 연안으로 들어옵니다.
이때부터는 먹이활동을 왕성히 하면서 살을 찌우는 시기인데요. 그 절정은 산란 직전인 여름에 맞습니다. 여름에 회 맛이 좋은 이유인 거지요.

앞에 보이는 붉은색 플라스틱은 주낙을 일정 수심까지 띄우는 부력제입니다.
주낙 길이가 한 통을 흘리면 못해도 수십 미터는 되는데요. 중간중간 저 부력제를 끼워 던짐으로써 바늘이 중층에 떠 있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맨 마지막 바늘 뒤에는 무거운 추를 달아 던져 채비를 안정감 있게 눌러주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수중에서 보면 추에 가까운 바늘은 바닥에 깔리고 점점 대각선 방향으로 떠서 중층 사이로 지나가는 농어가 걸려드는 식입니다.
물론, 미끼는 산 보리새우를 뀁니다. 농어에게 그만한 미끼는 없으니까요. 값이 비싸지만, 산 보리새우만 구할 수 있다면 농어 낚시에서도 특효일 겁니다.


갓 잡은 농어를 들어 보이는 선원

점농어

서울의 횟집에서 시커먼 농어만 봐오다가 이렇게 금빛이 살짝 도는 농어를 보니 참 반갑습니다.
자연산 농어의 증표이기도 하지요. 밝은 채색, 반질반질한 윤기. 실제로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옆에 피디님도 배를 많이 타보셨지만, 농어가 이렇게 예쁜 물고기인 줄은 몰랐답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농어는 농어, 점농어, 넙치농어 이렇게 세 종류로 알려졌는데 서해에서 낚이는 건 점농어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점농어는 등에 많은 반점이 있으며 그 반점이 등지느러미까지 박혀 있는 것으로 일반 농어와 구별됩니다. 이날 잡힌 농어는 전량 점농어였죠.


선장님이 아침 식사로 간재미 라면을 끓여주겠답니다. 곁으로는 촬영이 귀찮다며 툴툴거려도 챙겨줄 건 다 챙겨주시는 선장님.
간재미는 저렇게 가운데를 찢어 피를 뺍니다. 아래쪽은 지난 편에서 날갯살만 도려내 회로 먹다 남은 간재미 ㅠㅠ


양철 냄비에 물을 받고 간재미 2마리 반을 넣었는데 꽉 차버렸습니다.
여기서 라면을 넣으면 넘칠 텐데 어떻게 끓일 수 있을지가 염려되는 상황.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늘 새것으로 가지고 다닌다던 부탄가스가 이날 동났다네요. 아쉽지만, 간재미 라면을 포기해야 할 상황.


그러다가 마침 인근에 나와 있는 어민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부탄가스를 빌리려고 했는데요. 결국에는


이 분의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
종선을 타고 가사군도의 작은 부속섬으로 오게 되었던 거였죠. 그곳에는


눈 앞이 캄캄할 정도로 깡촌(?)이라 하면 이분들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나 그만큼 소박하고 때 묻지 않은 어촌이 저를 반겼습니다.
이러한 풍경도 실로 오래간만이네요.


마을 주민은 선장과 절친은 아니지만, 안면이 있었던 사이었나 보네요.
선장님은 다 함께 먹기 위해 손질한 간재미와 산 농어 한 마리를 챙겨 어촌 주민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강아지 한 마리. 이방인의 등장에도 아랑곳없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네요.
하지만 손을 뻗치자 그 이상은 오지 않은 겁많은 강아지.


선장님은 수돗가에서 농어 한 마리를 뜨고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농어 씨알이 (씨알 좀 팍팍 쓰시지 ^^;)


금빛 어체에 하얀 살결이 드러나는 자연산 농어

자연산 점농어회 한판

선도를 보장하는 오로라 현상

최상의 선도에서만 나타난다는 오로라 현상.
이는 양식, 자연산 할 것 없이 나타나지만, 활어의 스트레스가 적고 선도가 좋아야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활어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선도만 좋다면 숙성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그러므로 '선도'란 즉살 후 시간 경과와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 (물론, 3~4일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자기소화와 해경에 들어가므로 제외)

처음 한 점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것도 찍지 않고 맛봅니다.
어린 농어임에도 도시 횟집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단맛이 도네요. 활어회 특유의 탱글탱글한 식감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혹자는 횟집에서 활어회를 내올 때 피를 빼고 10분 간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가 썰어서 낸다고 합니다.
이유는 너무 빨리 썰어 내면 살이 질기기 때문이라는데요. 그 부분은 저도 회를 떠보면서 느꼈던 것이고 실제 그렇게 하는 횟집도 있을 수 있겠지만,
10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썰어 낸다 한들 우리가 식감으로 느낄 만큼의 차이는 아니라고 봅니다.
활어회일수록 포를 얇게 뜨면 질기지 않은 탱글탱글한 식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써는 두께 감으로도 충분히 조절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굳이 10분이라는 시간을 흘려 보낼 이유는 없습니다. 사후경직(근육이 물러지기 시작하는 상태)은 실온 노출 시 즉살 후 수분 이후에
나타나는데 그 전에 썰어야 식감이 좋다는 건 생선회의 근육 과학을 아는 실무자들은 다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생선회 근육 과학에 관해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예제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마른 김이 준비되어 있길래 양파와 함께 사 먹어보았습니다.
김의 질이 좋아서인지 향이 강하고 사각하게 씹히는 맛까지 있어 생선회 본래 맛을 느끼기에는 무리였지만, 한두 번 먹기에는 독특한 맛 경험이었습니다.


회 뜨고 남은 껍질에는 파리가 달라붙고

남은 서더리는 주방으로 가져갑니다.


간재미와 농어 뼈를 넣은 특미 된장 라면을 끓이는 중

이 섬에는 도라지, 더덕, 하수오 등 몸에 좋은 뿌리 식물이 지천에 널려 있어 이렇게 직접 캐다가 술을 담가 드신다고 하네요. 캬 좋습니다.


간재미 농어 된장 라면 완성.

우연히 만들어진 된장 라면?

#. 간재미 농어 된장 라면 전설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이 라면이 완성되기까지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뱃전에서 간재미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부탄가스가 떨어져 주민 마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다 아예 집으로 초대해 끓여 먹게 되었는데요. 선장으로부터 건네받은 큼지막한 간재미를 보자 아주머니는 라면이 아닌 '간재미 탕'을 끓이라는 
건 줄 알고 국물에 된장을 풀었다고 합니다. 평소 안면만 텄던 선장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생면부지의 사내들(촬영팀)을 상대로 자신의 집에 초대해
간재미 탕에다 밥과 반찬을 내어 대접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시골 인심에 한 번 놀랬습니다.)

그러다 제가 농어 뼈를 들고 주방에 들어가면서 간재미 탕은 간재미 농어 된장 라면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주방에 들어서자 웬 된장을 풀고 육수를 끓이는 게 아닙니까? 순간 '된장 라면'을 끓이는 갑다 싶어 말을 걸었더니 아주머니 왈.
"라면 끓여 드시려는 거였어요? 나는 탕 끓여달라는 줄 알았지.'라고 말하면서 스프를 빼고 그대로 면만 넣어 완성했던 거였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간재미 농어 된장 라면

결국, 간재미 농어 된장 라면의 시초가 탄생한 배경은 아주머니의 착각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 원조가 제 앞에 놓였습니다. 이 음식이 탄생한 배경이 후대에 널리 전파돼 기원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시식해 봅니다. ^^


보드라운 간재미 지느러미살에 김치 한 점 올려 먹으니 그 맛이 천상이다.

역시 라면 스프를 안 넣은 게 다행이네요. 된장의 간간한 국물에 간재미, 농어의 감칠맛 육수가 잘 조화된 맛이었습니다.
다들 후루룩 먹기 바빴는데요. 얼굴에 땀이 흥건히 고일 정도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나네요. 

원래 밥 생각은 없었는데 아주머니가 내어 준 흑미밥을 살짝 말아먹었더니 그 맛도 기가 막혔습니다.
국물에 비린내 하나 없는 간재미 농어 된장 라면.
이 음식을 맛보려면 결국에는 싱싱한 생물을 사다 끓여야 할 텐데 갓 잡은 이것의 싱싱함을 따라올 재료가 이곳 말고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다 먹고 나오면서 코로 숨을 내 쉬자 홍어과 어종 특유의 암모니아 향이 제 입안을 감싸돕니다.
그런데 이 현상을 왜 나만 느꼈던 걸까요? 아직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농어 주낙

마을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저는 다시 배에 올라 농어 주낙 현장을 지켜봤습니다.
우선 뿌려 놓았던 주낙을 표시하는 부표를 건지고요. 주낙을 걷어 올립니다.


1타 1피는 아니었지만, 서너 다리 건너 한 마리꼴로 올라오니 이 취약한 물때에 이 정도 조업량이면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캬! 이 맛에 배 탑니다. ^^"


항에 도착하자마자 냄새를 맡고 온 고양이가 나를 노려본다.

이 녀석 배고픈가 보네요.


뱃전에서 뒹구는 보리새우 몇 마리를 던져주었더니 잘도 깨뭅니다.
사람도 귀해서 잘 못 먹는 보리새우. 이곳 어촌 고양이에게는 흔한 식사인지도 모릅니다. 풉


이제는 물칸에 넣어 둔 활어를 고이 모셔다 옮길 차례


풍성한 조업량은 아니었지만, 일당은 했다던 선장과 선원의 얼굴에는 살며시 웃음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뱃일이 참 고되고 힘들지만, 이 장면 보려고 배 타는 게 아닐까요? ^^



간재미도 이렇게 몇 상자가 나왔습니다.
이것들은 전용 물칸에 보관되었다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즉살한 후 피만 빼서 택배로 보내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중간 유통을 생략하고 곧바로 소매점이나 일식집으로 직거래하는 것이지요.

자연산 농어의 단가는 1kg당 25,000원 선. 이곳과 직거래를 하는 서울, 수도권의 고급 일식집에서는 4킬로짜리 농어 한 마리를 10만 원에 사오는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손님에게는 1kg당 120,000원에 팝니다. 4kg이면 480,000원에 팔겠지요.
단순 가격 논리로만 보면 무려 다섯 배의 차익을 거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고급 일식집일수록 부지의 임대료가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부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 값도 무시하지 못할 테니 다섯 배의 차익은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직거래이기 때문에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이겠지요.
1kg 자연산 농어회면 2~3인분에 해당합니다. 부요리 포함해 12만 원이면, 먹을 만한 매리트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간재미와 농어 주낙 현장을 탐사하였습니다.
저는 간재미 요리로 유명한 횟집으로 가 다양한 간재미 요리를 맛보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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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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