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전통음식 밥식해, 장인의 제조과정을 공개합니다. 


 

한동대 창업보육센터

 

제가 찾은 이곳은 한동대 창업보육센터. 겉으로 느껴졌던 이름과 달리 이곳은 포항의 전통음식은 물론, 사라지거나 숨은 옛맛을 되살리고자 하는 음식을 연구하고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포항의 명물 밥식해를 비롯해 북어와 과메기로 만든 독특한 장아찌가 있는가 하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가자미와 멸치, 더덕과 인삼을 이용해 만든 장아찌가 새로 개발돼 특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오늘 알아본 것은 포항의 전통 음식인 밥식해입니다. 밥식해는 우리가 평소 마시는 음료인 식혜와 전혀 다른 음식이지만, 모두 쌀과 엿기름을 넣어만든 발효음식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식해와 식혜는 발음상으로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마시는 식혜는 '감주'라는 말로 따로 구분해 부르기도 하지요. 밥식해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실은 소금 생산량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 말은 즉, 젓갈 문화가 발달한 서해와 달리 동해는 소금이 귀했기 때문에 밥식해라는 독특한 음식으로 발전한 것이지요. 포항과 경주, 영덕 지방 사람들은 쌀이나 좁쌀에 주로 생선과 무를 넣고 발효시킨 다음 즐겨 먹었는데 이 식해가 뿌리내린 경로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함경도의 가자미식해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그 이전에 이미 고구려 시대부터 뿌리내린 음식이라는 게 정설로 알려졌습니다.

 

이날은 장인의 밥식해 제조과정을 보기 위해 한동대를 찾았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시선을 잡았던 것은 역시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곳답게 많은 장독대와 널린 밥이었습니다. 밥식해를 담그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한쪽에는 고두밥을 식히고 있습니다.

 

 

소금과 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꼭 김장철 느낌이 나지요. ^^

 

 

대구횟대

 

이날 밥식해의 주인공은 가자미가 아닌 횟대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가자미와 오징어 식해는 이 지역에서 흔하므로 자주 사용되었을 뿐, 맛에서는 횟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이곳 밥식해 장인인 강영화 진심식품 사업본부장의 설명입니다. 횟대란 생선은 동해에서만 나는 특산종으로 이것도 몇 종류가 있으며 맛도 천차만별입니다.

 

대표적으로 대구횟대, 빨간횟대, (근)가시횟대 등이 있습니다. 모두 맛을 봤지만, 식감에서나 맛에서나 대구횟대가 가장 으뜸이었죠. 강영화 본부장의 설명도 제가 느낀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밥식해의 원조는 가자미가 아닌 횟대로 만든 것이며 횟대 중에서도 대구횟대가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다만 횟대가 가자미만큼 흔한 생선은 아니므로 횟대 대용으로 가자미가 자주 쓰인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그나저나 이 엄동설한에 대구횟대를 어떻게 구하셨는지 모르겠군요. 이날도 제가 새벽에 나가 죽도 시장 경매를 둘러봐서 아는데 대구횟대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근처 다른 항에서 구해온 것으로 얼핏 들었네요.

 

 

맛은 전혀 다르지만, 대구횟대와 생김새가 매우 유사한 어종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시횟대를 들 수 있는데요. 전문적인 구별법은 일전에 설명했으니(관련 글 : 동해의 맛을 책임지는 특별한 생선, '횟대'를 아시나요?) 단순히 가시적인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위 사진처럼 배가 진노랑이어야 오리지널 대구횟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뼈째 썰어내는 게 포인트입니다. 보시다시피 가운데 뼈가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이지요. 그만큼 뼈와 함께 씹어도 억세지 않으며 오히려 물렁물렁한 뼈의 씹는 맛과 거기서 나오는 감칠맛이 아주 뛰어납니다. 썰 때도 마치 마치 바나나 칩을 만드는 것처럼 어씃 썰어내는군요. 

 

 

손질을 마친 대구횟대

 

양쪽의 지느러미는 모두 쳐낸 상태에서 껍질과 뼈는 발라내지 않고 통째로 썰었습니다. 이것이 쌀의 전분기와 엿기름에 의해 발효되면 가운데 뼈는 더 물러지는데요. 흔히 '삭힌다.'고들 하지만 식해는 삭히는 개념보다는 그 이전 단계인 '발효'로 매콤 새콤한 맛에 횟대의 깊은 감칠맛이 더해지게 됩니다.

 

 

저 안에 든 액체는 이번에 취재한 횟대 밥식해의 제조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천연 물질입니다. 이곳 밥식해 장인과 교수진들이 연구, 개발한 배양액으로 이곳의 밥식해가 특허를 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첨가제입니다. 이 부분은 아래 쪽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포항의 전통 음식 밥식해가 장인에 의해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준비과정을 거칩니다. 들어가는 재료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구횟대, 엿기름, 밀가루, 소금, 고두밥, 고춧가루, 설탕, 무, 마늘, 멸치육수, 그리고 기호에 따라 매실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각각의 재료를 정확히 짜 놓은 레시피에 맞게 계량한 것인데 정확한 양은 저만 알고 있습니다. 아마 공개해서는 안 되겠지요. ^^; 기회가 된다면 이 레시피로 제가 직접 만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A 과정입니다. A 과정은 횟대에 엿기름을 부어 섞습니다. 엿기름은 보리싹을 틔워 말린 가루입니다.

 

 

이어서 분량의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버무립니다. 여기까지는 횟대에만 밑간한 것입니다.

 

 

B 과정은 어느 정도 식힌 고두밥을 준비합니다.

 

 

고두밥을 큰 통에 담습니다.

 

 

뭉친 밥알은 손으로 살살 풀어 보슬보슬하게 만듭니다.

 

 

고두밥에도 엿기름과 밀가루를 넣습니다.

 

 

이번에는 설탕을 넣습니다.

 

 

A의 횟대와 B의 고두밥이 합쳐졌습니다. 이를 AB라 부르겠습니다. 

 

 

왠지 이 상태에서 한 점 집어먹어도 맛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이제 C 과정이 남았습니다. C 과정은 채 썬 무에 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 겁니다.

 

 

AB에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립니다. 고춧가루는 입자가 굵은 것과 가는 것으로 두 가지를 사용했습니다.

 

 

고춧가루까지 버무려진 상태입니다. 이제 중요한 과정이 남았습니다.

 

 

좀 전에 말한 배양액이 여기서 사용됩니다. 배양액은 무에서 추출한 천연물질로 자연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이 소량의 배양액을 다량의 무즙에 넣어 분무기로 뿌립니다. 한 사람은 뿌리고 한 사람은 수시로 뒤집어가며 골고루 묻게 하는 거죠. 이 작업은 AB뿐 아니라 C(무 버무림)에도 해줍니다.

 

밥식해는 서해의 젓갈처럼 많은 양의 소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통기간이 대단히 짧을 수밖에 없으니 저장음식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밥식해를 담그고 나면 발효를 위해 3~5일 정도 실온에 두고 이후로는 냉장 보관하며 꺼내먹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수일 이내에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음식입니다. 젓갈처럼 몇 달 이상 보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하지만 이 배양액을 무즙에 섞어서 첨가하면 냉장 보관으로 8개월까지 두고 먹을 수 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매우 획기적인 밥식해가 탄생됩니다. 사실 오늘날 밥식해는 집집마다 들어가는 재료도 다르고 레시피도 달라 맛이 제각각인 점이 흠이었습니다. 포항의 전통음식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를 통합하는 표준 레시피의 마련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연구하게 된 것이 밥식해의 표준 레시피였고 여기에 보관성을 높이는 천연 배양액을 개발함으로써 음식 경쟁력을 높인 것입니다. 이 맛이 일부 나라에서 통한다면 수출도 할 수 있겠지요. 이미 이곳에서 개발한 몇몇 장아찌는 홍콩의 식품박람회를 통해 외국 기업과의 바이어 상담으로 의미 있는 독점 공급권을 요구했고 일부는 달성했다고 합니다. 횟대밥식해도 레시피의 표준화를 시키고 특화를 내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 음식을 알아보고 사 먹는 날이 오겠지요. 개인적으로 그런 날이 머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고춧가루를 추가로 넣고 버무려야 하는데 통이 넘칠 것 같아서 일부를 나눴습니다. 여기에 고춧가루가 추가로 뿌려지고요.

 

 

AB에 C를 섞어 버무립니다. 이 과정에서 뒤쪽에 보이는 멸치육수를 붓고 골고루 섞어줍니다.

 

 

드디어 포항의 전통음식 밥식해가 완성됐습니다. 맛을 보는데 무의 아삭한 식감과 다듬어지지 않은 맛에서 막 담근 김장김치의 맛이 느껴지네요. 아직은 그저 매콤하기만 합니다.

 

 

며칠 후, 잘 익은 횟대 밥식해를 꺼냈다.

 

저는 일부를 밀봉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이후 실온에 3일 정도 두었다가 일주일간 냉장 보관한 것을 개봉했습니다. 개봉하자마자 훅하고 올라오는 시큼한 향이 침샘을 자극하는군요.

 

 

발효된 모습이 사진을 통해 잘 전달되고 있나요?

 

 

표준화된 레시피로 만들어진 포항의 명물, 횟대 밥식해

 

참고로 횟대로 만든 식해는 우리가 흔히 아는 가자미식해와 오징어식해와는 격을 두고 있습니다. 생선 가격도 가격이지만, 발효 시 쉬이 물러지지 않은 단단한 식감과 뼈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이 뛰어나다 보니 현지에서도 횟대 밥식해는 아주 특별히 여깁니다. 다만 이 지역에서는 일 년 내내 나는 대구횟대라 해도 기상에 따라 조업량이 들쑥날쑥하며 지금과 같은 어한기에는 아예 잡히지 않아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요.  

 

입에 넣으니 약하지만 톡 쏘는 듯한 탄산 느낌이 납니다. 횟대를 씹자 처음보다 많이 물러진 상태임에도 살이 워낙 단단한 생선이어서 적당히 씹는 식감을 선사해주는군요. 계속 씹어보니 적당히 물러진 살점이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진한 감칠맛을 선사합니다. 그간 숙성하면서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IMP)가 높아진 탓이겠죠.

 

소금으로 절인 음식이 아니므로 짜지 않습니다. 또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니 고춧가루가 제법 들어갔지만, 발효로 인해 생각보다 맵지도 않고 오히려 새콤한 맛이 강하게 났습니다. 이 밥식해를 보니 가장 먼저 떠올린 음식이 뭐였을까요? 바로 질 좋은 막걸리였습니다. 밥 도둑으로도 좋지만, 먹걸리 한 잔에 밥식혜 한 젓가락이면 춘곤증이 기승을 부리는 이 시기에 졸음도 쫓아내고 겨우내 얼었던 입맛도 깨울 것 같네요. 무엇보다도 생선의 비린내가 날 것이라는 편견은 이 밥식해 앞에서 고이 접어두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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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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