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 돌잔치를 안하게 된 이유


 

 

 

 

요즘 딸 보는 재미로 삽니다. 이제 7개월 반인데요. 어찌나 재롱을 부리던지 ^^

아빠, 엄마의 어렸을 때 성향과 달리 이 녀석은 굉장히 활달하고 움직임도 많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씨익 웃고.

아이의 웃는 표정을 더욱 예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 부부는 아이 앞에서 예쁘고 활짝 웃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11월 6일이면 딸내미가 태어난 첫 돌인데요. 아내와 오랜 상의와 고심 끝에 돌잔치는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부부, 아이 낳기 전에는 돌잔치를 무던히도 다녔습니다. 그때마다 축하의 자리에서 출석 체크만 하고 시간만 때우러 오는 하객들을 여럿

보았는데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직계 가족이나 친척, 친한 친구가 아니고서는 그냥 밥 한 끼 먹으려고 오는 이들도 꽤 보이더군요.

"어차피 주는 돈 세이브했다가 나중에 내 경조사에서 돌려받으면 되겠지"라고 계산이 깔린 경조사 참여도 비일비재할 것이고요.

모름지기 경조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축하와 축복으로 해야 하는데 잿밥에만 관심 있는 하객이 많은 것 같아 내심 씁쓸할 때가 많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돌잔치, 예식장의 뷔페 문화는 70~80년도 수준에 멈춰있습니다.

그때는 다들 지금과 달리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이어서 무엇이든지 양껏, 다양하게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최고였습니다.

서양에서 온 뷔페가 우리 국민에게 크게 사랑받은 이유도 다양한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인데요.

결국에는 다 먹지 못할 음식이라 해도 일단 푸짐하게만 깔리면 최고의 식사이자 대접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뷔페 업체는 서민의 주머니를 먹으며 성장해왔고 이제는 포화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과열되었습니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음식의 질적 하락은 피할 수 없게 되었죠. 가격 경쟁이 붙으니 음식비는 함부로 내릴 수 없는 대신 식재료의 질과 단가를 낮추며

생존 게임에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부적절한 고기에 부적절한 양념으로 무친 육회.

검증되지 않은 수입 민물고기(틸라피아와 팡가시우스 메기)를 날것(회)으로 내는 유일한 나라.

과도한 이익 남기기에 혈안이 된 일부 예식장과 돌잔치 업체는 해마다 음식비를 야금야금 올리면서 음식의 질적 수준은 멈춰있는.

가짜와 짜가가 판치는 식재료로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상태'로 포장해 내고 있었던 것.

그렇게 뷔페 업체들은 우리나라의 체면 문화와 경조사 문화에 힘입어 해마다 크게 성장해왔습니다.

 

물론, 모든 뷔페 업체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보통의 서민들이(소화해 낼 만한 음식비) 즐겨 찾는 그저 그런 품질의 예식장과 돌 잔치, 출장 뷔페에 한정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 아이의 돌잔치 장소를 물색하면서 가격과 음식 질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가격이 저렴하면 음식이 엉망이고, 음식이 고급스러우면 가격은 제 경제 수준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적당한 가격대로 협상하자니 거기서 나오는 생선회가 늘 말썽이었습니다. 대부분 민물고기 회를 내거나 녹새치, 붉평치 같은 저가 회를 내더군요. 

제가 평소 블로그에서 이들 횟감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얼마나 상세히 다루었는지는 블로그 독자라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게 외쳤던 제 돌잔치에서 이러한 횟감으로 하객을 대접한다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은 없겠죠. 

뷔페 생선회는 아예 빼달라고 한 다음, 제가 따로 자비를 들여 단골 횟집에서 대도미, 대농어, 대광어 회를 공수해 올까도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았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저는 돌 잔치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음식으로 대접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음식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 말고도 형식 문화, 체면 문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돌잔치를 열면 오겠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요. 

그중 절반이 인사치레라 하더라도 말씀 만큼은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할 대상을 어느 정도 선에서 기준을 잡아야 할지는 고민되더군요.

초대를 안 하면 서운해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초대하면 민폐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죠.

저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왜 축하해 주는 자리에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나라의 경조사 문화는 어디서부터 비틀린 것인지.

제가 돌잔치를 안 하겠다고 하니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말리더군요. (주로 나이 드신 분들) 

 

사실 돌 잔치를 열면 그날은 아이도 부모도 모두 고생입니다. 아마 일부 하객들도 찾아오느라 땀 좀 흘리겠죠.

평소 입지도 않은 한복이나 양복을 준비해야 하고요. (이것도 대여비가 들죠.)

미용에 드는 비용도 있고 사회자에 액자에 동영상 촬영에 영상편지까지 모두 돈돈돈.

그런데 그렇게 들인 비용만큼 평상시 활용적인 측면에서 제 값을 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부모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거기서 만들어진 앨범과 동영상을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얼마나 자주 열어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결혼할 때 찍은 동영상과 앨범은 평소에 얼마나

자주 보십니까? 그렇다면 결국은 부모 만족인데 단순히 부모 만족 때문에 애 고생시키며 돌잔치를 여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고.

어떤 이들은 돌잔치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꽤 짭짤하다고 합니다. 적당히 저렴하고 질 낮은 뷔페를 이용했다면 드는 식비보다 거둬들이는 경조사비가

많다는 것인데요. 이 무슨 해괴망측한 계산인가요. 돌잔치를 수익의 기회로 삼은 부모들이 있으니 엉터리 음식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는 뷔페 업체가 

해마다 성장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경조사 음식의 질적 하락을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잘못된 경조사 문화가 일조했습니다.

 

돌잔치를 기념으로 남기고 싶다면 저는 사진과 앨범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서 100일 사진도 제가 손수 찍을 만큼 괜찮은 카메라를 보유 중이고 (관련 글 : 성의없는 베이비 스튜디오 사진, 결국 아빠가 나섰다)

또 식구 중에는 아이 사진을 잘 찍는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돌상 만큼은 주문 제작하려고 합니다.

장소는 인근의 호텔에서 직계가족만 초대해 조촐하게 진행하는 쪽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지인들도 이 글을 보게 될 텐데요. 돌잔치에 못 오게 된다 해도 너무 서운치 마소서. 돌이켜 보면 이게 다 제 능력 부족임을 인정합니다. ㅠㅠ

그래도 부적절한 음식으로 대접하거나 그런 뷔페 업체를 팔아줄 용의는 없습니다.

첫 딸의 돌잔치, 저는 형식보다 실리를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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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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