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의 혀가 되는 엽기적인 기생충, 시모토아 엑시구아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기생충이 있습니다.

일일이 알 필요도 없고 알아도 혐오감만 일으키니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이 녀석 만큼은 흥미 위주로 다루기에 매우 적절한 소재여서 이참에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놀랍게도 이미 인터넷상에서 '스타' 취급을 받는 꽤 유명한 기생충입니다.

이 기생충을 보면 '흥미롭다' VS '징그럽다'의 반응으로 양분되는데, 흥미롭다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녀석의 엽기적인 행태 때문입니다.

 

"내가 너의 혀가 돼줄께"

 

그렇습니다. 이 녀석의 깊은 사생활(?)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으로는 대략 이러합니다.

물고기의 비극은 이 녀석을 먹이로 알게 되는 순간 시작됩니다. 그 비극은 혀를 잃게 되는 것으로 시작해 귀찮은 그 무언가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

그것은 물고기의 혀를 파먹고 자신이 물고기의 혀가 된다는 다소 엽기적인 기생 사가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말로만 듣던 그것을 직접 확인한 것은 지난주, 구을비도(경남)에서 낚시하다가 우연히 낚은 벵에돔에 있었습니다.

 

 

벵에돔에서 나온 시모토아 엑시구아

 

함께한 일행이 30cm급 벵에돔을 낚았고 평소처럼 바늘을 빼는데 엉뚱하게도 이 녀석이 바늘에 꽂혀 나온 것.

이 장면 자체가 엽기적인 것이 정작 벵에돔은 낚시바늘에 꽂히지 않았는데 대신 혀의 역할을 한 이 녀석이 벵에돔을 단단히 붙잡고 올라왔다는 사실입니다.

힘이 세기로 정평 난 벵에돔이지만, 몸부림치고 힘쓰는 과정에서도 이 녀석과 함께 올라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 녀석이 얼마나 단단히 혀를 붙잡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겠죠. 그렇다면 이 기생충은 어떻게 물고기의 혀를 대신하게 된 걸까요? 먼저 이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 녀석의 정식 명은 '렉사넬라 베루코자(Rhexanella Verrucosa)'. 그런데 이름이 입에 착 감기는 타입은 아닙니다. 부르기에도 썩 매끄럽지 못하고요.

특이하게도 이 녀석은 정식명칭보다는 학명으로 더 유명합니다. 학명은 '시모토아 엑시구아(Cymothoa Exigua)'.

줄여서 보통 엑시구아라고 부르는데 이편이 렉사넬라 베루코자보다는 발음하기도 쉽고 뭔가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생활사를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기생충의 생활사가 그러하듯이 엑시구아도 수중에 부유하다가 숙주에게 잡아먹힘으로써 기생 사가

시작됩니다. 보통은 위장으로 들어가 기생하는 여타의 기생충과 달리 이 녀석은 혀에 여러 다리를 고정해 단단히 붙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리로 혀를 조여 혈류량을 조절, 일부 피를 흡혈함으로써 생을 부지합니다. 그러다 엑시구아가 성장함에 따라 빨아먹는 피의 양도 늘어 혀에

공급되는 혈류량이 서서히 줄게 됩니다. 결국, 그 혀는 마비되며 말라비틀어져 제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엑시구아는 숙주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적당히 그리고 조용히 기생생활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이는 대부분 기생충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숙주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아야 그곳에서 오래오래 빌붙어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엑시구아의 엽기적인 행태는 혀가 말라비틀어진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여전히 여러 다리를 혀뿌리에 고정해 놓은 이 기생충은 좀처럼 숙주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중간에 다른 숙주로 옮기거나 하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는 일부일처제의 애정과도 맞먹습니다.

다시 말해, 본 목적인 혀를 마비시켜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한 숙주에 머물면서 혀의 역할을 자처하게 되는 겁니다.

때부터 엑시구아는 물고기의 혈액순환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먹잇감의 찌꺼기를 처리해주는 순기능을 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생이 아닌 공생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난 처음부터 기생을 바라지 않았다구!"라고 말하는 물고기의

억울함이 들리는 듯합니다. ^^; 공생이라고 말하기에는 병주고 약주는 게 맞을 것 같네요.  

 

 

경남 구을비도에서 확인된 시모토아 엑시구아

 

시모토아과에 속하는 기생충(기생벌레)는 그 종류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 종에 이르며 낚시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학꽁치 아감벌레도 그중 하나지만,

혀를 파 먹고 자신이 그 물고기의 혀가 되는 이 엽기적인 엑시구아의 강림은 우리나라에서 꽤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이 기생충이 처음 발견된 지역은 미 캘리포니아이기 때문에 이 부근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생명체쯤으로 여겼지만, 2005년도에는 영국에서도 발견돼

시모토아 엑시구아의 서식 분포지가 어디까지인가에 관해 관심이 쏠렸습니다.

주로 아열대 해역에서만 서식하던 엑시구아가 영국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 온난화에 의한 해수온 상승이 염려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높아지는 고수온의 여파로 엑시구아의 한국 상륙(?)은 이제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저는 구을비도에서 벵에돔 낚시 도중에 확인하였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엘니뇨 현상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보는데요.

엘니뇨로 인한 해류의 변화, 즉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쿠로시오 해류의 따듯한 물줄기가 올해 유난히 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이 해류를

타고 들어온 벵에돔의 씨알도 올해는 유난히 부쩍 커진 게 아니냐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진의 엑시구아는 적도에서 발달해 대만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쿠로시오 해류에 벵에돔의 몸을 빌려 실려 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상에서는 '엑시구아 여신 강림'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으로 불리는 엑시구아.

숙주의 혀를 파먹고 숙주의 혀가 되는 이 엽기적인 생활사는 꽤 흥미로운 사실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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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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