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맥주에 관한 썰(1906, 마튼즈, 호가든, 발라스트 포인트)


 

 

콘텐츠는 흩어진 퍼즐을 끼워 맞추는 것과 같다. 하나의 콘텐츠를 온전히 내기 위해선 흩어진 기억과 자료를 끼워 맞춰 고증을 하고 팩트의 진위를 가린 다음 완성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완성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콘텐츠가 몇 개 있어도 글로써 내놓을 수가 없는 이유는 미완성 퍼즐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먹는 식용 새우에 관한 도감을 완성하겠다고 올여름에 공언했는데 지금 내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여도 직접 찍은 사진이 없어서(그간 먹기만 먹었지, 에휴)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맥주와 커피 분야는 내 블로그 콘텐츠의 주력은 아니지만, 그동안 소리소문없이 공부해 왔다. 이것도 어느 정도 퍼즐이 완성되면 하나씩 올려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내 블로그에서 하나의 소재로 다루기에는 좀 생뚱맞은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 만나는 지인들에게나 썰을 푸는 수준이다. 것도 아주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남보다는 조금 더 아는 수준이라 결국은 일상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가볍게 소개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각설하고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몇 가지 맥주를 추천해볼까 한다. 사실 맛으로는 이들 맥주가 최상은 아니다. 시중에는 듣도보도 못한 맥주와 상식을 파괴하는 가격(1병에 몇만 원짜리)을 가진 맥주, 무슨 수도원 맥주, 크레프트 맥주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이것들은 일반 소비자가 일반적인 경로로 접하는 맥주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맥주를 일일이 먹어보지 못했고. 그래서 동네 마트에서나 파는 수준의 맥주 중 가성비가 뛰어난 몇 종류를 소개해 아직 맥주의 신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국내 맥주 애호가들의 선택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소비자의 기호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맛의 기준도 높아져서 "업소용 맥주 시장 점유율에만 의존하고 안주하려 드는 국내 맥주 업계"가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일침도 있다.

 

 

1906 Reserva Especial

 

#. 1906

개인적으로 가성비 좋은 맥주로는 1906을 꼽는다. 가격은 330ml 한 병에 1,700원 선. 스페인 서북부 갈리시아 지역의 맥주 회사에서 생산된 제품인데 이 회사에서 출시한 몇 종류의 맥주가 있지만, 1906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스페셜 에디션으로 팔라타우와 너겟이라는 두 종류의 홉을 사용해 라거를 기반으로 한 맥주다. 알코올 도수는 6.5도에 이르지만, 구운 몰트와 옥수수의 구수함이 지배적이라 높은 도수의 쓴맛이 상쇄되는 뒷맛을 가졌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컵에 따라 부으면 의외로 거품이 쉬 사그라지지 않는다. 가격은 저렴할지 몰라도, 거품의 조밀도와 맛은 확실히 가격 대비 높은 편이다. 다만, 맛의 개성을 콕 집어내기에는 모호하다. 애초에 이 맥주가 라거를 기반으로 했고, 구수한 맛이 베이스지만, 강렬한 쓴맛이라든지 묵직한 보디 감은 떨어져 맥주 애호가들에게는 도수에 비해 가벼운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 맥주는 마른안주나 팝콘과 함께 목을 축이면서 TV나 영화를 시청하기에 좋아 보인다.

 

 

마튼즈

 

#. 마튼즈

가성비가 좋은 두 번째 맥주로는 벨기에에서 생산된 마튼즈가 있다. 가격은 1리터짜리 패트병 하나가 2,700원이니 매우 저렴하다. 그런데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싸구려 맥주라 보면 곤란하다. 지금 마트에 들여놓는 수입 맥주 시장은 그야말로 '가격 장난'이 심하다. 아래 호가든 편에 언급하겠지만, 단순히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해서 싸구려 맥주가 아니고, 가격이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맥주도 아니다. 마튼즈는 저렴한 가격에 반신반의하며 구매했는데 몇 가지 종류 중에서 '바이젠(WEIZEN)'이 맛의 개성에서 가장 뚜렷했다. 여기서 바이젠은 벨기에식 밀맥주를 말하며, 이를 벨지안 윗비어라 부르기도 한다. 보통 에일 계통이나 바이젠(밀맥주)은 평균 이상의 가격이 책정되어왔기에 이 맥주는 우리가 시중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밀맥주가 아닐까 싶다. 맛은 밀맥주 특유의 가벼움을 바탕으로 과일의 산미가 제법 느껴진다. (솔직히 오가든보다 나은 맛이다.) 종류는 필스너와 엑스포트, 바이젠 그리고 지금은 보기 어려운 골드로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바이젠은 안주 없이 음료로 먹기에 적당한 수준이라 맥주 특유의 쓴맛을 싫어하는 여성 분에게 권할 만하다.

 

 

호가든 그랑크뤼(앞열 맨 왼쪽)

 

#. 호가든 그랑크뤼와 포비든 프룻(금단의 열매)

마시기만 하고 사진을 남기지 못해, 여기서는 단체 사진(?)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벨기에에서 직수입된 네 종의 호가든 라벨 중 노란색 마트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 그랑크뤼와 금단의 열매다. 문제는 가격 장난이 심하다는 것. 수입 초기에는 판매촉진을 위해 이윤을 줄이면서까지 가격을 내려 무려 1병에 2,000원에 팔았다. 벨기에 현지에서도 우리 돈으로 3천원 가량하는 맥주를 한국에서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어필했던 것. 그러다가 얼마 못 가서 2,300원으로 올린 것까지는 좋았다. 갑자기 3,950원으로 가격이 두 배가량 뛰자 2천원대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현재 응암동 노란색 마트에서는 다시 2,000원으로 내려서 판매하게 됐으니 나는 지난주와 이번 주에 각각 10병씩 사재기를 하게 됐다. ^^;; 이게 또 언제 가격을 올릴지 몰라서 저렴할 때 사두고 천천히 마시기에 좋은데 구입 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맥주의 유통기한이다. 대게 이런 식으로 가격을 내려서 파는 수입 맥주는 남은 유통기한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점. 특히, 호가든 그랑크뤼와 금단의 열매는 6개월 이상 숙성했을 때와 1년 이상 숙성했을 때 맛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집에서 오랫동안 묵혔다가 마실 요량이라면 반드시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사야 할 것이다.

 

그랑크뤼와 금단의 열매는 둘 다 8% 대의 높은 알코올 도수를 보이기 때문에 2~3병씩 먹었다가는 훅 갈 수 있다. ^^

나의 경우 맥주 3,000cc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마시는 주량인데도 크랑크뤼와 금단의 열매를 연달아 마셨더니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일반 맥주보다 3~4도 정도 높을 뿐이지만, 마시는 양이 소주와 다르므로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면 어느 순간 휙 돌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랑크뤼와 금단의 열매는 둘 다 전형적인 에일이며, 도수가 높아 벨지안 스트롱 에일이라 부른다. 그랑크뤼는 원래 와인에 쓰는 용어로 '오랜 숙성'을 의미한다. 밀맥주(윗비어)와 달리 보리 효모로 만든 맥주에 코리앤더(고수 씨)와 정향, 오렌지 껍질 등의 시트러스한 향을 기반으로 한 향긋한 맛에 홉의 쌉쌀한 캐릭터가 복합적으로 섞인 점도 특징이다. 도수는 8.6%

 

포비든 프룻(금단의 열매)은 선악과를 따 먹는 아담과 이브를 형상화한 라벨이 독특한 맥주로 컵에 따르면 흑맥주에 가까울 만큼 검붉은 색이 특징이다. 따를 때 코를 대면 말린 건포도(또는 자두)같은 달콤한 향이 나는데 그 맛의 진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 입맛에는 볶은 커피와 캐러멜, 다소 스파이시한 향신료의 풍미가 복합적으로 터지면서 그 끝에는 홉의 쓴맛이 도드라져 그랑크뤼보다 독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알코올 함량은 그랑크뤼와 다르지 않은 8.5%

 

 

발라스트 포인트

 

#. 발라스트 포인트

이 맥주는 가성비가 썩 좋다고 보기 어렵다. 코스트코에 가면 12병 들이 한 상자를 59,000원에 판매해 병당 4,900원꼴이지만, 실제로는 발라스트 포인트의 한 종류인 '스컬핀'이 가격을 다 잡아먹고 있는 격이다.

 

 

발라스트 포인트에서 낸 맥주만도 8~9종 이상인 것으로 알지만, 이 패키지에서는 3종류가 각각 4병씩 들었다. 이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스컬핀으로 홍대나 압구정 펍에서는 병당 12,000원에 팔리며, 소비자가가 7천원 이상인 맥주이다. 나머지 두 종류는 펍 가격으로 8천원 선이며, 소비자가는 5천원 선이다. 그래서 스컬핀은 이 패키지의 평균가를 높이는 주범이다. 하지만 12병이 든 한 상자를 이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서 코스트코가 유일하다. 시중(홈플러스나 주류백화점 등) 가격은 이보다 더 비싸기 때문에 그나마 가성비가 좋다고 해야 할지. 물론, 더 무시무시한 가격을 가진 맥주도 지천이지만, 국산 맥주를 주로 애용하는 분들이 이런 맥주를 접하게 되면 패키지 디자인부터 가격, 종류에 이르기까지 맥주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패키지 구성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중에서 명성을 날린 건 스컬핀 하나뿐. 나머지 둘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차라리 칼리코나 빅아이, 이븐킬, 그루니언으로 넣었다면 라인업 볼륨이 더 좋았을 뻔했다. 참고로 발라스트 포인트의 모든 맥주는 물고기나 문어 따위의 그림으로 패키지를 디자인했다. 애초에 독일식 전통 맥주를 표방하는 회사도 아니고, 소규모 양조장 맥주(크래프트)에서 시작해 지금은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맥주 회사가 되었기에 굳이 전통에 얽매이면서 맥주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재기발랄한 패키지 디자인과 개성 넘치는 맥주 맛에 힘입어 사진에 보이는 저 스컬핀은 세계 맥주 대회에서 5위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하게 됐다. 현재 세계 맥주의 흐름이 전통에서 개성으로 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맥주순수령이란 구실 좋은 법으로 맛의 개성을 가둬버린 독일 맥주는 변화하는 전 세계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에 뒤처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벨기에와 미국을 추격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일본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 그런데 내가 본 발라스트 포인트는 앞서도 너무 앞서간 듯하다.

 

기존의 스컬핀이 크게 히트하자 무슨 하바네로(고추)를 첨가하질 않나, 온갖 향신료를 넣어가며 맥주에 색다른 맛을 부여하니 자몽을 넣은 자몽 스컬핀은 그저 양반에 불과한 셈이다. 사진에 보이는 와후(표준명 꼬치삼치)는 윗비어(밀맥주)를 표방하지만 너무 가볍고, 방어를 모델로 삼은 페어에일은 라거와 에일의 경계가 모호한 맛이라 개성을 살리지 못했고, 결국, 두각을 나타낸 시리즈는 역시 스컬핀(표준명 윗통가시횟대)으로 쏨뱅이목 둑중개과에 속하는 가시횟대를 모델로 한 IPA 맥주다. 흔히 '독이 있는 물고기일수록 맛있다.'를 표현한 듯, 이 맥주의 맛도 외형을 보고 향을 맡았을 때와 첫 모금을 마셨을 때, 그리고 끝맛의 차이가 극명해 맥주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컵에 따르면서 향을 맡으면 향긋한 과일 향이 훅하고 들어오는데 첫맛은 상큼한 산미가 느껴지다가도 끝맛은 강렬한 홉 비터에 마시면 마실수록 혀에 붙고 보디감은 상당히 드라이하다. 그래서 맥주를 즐겨 마시지 않는 이들에게는 꽤 낯설고 부담스럽다. 이는 IPA(인디안 페어에일)의 특징 때문인데 과거 인도로 무역거래가 활발하던 시절, 배에 실린 맥주가 쉬이 상하지 않기 위해 홉을 다량으로 첨가해 만들어 그때의 강렬한 맛이 오늘날 하나의 유행이 되면서 IPA는 맥주 시장을 선도하는 하나의 스타일로 굳혀졌다.

 

 

IPA 맥주는 향긋함과 쓴맛을 동시에 가진 특징이 있지만, 사실 스컬핀은 IPA 맥주에 입맛을 들이고자 하는 초보자에게는 그리 적합한 맥주라 보기 어렵다. (차라리 인디카가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고 무난한 맛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발라스트 포인트는 내게 맞지 않았다. 다만, 이 양조 회사의 오너가 낚시광이어서 맥주 디자인을 죄다 물고기로 몰고간 것은 무척 마음에 든다. ^^;

내가 만약, 양조회사를 차린다면(그럴 리는 없겠지만) 진심으로 맥주에 어류도감을 써나갈지도 모르겠다. 감성돔, 벵에돔(흑맥), 고등어, 참돔, 돌돔, 방어, 광어, 우럭, 갈치 이 정도로 종류를 구분한 다음, 그에 맞는 맛과 개성을 부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ㅎㅎ

 

그 외 마트에서 파는 가성비 좋은 맥주를 꼽으라면 스텔라 아르투아와 필스너우르켈, 수도원 맥주 출신인 르페, 그리고 현재를 기준으로 병당 2천원이라는 파격 할인을 하고 있는 기네스 등을 꼽고자 한다. 솔직히 가격이 저렴하니까 사 먹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맛은 독일 맥주인 바이엔슈테판과 미국 맥주인 사무엘 아담스정도인데 왜 내가 좋아하는 맥주들은 하나같이 가격 할인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참고 : 어제저녁에 갔더니 바이엔 슈테판을 꽤 매력적인 가격으로 할인하고 있었다. 이용 마트는 응암동 O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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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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