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헛걸음질한 '수산물 이력제', 무엇이 문제인가?


 

 

수산물 이력제에 사용되는 각종 부착물

 

수산물 이력제를 아시나요? 아는 사람도 있고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고기와 생선 구입 시 믿을 수 있는 원산지 정보를 토대로 소비자가 안심하고 구입하도록 돕는 제도는 선진국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 요건입니다. 이미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모든 제품을 전산화해 관리하고 있으며, 이를 믿고 소비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원산지를 속이거나 위변조하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이러한 선진화 대열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수산물 이력제를 도입했습니다. 수산물 이력제는 어장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산물의 모든 이력을 기록하고 관리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위 사진은 이력제에 도입된 각종 부착물로 해당 제품의 고유 식별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이 식별번호를 수산물 이력제 홈페이지로 접속해 입력하면, 해당 제품의 이력이 조회됩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수산물의 생산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산물 이력제 대상 품목

 

현재 수산물 이력제 대상 품목은 49개 항목으로 꽤 많은 편입니다. 이 품목은 우리 국민이 주로 소비하는 수산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품목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진 1> 49개 품목 중 이력제 부착물이 확인된 것은 광어 한 종 뿐이다

 

그 외 품목에는 부착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장과 마트에서 시행 중인 수산물 이력제 부착물을 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자 저는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 마트를 다니며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수산물 이력제를 제대로 이행한 품목은 '넙치(광어)' 하나뿐이었습니다. 수산물 이력제의 주요 대상 품목인 고등어, 참조기, 가자미, 꽁치, 도미 등에는 부착물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행 중인 광어도 진열된 일부 상품(회)에만 붙여졌을 뿐, 활어의 꼬리표 부착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김과 다시마에 부착된 적이 있었고, 지금은 쇼핑몰에서 굴비의 일부 제품만이 부착물을 붙인 채 판매되고 있음을 확인한 정도입니다. 그러니 광어를 비롯해 극히 일부 품목 외에는 수산물 이력제가 제구실을 하지 못했으며, 설사 부착물을 붙여 판매하더라도 현장에서 식별 번호를 입력해 이력을 확인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진 1>에서 볼 수 있듯이 식별 번호가 13자리라 홈페이지에 접속해 13자리를 모두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부착물의 위변조도 어렵지 않아서 투명한 유통경로를 확보하자는 취지의 수산물 이력제가 되려 원산지 둔갑의 구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력제 시행의 중심인 해수부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단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제도가 도입된 지 9년이 지났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2008년에는 농립수산식품부 주관으로 수산물 이력제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에 많은 문제를 보이면서 흐지부지됐고, 이를 다시 살리기 위해 2014년에는 해수부의 주도하에 부활시켰지만, 현재 이 제도를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 소비자는 극히 드뭅니다. 홍보 방법과 예산 편성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시행 초반에는 전직 아나운서를 모델로 섰고, 재작년에는 파워블로그 협동조합을 통해 몇몇 블로거들에게 원고료를 주면서까지 대대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렸으나 무위에 그쳤습니다.

 

 

<사진 2> 수산물 이력제 홈페이지에 버젓이 노출되고 있는 터리 정보들

 

더욱이 바른 정보를 유통해야 할 공식 홈페이지에는 현실과 맞지 않은 틀린 정보가 버젓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사진 2>는 그러한 예를 잘 나타내 줍니다. 국산 고등어와 수입산 고등어의 비교에서 수입산 고등어로 표기된 고등어는 망치고등어(점고등어)로 국내 고등어 조업 선단에 자주 혼획되는 종입니다. 고등어 종류가 다를 뿐, 원산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이는 얼마든지 국내 조업선에 어획돼 고등어와 함께 섞여 국내산으로 유통된다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이 밖에 참돔, 옥돔, 참조기, 갈치에서도 엉터리 정보를 표기하고 있어 이를 접한 소비자의 혼동이 염려됩니다. 그래서 저는 해당 내용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올바른 구별법을 새로 작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 내용은 준비가 되는 데로 올리겠습니다.)

 

 

#. 수산물 이력제가 보완해야 할 과제

현재 수산물 이력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율참여제'에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축산물 이력제와 달리 업체의 자율참여에 맡김으로써 산지 생산자(어민)와 협력업체(유통사)의 참여율이 9%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소극적인 참여율이 수산물 이력제의 정착을 막는 주 요인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수산물 이력제도 축산물처럼 의무화해야 합니다. 국내 수산물 생산자와 유통사(마트), 협력업체들이 이력 조회가 가능한 고유 식별번호를 달아야 팔 수 있음을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적잖은 예산과 인력이 편성돼야 합니다만, 앞서 유럽 등의 선진국이 거의 모든 식품에 이력제를 도입해 정착한 것처럼 우리도 중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하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생각보다 값질 것입니다. 수산물 이력제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원산지 둔갑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소비자와 상인과의 신뢰가 회복되고, 모두가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는 상거래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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