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인천국제공항

꿈에 그리던 그리스 여행의 시작. 우리 가족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보딩 시간을 맞이합니다. 저 육중한 동체의 A380. 말로만 듣고 영상으로만 보았던 A380을 눈앞에서 맞닥트리는데 현존하는 상업 여객기 중 가장 크고, 하늘을 나는 7성급 호텔이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수식어가 생각나더군요. 왜 말이 안 되냐면, 우리 좌석이 이코노미석이기 때문에. ^^;

한 번 이코노미는 영원한 이코노미. A380라고 한들 이코노미가 넓어 봐야 거기서 거기가 아닌지. 그래도 A380은 다르다는 후기를 본 적이 있어서 조금은 기대가 됩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리스 아테네로 날아가 거기서 또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미코노스로 가야 하는데 문제는 인천에서 아테네까지 직항이 없다는 것. 두바이, 모스크바, 로마, 이스탄불 등의 여러 경유지가 있는데 이왕이면 A380을 탈 수 있는 에미레이트 항공을 선택했습니다. 단점은 인천 두바이 구간이 매일 밤 23:55분에 출발해 새벽 4시쯤에 도착한다니 피곤하죠. 이런저런 특별 기내식을 신청하긴 했는데 한밤중에 그게 넘어갈지 의문이고.



무튼 여행은 시작됐습니다. 잘 부탁한다! A380



들뜬 마음인지 처형과 조카는 먼저 내려가 있습니다. 비행기 탑승구가 무려 3개입니다. 구조는 1층이 이코노미석이고 2층은 비즈니스와 일등석.   



비행기 탑승구를 통과하는 순간. 저기 2층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네요. 올라가면 바와 휴식 공간도 있다는데 우리는 입장 불가. ㅎㅎ 



어쨌든 좌석을 찾아 앉았습니다. 좌석은 9시간 30분 비행이라 조금이라도 편히 갈 수 있는 좌석으로 사전에 구매했습니다.



인천 캐나다, 인천 시드니 등 장거리 노선을 몇 번 타보긴 했는데 같은 이코노미석이라도 약간 넓어 보이긴 합니다. 기분상일 수도 있고요.



자리에 앉아 다리를 피자 확실히 넓은 것도 같습니다. 좌석에는 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모포 아니 담요가 있고, 배게와 헤드셋이 놓였습니다.



좌석에는 최첨단 기기와 다양한 엔터테이먼트 콘텐츠를 자랑한다길래 이것저것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선 왼쪽을 보니 다른 기종에는 보이지 않던 USB 충전기가 눈에 띕니다. A380을 탈 때면, 집에서 출발할 때 휴대폰 충전을 꽉꽉 눌러 담아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화면은 터치 스크린입니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은 첨단 휴대폰에 적응된 손가락이다 보니 오작동이 곧잘 느껴지더군요. 다른 기종에는 한국어를 지원하는 영화가 별로 없었는데 에미레이트 항공사는 국내 히트작에 한해 한국어를 지원하는 편입니다. 영화는 정말 많은데 그중 절반이 아랍권, 인도, 아프리카 영화라는 게 함정.



우선 딸내미를 위해 모아나를 찾아서 틀어주기로 합니다.



다행히 한국어 더빙이 되어 있네요.



처음에는 언어 선택을 할 줄 몰라 한참 헤맸는데 왼쪽 하단에 랭귀지라 쓰인 흐릿한 글자를 겨우 찾아서 누르니



한국어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야 더빙판으로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데 문제는 어른용 영화입니다. 열연한 성우들께는 미안하지만, 이게 영 어색해서 말입니다. 저는 자막이 좋은데요. 보다가 영 집중이 되지 않아서 영화 감상은 관두기로 합니다.



이륙 전 파우치를 나누어 줍니다.



파우치에는 안대와 칫솔, 치약, 양말, 귀마개 등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안대와 귀마개가 없어도 잘 자는 편이라 ㅎㅎ 그리고 제 몸은 천성이 이코노미에 최적화된 피지컬을 자랑합니다. 예전에 인천 밴쿠버 구간도 그렇고 9시간 항로에서 단 한 번도 자리에 엉덩이를 띄운 적이 없었죠. 이번 인천 두바이 구간도 한 번 앉으면, 도착할 때까지 일어서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한 제 몸이 가끔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어서 메뉴판을 나눠주는데 특별식을 주문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에미레이트 항공에서는 사전에 특별식을 무료로 신청받습니다. 주로 의료식, 종교식, 건강식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신청할 수 있는 특별 기내식
종교식 : 동양 채식, 힌두교식, 유대교식, 회교식, 자이나교식 채식
의료식 및 건강식 : 연식(소화 기능 떨어지는 환자를 위한 저자극식), 당뇨식, 모듬 과일, 글루텐 프리, 저칼로리식, 저콜레스테롤/저지방식, 저염식, 유당 성분이 없는 식사
기타 특별 기내식 : 야채 생식, 채식 동양식  

여기서 제가 신청한 것은 

1) 글루텐 프리
2) 저콜레스테롤/저지방식
3) 딸과 조카를 위한 유아식

특별 기내식을 검색하다가 글루텐 무첨가와 저지방식식에서 연어와 소고기 스테이크가 나온 걸 보았기에 그걸 노렸는데 특별 기내식의 진짜 갑은 따로 있었다는 사실.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아를 위한 기내

이륙 후 첫 번째 기내식이 나오는데 우리 딸과 조카에게 나온 유아식입니다. 매쉬 포테이토에 무려 포크커틀릿. 맛있어요. 게다가 후식으로는 치즈 케이크에 건자두, 크래커, 시리얼바까지 들어서 이게 과연 유아를 위한 기내식이 맞나 싶었습니다. 옆에 초등학교 4학년 조카가 먹기에도 버거운 양이죠. 기내식으로는 양이 부족한 어른들에게는 땡큐입니다만, 새벽 1시가 넘어간 시각이라는 게 좀 아쉽죠. 



저콜레스테롤/저지방식

이어서 아내에게 나온 것은 저콜레스테롤/저지방식인데 겉모습에서 대략 망했음을 직감했습니다. 퍽퍽한 닭가슴살에 당근, 양파와 찐 감자. 후식도 케이크 대신 신선한 과일과 샐러드로 채워졌습니다. 밤이라 어쩌면 이게 좀 더 낫겠구나 싶은데요. 넘나 맛있다고 할 만한 맛은 아닙니다. 식전에 와인(병), 맥주(캔) 등 주류가 제공되고 있어 와인과 함께 먹기에는 나쁘지 않아요.



식사에 제공되는 수저 세트는 플라스틱이 아닌 금속 재질이란 점이 마음에 들고.



일반식으로 나온 비프 스트로가노프

저는 일반식으로 했습니다. 메뉴판에는 닭 불고기와 비프 스트로가노프 중 택일인데 저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선택했습니다. 이 음식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얼라이드>에도 등장하는데 전시 중 귀족들이 즐겨 먹는 파티 음식처럼 묘사되기도 하였죠. 실제로 이 음식은 소고기가 귀한 시절,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고급 요리였습니다.

그런 요리를 이코노미석에서 즐길 수 있다는 축복은 곧 착각임을 깨달았고 후식으로 제공된 딸기 케익을 아껴두었다가 커피가 서빙되길 기다려야 했죠. 인천 두바이 구간은 꽤 오랜 기간 이 메뉴를 고집한 것으로 아는데 소스 맛은 다소 호불호가 갈릴 듯합니다. 고기 자체는 잡내가 없고 부드러워 괜찮았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제공되는 식사라 비프 스트로가노프든 닭 불고기든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결론, 기내식 케이크는 어지간하면 맛있다. ^^;




즐거우면서도 속이 부대끼는 기내에서의 식사 시간. 사육은 계속됩니다.



일반식으로 나온 야채 죽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고, 착륙하기 전 아침 식사가 제공됩니다. 메뉴는 야채 죽과 스크램블 에그 중 택일인데 저는 야채 죽을 선택합니다. 가운데 뿌려진 것을 전부 섞으면 간이 세 일부 걷어내고 먹습니다. 반찬으로 김치가 후식은 신선한 과일이 제공됩니다. 빵과 버터까지 먹으면 정말로 배가 빵빵해집니다. 그런데 두바이에서는 점심 식사까지 공백이 커서 지금 충분히 먹어두지 않으면 안 돼요.



일반식으로 나온 스크램블 에그

처형은 스크램블 에그를 선택. 구운 토마토와 버섯, 아스파라거스가 곁들여지는데 개인적으로 이쪽이 더 좋아 보입니다.



글루텐 프리로 나온 기내식

아내가 선택한 글루텐 프리는 버섯과 감자, 스크블 에그로 구성되었습니다. 빵 대신 쌀과자가 나온 것도 눈에 띄고요. 챙겨두기 좋으라고 두 개씩 주는 건지는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기내식이 푸짐한 편입니다. 아침에 먹기에 괜찮은 선택이죠.



아침으로 나온 유아식

개인적으로 아침에 나온 유아식은 그냥 그랬습니다. 팬케이크와 초콜릿 시럽. 그 옆에는 빵. 계속해서 탄수화물 조합인데 그나마 후식은 과일과 요거트라서 다행입니다. 과일을 잘라 요거트에 섞어 먹는 방법도 좋고요.



딸은 자느라 제공된 기내식을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어린 딸과의 장거리 비행은 처음이라 다소 걱정했는데 잘 자 줘서 다행입니다.



두바이 아테네 구간에서 제공된 유아식

참고로 두바이 아테네 구간에서의 기내식도 소개합니다. 그런데 기내식이 갑자기 확 좋아진 이 느낌은 뭐죠? 인천 두바이보다 두바이 아테네에서 제공된 기내식이 전반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메뉴는 매쉬 포테이토에 소시지인데 딸은 입맛이 없어서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저와 아내의 술안주가 돼버리고 ^^; 



두바이 아테네 구간에서 제공된 저콜레스테롤/저지방식

저는 두바이 아테네 구간에서 저콜레스테롤/저지방식을 선택했더니 이런 기내식이 나왔습니다. 밥에 닭가슴살, 그 위에 토마토소스. 케익 같은 후식은 당연히 없고 대신 샐러드와 과일로 대체됐습니다. 이 정도면 건강식 맞죠? 맛도 그럭저럭 먹을 만합니다.



두바이 아테네 구간에서 제공된 저염식

그런데 아내가 선택한 저염식은 대략 난감합니다. 내용물은 저와 같은데 소스가 빠진 상태. 저염식이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덕분에 아주 싱겁게 먹어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돌아오는 항로인 아테네 두바이 구간과 두바이 인천 구간에서의 특별식이 있는데 그건 여행기를 마칠 말미에 소개하겠습니다.

특별식에서 저염식은 다소 모험이었고, 저콜레스테롤/저염식은 그때마다 메뉴가 달라서 복불복입니다. 글루텐 프리는 한 번쯤 시켜볼 만한 기내식인데 재수가 좋으면 비프나 연어 스테이크가 나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유아식. 팬케이크만 빼곤 전부 마음에 쏙 들었던 메뉴 구성입니다.

이외에 주류는 다른 장거리 구간과 마찬가지로 맥주(캔으로 제공)와 와인(병으로 제공)을 제공하는데 중간에 한두 병 더 주문해서 먹기도 한다는 점과 위스키(잭다니엘 등)도 미니어처 병으로 제공한다는 점.



두바이의 새벽

우리의 A380은 9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두바이 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식구들. 해가 뜰 때까지 공항에서 노숙자가 될 신세인데요. 원래 도착 시각은 새벽 4시 30분인데 무려 40분이나 비행시간을 앞당겨 3시 50분에 도착시킨 기장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최대한 늦게 도착했으면 싶었는데 ㅠㅠ)



어쨌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통로를 따라 나오니 반갑게도 유모차 대여가 있습니다. 공항 내에서만 사용하는 거라 무료이고요.



이날은 12시간 오버 스톱으로 반나절 두바이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환승이 아닌 Arrivals라 써진 이정표를 따라 나갑니다.



실제로 본 두바이 공항은 스케일이 상당합니다. 천정 높이도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크기가 화물칸 수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칸 내려왔습니다. 뒤돌아서 찍으니 마침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중.



입국 심사를 받으려면 인천 공항처럼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두바이 국제공항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이런 공항이 3개나 붙어 있어요. 이곳은 에미레이트 항공사 전용 공항으로 터미널3 입니다. 수화물은 아테네로 바로 부쳤기 때문에 여기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가벼운 가방과 배낭, 여기에 잠이 덜 깬 31개월 딸내미를 안고 당장은 해가 뜰 때까지 공항 내 적당한 장소를 찾아 시간을 때우기로 합니다.



가던 중 환전소가 보여 들리기로 합니다. 두바이에서는 택시비 외에 현금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몇만 원만 디르함으로 바꾸고요.



적당히 자리를 잡고선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새벽 4시 반부터 7시 반까지 세 시간을 뜬눈으로 지새우는데 중간에 아내가 커피를 홀라당 쏟아버리는 바람에 위 아래 옷이 전부 커피에 젖어버리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다행히 화상은 안 입었지만, 그야말로 커피를 뒤집어쓴 꼴 ㅠㅠ)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젖은 옷을 빠는데 중국 관광객으로 보이는 아줌마들 몇 명이 거기서 옷을 홀라당 벗고 빨래를 하고 계시다네요. 공중 화장실이라 차마 옷을 벗고 빨 수는 없어서 입은 채 물을 묻혀가며 빠는 아내. 그 모습이 매우 답답했는지 한 중국인 아줌마가 와서는 중국말로 뭐라 뭐라하는데 대충 알아듣기로는 자기처럼 그냥 벗고 빨지 뭐 그리 어렵게 빨고 앉았냐는 투였다고 합니다.

웃옷은 입은 채로 어떻게 빨겠는데 반바지는 도저히 빨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잠바로 가리고, 벗어서 빤 다음 젖은 그대로 입고 나옵니다. 덕분에 세 시간의 대기 시간이 스펙터클하게 지나가 버렸다는.. 

"걱정 마. 두바이 날씨라면 금방 마를 거야"



우린 그 길로 택시를 타러 나갑니다. 이때가 오전 7시 30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버즈 칼리파로 향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올라가 봐야죠.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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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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