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붕따우의 어느 어촌 마을

 

이날은 붕따우에서 촬영을 매듭짓고 호찌민으로 올라가는 날. 오전에 느억맘(피쉬 소스) 제조 공장을 둘러본 뒤 점심 겸 먹방 촬영 겸 길거리 노점상을 찾아다녔습니다. 촬영팀은 늘 9~12인승짜리 밴을 타고 이동하는데 전날 마을을 돌 때 차창 밖으로 본 것은 몇 미터 간격마다 길거리 노점상이 즐비하다는 것. 특히, 이른 아침이면 동네 사람들이 일터로 가기 전에 노점상에서 끼니를 때우는데요.

 

어떤 노점상은 자리가 없을 만큼 미어터졌고, 저마다 쌀국수를 후루룩 넘기는 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차에서 뛰어내려 그들과 합석해(베트남 노점상은 합석이 기본이라) 먹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활기 띤 이른바 동네 노점상 맛집이 군데군데 보였지만, 이동 중이라 어쩔 수 없었는데 마침내 그 한을 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거리를 거닐다 딱 이거다 싶은 노점상을 골라 들어갑니다

 

 

요즘 워낙 베트남 음식이 열풍이라 언뜻 봐도 우리 눈에 익숙한 음식이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월남쌈으로 알려진 스프링 롤과 짜조가 보이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붕어빵 비슷한 틀에 달걀을 돌려가며 튀기듯 굽고 있습니다. 쌀국수가 되느냐고 묻자 아침에만 판다고 합니다. 뭐라도 좋으니 이 집에서 추천하는 음식으로 주문하고선. 

 

 

분짜조

 

자리에 앉았는데 잠시 후 이런 음식이 나옵니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게 되는지 몰랐는데요. 살펴보니 그릇 맨 밑바닥에는 쌀국수가 놓였고, 그 위로는 꽤 친숙한 재료들이 얹어진 형태입니다. 숙주와 어묵, 구운 돼지고기와 짜조, 삶은 달걀이 놓였고 위에는 빨간 고추와 땅콩 가루가 뿌려져 보기에도 꽤 먹음직스러웠죠.

 

향채라고는 약간의 민트 잎과 별다른 향이 없는 베트남 깻잎 정도인데요. 고수가 들어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아마 이 음식을 맛보면서 고수 같은 향을 느끼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베트남이 땅이 넓어서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호찌민과 붕따우에서 맛본 음식에서는 의외로 고수를 잘게 다져 넣는 경우가 흔치 않아요. 향이 강한 잎들은 쟁반에 따로 내더라는 겁니다.

 

 

반깐(반콰이)

 

이 음식의 이름은 반깐. 여기서는 반콰이라 부르는데요. 마치 말랑말랑한 계란빵처럼 생겼습니다. 맛은 꼭 중국집 볶음밥에 얹어내는 중국식 달걀프라이와 팬케이크 밀가루 맛이 섞인 듯합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촬영팀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죠.

 

 

맛있어서 한 그릇을 추가했다. (왼쪽 아래의 빨간 소스는 먹던 것)

 

이때만 해도 이 음식이 분짜와 흡사한 음식임을 몰랐습니다. 여기서는 '분짜이어'라고 부르길래 분짜에서 변형된 음식인가 싶었는데요. 주인 할머니가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면서 이 음식은 분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분짜조는 분짜와 먹는 방법이 정반대입니다. 소스에 면과 재료를 푹 담가 먹는 것이 분짜라면 분짜조는 아예 소스를 부어서 비벼 먹죠. 한국에서 먹는 분짜가 메밀국수 형태라면, 분짜조는 비빔면과 비슷합니다. 먼저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파파야 절임 소스를 먹을 만큼 부어서 비벼 먹습니다.  

 

소스는 새콤달콤한 편이고, 그린 파파야가 무처럼 아삭아삭 씹히는데요. 그 맛이 국내에서 먹은 분짜와 흡사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좀 더 푸짐하면서 가격은 훨씬 저렴했다는 것. 게다가 튀긴 짜조와 돼지고기가 예술입니다. 우리나라 70~80년대를 떠올릴 만한 어촌의 길거리 노점상에서 이렇게 깔끔하고 잡내 없는 돼지고기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죠. (돼지고기는 지방층을 깨물었을 때 느껴지는 누린내에 민감한 편이라)

 

시골이라 수퇘지를 사용할 수도 있고, 등급과 품질이 떨어지는 돼지고기를 싸게 구입해 쓸 수도 있는 것인데 이 돼지고기는 어쩜 냄새가 하나도 안 나고 풍미만 남았는지. 촬영을 마치고 한 그릇 더 시켜서 스텝진들도 맛보는데 분짜조만큼은 모두 엄지 척 합니다.

 

 

EBS <성난 물고기> 베트남 편, 길거리 노점상 촬영 씬 中에서, 필자와 강성범 씨

 

 

한창 먹고 있는데 노점상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건넨 첫 마디가

 

"음식이 입에 맞느냐?"

 

우리는 너무 맛있다며 엄지 척 했는데 이때의 분위기가 뭐랄까요. 마치 시골에 놀러 온 손주 녀석에게 밥을 먹이면서 물어본 것 같은 정겨운 기분이 듭니다. 순간 옛 생각도 나는데요. 노점상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어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줄곧 고기잡이만 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10년 전부터 몸이 좋지 못해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노점상을 시작했다니 기분이 쨘 했지요.

 

심정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이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외국인인데도 반갑게 맞아주신 할머니의 표정과 선한 눈빛이 지금도 잊히질 않습니다. 쭈글쭈글한 눈가에 맑고 고운 눈동자는 근래에 보지 못했던 눈빛이었죠. 아무래도 할머니의 손맛과 비법이 들어갔을 법한 분짜조는 한동안 맛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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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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