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식도락가들이 손꼽는 가장 맛있는 생선회는?'이라는 주제의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관련 글 : 식도락가들이 손꼽는 ‘가장 맛있는 생선회’는? <상편>)

그 글에는 한국의 생선회를 6단계로 나누었습니다.

 

1) 최고의 미어(味魚)

2) 귀하면서 희소성 있는 자연산

3) 고급스러운 자연산

4) 맛있는 잡어회

5) 소시민들의 양식산

6) 수입산 냉동

 

붉바리는 최고의 미어에 속한 다금바리, 자바리, 참홍어, 참다랑어, 줄가자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상부 최고급 횟감입니다.

 

 

갯바위 낚시로 잡은 붉바리

 

얼마 전, 평도에서 낚시하는데 붉바리가 잡혔습니다. (그러고 보니 평도는 갈 때마다 붉바리를 잡네요.) 고기를 랜딩할 당시, 빛깔이 붉어서 쏨뱅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붉바리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회든 매운탕이든 맛보고 싶었지만, 보시다시피 500g도 될까 말까 한 어린 붉바리입니다.

 

 

 

"가서 엄마 데려오너라~"

 

붉바리는 그 자리에서 방생되었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방생하면서 했던 말은 씨가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세 시간 짬낚시를 위해 배를 타고 외나로도 곡두여로 향합니다.

 

 

대상어는 요즘 가장 핫한 '그놈'입니다. '그놈'의 까다로운 식성은 낚시계에도 정평 났습니다. 살아있는 왕새우가 아니면 잘 안 문다는 사실. 그래서 '그놈'을 낚으려면 미끼값을 톡톡히 지불해야 합니다. 이곳 고흥에서는 살아있는 양식 흰다리새우를 넉넉히 사용합니다. 이 채비로 그놈을 노리는데.

 

 

일행이 40cm급 붉바리를 낚았다

 

나오라는 그놈은 안 나오고 시뻘건 잡어가 올라옵니다. 그 잡어는 무려 붉바리. 오전에 놔준 새끼 붉바리가 보은해 주었다는 지극히 인간 중심의 해석은 고이 접어 날리고. 다만, 말이 씨가 되긴 했습니다. 우선은 빵빵하게 부푼 부레부터 정상으로 돌려놔야 합니다. 피징으로 공기 빼 어창에 살려두면 제법 오래 살릴 수 있죠.

 

 

갓 잡아 올린 민어의 영롱한 빛깔 

 

이어서 커다란 조기가 올라오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애타게 찾던 바로 그놈, 민어입니다. 일반인들이 이걸 보고 민어라 확신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회 좀 안다는 분들도 죽은 민어만 보았지 이렇게 갓 잡은 (활)민어는 볼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요.

 

갓 잡은 민어는 보시다시피 금색 철갑을 두른 듯 영롱하게 빛납니다. 지느러미 라인이 깔끔히 떨어지는 것은 그물코에 치이거나 쓸리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 낚시로 잡았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비록, 원하는 씨알은 아니지만, 최근 저조한 조황을 생각하자면 이것도 감지덕지하지요.

 

 

여름 제철 횟감인 민어와 붉바리가 나란히 누웠다

 

세 시간의 짧은 낚시를 마무리하고 저와 일행은 선장의 집으로 향합니다. 선장 어머님이 전처리를 해주셔서 저는 편하게 회만 뜰 수 있었는데요.

 

 

민어 부레

 

갓 잡은 민어 부레는 이렇게 밝은색을 띱니다. 사이즈가 크지 않아 민어 부레도 넉넉하진 않았지만, 몇 점씩은 돌아갈 만한 양이고요. 무엇보다도 부레를 둘러싼 지방층은 여느 때 맛보았던 민어 부레와는 다른 크림 같은 질감인데 이 부분이 그냥 살살 녹습니다.

 

 

자연산 붉바리와 민어가 나란히 놓인 밥상

 

#. 미슐랭도 울고 갈 어부의 밥상

그리하여 자연산 붉바리와 민어가 저녁 밥상에 나란히 올랐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선을 끈 것은 회보다 주변에 있는 반찬입니다. 어떻게 보면 주변에 둘러진 반찬 때문에 회가 돋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찬이지만, 면면을 놓고 보면 전라도 어머님들의 맛깔스러운 손맛이 묻어납니다.

 

이런 회와 반찬들은 바쁜 현대인과 도시인들에게는 언감생심, 그야말로 그림의 떡입니다. 저도 결혼 후 자식이 생기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지만, 이렇게 손맛으로 한땀 한땀 만든 반찬을 접하기에는 우리네 삶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각박합니다. 매일매일 반찬 고민하는 것도 정신노동이고요.

 

하루는 반찬 가게도 이용해 보고, 또 다른 하루는 홈쇼핑도 이용해 보고, 가끔 마트표 반찬도 이용해 보는데 모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마음을 울리는 맛은 없습니다. 아내가 직접 만든 반찬이 훨씬 맛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 옛날 어머니와 할머니가 해주신 밥상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 여건이 되지 않으니 마음에 묻어두었던 추억의 밥상. 지금 제 앞에 놓인 밥상도 그때의 그것과 100%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잠시 잊었던 추억의 맛을 돌이키게 해줍니다.   

 

 

쫀득거리는 활 민어회

 

이성훈 선장의 집은 전형적인 어부 집안입니다. 계절마다 잡는 어종이 다른데 지금은 여름이라 갯장어(하모)와 민어, 농어 등을 잡아다 팝니다. 여기에 낚싯배도 운영하는데요. 이날 성훈 씨 배를 타고 나갔다가 운 좋게 붉바리와 민어회를 얻었고, 어머님이 해주신 시골스러운 반찬과 함께 근사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부 집안이라 간장과 고추냉이는 없습니다. 예부터 어부 식으로 만든 시큼한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 먹으니 자연산 민어 맛이 100% 전달되기는 어려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추장의 강렬한 맛은 금새 씻겨 내려가고, 두툼한 민어회와 붉바리 회가 잘근잘근 씹히며 고소한 맛을 내어 줍니다.

 

활 민어회 식감은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쫀득쫀득, 씹을수록 차지면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은은한 맛을 내어주는데요. 물론, 서울, 수도권 시장에도 활 민어가 더러 들어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부레가 부푼 채 몸이 뒤집혀 숨만 겨우 붙은 산 송장이나 다름없죠. 폐사가 진행 중에 회를 친 자칭 활 민어회는 차라리 잘 숙성한 선어회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날 맛본 민어회는 민어가 가진 본연의 맛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잡자마자 부레에 공기를 빼 어창에 살려 두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했습니다. 잡은 시점부터 두 시간 안에 회를 쳤으니 작아도 맛과 식감은 10kg 민어 부럽지 않았던 것. 반듯한 호텔과 레스토랑 위주로 평가하는 미슐랭이 이 맛을 두고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

 

※ 외나로도의 민어 낚시 이야기는 조만간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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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가들이 손꼽는 ‘가장 맛있는 생선회’는?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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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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