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낚시 불모지인 서울, 수도권에서 한치낚시를 즐기려면 남보다 몇 배 많은 경비와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한치 낚시는 꽤 매력적이지요. 많은 마릿수가 가능하고(1인 50~80마리 이상), 난류를 타고 리필되는 특성상 남획의 염려가 적으며, 시중 마트에서 2마리에 8천 원씩 파는 고급 한치를 몇 달치 반찬감으로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한치낚시를 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 부여가 됩니다.  

 

앞서 저는 제주도와 진해에서 한치낚시를 즐겼고 조행기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항공편을 이용하고, 렌터카도 빌려야 한다는 점이 다소 번거롭지만, 여행을 병행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진해 한치낚시는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밤샘 낚시로 풍성한 조과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SRT 고속열차, 경기도 동탄역

 

이번에는 무려 부산입니다. 교통이 발달한 부산이기에 굳이 차를 몰고 갈 필요는 없었던 것. 차량 유지비와 톨비를 계산하니 여럿이 이용한다면, 열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저렴할 순 있으나 시간과 피로감이 증가합니다.

 

게다가 저는 아내와 단 둘이 이동할 계획이라 비용적 측면에서는 차량이나 열차나 비슷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낫겠지요.

 

오후 1시, 우리 부부는 경기도 동탄역에서 SRT 고속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합니다.

 

 

부산 충무시장

 

부산역에 내린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KTX를 타고 온 상원아빠님과 합류.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 충무동으로 향합니다.

 

 

충무동 형제낚시에 도착하자 이미 도착한 한조 크리에이티브 박범수 대표님과 가족분들, 쯔리겐 부회장님을 비롯해 여러 회원분과 인사를 나눕니다. 낚시점에서 선상 명부를 적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데 이때 점주한테서 들리는 안 좋은 소식.

 

"요즘 한치 조황이 저조합니다. 큰 기대는 마시고.."

 

헉.. 낚시 시작도 하기 전에 갑자기 힘이 쭈욱 빠지는 기분이란. 점주 말이라 신뢰도 100%라는 것이 지금은 독이 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고 낚시하다 꽝 치는 게 나을 뻔 ㅠㅠ)

 

 

부산 충무동 앞바다

 

아직 5시 출항까지는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사이 시원하게 밀면 말아먹고요. 충무시장도 둘러보면서 여유 있게 도착.

 

 

출항한 배는 거제도 먼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포인트까지 운항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 이 계절에 이렇게 멀리 나갈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이 배는 제법 멀리 나갑니다. 저보다는 선장이 포인트를 잘 알 테니 알아서 배를 대겠지 싶은 마음에 선실에 들어가 눕고요.  

 

 

생애 첫 한치낚시를 앞둔 상원아빠님. 그동안 제 조행기만 보다가 이번에 전격 출조했는데요. 뭐든 첫 경험의 기억이 중요한 법. 아무쪼록 점주 예상을 깨고 소나기 입질에 주체할 수 없는 밤이길 고대해 봅니다.

 

 

저의 장비 세팅은 이렇습니다. 물속에 한치 어군만 잡히면 조과가 보장되는 이카메탈 채비입니다.

 

#. 한치 낚시 세팅

로드 : 엔에스 퓨리어스 RS B-1852

릴 : 브랜드 미상의 베이트릴

원줄 : PE 합사 1.5호

메탈 : 쯔리겐 메탈리스트 밤바 60~80호 병행, 쯔리겐 이카스키테

 

 

얼마나 잠들었을까요? 포인트에 도착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선실에서 부스스 일어난 제가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었을 때 풍경이 바로 위 사진인데 왠지 모를 피곤함이 느껴집니다. 지금부터 익일 새벽 4시까지 꼼짝없이 낚시만 해야 합니다. 한치가 잘 잡힌다면 이보다 신나고 재미있는 일도 없지만, 안 잡히면 이것만큼 지루하고 고욕인 취미도 없을 겁니다.  

 

 

저 멀리 거제도가 보인다

 

아직 해가 땅속으로 꺼지려면 1~2시간이 남았습니다.

 

 

낚시 준비를 마친 몇몇 꾼들은 설렘 속에 채비를 담가보지만, 지금은 한치 입질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가봐도 결과는 마찬가지. 그 모습을 본 저는 또다시 선실에 들어가 눕습니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몸이 무겁네요. 어차피 담가봐야 입질도 없으니 밤이 될 때까지는 괜한 체력을 축내지 말자는 생각입니다. 

 

 

다시 잠이 들었다 깨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화들짝 놀라 나가보니 승객 전원이 낚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뭐 좀 잡혔어?"라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합니다. 절 안 깨운 이유가 있었군요. 점주 예상은 단순한 쉴드가 아닌 합리적인 예상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8~9시 사이에 한두 마리도 안 나왔다는 것은 앞으로의 낚시가 험난할 수 있음을 예고한 셈이죠.

 

 

낚시 시작 2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한치가 확인됐다

 

그렇게 입질 없이 지루한 낚시가 이어지는데 선수에 선 사람이 어렵게 스타트를 끊습니다. 평소였다면 '이제 시작인가?' 싶어 긴장하고 임했을 텐데 오늘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예상대로 단발성 조과. 어쩌다 군집에서 이탈한 한치가 낚인 것 같습니다.

 

 

선사에서 나눠준 충무김밥으로 저녁을 때운다

 

다들 먹고 시작했다는 충무김밥을 저는 인제야 먹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주변 사람 특히, 한조 크리에이티브 박범수 대표님과 지난번 능숙한 솜씨로 마릿수를 거둔 누님을 유심히 살폈는데요. 아직은 이렇다 할 입질이 없습니다.  

 

 

한동안 입질이 없다가 선수 쪽에서 한치 한 마리가 올라옵니다. 그리곤 입질 뚝. 현재 입질 수심층은 30~40m. 그러나 계속되는 불황에 직접 확인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어군탐지기에 찍힌 30~35m 사이의 작은 군집 하나와 40m 전후로 찍힌 작은 군집이 전부. 지난번 한치낚시 때는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특정 수심층이 아주 새빨갰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입질 없는 무료함에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간

 

낚시를 하고 있으나 하지 않는 듯한 이 기분. 주변에서 한치가 올라와야 뭐라도 하겠는데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내내 변변한 입질 하나 없으니 자포자기 상태에 이릅니다. 이때 고민되는 것 하나. "그냥 포기하고 잠이나 잘까?"

 

 

이때 아내에게 첫 입질이 들어왔습니다. 이 상황에서 설마 한치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고, 비닐봉지가 걸렸으리라..

 

 

12시 30분이 돼서야 첫 한치가 올라온다

 

엇~ 한치가 올라옵니다. 낚시 시작 5시간 만에 올린 첫 한치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아무리 조황이 안 좋아도 이게 말이 되냐고요. ㅠㅠ)

 

 

자정을 넘기자 주변에서 한치가 제법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한번 나오기 시작하자 연달아 한치를 잡아 올리고.

 

 

한두 마리 손맛을 본 상원아빠님도 감을 잡았는지 연달아 한치를 낚아 올립니다. 이제 피딩타임 시작인가 싶은데요.

 

 

제 초릿대도 어김없이 들어갑니다.

 

 

이날 자정 넘어 첫 한치를 잡은 입질의 추억

 

이날은 한치낚시를 위해 10년 묵은 쿨러를 버리고 43리터짜리 새 쿨러를 사 습니다. 새 쿨러를 개봉한 기념치곤 가혹한 신고식이네요. 이제 남은 건 집중해서 마릿수를 거두는 일. 비록, 5시간을 꽝 쳤지만, 남은 시간을 부지런히 잡으면 부부가 합심해 쿨러 하나 못 채우겠냐 싶었죠. 

 

그런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한치 입질은 완전히 끊겼고 또다시 암흑의 터널 길이 시작됩니다.

 

 

새벽 3시. 수면에는 전에 없던 복어와 만새기가 설치기 시작합니다. 이 수온에 복어 종류가 궁금해 유심히 살폈는데요. 아열대성 복어인 '가시복'이 수십 수백 마리나 몰려듭니다. 한 마리 잡아다 보여드리고 싶었는데(화나면 몸을 부풀리며 마치 두더지처럼 가시를 세우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한치 채비로는 잡을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게 가시복만 구경하다 시간이 가는가 싶은데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대신 선실은 꽉 찼군요. ㅠㅠ 워낙 입질이 없자 대부분 선실에 들어가 누운 것입니다. 현재 이쪽 라인에 남은 사람은 저와 박범수 대표님 가족뿐. 낚시 집안이라서 그런가요. 다른 분들은 선실에 들어가 눕는데 끝까지 남아 포기하지 않고 낚시하는 끈기가 인상적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들어가 눕고 싶은데요. 이러려고 수도권에서 부산까지 비싼 돈 들여 왔나 싶기도 하고.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과 뭐라도 그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심기일전해 보지만, 끝내 한치는..

 

 

새벽 3시 30분, 연달아 입질하기 시작한 한치

 

저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한 마리는 우연히 얻어걸렸나 싶습니다. 다시 온 신경을 초릿대에 집중하는데 거짓말같이 입질이 들어옵니다. 그나마 배에 남은 분들도 입질을 받지 못하는데 저 혼자 연달아 두 마리를 낚아내니 슬슬 흥이 났고. 일행을 깨울까 말까 하다가 곤히 자는 모습에 그냥 내버려 둡니다. 어차피 한두 마리로 끝날 것 같은 예감. 

 

이때 다시 입질이 들어옵니다. 연달아 세 마리째. 이쯤이면 우연이 아니네요. 깨울지 말지 고민하면서 채비를 내리는데 또 잡혀 올라옵니다. 옆 사람이 제게 수심을 묻고, 저는 답변해주고. 다시 채비를 내리는데 또 입질. 순식간에 다섯 마리를 낚자 이제는 피딩타임이 걸렸다고 보고 서둘러 일행을 깨웠습니다.

 

 

잠에서 급히 깬 아내와 상원아빠님이 선실에서 뛰쳐나와 채비를 내리는데 시작하자마자 입질을 받아냅니다.

 

 

씨알은 부쩍 작아졌지만, 그래도 한치는 한치. 자 이쯤이면 한치가 붙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듯. 남은 한 시간 동안 바짝 쪼아 1/3 쿨러라도 채우자 싶어 텐션을 올려봅니다.

 

 

그 사이 상원아빠님도 연달아 몇 마리를 낚아 올립니다.

 

 

새벽 5시 30분, 철수길에서 본 부산 앞바다

 

상원아빠님의 입질을 끝으로 한치 낚시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막판 한 시간 동안 랠리가 있었으나 그리 폭발적이지도 않았고, 전체 조황도 부진했습니다. 아무래도 계속된 폭염에 한치들도 더위 먹고 숨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한낱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고, 실패가 있으면 성공이 있는 마치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것이 낚시인 것을..

 

 

충무동으로 돌아와 시장통 생선구이 백반으로 아침을 듭니다. 반찬 하며 테이블 느낌 하며 참 정겹죠? 잘 구운 국산 고등어구이도 맛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일행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부산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다시 SRT 고속열차를 타고 동탄으로 복귀.

 

몇 마리 안 되는 한치지만,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일념하에 밤새 딸을 봐준 처형에게 한치를 나눠주고, (우리가 낚시를 떠난 뒤 딸은 감기에 걸려 밤새도록 기침하고 울었답니다. 때문에 처형은 한숨도 못 자고 고생을 ㅠㅠ)

 

여러모로 아쉬웠던 부산 한치낚시, 다음에 더 풍성한 조황을 기약하며 글을 마칩니다.

 

- 부산 한치 및 심해 선상낚시 문의

충무동 형제낚시(010-3855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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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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