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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선회 문화가 일본보다 뛰어난 이유

★입질의추억★ 2018. 2. 5. 13:01

한국과 일본은 전 세계에서 생선회와 초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입니다. 관련 산업이 발달하면서 서로 다른 생선회 문화로 발전해 왔던 것이지요.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에서 폐쇄적이던 80년대까지는 가깝고도 먼 나라의 식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했고, 국민 정서상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지금의 일식과 숙성회 열풍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본의 생선회 문화는 미식 트랜드와 맞물리고 자연스럽게 침투하면서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상반된 두 나라의 생선회 문화는 활어회에 익숙한 이들과 숙성회의 새로운 맛을 알게 된 이들과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면서 지적된 것이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식습관 즉, 생선회 문화를 저해하는 여러 악습에 관한 것인데요. 몇 가지를 꼽자면 이렇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회에 술을 곁들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1) 생선회를 술안주로 생각하는 식문화

첫 번째는 한국 사람들이 생선회를 술안주로 치부한다는 경향입니다. 80년대 포장마차에는 일명 '아나고'라 불렸던 붕장어 회가 소주 안주로 인기가 높았고, 지금도 생선회에는 술이 빠지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도 생선회를 술안주로 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로 맥주나 청주를 곁들인다는 점이 소주나 소맥으로 즐기는 한국과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술은 어떤 안주와 곁들여도 많이 마시면 부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지만, 특별히 생선회와 곁들인다고 해서 몸무리를 준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오히려 생선회와 함께 먹으면 숙취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술과 함께 먹는 식문화를 무조건 ‘틀리다’고 지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생선회를 즐기는 방식이 다를 뿐이니까요.

 

다만, 생선회 맛에 집중하자는 취지이거나 마땅히 그래야 할 남다른 생선회가 놓였다면, 자극적이거나 향이 강한 술을 지양할 필요는 있습니다. 알코올의 톡 쏘고 강한 맛이 생선회의 섬세한 맛을 느끼는 데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부요리들(일명 츠케다시)

 

2. 푸짐한 반찬 문화

일명 츠케다시(스끼다시)로 대변되는 푸짐한 반찬 문화는 우리 국민의 밥상 정서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예부터 우리 조상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하게 차린 밥상이야말로 복(福)스럽다 생각했습니다. 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은 탓에 푸짐한 밥상을 그리워하는 우리네 정서도 한몫했을 겁니다. 그러한 정서가 반영된 탓인지 한국의 횟집은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반찬 문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반찬 가짓수로 승부를 보는 횟집도 있습니다. 생선회를 먹으러 왔지만, 다양한 부요리로 푸짐히 차린 상차림에 끌리는 소비 심리를 적절히 공략한 것입니다. 이에 놀란 것은 오히려 일본인입니다. 하루는 일본인 친구들을 데리고 횟집에 갔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부요리에 넋이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관련 글 : 한국에서 회를 먹고 난 일본인의 격한 반응)

 

물론, 반찬에 신경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생선회 품질에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반찬으로 배를 채우다가 미각이 가장 둔해졌을 때 먹는 그저 그런 생선회와 매운탕에 객이 전도된 꼴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각이 깨었을 때 먹어도 맛에 자신 있는 횟집. 다시 말해, 생선회를 먼저 내는 횟집이 좋은 횟집의 요건 중 하나로 봅니다

 

그렇다고 반찬 문화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반찬 문화는 양면성을 가집니다. 여건상 일정 품질의 생선회를 제공하기 어렵다면, 가짓수를 내세워 다양한 반찬으로 경쟁하는 것이 그 가게에서는 유효한 전략일 것이고그만큼 다양한 부요리를 즐기려는 수요 또한 우리 주변에 많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반찬에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생선회가 메인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것인데, 실제로는 사람마다 생선회를 여기는 중요도가 다르며, 심지어 부요리가 좋아서 오는 손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 1> 각종 쌈채와 향채를 곁들여 먹는 쌈 문화

 

<사진 2> 초고추장에 비벼 먹는 비빔 문화

 

3. 쌈과 비빔문화

요즘 유행하는 '단짠'을 비롯해 새콤달콤한 맛, 여기에 매콤함이 더해지면 사람들은 '맛이 있다.'고 느낍니다. 맛이란 생각보다 단순하여 우리 혀가 원하는 여러 가지 맛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말은 즉, 오랫동안 씹어야 느껴지는 섬세한 맛만이 진정한 맛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상추에 깻잎을 포개고 각기 다른 생선회를 두세 점씩 올린 다음, 초고추장에 쌈장에 마늘과 고추까지 듬뿍 곁들여 한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요? 여기에 소주까지 곁들인다면, 몇몇 미식가들은 생선회 맛을 제대로 느끼기나 할지 의문스러워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생선회 맛'이라는 개념을 생선 근육의 맛으로만 한정시킨다는 것입니다. 일부 미식가들이 생선회 맛을 '생선의 맛'으로 가두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뭐든 가두려고 하면, 반대 개념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독선에 빠지게 됩니다. 독선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인 만큼 지양해야 할 관점이죠

 

독선을 버리면 그토록 지적되었던 우리의 쌈 문화와 비빔 문화가 오히려 장점일 수 있습니다.

 

 

김밥에 두툼한 생선회와 초고추장을 올린 즉석 김초밥

 

생선회를 초고추장 맛으로 먹는다고 조롱하는 이들을 더러 봅니다. 누구 말대로 (근육이) 경직되지 않은 활어회를 저렇게 두껍게 썰어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질겅질겅 씹히다 결국에는 초고추장 맛으로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사진의 김초밥을 맛보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천 원짜리 채소 김밥에 두툼한 활어회를 두세 점씩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올려 먹는 맛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느 누가 맛이 없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겠습니까?

 

- 소맥과 함께 먹어도 맛이 있는 생선회

- 반찬으로 배불리 먹어도 회 들어갈 배가 따로 있

- 쌈 싸먹고, 초고추장에 듬뿍 비벼 먹어도 맛만 있는 생선회

 

일본이 생선 강국임에는 부인할 수 없고, 선어회 문화도 발달한 것이 사실이지만, 왜 우리는 초고추장과 쌈과 소맥을 버릴 수 없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지리적으로는 가까워도 여러 면에서 성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다를까요?

 

한국은 반도 국가이고, 일본은 광활한 태평양을 낀 섬나라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고, 일본은 사면이 바다입니다. 태풍과 지진에 쓰나미까지 몰리면 일본 열도가 그 충격을 흡수합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비유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일본 열도가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게 사실입니다.

 

외해를 끼고 있는 일본에서는 역시 외해로 회유하는 생선이 주로 잡힙니다. 주로 참치, 방어, 전갱이 같은 붉은살생선이 그것입니다. 전국이 바다와 1~2시간 권이어도 참치, 방어, 전갱이는 엄청난 활동성과 그에 맞는 산소량을 필요로 하므로 활어 유통이 매우 어렵습니다.

 

설령, 살려서 가져온다 한들 스트레스로 인해 제맛을 내기 어렵죠.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생선이 살아있을 때 곧바로 항에서 즉살해 횟감으로 유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리 특성과 어종에서 선어회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러한 선어회는 숙성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부드러워지면서 진한 감칠맛을 냅니다. 감칠맛을 느끼려면 맛이 강한 소스보다는 간장이 제격이겠죠. 여러 향채로 쌈 싸먹기 보다는 그냥 먹는 편이 선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활어 시장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량진 수산시장

 

우리 국민이 주로 먹는 활어 횟감(광어, 도미, 농어, 감성돔) 등이 수조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한국은 삼면이 바다인 반도 국가입니다. 일본 열도에 가로막혔기 때문에 참치, 방어 같은 회유성 어종은 제한적으로만 잡히며, 주로 돔 같은 흰살생선이 서식합니다. 예부터 흰살생선회에 익숙해졌으니 관련 양식업이 발달하고 수입도 활발합니다. (예 : 중국산 농어, 점성어 등)

 

흰살생선은 붉은살생선보다 활동성이 적고, 이에 따른 산소 요구량도 적은 편이어서 오랫동안 살릴 수 있습니다. 즉, 활어로 유통하기에 이보다 좋은 생선은 없습니다. 살이 단단하며, 별도로 숙성하지 않은 이상 감칠맛은 풍부하지 않으므로 활어회에 익숙한 우리 국민은 주로 씹는 맛에 기댔을 것입니다.

 

그 결과,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입에 끝까 남는 것이 쫄깃한 식감이고, 여기에 마늘과 고추 등을 곁들이면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풍성한 맛과 식감으로 즐길 방법을 고안해 왔습니다. 그러니 <사진 1>의 쌈 싸먹기와 <사진 2>의 비벼 먹기가 국민 정서에 잘 맞으면서도 활어회 특유의 단단한 식감과 강한 소스가 어우러져 '또 다른 생선회의 맛'이 돼버린 것입니다.

 

 

부산 유명 횟집의 회백밥

 

70년 전통의 유명 횟집도 감칠맛을 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숙성회를 내지만, 한국 소비자층의 취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초고추장과 쌈채, 마늘을 포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포기하는 순간 손님은 떨어져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열거한 안주 문화, 반찬 문화, 쌈 문화, 비빔 문화 등이 생선회의 품질 저하를 부추기는 악습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지리적인 이점과 어종의 장점을 활용해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활어 시장을 갖추었고, 안정적인 활어 유통을 구현해 냈으며, 일본이 할 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생선회 문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활어회가 낫다, 선어회가 낫다는 식의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우리의 생선회 문화가 가진 장점을 좀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것과 같이 우리도 생선회와 관련해 일본의 선진 기술을 흡수해 우리 것으로 다듬어 나갈 필요가 있겠지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일본에서 맛본 광어회

 

사진은 일본 아이치현에서 맛본 광어회입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인데 식당에서는 인근에서 양식된 광어를 잡아다 숙성해서 냅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섬임에도 초고추장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집은 활어를 가두기 위한 수조도 있습니다. 그 안에는 도미와 광어 같은 흰살생선이 들었습니다. 일찌감치 흰살생선과 초고추장의 궁합을 알았 걸까요?

 

 

양식산 광어라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식감과 맛

 

맛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정말 광어 맞나 싶을 정도로 찹쌀떡 같은 차진 식감과 단맛은 국내에서 맛본 광어회와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겉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그만큼 탈수를 잘해 뽀송뽀송하게 됐다는 증거입니다. 면면으로는 동네 횟집에서나 볼 법한 흔하디흔한 양식산 광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광어라 할 만한 크기도 아닙니다. 무게 2kg에도 못 미치는 광어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었을까?

 

물론, 일본에서 흔히 하는 '이케시메(척수 마비에 의한 숙성 지연)'을 이용했을 거란 예측은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어떤 환경과 시간으로 식감과 맛을 통제했는지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이기도 할 테니 쉬이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국내에서 흔히 접하는 숙성회

 

최근에는 이러한 숙성 기술이 국내로 유입되고 있으나, 아직은 일본의 섬세한 숙성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천편일률적인 두께도 앞으로 다듬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일본의 섬세한 숙성 기술에 다소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나, 최근 활발한 음식 교류와 연구로 인해 이러한 갭도 차츰차츰 고 있습니다.

 

참치, 방어로 대변되는 일본의 생선회 문화가 우리의 생선회 문화를 접목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지만, 우리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흰살생선은 붉은살생선보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고 선호도의 폭이 넓어서 일본의 생선회 문화와 숙성 기술을 접목하기가 비교적 유리한 편입니다. 

 

우리가 가진 장점은 계승하면서도 일본의 장점만 흡수해 우리만의 생선회 문화로 발전해 나갈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합리적인 전처리와 섬세한 숙성 기술은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수조 없는 횟집을 보는 것도 더는 꿈이 아니며 소비자들은 기존의 활어회와 첨단 기술이 접목된 선어회 사이에서 선택의 폭은 좀 더 넓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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