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흑기사 벵에돔! 그보다 한수 위인 긴꼬리벵에돔까지..왜 특별한 생선회인가?
벵에돔은 ‘돔’ 자가 붙지만 엄밀히 말하면 ‘돔’은 뾰족한 바늘을 의미하며, 날카로운 등지느러미 가시가 발달한 농어목 도미과에 속한 몇몇 어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참돔이 있으며 이를 '도미' 혹은 '돔'으로 줄여 말합니다.
벵에돔은 농어목 황줄깜정이과에 속하므로 도미과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흑돔’, ‘벵어돔’ 정도로 불렀던 벵에돔. 부산을 비롯한 경남 앞바다에는 지천일 만큼 흔한 생선이었죠. 너무 흔해 거뜰떠 보지 않았고, 특유의 향이 있어서 먹기를 꺼렸던 벵에돔이 지금은 특별하고 귀한 횟감으로 취급됩니다. 벵에돔에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요?
#. 벵에돔은 왜 맛있어진걸까?
릴 찌낚시가 유행하기 시작한 90년대 전만 해도 벵에돔을 낚으려는 낚시인은 많지 않았습니다. 바위에 붙은 파래나 김 등 해조류를 뜯어먹는 식성으로 인해 살에 ‘갯내’가 나서 먹기를 꺼렸던 것입니다.
더욱이 암초를 끼고 사는 습성 때문에 그물로 잡는 것이 쉽지 않았고, 입이 작고 성격이 예민하며 돌틈 사이로 잘 숨는 습성 탓에 주낙으로 낚아내는 것은 더더욱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야말로 낚시와 조업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90년 이전의 벵에돔.
그 벵에돔이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주요 낚시 대상어가 되었고, 없어서 못 먹는 횟감이 되었다.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벵에돔은 일본에서 유입된 릴 찌낚시란 장르를 눈부시게 발전시킨 대상어입니다. 개체수는 풍부한데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잘 숨고, 잘 떠오르고, 그러다가 다시 숨는 까탈스러운 습성으로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토너먼트 대회 어종으로 낙점했습니다.
마치 숨바꼭질 하듯 두뇌전과 심리전을 통해야 낚아내는 매력적인 어종인 것. 이러한 현상은 낚시에서 단순히 낚는 목적에만 그치지 않고 ‘게임성’까지 부여하게 됩니다.
몇몇 권위 있는 낚시 대회에서 수상하면 상당한 상금과 함께 낚시계가 인정하는 명예도 따라옵니다. 때문에 ‘운’보다 ‘실력’으로 승부가 나야 하며, 벵에돔의 까다로운 입맛과 잘 숨는 습성은 실력으로 낚아내야 하는 좋은 변별력을 가집니다.
일본의 릴 찌낚시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던 90년대 초반. 이때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의 낚시계는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벵에돔을 낚기 위해 바다에 밑밥을 뿌리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벵에돔과 관련된 낚시 용품은 물론, 밑밥 산업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밑밥에 사용되는 주요 성분은 남극의 크릴(Krill)입니다. 크릴은 새우가 아닌 동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으로 남극해에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 생물(고래 및 황새치 등)의 좋은 영양분이 됩니다.
심지어 일반 황새치보다 크릴을 먹고 자란 붉은황새치(일명 홍메카도로)가 더 맛있고 비싸게 판매되듯이 크릴을 먹고 자란 어육은 맛과 풍미가 비약적으로 달라짐과 동시에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습니다.
가까운 앞바다에 살던 벵에돔은 지난 20~30년 동안 낚시꾼이 뿌린 크릴을 먹으며 자라왔고, 그 결과 예전에는 없었던 맛과 풍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반면, 먼바다에 서식하는 벵에돔은 여름에는 파래 같은 해조류를 먹고, 겨울에는 김과 갑각류를 먹고 자라므로 여름에는 갯내가 나고, 그나마 겨울은 먹을 만한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일부 도서 지역에 서식하는 벵에돔 중 몸길이 25cm 이하는 구웠을 때 특유의 향이 나서 선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특유의 향은 해조류 습성에서 오는 갯내(혹은 풋내라고도 함)로 회보다는 열을 가했을 때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벵에돔은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내만 산인지 먼바다 산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맛과 향을 갖게 됩니다.
#. 벵에돔의 제철은 언제일까?
그렇다면 벵에돔의 회 맛이 가장 좋은 철은 언제일까요? 이 질문에 낚시꾼들은 “여름이다.”, “겨울이다.”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래쪽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국내에 서식하는 벵에돔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으로 회 맛은 여름부터 겨울까지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30cm급 이하는 가까운 앞바다에서 잡힌 것이 맛있고, 그보다 큰 것은 앞바다 먼바다 할 것 없이 대체로 맛이 좋은 편입니다.
가장 맛이 좋은 크기는 1마리 무게가 1kg 전후로 몸길이로 따지면 35~40cm 정도. 더 커도 맛있지만, 특별히 1kg 전후가 맛이 있는 이유는 껍질이 질기지 않아 벵에돔 하면 일미로 손꼽히는 껍질구이회(속칭 히비끼)가 가장 맛이 좋은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은 모두 봄철에 산란합니다. 다라서 산란이 임박한 3~4월과 산란 직후인 4~5월인 즉, 봄철만 아니면 대체로 맛이 좋다는 평입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서식지에 따른 맛 차이는 존재하며, 이 때문에 지금도 ‘벵에돔 회’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불호는 주로 벵에돔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었던 일부 남부 지방 사람들입니다. 벵에돔에 편견이 없는 일반 소비자들에겐 그저 귀하고 특별한 횟감이며, 좀 더 대중으로 나아가면 벵에돔이란 생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허다한 것이지요.
#.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 갈색 긴꼬리벵에돔의 차이
벵에돔은 전 세계 다양한 종이 서식합니다. 호주에는 일명 ‘드러머’라 불리는 대형 벵에돔이 갯바위 낚시 대상어로 인기가 있고, 캘리포니아 남가주에도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벵에돔과는 다른 종(일명 오팔아이)이 낚시 대상어로 인기가 있습니다. 국내에 서식하는 벵에돔은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으로 나뉘며, 두 종은 습성과 서식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벵에돔은 잔잔하면서 물살이 세지 않은 내만에 서식합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강하게 발달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남해안 일대로 들어오지만, 겨울이라고 해서 먼 남쪽으로 빠지기보다는 제주도, 추자도, 거문도, 국도 근처에서 월동을 납니다. 긴꼬리벵에돔보다는 회유성이 낮으며, 일부 개체는 연중 머무르는 붙박이의 특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긴꼬리벵에돔은 길고 날렵하게 발달한 제비 꼬리에서 연상되듯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상해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먼 섬 또는 거제도까지 들어왔다가 겨울이면 남쪽으로 빠지는 회유성을 가집니다. 물론, 연중 수온이 12도 이상을 유지하는 제주 서귀포 일대와 원도권에는 사철 분포합니다.
한편, 일부 개체는 해류를 따라 움직이면서 일명 ‘슈퍼 긴꼬리벵에돔’도 있습니다. 이러한 개체를 낚시꾼들은 ‘차구레’라 부르며, 단순히 회유반경 뿐 아니라 먹잇감에도 차이가 납니다.
차구레(차구레를 일컫는 우리말이 따로 없어서 이하 갈색 긴꼬리벵에돔으로 설명)는 벵에돔의 관서지방 방언인 ‘구레’와 차색, 차나무의 ‘차차(茶)’가 합친 말로 긴꼬리벵에돔과 같은 학명, 같은 종입니다.
다만, 일반 긴꼬리벵에돔과 달리 1,000km가 넘는 엄청난 회유 반경을 가지며 동물성 플랑크톤을 섭취하는 습성 때문에 일반적인 녹색이 아닌 적갈색을 띤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색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학술적으로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고, 낚시인들 사이에서 추측만 무성한 상태지만, 다른 사례를 들어 추론해 볼 수는 있습니다.
갑각류나 크릴이 익으면 색이 붉어집니다. 바로 '아스타잔틴(astaxanthin)'이라는 항산화 물질 때문인데 연어의 경우 아스타잔틴을 살 속에 합성해 축적해 두는 방식이라 근육이 붉은 것이고, 참돔은 껍질에 축적하기 때문에 선홍색을 띱니다.
갈색 긴꼬리벵에돔도 유어기 때는 녹색이었다가 주요 먹잇감이 플랑크톤이 되면서 갈색으로 바뀌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세찬 물살을 타고 다니는 습성이 보통의 긴꼬리벵에돔보다 강하기 때문에 갯바위 가장자리보다는 본류대(바다 한가운데 흐르는 가장 세찬 조류)에서 주로 잡힙니다. 이 때문에 국내의 갯바위 환경에서는 보기 힘들며, 세찬 물살 위에서 하는 선상낚시에서 종종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 먹잇감이 동물성 플랑크톤이므로 굳이 김이나 파래를 먹으려고 섬이나 갯바위로 접근하지는 않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 구별법
두 어종을 구분하는 핵심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가미에 검은테 여부입니다. 검은테가 있으면 긴꼬리벵에돔이고, 없으면 벵에돔입니다.
두 번째는 꼬리지느러미의 모양입니다. 꼬리가 조금 더 길면서 아치형으로 둥글게 되어 있으면 긴꼬리벵에돔이고, V자 모양이면 벵에돔입니다.
이 밖에도 긴꼬리벵에돔은 벵에돔보다 비늘 크기가 작으며, 10cm 이상 더 크게 자랍니다. 긴꼬리벵에돔의 국내 기록은 69.2cm이고, 벵에돔은 57.5cm입니다. 이로서 긴꼬리벵에돔이 벵에돔보다 더 크게 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 어느 것이 더 맛있을까?
낚시인들의 평가로는 갈색 긴꼬리벵에돔(일명 차구레) > 긴꼬리벵에돔 > 벵에돔 순으로 구전되고 있으며 이러한 평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국내에선 갈색 긴꼬리벵에돔을 맛볼 기회가 많지 않아 여기서는 긴꼬리벵에돔과 벵에돔을 위주로 설명합니다.
내가 느낀 맛 차이는 두 어종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벵에돔이 우세하고,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긴꼬리벵에돔이 우세합니다.
이유는 그렇습니다. 벵에돔은 내만에서 잡힌 작은 벵에돔이 맛있는데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인 6~8월에는 대부분 긴꼬리벵에돔이 아닌 일반 벵에돔이며 크기도 25cm 이하일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은 11월에 잡힌 몸길이 37cm 정도의 긴꼬리벵에돔이었습니다.
월동을 준비하기 위해 살과 지방을 찌운 이때가 가장 고소하고 식감도 좋았습니다.
토치로 껍질만 구워낸 벵에돔 껍질구이회는 벵에돔이 낫고, 껍질을 벗긴 일반적인 회는 긴꼬리벵에돔이 낫습니다. 이유는 껍질의 탄성에서 차이가 나는데 벵에돔은 껍질이 얇고 익었을 때 야들야들한 반면, 긴꼬리벵에돔은 다소 질기고 탄력이 강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두 어종 모두 45cm 이상으로 커지면 껍질이 질기므로 껍질구이회를 적극 권하진 않습니다.
이밖에도 뼈가 굵은 벵에돔은 일명 지리로 통하는 맑은탕이 낫고, 긴꼬리벵에돔은 매운탕이 낫다는 평가입니다.
두 어종 작은 것은 튀겨먹거나 소금구이가 맛있고, 25cm 이상 중치급은 조림도 일품입니다. 도미 솥밥 대신 벵에돔으로 솥밥을 해도 맛이 좋습니다. 이 경우 풋내가 덜한 먼바다산 긴꼬리벵에돔을 권합니다.
#.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벵에돔을 맛보기 좋은 가장 확실한 곳은 제주도입니다. 제주시보다는 모슬포에서 위미항에 이르는 서귀포시에 집중되며, 이곳에 있는 자연산 전문 횟집 또는 올레시장의 횟집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벵에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그물 조업이 성행하며, 어획량이 떨어지는 비수기(2~4월)에는 일본산 양식 벵에돔(긴꼬리벵에돔 포함)으로 충당합니다.
#. 양식 벵에돔도 있다?
일본산 양식 벵에돔은 치어를 채집해 기른 것으로 원래는 방어 양식장에 끼는 이끼나 해조류의 청소부 역할로 도입됐습니다. 즉, 처음부터 식용어로 기른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상품성을 갖추게 되고, 수요가 증가하자 일부는 내수용으로, 일부는 한국으로 수출하게 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산 양식 벵에돔은 제주도로만 유통됐습니다. 지금은 소량이나마 전국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횟집과 시장에서 판매되는 벵에돔이 모두 국산이고 자연산은 아닙니. 일부는 일본산 양식도 포함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벵에돔은 양식이 안 된다.”란 말도 이젠 옛말이 되었습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tvN <난리났네 난리났어>,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 <수산물이 맛있어지는 순간>, <귀여워서 또 보게 되는 물고기 도감(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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