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흉내낼 수 없는 우리집만의 특별한 밥상(벵에돔 회, 초밥, 회냉면, 오마카세)


    2박 3일간 대마도에서의 낚시가 끝나면 그간 잡아놨던 고기들을 스티로폼 박스에 넣고 아이스 포장해 집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만, 활어는 가져올 수 없으므로 피를 뺀 횟감용과 구이, 탕거리 등으로 마련해서 가지고 오는데요.
    대마도에서 부산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거기서 다시 서울 집으로 오는데 5시간 반. 활어를 즉살시켜도 7~8시간은 숙성되므로 어종에 따라
    물러지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숙성회를 맛있게 먹기 위해 두 가지 음식을 만들어봤습니다. ^^




     

    작은 건 전부 방생하고 사이즈가 되는 것들만 골라 담았기 때문에 보기와는 달리 그렇게 많은 마릿수는 아닌데요.
    도착하자마자 박스를 열어보니 약간 오합지졸인 듯해 다시 정리해서 찍어봅니다.


    반듯한 게 정리만 해줬을 뿐인데 느낌이 확 다르지요. ㅎㅎ


    횟감용 고기는 꼬리에 칼집을 내어 표시해 뒀기 때문에 지네들끼리 막 섞여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횟감용 벵에돔 중에 사이즈가 큰 순으로 꺼내 손질하고요. 대략 세 마리 정도 떠서 당장 회로 먹을 것과 다음날 초밥용으로 준비합니다.


    벤자리 이리

    알이 잔뜩 밴 암컷이길 바라며 손질한 벤자리. 뽑기가 잘못돼 수컷이 걸렸네요. ㅎㅎ
    정자 주머니인 이리(통상 불리는 '곤이'는 잘못된 말)가 큼직하게 들어 있습니다.


    야밤에 모실 수 있는 손님으로는 근처 동에 살고 계시는 처형부부가 유일해 번개를 치고 간단하게 술상을 차려봅니다.
    포를 뜬 생선살은 키친타올에 감싸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 중 일부를 꺼내 이렇게 회를 장만합니다.
    절반은 일반회로 절반은 토치를 이용해 껍질회를 만듭니다. 보통 30cm급 어린 벵에돔을 이렇게 해 먹으면 좋고 이렇게 40cm가 넘는 벵에돔을 토치로
    할 때는 익힘에서 많은 주의가 필요하더군요. 가장자리까지 정말 골고루 지져주지 않으면 그 부분이 익지 않아 나중에 회를 씹을 때 질겅질겅 껍질이 
    넘어가지 않는 상황이 생깁니다. 참고로 4짜 벵에돔과 벤자리는 박범수 명인께서 챙겨주셨어요. 전날 밤 우리가 잠든 사이 몰래 나가셔서 타작하셨답니다.


    곧바로 얼음물에 담그고. 살살 흔들어서 빼낸 횟감에다 키친타올을 두드려 수분기를 완전히 닦아 줍니다.
    그리고 먹기 좋게 썰어내면 먹음직스러운 벵에돔 껍질회가 완성!


    한 쪽에선 분류 작업이 한창이에요. 아직 비늘도 내장도 따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포장해 냉동실에 넣어버립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한두 마리씩 꺼내 먹을 때 손질하게 될 텐데요. 반쯤 해동했을 때 아래 링크의 설명대로 손질한다면 냄새도 안 나고 정말 쉽습니다.
    "생선 손질법(2) - 매운탕 조림용 생선 손질법"


    조촐하지만,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자연산 술상이 완성됐다.

    대마도 낚시 3일 차이자 집으로 완전 철수시각인 밤 11시.
    손질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술이 들어가자 노곤했던 몸이 완전히 으스러질 듯 합니다. 이때는 긴장도 풀리고 눈도 풀립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해야 낚시의 완성이 아닐까? 아무리 피곤해도 지금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이 귀한 음식들이 있어 남은 여력을 다해 봅니다.


    대마도산 벵에돔과 벤자리 회

    그래도 벵에돔은 벵에돔이네요. 8시간 숙성이 되어도 회의 탁도가 크게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먹었던 그 맛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벵에돔 회는 쫄깃한 식감과 고소함이 남아 있습니다.


    벤자리 껍질회

    반면에 현장에서 그렇게 감탄해가며 먹었던 벤자리 회는 좀 안습. ㅠㅠ
    그 특유의 고소함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살이 물어져 영 아니올시다.
    영문을 모르는 처형 부부께선 귀한 자연산 회가 그저 맛있다고만 하셔서 안타까움을 더한 회였죠. 이 벤자리 회를 좀 더 활어 상태에서 드셨더라면
    눈이 번쩍했을 텐데 말입니다. 소문대로 벤자리는 바로 먹지 않으면 그냥 구이 감이 낫겠어요.


    깨끗이 비웠습니다. ^^; 벵에돔구이가 고소한 게 맛있네요.


    다음다음날 점심, 저는 남은 횟감으로 초밥을 쥐었습니다. 숙성한 회 처리 방법으로는 초밥만 한 게 없지요. ^^
    고기를 즉살시켜 피를 뺐다면 김치냉장고에서 3일 이상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틀가량 숙성한 벵에돔을 가지고 두 가지 음식을 만들어 봤습니다.



    벵에돔 초밥과 벵에돔 회 냉면


    이틀이나 숙성했는데도 살의 탁도에 큰 변화가 없는 벵에돔.

    "쏴라있네"

    비빔면은 그냥 마트에서 4인분이라고 파는 그런 걸로 했습니다. ^^;
    솔직히 밖에서 사 먹는 어설픈 비빔면보다는 마트에서 파는 유명 브랜드의 비빔면이 저는 낫더군요.


    일반 가정집은 고사하고 일식집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4짜 벵에돔 초밥

    초밥용 회(네타)는 하루에서 이틀 가량 숙성한 게 적당. 하나 쥐어서 맛보는데 대만족입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고 ^^;)


    확실히 생선 사이즈가 크니깐 긴 숙성시간을 잘 견디네요.
    작은 생선이었으면 이미 푸석해지거나 탁도가 변색됐을 텐데, 벵에돔 특유의 쫄깃함이 살아 있고 씹으면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소함도 있습니다.
    초밥용 밥(샤리)를 만들 때는 절대 비율이 있는데 식초3, 설탕2, 소금1. 그런데 저는 식초를 조금 더 넣습니다.
    여기에 다시마를 한 장 깔고요. 레몬즙을 적당히 넣어서 약한 불에 설탕이 녹을 때까지만 살살 저어주면 단촛물이 완성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밥에 단촛물을 붓고 주걱으로 자르듯이(이때 동작이 빨라야 함) 섞어준 후 부채질을 해서 김을 날리고 수분의 소실을 방지
    하기 위해 젖은 면보를 덮어주는 건 생략하고. ^^; 잠시 뒀다가 좀 식었다 싶을 때 초밥을 쥡니다.


    회 치고 남은 서더리는 고춧가루 팍팍 쳐서 매운탕을 만들어 먹고요.


    고급 일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오마카세를 시전(?)

    어머니에게 오마카세(주방장이 추천하는 초밥 코스요리)를 해드립니다.
    종류는 벵에돔 하나뿐이지만, 선도에 자신이 있어 즉석에서 쥐어드리고.


    한 피스 만들어 올리면 날름 집어가시는 어머니.
    드시는 속도에 맞춰 초밥을 쥐어 올려봅니다. 대략 14피스 정도 서비스한 것 같아요. 말도 없이 맛있게 드셔서 제 맘이 뿌듯합니다. ^^




    "제가 만든 일품 초밥입니다.^^;"

    맛이 보이시나요? ㅎㅎ
    저 초밥 속에는 우리 부부의 땀과 고생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한 고생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전직 요리사도, 일식 주방장도 아닌 일반 낚시꾼이어서 초밥 쥐는 기술이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음식의 8할은 '재료'가 먹고 들어간다잖아요. 재료가 좋으면 기술이 부족해도 맛을 낼 수 있다는 것!
    생선을 즉살시켜 처리한 횟감을 대마도에서 서울까지 공수하고 또 집으로 가져와 손질 후 보관하는 방법이 적절하다면 2~3일이 지나도 물러지지 않고
    이렇게 맛있는 초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베테랑 낚시꾼이라면 저 말고도 이렇게 하는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

    최근에 회를 너무 많이 먹어 입에서 비린내가 날 정도인데요. ^^;
    엊그제는 제가 쥔 초밥을 먹고 난생처음 토할 뻔했습니다. 그 회를 알면 여러분은 깜짝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ㅠㅠ
    그 이야기는 다음에 들려드리도록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회를 계절별로 먹어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머릿속에 정리되고 있습니다.
    대상은 돌돔, 벵에돔, 감성돔, 긴꼬리 벵에돔, 벤자리인데요. 제가 먹어본 가장 맛있는 회는(참다랑어, 다금바리, 붉바리는 제외합니다.)

    6월에 낚은 싱싱한 벤자리 회.(50cm급 돗벤자리)
    2월에 맛본 가거도산 감성돔 회.(45cm급 이상)
    11월에 맛본 긴꼬리 벵에돔 회.(37cm급)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뜻밖에 실망했던 회는 5월에 먹어본 47cm급 돌돔(수컷).
    돌돔은 여름 회로 알려졌지만, 겨울에 더 맛있다는 돌돔 꾼들의 전언이 있어 한겨울에 맛을 한번 봐야겠습니다.
    실제로 지난 늦가을에 먹었던(비록 뺀찌급이지만) 돌돔도 정말 맛있게 먹을 걸 보아 제 생각도 돌돔은 여름보다 겨울로 갈수록 맛이 좋아지지 않을까?
    (다만, 잡기가 상당히 어려운 계절이라) 돌돔 산란 철이 여름이라는 점도 겨울이 더 맛있음을 뒷받침해 주는 단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낚시의 완성은 자연산 밥상으로 귀결됩니다. 손맛, 눈맛, 입맛 등의 본 방송을 빼더라도 즐거움이 있지요.
    낚시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 가지는 설렘부터 철수 후 기다리고 있는 미식의 시간까지.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안타까웠던 사실 중 하나는 '글과 사진은 공유할 수 있어도 맛은 공유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싱싱한 맛을, 달곰한 혀의 쾌락을, 어디 가서 맛보리오? 시중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자연산 만찬, 분명 꾼의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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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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