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경악한 '광절열두조충', 생선회는 억울해


제 블로그에서 기생충 이야기는 아니사키스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터진 사건 때문에 '광절열두조충'이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기생충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충격', '경악'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기생충 사건은 충격이든 경악이든 무엇에 갖다 붙여도 쉽게 수긍할 만큼 소름 돋는 일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면.

"13살 아이 몸에서 길이 3.5m짜리 기생충이 나와, 경악"
"생선회(활어회) 먹고 감염돼"
"원인은 광절열두조충"


그리고 뉴스에서 빵하고 터트렸죠.

"살균처리가 안 된 활어회를 먹으면 감염된다."고.  

평소 회를 즐겨 먹던 아이 몸속에서 3.5m 길이의 기생충이 나와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광절열두조충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은 누리꾼들에 의해 삽시간에 펴졌고 매스컴에서는 이를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하지만 보도에 열을 올린 나머지 정확히 어떤 생선회를 통해 감염되었는지는 내용이 빈약합니다. 더욱이 '생선회', '활어회'라는 광범위한 명칭을 사용해 안 그래도 방사능 여파로 횟집 업종이 타격받았는데 이제는 기생충 때문에 국민들이 생선회를 꺼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대두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로 '광절열두조충'은 우리가 평소 먹는 생선회(활어회)를 통해 감염될까요?  

최대 10m까지 자라는 광절열두조충(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모든 생선에는 담수어, 해수어 할 것 없이 기생충이 조금씩 들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뿐입니다. 또 기생충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체에 해를 끼쳤던 것은 아닙니다. 저마다 유전형질이 다른 탓에 숙주에 안착해 성체로 자라는 종이 있는가 하면, 숙주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자신도 괴로운(?) 경우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숙주는 '삶의 터전'이므로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오랫동안 빌붙어 살면서 함께 성장할 궁리를 모색합니다. 기생충 수명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데요. 이번에 발견된 광절열두조충과 뱀 기생충인 스파르가눔은 수명이 기본 20년 이상입니다. 특전사 출신의 어떤 분은 무인섬에서 뱀, 개구리를 먹으며 생존 훈련을 했던 탓에 반평생 동안 이들 기생충과 함께하기도 하였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숙주와 유전 형질이 안 맞아 안착하지 못하고 죽거나 소화되 변으로 배출하지만, 일부는 위벽을 뚫고 나가는 등 심한 합병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다 기생충으로 알려진 '아니사키스(고래회충)'입니다. 인간이 종숙주가 아니므로 안착하지 못하고 발버둥 쳐서 숙주에게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기생충은 그 종류만도 수백 가지지만, 각각 좋아하는 환경이 있고 잘 옮겨붙는 숙주가 있습니다. 기생충의 감염 경로는 '먹이사슬'과 함께 합니다. 이에 감염된 물고기 역시 '먹이'와 관련 있는데요. 중간숙주가 되는 갑각류, 플랑크톤을 작은 물고기가 먹고 그것을 다시 큰 물고기가 먹음으로써 옮겨진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어느 케이블 방송에서는 이 광절열두조충의 감염 경로가 '활어회'에 있다고 합니다. '평소 생선회를 많이 먹는 분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는 건 아쉽습니다. 이에 동조한 일부 시청자들은 이제 이 징그러운 기생충 감염을 피하고자 횟집 가는 걸 꺼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실소한 부분은 '예방 방법'에 있었습니다. 

- 평소 생선회를 드시더라도 적게 드시라. 
- 회를 냉동해서 먹으면 안전하다.


실제로 어느 소아과 전문의는 '광절열두조충의 예방 방법'을 묻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생선회를 드시려면 냉동을 잘해서 살균이 된 상태에서 냉장 해동을 해서 회를 드시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이제 우리는 갓 잡은 활어회를 얼려서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횟집은 수조 대신 잘 얼릴 수 있는 냉동고를 비치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 보도대로 광절열두조충의 감염경로가 생선회(활어회)에 있다면, 지금까지 숱하게 먹어온 사람들에게 이 충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더 신기한 일일 겁니다. 이는 어떤 현상에 관한 고찰이 깊게 이뤄지지 않아서 생기는 호들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기생충 길이가 3.5m가 됐든, 10m가 됐든 흔히 발견되지도 않는 이 기생충 하나에 전국이 떠들썩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래 설명할 생선회의 감염 경로를 안다면, 말이지요.



광절열두조충의 감염 경로(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광절열두조충은 '촌충'의 일종입니다. 주로 '담수어'에서만 기생하는 기생충으로 사람을 종숙주로 삼으며 한번 몸에 들어가면 주둥이를 소장에 
단단히 고정하고 나머지 몸체는 대장까지 길게 늘어트리며 소리소문없이 기생합니다. 증상은 비타민B나 엽산의 흡수를 방해함으로써 생기는 합병증, 빈혈, 피로감이 있습니다. 성체가 된 광절열두조충은 하루에도 수백 개씩 알을 낳는데 대부분 대변을 통해 빠져나갑니다. 그렇게 빠져나간 알은 하수관을 통해 플랑크톤이나 물벼룩 등에 먹히고 이것을 먹은 물고기가 감염되었다가 사람에게 잡혀 먹음으로써 순환합니다. 이번에 아이 몸에서 발견된 광절열두조충은 길이 3.5m지만, 중간에 끊기지만 않았으면 5m는 됐을 것이라고 합니다.  평균 몸길이는 5~6m이며 최대 10m까지 자라며 수명도 20년 이상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유충의 길이는 불과 몇 mm지만, 여기서 수 미터의 성체로 자라는 데 필요한 기간은 약 2년.  이 아이의 기생충 감염 원인은 2년 전에 먹은 생선회에 있습니다. 


#. 바닷물고기 생선회는 광절열두조충에 안전해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생선회를 통해 이것이 감염되느냐 여부입니다. 방송에서는 이것에 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았는데요.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광절열두조충의 중간 숙주는 물벼룩과 작은 갑각류에 있습니다.  감염원은 주로 이것을 먹이로 하는 물고기인데 주로 송어, 연어와 같은 '담수어'가 이에 해당합니다. 송어와 연어는 바다에서 생활하다가 강 하구로 들어오면서 감염원을 섭취하게 되고, 농어는 바닷물고기지만, 기수역(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을 좋아하는 탓에 감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숭어 역시 기수역을 좋아하며 작은 유기질, 플랑크톤, 갑각류 등을 먹이로 하므로 감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외해(外海)에서 잡힌 농어와 숭어에는 이들 기생충에 감염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겠죠. 그 외에 강으로 역주행하지 않는 해수어(각종 돔, 우럭, 광어 등)에서는 광절열두조충의 감염 사례가 나오지 않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광어와 우럭은 한국에서 소비되는 생선회의 약 80%를 차지합니다. 만약 이들 어류에서 감염 보고가 나왔다면, 회를 먹는 대다수 국민이 광절열두조충에 감염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어떤 의사의 말대로 회를 얼렸다가 해동해서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분은 회를 얼려서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 가장 의심되는 건 송어와 산천어
광절열두조충의 감염 확률이 높은 어종은 '송어'입니다. 가끔 송어와 숭어를 헷갈리는 분이 계신는데요. 둘다 해수와 담수에 고루 분포하지만, 송어는 담수성이 강한 어종이고, 숭어는 기본적으로 해수어입니다. 송어는 살색이 진한 주황색이고 숭어는 붉은색 바탕의 흰살생선회입니다. 송어에는 '산천어'도 포함됩니다. 12~2월이면 전국 곳곳에 산천어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산천어와 송어를 날것으로 먹게 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감염 확률이 매우 낮지만, 0.1%라도 가능하다면 확률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반면, 연어를 먹고 감염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론상으로는 연어가 담수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감염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수십 마리의 연어를 강에서 잡아 샘플 조사했는데 그 결과 약 30%에서 광절열두조충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중에 팔고 있는 연어회는 대부분 바다에서 어획된 겁니다. 연어의 상품가치는 '바다에서 어획된 것'이 최고이며 노르웨이, 칠레 등에서
수입되는 연어 역시 바다에서 어획되었습니다. 상품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연어는 산란기 때 강에서 잡힌 건데요. 이러한 연어가 시중에 유통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만약에 담수에서 잡힌 연어를 날것으로 먹었다면, 감염될 확률이 있습니다. 

광절열두조충은 원래 한반도에서 잘 발견되지 않는 종이었습니다. 주요 서식지는 북유럽, 스칸다비아반도, 북극해 등 매우 찬 물에 서식하는 기생충이다 보니 특히 북유럽에서 감염 확률이 높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먹는 생선 중에 '연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거리상으로는 한반도와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식하는 기생충인데 이제 와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유럽과 북극해에서 발견되는 광절열두조충과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광절열두조충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학명'이 다른 이종이니 광절열두조충 대신 새로운 명칭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니사키스와 광절열두조충은 냉동했을 때 죽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청어와 연어를 많이 먹는 유럽인들은 각각 아니사키스와 광절열두조충의 감염을 피하고자 이들 생선을 냉동해 먹기도 합니다. 어차피 그들의 식문화는 '날 것'을 잘 안 먹기 때문에 냉동해 먹어도 그다지 개의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정이 다릅니다. 만약에 농어와 숭어, 연어 등을 날것으로 먹다가 광절열두조충에 감염된다면, 확률상 굉장히 운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 외 송어, 산천어, 민물고기 등을 날것으로 섭취하면 광절열두조충 감염 확률이 높아집니다. 광절열두조충의 서식 환경이 담수어에 맞춰져 있어 민물에 강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민물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디스토마와 유사한 형질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절열두조충은 회충약보다 디스토마 약을 먹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방송 보도에서는 광절열두조충 감염 원인을 단순히 생선회에 두어 생선을 날것으로 먹지 말거나 활어회를 먹더라도 조금만(?) 먹으라고 하는데요.
이는 광절열두조충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생선회 중 정확히 어떤 어종을 통해 감염되는지 소상히 보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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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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