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 오해, 찬물에 사는 생선이 더 맛있다?


생선회를 이야기할 때 방송과 기사, 칼럼 등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멘트가 있습니다.

"찬물에 사는 생선이 더 쫄깃하고 맛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더운물에 사는 생선은 맛이 없다."

이러한 말들은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일종의 흑백 논리죠. 생선회의 육질을 결정하는 첫 번째 조건은 '즉살'에 있습니다. 즉살이란, 활력이 가장 좋을 때 고통 없이 숨통을 끊는 것을 말합니다. 죽어가는 생선으로 회 뜨면 비록 숨이 붙었을 때 숨통을 끊어다 하더라도 살이 물러지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활력이 좋다는 것은 몸부림을 심하게 쳐서 '팔팔해 보이는 것'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자연산이든 가두리 양식산이든 활어차에 실려 오는 동안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중간 도매상에 넘겨진 활어는 곧바로 소비자에게 판매되지 않고 2~3일간 수조에서 '순치(적응)' 기간을 거치며 주변 환경에 적응하게 되겠죠. 다시 말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때의 활어가 활력이 좋으며 고통 없이 즉살하면, 근육의 단단함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그것을 전문용어로 '사후 경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경직이 수 시간 유지되므로 우리는 탄력 좋은 쫄깃쫄깃한 회를 맛볼 수 있습니다.

육질을 결정하는 두 번째 조건은 '숙성 시간'에 있습니다. 생선이든 육고기든 죽고 나면 근육이 수축해 '경직'하게 됩니다. 그러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근육이 이완하면서 슬그머니 풀어집니다. 쫄깃쫄깃한 생선회는 즉살 직후부터 시작해 저온 보관 시 5~6시간 안에 먹어야 단단한 식감을 맛볼 수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리면 육질이 쉬이 물러집니다. 5~6시간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어종, 크기, 보관 환경에 따라 유동적이며, 결정적으로 '활력 정도에 따른 즉살 여부'도 크게 작용합니다.

육질을 결정하는 세 번째 조건에 바로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찬물'에 사는 물고기가 더운물에 사는 물고기보다 육질이 쫄깃하고 맛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래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수온에 따른 한반도 어종 분포

위 사진은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히고 있는 생선을 수온 별로 표기하였습니다. 수온은 연평균 수치로 대략적인 지표를 참고하였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연평균 수온이 낮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연평균 수온이 높습니다. 수온이 낮은 곳에 사는 생선을 '한대성 어종'이라 부르고, 수온이 높은 곳에 사는 생선을 '열대성, 혹은 아열대성 어종'이라 부릅니다. 중간 수온에 산다면 '온대성 어종'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죠.

지도에 표기한 어종은 수온에 따른 분포를 '대략적'으로 표시하였지만, 꼭 그곳에만 서식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근처에 능성어를 표시했는데요. 이는 수온에 따른 평균적인 분포를 표시한 것 뿐, 능성어가 꼭 제주에만 서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능성어가 살기 적합한 수온이라면, 제주도를 떠나 부산이나 거제도 앞바다에서도 서식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위 그림을 보면, 한대성 어종과 아열대성 어종이 어떻게 나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우리가 횟집에서 자주 접하는 우럭, 광어, 놀래미(쥐노래미), 숭어 등은 수온 10~18도 사이에서 잘 서식합니다. 도미(참돔), 농어, 감성돔 등은 그보다 조금 높은 수온인 13~20도쯤에서 잘 서식하지요. 그렇다면 수산시장, 일식집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횟감으로 소위 '고급 어종'이라 불리는 것들은 어느 해역에 분포되어 있을까요? 여기서 일반인들에게는 제법 생소한 이름들이 등장할 겁니다. 그만큼 우리가 먹는 횟감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인데요. '진짜 맛있는 생선회'는 찬물이 아닌 더운물에 집중적으로 서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돌돔 사촌인 강담돔

#. 최고급 횟감 → 돌돔,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능성어, 어름돔, 붉바리, 민어, 돗돔, 강담돔
이들 어종의 서식 영역은 남쪽에 많이 치우쳐 있고 수온 또한 14~20도 이상으로 고수온에 분포합니다. 언제나 시가로 취급하는 자연산 돌돔은 길이 50cm, 무게 2.5kg 한 마리가 40만 원을 호가합니다. 수온이 올라가는 여름과 가을에 한시적으로 서해에서 잡히지만, 그 외의 어장은 남해와 제주도에 형성됩니다. 돌돔은 수온 13도 미만으로 떨어지면 먹이 활동을 잘 안 하며 8도 미만이면 폐사합니다.


제주도 특산물, 횟감의 황제, 인생에서 꼭 먹어봐야 할 생선회 등 각종 수식어가 붙는 다금바리는 아열대성 어류로 유명합니다. 다금바리 사촌인 능성어, 붉바리의 경우 수온이 찬 곳에는 아예 서식하지도 않습니다. 여름철 보양 음식이자 값비싼 요리 재료인 민어는 수온이 떨어지면 그 해역을 벗어나 버립니다. 민어와 어름돔은 동중국해의 난류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수온이 본격적으로 오르는 여름과 가을이면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까지 올라와 잡히는데 그 기간이 2~3달 남짓합니다.


최근들어 겨울에 민어가 잡혀 화제가 됐는데 원인은 고수온의 여파로 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범돔'이라고 부르는 강담돔은 돌돔보다 좀 더 높은 수온에 분포하고 있으며, 전설의 물고기 돗돔도 너무 차가운 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선에서 갓 내린 생물 옥돔

#. 밥상에 올리면 최고의 음식 → 옥돔, 갈치, 눈볼대, 참조기(굴비), 병어, 갯장어
제주도에서 차례상에 올리는 귀한 고기가 있죠. 바로 옥돔인데요. 옥돔의 주 어장은 제주도보다 훨씬 남쪽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입니다.
사람들이 명품 취급하는 물고기 중에는 이렇게 아열대성 어류가 많이 있습니다. 그 밖에 부산에서 차례상 생선으로 인기 높은 눈볼대(아까무찌), 6월 이면 맛이 올라 전라도에서 축제를 벌이는 병어, 여름 보양식 갯장어(하모), 여기에 우리 식탁에 영원히 빠질 수 없는 참조기(굴비)와 갈치까지 이들 생선의 어장은 중부 이남으로 형성되어 있어 차가운 물에는 어획이 잘 안 되는 생선이기도 합니다.



벤자리(좌), 긴꼬리벵에돔(우)

#. 낚시 어종 중 최고의 횟감 → 긴꼬리벵에돔, 벤자리, 부시리, 쏨뱅이, 흑점줄전갱이
부시리(히라스)를 제외하면,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횟감으로 개성이 또렷하고 인상 깊은 맛이 발군입니다. 긴꼬리벵에돔 특유의 탄력 있는 식감, 벤자리의 구수한 맛, 부시리의 담백한 맛, 그리고 쏨뱅이의 달달한 맛까지 이들 어류가 양식만 가능했다면, 전국의 횟집과 일식집을 평정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텐데요. 아쉽게도 양식이 잘 안 돼 낚시꾼 사이에서만 그 맛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들 어종도 모두 중부 이남, 수온 15도 이상에서 어장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고급 일식집과 호텔에서 사용하는 대형 전갱이가 있습니다. 살이 단단하고 깊은 맛이 나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어종인데 공수가 까다로워 일반 횟집에서는 보기 어렵고 돈 좀 있는(?) 자칭 미식가들 사이에서만 맛이 전해지는 어종이죠. 바로 흑점줄전갱이인데 일식에서는 '시마아지'로 통하는 고급 횟감입니다. 시마아지 역시 난류성 어종으로 따듯한 물에서 어획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 가장 비싼 생선회 → 흑산도 홍어와 줄가자미(일명 이시가리)
지금까지 값비싼 고급 어종을 수없이 소개했지만, 이제야 10도 이하의 수온에도 견딜 수 있는 고급 어종이 나온 것 같습니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3~4시간이 걸리는 먼 섬으로 겨울이 오면 수온이 매우 낮아져 '돔' 어종은 전부 빠져나가거나 일부는 월동합니다. 이 시기에 서해 일부는 수온이 5도 이하로도 떨어지는데 이런 수온에서도 서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어종으로는 꼽으라면 우럭을 들 수 있어요.
이시가리로 알려진 줄가자미 역시 저수온에 강한 편입니다. 동해와 남해의 모래와 개펄이 섞인 곳에 서식하는 심해성 어종으로 150m 이하의 저층에서 주로 서식하다 보니 저수온을 잘 견디는 고급 횟감입니다.

#. 더운물에 사는 생선회가 왜 맛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주자 → 참다랑어
경매가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소개한 모든 어종을 올킬할 수 있는 게 바로 참다랑어죠. 다양한 다랑어 종류 중에서도 가장 맛도 좋고 가치가 빛나는 어종은 참다랑어(혼마구로)가 으뜸인데요. 이것도 '남방 참다랑어'와 '북방 참다랑어'로 나뉘는데 남방 참다랑어는 남반구를 비롯하여 열대 해역에 서식하고 북방 참다랑어는 북반구의 인도양, 태평양 등에 서식하며 공통점은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난류(따듯한 물)를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횟감의 황제'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값비싼 어종을 소개하였습니다. 이들 어종이 분포하는 해역은 공교롭게도 온대와 아열대를 오갑니다. 반면 명태, 대구, 도루묵, 청어, 임연수어 등 찬물을 좋아하는 한대성 어종은 일단 '저렴'하고 '횟감'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지요. 그렇다고 이들 생선이 맛없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생선회로서의 가치, 맛, 시세 등을 고려해보면 시장에서 평가하고 있는 '고급 어종'은 대부분 따듯한 물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민 횟감 삼종 세트 광어, 놀래미, 우럭

#. 하지만 같은 어종이라면, 찬물에 노는 생선이 더 맛있어
'찬물에 노는 생선이 육질도 쫄깃하고 맛도 좋다.'라는 말은 수온에 따른 어류 분포를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어종으로 한정해 보면 수온이 찬 해역에 서식하는 개체가 더 맛있는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횟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우럭(조피볼락)은 저수온에 잘 견디는 어종입니다. 국내 양식 우럭의 주산지는 통영이지만, 전남 대둔도와 같은 섬에서도 양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둔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3~4시간에 닿는 흑산도 바로 위에 있는 섬입니다. 


통영은 연평균 수온이 17~19도로 높고, 대둔도는 10~13도로 매우 낮습니다. 대둔도에서 양식하는 우럭과 통영에서 양식하는 우럭에는 미묘하지만, 육질의 차이가 있으며 성장 속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수온' 때문입니다. 같은 어종이라면 수온이 찬 해역에서 자란 게 좀 더 쫄깃쫄깃하고, 반대로 수온이 따듯하면 성장 속도가 빠를 테니 양식업에서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똑같이 3년을 키운 우럭이라도 산지에 따라 살밥과 크기가 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수온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수억에 사들이는 참다랑어(혼마구로)도 더운물을 좋아하는 난류성 어종이지만, 초겨울에 오오마(혼슈와 훗카이도 사이의 해역)에서 잡힌 참다랑어를 최고로 쳐줍니다. 같은 참다랑어라도 수온이 찬 해역을 회유할 때가 가장 맛있어진다는 거죠.


#. 생태와 섭리를 알면 오해가 줄어
모든 해수어는 어종마다 먹이활동에 적합한 '적서수온'이 있습니다. 사계절 내내 적서수온에서 자란 어류는 그렇지 못한 어류보다 같은 기간 더 많이 자라게 됩니다. 서식 환경이 좋으니 더 크게 성장하기도 합니다. 벵에돔과 돌돔, 강담돔의 평균 씨알이 한국보다 더 남쪽인 일본(큐슈)으로 내려갈수록 좋아지는 이유도 서식 여건과 수온 때문입니다. 거제도에서 낚는 벵에돔 씨알이 대마도나 제주도의 벵에돔을 이길 수 없는 것도 수온이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서수온의 변화가 크면 성장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살밥이 차는 정도와 회 맛 등 여러 가지로 관여합니다.

다소 복잡한 내용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같은 어종이지만, 서식 해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숭어는 남해 > 동해 > 서해 순으로 맛이 가려집니다. 서식 해역의 먹잇감, 지형 조건, 강 하구의 기수역인지의 여부, 그리고 청정 해역인지 아닌지 등의 요소에 의해 같은 어종이라도 회 맛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찬물에 노는 생선이 맛있다'거나 혹은 '더운물에 사는 생선은 맛없다'와 같은 말들이 마치 생선회의 상식인 걸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이러한 섭리를 몰라서 오는 오해입니다. 앞으로는 생선회를 두고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다면, 오늘의 글을 상기하면서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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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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