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감성돔 낚시] 수심 1m에서 올라온 대물 감성돔


 

 

대마도 일정은 감성돔 낚시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스크롤 압박이 있는데요.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일정 중 2일 차로 잠시 되돌려봅니다.

그날 오후, 우리 일행이 사오자키에서 선상 벤자리 낚시를 하고 있을 때, 아내는 생애 처음으로 단독 출조를 나섰습니다.

제가 미리 챙겨준 낚시 가방과 밑밥을 들고 미네만 최고의 포인트인 '타카이'에 홀로 내려 대물 벵에돔 사냥을 하게 되었던 것.

그러나 온 바다를 뒤덮어버린 새끼 전갱이 때문에 한 마리도 낚지 못하고 빈손으로 오게 됩니다.

 

이후 제 일행이 타카이로 들어갔지만, 역시 새끼 전갱이의 성화에 소득 없이 끝났고 다른 팀도 들어갔지만, 대물 벵에돔을 눈 앞에 보고도 낚을 수

없는 참담함만 느끼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들 말에 따르면 5짜는 됨직한 대물 벵에돔이 여러 마리 돌아다녔고 3~4짜는 그 개체 수가 어마어마

했지만, 수면을 가득 메운 전갱이 때문에 도저히 낚아볼 방법이 없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곳에는 대물 벵에돔 외에도 타카이 영감이 무려 셋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내 이후로 발동이 걸린 타카이의 저주를 직접 풀고자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대마도 낚시 3일 차 저녁, 가라아케

 

타카이 영감을 만나러 가기 하루 전. 우리는 마지막 남은 일정을 위해 온종일 쏟은 만큼의 칼로리를 보충하였습니다.

생선회는 늘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다 보니 이제는 이런 게 더 맛있습니다. ^^;

 

 

돗벤자리 간장 조림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일본식 간장 조림. 일본에서는 벤자리를 맛있게 해 먹고자 할 때 간장 조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한국과는 또 다른 스타일의 생선 조림입니다. 조만간 집에 있는 벤자리로 이것을 만들어 선보일까 해요.

 

 

벤자리 회

 

말캉말캉 씹히는 식감에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벤자리 회.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꾼들에게 손맛과 입맛을 선사해주지만, 국내에서는 그 출현시기도 짧을뿐더러 낚이는 장소가 매우 제한되다 보니 극히

소수 마니아만 즐길 수 있는 대상어입니다. 그나저나 올해 벤자리는 윤달의 영향인지 작년보다 지방이 덜 한 게 흠.

 

 

삼겹살

 

벤자리 회보다 더 맛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삼겹살.

 

 

전골에 우동 사리

 

숙소 앞

 

AM 6:00, 출항 직전

 

이것은 해무가 아닌 수증기. 전날 온 바다를 휘감은 수증기가 미네만 안쪽까지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3박 4일 일정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 이때만 해도 포인트를 정하지 못한 저는 마지막 낚시를 어디서 해야 할지 고민하였습니다.

전날 참돔을 잡은 곳으로 들어가 다시 참돔을 노려야 할지, 아니면 아내의 저주를 풀기 위해 타카이로 들어가 대물 벵에돔을 노려야 할지. 

그렇게 갈등하자 아내가 다가 오더니 타카이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다들 꽝으로 죽을 쑤고 있는 곳엘 내가 왜? 

 

그러자 아내는 제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당시 자기가 시도했다가 멘붕이 오는 바람에 미처 하지 못했던 공략법이 있다며 플랜 A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때는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면서 말이죠. 

그 방법은 30m 이상 양식장 부표가 있는 곳으로 최대한 롱케스팅 하라는 것. 그곳은 전갱이가 덜하니 부표 근처를 집중 공략하라고 조언합니다.

더불어 밑밥 품질 요령까지 ^^ 그것이 아내가 제시한 플랜 A였습니다. 결국, 아내의 꼬임에 넘어간 저는 타카이로 결정.

그런데 정작 본인은 슬그머니 빼더니 낚시를 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고별전을 연장해 타카이에서 복수전으로 마무리하자고 약속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는데 이제 와서 못 가겠다니.

 

 

홀로 내린 밥곰님

 

다시 조를 짜야 하는 상황. 밥곰님은 조용한 갯바위에 혼자 내렸고 저는 최필님과 함께 타카이로 들어갔습니다.

상원아빠님과 아내는 숙소에서 쉬는 걸로 결정.

 

 

미네만 타카이 포인트

 

산기슭에 자리한 이곳이 문제의 포인트입니다. 6월에 한 번 내려 재미를 본 자리였기에 포인트 지형이나 공략 방법에 대해선 자신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낚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설치는 전갱이 떼의 여부. 이날 대물 벵에돔을 사냥하는 데 있어 키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타카이에서 바라본 미네만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깊숙한 산자락의 호수에 온 느낌이지요.

바람도 없고 파도도 없지만, 사람도 없습니다. 보이는 거라곤 진주 양식장 부표만이 덩그러니 떠 있을 뿐. 

이런 곳에 50cm가 넘는 대물 벵에돔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사실. 꾼으로서 정말 흥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갱이 치어들이 벌써 대기 중이다.

 

그런데 수면을 보니 이미 전갱이 떼가 진을 치고 있어 시작부터 걱정되었습니다.

보기에는 듬성듬성 있는 것 같지만, 더 많은 무리가 숨어 있거든요. 아마도 밑밥을 치면 본색을 드러낼 것입니다.

 

 

밑밥을 치는데

 

 

포인트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밑밥으로 유인이 거의 불가능한 어종이 있습니다. 바로 고등어와 전갱이.

여기서는 자리돔, 전갱이가 주종인데 중간중간 놀래기(어랭이)도 섞여 있군요.

자리돔은 유인이 가능한 어종이지만, 전갱이는 밑밥에 반응하는 군집 외에도 더 많은 군집이 사방에 퍼져 있는 상황입니다.

 

 

착수 음조차 줄이고자 0c 부력의 소형찌를 선택하였다.

 

#. 나의 채비와 장비

낚싯대 : 동양레포츠 갯바위 원정기 1.75-530

릴 : 다이와 임펄트 2500LBD

원줄 : 쯔리겐 프릭션 제로 2호(서스펜드)

어신찌 : 쯔리겐 토너먼트 아크로 02번(0c), 조수우끼고무 L

목줄 : 쯔리겐 제로알파 2호

바늘 : 벵에돔 바늘 6~7호

봉돌 : g2

 

전갱이는 수면에서 착수 음이 들리거나 소리가 나면 몰려들기 때문에 채비를 던질 때 착수 음을 줄이는 찌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군집이 포진해 있으면 착수음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일.

 

 

기록 경신을 위해 대물 벵에돔을 노리고 왔는데 분위기를 보니 밑밥부터 잘못 개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전갱이나 고등어에게 크릴 밑밥은 최악의 선택이지요.

만약에 빵가루만 있었다면, 빵가루만 반죽해서 공략하면 되지만, 대마도에서는 빵가루를 잘 사용하지 않다 보니 평소대로 개온 게 발목을 잡습니다.

저 아래 벵에돔이 피어오르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대도 어떻게 잡을 도리가 없는 상황. 이 난관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까요?

 

 

타카이 영감 출현

 

그런데 순간 제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들어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타카이 영감.

 

 

바로 수면까지 올라와 먹이를 주워 먹는다는 대물 감성돔입니다. 이 녀석, 아니 영감님을 보자 제 마음은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벵에돔도 좋지만, 저는 아직도 대마도에서 감성돔을 잡아 본 기억이 없기에 이참에 한 마리 낚고 싶었던 것.

그런데 낚을 방법이 없네요. 저 녀석, 못해도 5짜는 넘을 것 같은데(그래서 영감님이라 불러드렸죠.) 산전수전 다 겪어서인지 눈치가 대단히 빠릅니다.

처음에는 수심 50cm까지 올라와 밑밥을 주워 먹길래 뜰채질로 올리려고 했습니다. 전갱이가 너무 많아 크릴 미끼는 살아남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만, 어림도 없네요. 평소에는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니 잘하면 뜰채로 올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뜰채를 대면 그림자가 수면에 비칠 때부터 알아차리더니 뜰채를 집어넣으면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 움직여주다가 1m까지 접근하면 그냥

쏜살같이 들어가 버리는 영감님. 그렇게 영감님에게 빼앗긴 정신은 시계를 보면서 되찾았습니다.

저 녀석은 무리고 그냥 하던 벵에돔 낚시나 해야 할 듯.

 

 

반면, 최필님은 여전히 잡어 등쌀에 시달림을 받고

 

참돔 낚시에서나 쓰이는 크릴 여러 마리 꿰기

 

분명 저 아래는 대물 벵에돔이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온갖 잡어가 방패가 되자 생각해 낸 한심한 방법입니다. 당연히 통할 리가 없겠지요.

송편말이도 해보고 또 전날 팀은 나뭇잎으로 감싸서 내려보기도 했다던데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일단 가져온 밑밥에 크릴이 섞여 있는 한 전갱이를 퇴치할 방법은 현재로써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용케도 벵에돔을 낚아낸 최필님. 지금 상황에서 새끼 벵에돔이라도 잡은 게 용합니다. 용해.

 

 

제게도 자리돔의 일종인 열대어가 한 마리 올라옵니다.

실은 시커멓게 생긴 잡어가 어떤 종류인가 싶어 확인차 걸어본 건데 이렇게 생겼군요. 방생.

 

 

AM 8:00 엄청난 개체의 벵에돔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오전 8시. 두 시간을 허비한 우리를 더욱 절망으로 몰아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수면에는 자리돔과 전갱이 치어가 포진한 가운데 그 밑으로 엄청난 개체의 벵에돔이 돌아다니자 낚시에 대한 의욕이 커지기는커녕, 슬슬 꺾이기

시작합니다. 여기도 던져보고 저기도 던져보면서 다양한 품질 법까지 시도해 봤지만, 크릴 한 마리만 떨어져도 시커멓게 덤비는 잡어 떼에 미끼가

남아나질 않습니다. 순간 아내가 알려준 플랜 A를 시도해 봤으나 그것도 허사로 돌아갔고 최필님은 낚싯대를 내려놓고 담배만 뻐끔뻐금 피워댑니다.

 

 

자리돔, 쥐치, 전갱이, 대물 벵에돔이 어슬렁거리는 이곳은 아쿠아리움을 방불케 했다.

 

타카이 포인트가 명포인트인 이유는 보시다시피 발 앞부터가 급심입니다. 수심은 12~13m가 나오고요.

양식장 부표까지 던지면 18~22m까지 나올 정도로 깊습니다. 하지만 단지 수심이 깊다고 고기가 많은 건 아녀요.

유독 이곳에만 대물 벵에돔이 모여 사는 이유는 여기에 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이기도 한 가파른 절벽 안으로 움푹 들어간 굴이 있어 물고기에게 좋은 은신처가 되고 있었죠.

 

그렇다 하더라도 대물 벵에돔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6월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전갱이가 없었으니 몇 마리 뽑을 수 있었지만, 지형 자체가

날카로운 바위로 되어 있고 수중턱이 삼각형 모양으로 뻗어 있어 고기를 걸면 연신 그쪽으로 처박습니다.

그걸 요령 있게 제압하지 못하면 말짱 허사인 곳이 이곳이죠. 그래서 타카이는 벵에돔 낚시에 자신 있는 분들이 도전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타카이 영감님 출현, 그 아래 호박돔까지

 

그림의 떡이란 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닐까요?

낚시는 안 되는데 발 앞에는 대물 감성돔에 벵에돔까지 어슬렁거리니 도저히 낚시에 집중하려야 할 수 없는 상황.

정말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 심정이지만,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미끼를 내려봅니다. 그러나 1초도 안 돼 빈바늘이 되는 신세.

 

 

에라이.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낚시고 뭐고 다 때려치워뿟짜. 마"

 

이대로라면 준비한 밑밥의 80%를 남기고 철수할 상황. 저는 남은 밑밥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쏟아붓는대도 단 한 마리의 크릴이 감성돔이나 벵에돔에게 돌아가지 못하네요. 파우더로 인해 물색만 자욱해질 뿐.

밑밥은 이곳의 전갱이를 사육하는 사료가 돼버렸습니다.

 

 

 

"형님 저 먼저 낚싯대 접겠습니다."

 

전의를 상실한 최필님은 뜰채로 성게나 뜨며 놀고 있습니다. 대마도에서 마지막 낚시는 이렇게 끝나는군요.

아내 말을 듣고 온 게 후회되고 있습니다. 그냥 어제 참돔 나온 자리나 갈 걸. 타카이의 저주를 풀고 자시고 이제는 다 귀찮습니다.

 

 

수심 1m에 대물 감성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렇게 자포자기한 채로 바다만 물끄러미 보던 나.

아까부터 저 녀석 아니 영감님이 계속 알짱거리니 이렇게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것도 곤혹스럽네요.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 해서 다시 뜰채를 댔습니다.

 

좀 전부터 영감님은 한 곳에 머물며 특정 구역에서 계속 먹이를 쪼아먹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움푹 팬 그 자리만 가면 대가리를 틀어박는데요. 그 자리에 뭐가 붙었는지 자꾸 깨 먹으려고 오길 수없이 반복합니다.

감성돔이 자리를 잠시 비우면 호박돔이 나타나 대신 그 자리에 코를 박습니다. 아예 이제는 둘이 번갈아가며 팬 곳에다 코를 박는데요.

뭔가 좋은 먹잇감이 붙어 있는 거겠죠? 그래서 코를 박고 가만히 있는 녀석을 뜰채로 낚아채려고 했습니다만, 뒤에도 눈이 달렸는지 냅다 줄행랑칩니다.

 

"나 도저히 안 되겠어. 오늘 영감님 못 잡으면 철수는 없다."

 

대물 감성돔이 눈앞에서 약 올리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아직 철수 시각이 한두 시간 남았으니 반드시 잡고 말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살피게 된 갯바위 벽

 

최필님이 따다 준 거북손으로 영감님을 노렸지만, 역시 순식간에 따먹히고.

 

 

그러다 발견된 이것은 

 

 

"떡조개"

 

떡조개는 오분자기의 표준명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대충 넘어갑시다.

대체 미끼를 구하러 간 최필님은 떡조개스럽게 생긴 이것을 제게 내밀었습니다.

 

 

 

"형님. 이것을 한 번 써보시죠"

 

순간 저는 이거다 싶었습니다.

 

 

깠더니 웬 기생충이.

아니고 실은 내장 일부인데 처음에는 기생충으로 착각할 뻔.

 

 

원활한 후킹을 위해 바늘 침을 반절 이상 빼놨다.

 

"플랜 B 가동"

 

사실 플랜 C도 있기는 합니다. 플랜 C는 전기 베터리로 수면을 지져 전갱이를 몰아내는 건데. 농담이고요. 낚시인이 그러면 안 되겠죠. ^^;

어쨌든 최필님이 따 준 조개살로 타카이 영감님을 꼬드겨 볼 생각입니다.

 

"수심 1m에서 눈으로 보면서 하는 대물 감성돔 낚시라니"

 

지금까지 이런 낚시 저런 낚시 많이 해봤지만, 이번 상황은 정말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울 듯해요. 국내에서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

 

 

그러나 나의 조갯살을 휭하니 외면해버린 감성돔

 

확실히 조개살은 잡어의 극성을 견뎠습니다. 조개살이 들어가자 자리돔과 전갱이가 연신 두드립니다. 

하지만 살이 딱딱한 조갯살은 그대로 자유 낙하합니다. 그리고 감성돔 얼굴 앞으로 들이민 순간입니다. 

녀석 조개살을 보자마자 옆 지느러미를 살살 움직이더니 후진을 ㅠㅠ 아니 이 맛있는 걸 두고 왜 후진해 이 녀석아!

그리곤 유유히 수중턱을 돌아나갑니다.

 

"역시 소용없는 걸까?"

 

 

감성돔의 움직임 경로는 이랬다.

 

그때부터 저는 타카이 영감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경로를 관찰했습니다.

초록색이 가리키는 곳은 감성돔과 호박돔이 번갈아가면서 대가리를 박고 벽에 붙은 패류를 깨 먹는 곳.

그러면서 노란색 경로를 따라 오가기를 반복합니다. 갯바위 능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

 

처음 타카이 영감을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도 영감을 보고 있고 영감도 저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지요.

저를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여유를 부리는 영감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는지 낌새를 알아차리는 데는 능수능란했습니다.

제게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갑자기 속력을 내어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는 영특한 감성돔이죠.

 

좀 전에는 바로 머리 위로 떨어지는 조개살에 경계심을 품은 듯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들이밀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감이 움직이는 경로를 잘 파악해둬야 할 것입니다.

조개살을 내리더라도 녀석의 머리 위로 바로 내릴 게 아닌, 오는 경로에 미리 내려서 기다리는 것이 플랜 B의 핵심이었습니다.

 

 

대물 감성돔은 저의 조갯살을 외면한 채로 곳부리를 돌아나가는 듯하더니

 

 

예상대로 방향을 바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세 시간이나 관찰했기에 저는 감성돔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는지 그 길목을 알고 있습니다.

감성돔이 오는 길목에 미리 조개살을 내렸습니다. 너무 빨리 내리면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일단은 수면에 대기시킵니다.

그리고 감성돔이 도착하기 1m 전, 조개살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낙하로 떨어지는 조개살은 수심 1m 부근에서 감성돔과 맞닥트리게 됩니다.

감성돔이 조개살을 발견한 눈치네요. 처음 이것을 보자 또다시 옆 지느러미를 움직여 후진하는 듯하더니 서서히 다가옵니다. 저는 속으로

 

"먹어라! 먹어라!"

 

주문을 외쳤고 거짓말같이 조개살을 입에 넣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곤 게걸스럽게 씹어댑니다. 물속이라 소리는 안 들리지만, 마치 빠득빠득

씹어먹는 모습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물고기도 좋은 먹잇감 앞에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조개살은 전복처럼 딱딱하니 힘을 주어 씹는 모습에서 제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지금 챔질하면 반드시 걸릴 것 같은데 어떡하지? 챔질할까 말까? 정말 저 녀석을 잡아도 되는 걸까? (이제와서 뭔 소리 ㅡㅅㅡ;)

지금 챔질하면 십중팔구는 후킹이 될 텐데 아니면 단 몇 초라도 이 순간을 즐겨볼까?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 가운데 녀석은 반쯤 씹고 있었습니다.

더이상 늦추면 먹고 튈 수도.

 

"에이 나도 몰라. 영감님 미안해. 챔질"

 

 

 

"왔다!"

 

조개를 캐던 최필님이 이 소리를 듣고 뛰어옵니다.

그나저나 오우 영감님 힘이~ 죽기 살기로 발버둥 치는 감성돔을 살살 달래며 띄우자.

 

 

수면으로 얼굴을 내미는 타카이 영감

 

다시 처박기를 반복하더니

 

항복하고 마는 영감님

 

결국, 영감님은 제 손에 ㅠㅠ (그런데 왠지 슬퍼지려는 이 감정은 대체 뭔가?)

 

 

산전수전 다 겪은 대물 감성돔의 위엄

 

아슬아슬하게 걸려 온 바늘

 

"단지 조개살을 입에 댔을 뿐인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ㅠㅠ"

 

 

58cm급 감성돔(인줄 알았다.)

 

어쨌든 기분이 참 묘하네요. 한낱 생선일 뿐인데 이 녀석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보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고기를 낚는 게 낚시인데 이렇게 세 시간 동안 함께 눈으로 본 친구다 보니 저는 도저히 챙길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생선이지만, 눈으로 지켜봤던 것과 보지 않고 낚은 것은 꽤 많은 차이가 있었군요.

옆에서는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58cm라면 무조건 방생하리라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가져갈 고기도 많은데.

 

그런데 58cm라 하기에는 뭔가 이상해 다시 계측해봤습니다. 알고 보니 58cm가 아니라 53cm였네요.

제가 눈금자를 잘못 읽어 58cm로 착각했던 것. 그런데 왜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모양새인지.

58cm이면 방생하려 했는데 크기가 확 줄자 갑자기 흥이 깨지면서, 결국은 최필님의 아우성에 넘기고 말았습니다.

 

 

AM 11:00 철수, 3박 4일 일정은 감성돔 낚시로 마무리를

 

한편, 홀로 내린 밥곰님은 벵에돔 마릿수로 유종의 미를 ^^

 

 

우리 팀이 사용 중인 두 개의 물칸. 이제는 꺼내서 손질해야 할 시간입니다.

둘째 날, 한바탕 손질했으니 망정이지 그날 손질하지 못했으면 이날 제시간에 손질을 마치기 어려웠을 지도요.

 

 

일행과 함께 역할 분담으로 손질

 

손질된 벵에돔과 벤자리, 그리고 타카이 영감님까지 ㅠㅠ

 

박스에 차곡차곡 담고

 

그 와중에 옆 팀이 손질하고 버린 알을 모두 주웠습니다. (이 맛있는 걸 왜 버리는지 ^^)

 

 

벤자리 알 득템에 기쁜 나머지 ^^;

 

 

이즈하라 항으로 돌아가는 길

 

후텁지근했던 여름날, 날씨 변동이 많았던 시기여서 비가 좀 내리긴 했지만, 대마도 낚시 일정 내내 덥지 않고 흐려 좋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가 막힌 타이밍에 하늘이 개면서 햇볕이 내리쬐는군요.

이번 대마도 낚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뭔가 톱니바퀴 맞물린 듯 착착 진행되었던 출조로 기억될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이즈하라 항

 

저는 한 박스, 독자님들은 두 박스씩 챙겨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충분히 손맛 보고 입맛도 보고 즐겁게 놀다 갑니다.

이제부터는 아쉽게도 아내가 함께하지 못합니다. 현재 아내는 임신 31주에 돌입하였고 어제는 정밀 초음파 검사로 아기 얼굴도 확인하였습니다.

10월 중순부터는 아내와 함께 출산을 준비해야 하므로 그때부터 한두 달 동안은 낚시를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아내의 고별전이 있었던 7월의 대마도 낚시 이야기를 여기서 마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음에는 또 다른 곳에서 좋은 소식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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