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도미라야 만들 수 있는 '도미 솥밥', 상상초월의 맛


 


도미는 예부터 제사와 차례상에 올려질 만큼 귀한 예우를 받아온 생선이지만, 평소에는 그 활용처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한 예로 낚시꾼이 도미를 잡으면, 회를 썰어 먹고 남은 뼈는 매운탕을 끓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중치급은 구이가 알맞으며 안주인이 솜씨를 발휘하면 매콤한 조림이 되기도 하지요.

특별한 날이면, 도미찜을 해 먹지만, 일상에서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도미를 일식이나 중식에서 바라보면 활용할 수 있는 요리가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도미 간장조림, 도미 술찜, 도미 가맛살 구이, 도미 탕수. 그리고 오늘 소개할 도미 솥밥 등등.

 

"도미로 밥을 짓겠습니다."

 

처음 이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황당, 설마, 염려, 무모함 그 자체였죠. 

생선으로 밥을 짓는 것도 생소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비린내'를 어떻게 잡느냐였습니다. 

그래서 도미 솥밥은 싱싱한 도미라야 만들 수 있는 아주 귀한 음식이랍니다.

일본에서도 도미 솥밥은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해주는 전통 음식인데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맛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다만, 그 장소가 고급 일식집이나 호텔에 한정된 까닭에 아마 대부분은 도미 솥밥도 레시피 자체도 생소할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 음식, 생각보다 만들기가 까다롭지 않습니다. 물론, 싱싱한 도미가 주어진다면 말이죠. 지금부터 찬찬히 알아보겠습니다.

 

 

근처 횟집에서 업어온 도미입니다. 원래 저는 자연산만 취급해왔지만(?), 아무래도 겨울이다 보니 낚시 한 번 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이날은 '먹거리 X파일' 촬영 때문에 급히 도미를 구해야 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남은 도미로 뭔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 싱싱한 녀석을 굽거나

끓여 먹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된 것이 도미 솥밥이었습니다. 

 

먼저 도미를 손질해야 하는데요. 자세한 손질법은 "돌돔 감성돔 회 뜨는 법"을 참고해 주세요.

아래는 도미 솥밥에 들어가는 재료입니다.

 

 

 

#. 도미 솥밥 재료(4인분 기준)

도미 한 마리, 분량의 쌀, 다시마 1~2장, 간장 2T, 청주 4T, 소금 1/2T, 생강가루 약간

 

재료가 정말 간단하죠? 도미가 들어가는 영양밥이니 집에 은행이나 밤이 있으면 활용해 주세요.

찹쌀이나 다른 잡곡을 섞어줘도 좋습니다. 계량은 밥숟가락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장은 일본 사시미 간장을 사용했습니다. 이게 조금 달짝지근해 도미 솥밥에 어울릴 듯해서요.

없으신 분들은 양조간장이나 조림 간장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 사진의 도미는 포를 뜨고 48시간을 숙성한 것입니다. 숙성할 때는 포를 뜬 도미를 깨끗한 거즈나 키친타올에 돌돌 말아서 냉장고에 보관합니다.

온도는 1~2도가 알맞으며 평소 문을 잘 열지 않은 서랍형 김치 냉장고가 좋습니다.

 

 

48시간 동안 숙성한 도미입니다. 하나는 껍질을 벗겼고 다른 하나는 벗기지 않았는데요.

최근 들어 도미 솥밥을 몇 번 만들어보니까 껍질을 벗기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먼저 갈비뼈를 제거한 다음 토치로 표면을 살짝 굽습니다.

 

 

토치로 표면을 굽는 이유는 도미살에 있는 풍부한 지방을 불로 녹여서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함입니다.

이런 형태의 조리법을 일본에서는 '아부리한다.'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불로 표면을 지지면 비린내가 죽고 불맛이 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 작업을 앞뒤면 골고루 해주세요.

 

 

이제 냄비에 밥을 안치는데요. 여기서는 물에 불리지 않은 쌀을 사용했습니다.

평소 밥 짓는 것과 똑같이 잘 씻어서 냄비에 담은 다음, 적당량의 물을 붓습니다. 물량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도미 솥밥은 살짝 고두밥이 돼야 맛있습니다.

저의 경우 손가락을 푹 담갔을 때 쌀과 물의 비중이 3:2 또는 5:3이 되도록 맞추는 편입니다.

 

다음은 양념장을 붓습니다. 양념장은 간장 2T, 청주 4T, 소금 1/2T(바짝 깎아서), 생강가루 약간을 잘 섞은 뒤 밥물에 끼얹으면 됩니다.

간장과 청주(혹은 맛술)의 비율은 1:2 혹은 1:3 정도가 알맞으며, 다시마 큰 게 있으면 한두 장 깔아줍니다.

다시마를 깔 때는 물에 살짝만 헹궈서 깝니다. 다시마 표면에는 하얀 가루 같은 게 묻어 있는데 그걸 문질러서 없애면 안 돼요. 그게 맛을 냅니다.

 

 

마지막으로 토치로 살짝 구운 도미를 넣는데 그 순간 도미의 기름기가 밥물에 쫙 퍼지더군요.^^

고소한 기름이 뜬 게 보이시나요? 이것이 끓게 되면, 쌀이 이 물을 모두 흡수해 아주 감칠맛 나는 밥으로 바뀌겠지요.

이제 도미 솥밥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죠? ^^

 

 

이제 아궁이에 숯불을 지피고 부채질해가면서 밥을 지어야

가스 불을 켜고 밥을 짓는데 팔팔 끓으면 불을 낮춰서 12분, 더 낮춰서 10분(뜸 들이기)을 해서 내면 됩니다.

 

 

완성된 도미 솥밥

 

밥이 양념 물을 잘 흡수한 탓에 아주 꼬들꼬들하게 됐습니다.

 

 

흰 점선을 따라 박혀있는 '지아이 가시'는 반드시 제거해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아이(치아이)'를 제거해줘야 합니다. 지아이는 생선포 중앙에 숨어있는 잔가시로 매우 날카롭습니다.

이 가시를 제거하지 않고 섞으면 도미 솥밥은 망하게 됩니다.

 

요령은 사진에 흰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에 박힌 가시를 빼내는 겁니다.

도미의 경우 한쪽 포당 7~8개의 가시가 박혀 있습니다. 조리용 핀셋으로 뽑아도 되고 손으로 뽑아도 됩니다.

이 작업을 미리 해주어도 상관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살이 익어야 가시가 더 잘 뽑히기 때문에 저는 완성 직후 해주었습니다. 

이 가시를 제거했다면, 도미는 100% 순살 상태가 됩니다. 이후로 해야 할 일은..  

 

 

적당히 도미살을 잘라가며 섞어주는 것이겠지요.

 

 

 

 

누룽지도 적당히 만들어져 더욱 맛깔스러워졌습니다.

 

 

겨울에 기력을 보충해 주는 고단백 영양식, 도미 솥밥 완성이오!

 

은행알 껍질은 귀찮아서 ^^; (완성도를 더하겠다면 껍질을 까는 편이 나을 겁니다.)

 

 

 

도미 솥밥의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적절할까? 제게는 쉽지 않은 과제였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밥은 양념간장과 다시마 향이 배 은은하게 감칠맛이 났고 도미는 불맛이 나는 담백한 살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도미 솥밥과 채끝 등심 스테이크

 

뭐죠? 이 둘의 어색한 조합은 ^^;

 

 

채끝 등심도 도미와 마찬가지로 촬영하고 남은 소품인데요.

딱 20일 숙성한 2등급 쇠고기를 구워 감칠맛과 흥건한 육즙이 입안에서 쫘~ 하고 퍼졌답니다.

 

 

도미 솥밥 한 그릇에 추운 겨울이 스르륵 녹아듭니다. 허한 기력도 보충되는 듯하고요.

알려졌다시피 도미의 영양분은 허한 기력을 보충하는데 좋은 재료입니다.

양질의 아미노산이 많아 소화흡수율을 높이고 비타민 B1이 풍부해 예부터 강장식으로 알려졌지요.

생선이 많이 나는 일본에서도 도미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도미는 복(福)을 불러오는 귀물이며 장수를 의미하므로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을 할

때면 반드시 도미가 들어간답니다. 

 

참고로 '도미'라는 물고기 명은 원래 없습니다. 여기에 사용한 도미는 '참돔'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농어목 도미과 생선(감성돔, 참돔, 황돔, 붉돔)을 모두 일컫는 말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도미라 하면 대부분 참돔이라 보면 됩니다.

도미 솥밥을 반드시 참돔으로 할 필요는 없어요. 감성돔으로 해도 되며, 싱싱한 흰살생선이라면 대부분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기수역이 강한 생선(농어와 숭어 등)의 경우는 흙내가 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어린 생선은 더욱 그렇죠.

 

도미는 성장 속도가 빠른 생선으로 우리가 시중에 구할 수 있는 도미도 마리당 1kg는 되기에 이 부분은 문제없습니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으로는 도미만 한 게 없거든요. 간혹 어떤 낚시꾼은 도미(참돔)이 살이 무르고 비린내가 난다 하여 천대하기도 하는데요.

제 생각에는 취급 부주의에 의한 오해에서 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그들 말대로 도미가 비리고 맛도 뒤처지는 생선이라면, 일식에서는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식에서 제일의 식재료는 명실상부 도미. 그만큼 맛이 빼어나다는 증거겠지요.  

 

 

양념장을 추가해 본다.

 

도미 솥밥을 그냥 먹으면 담백해서 좋지만, 이왕 먹는 것 조금 더 맛깔스러운 맛을 내기 위해 양념장을 추가해 보았습니다.

양조간장에 다진 파, 깨소금, 참기름, 그리고 약간의 고춧가루를 섞어서 완성해 봅니다. 

 

 

 

쓱쓱 비벼서

 

 

한술 뜨니 아~ 이 맛도 기가 막힙니다.

 

 

다음 날, 식어버린 도미밥으로 볶음밥을 했다.

 

도미 솥밥의 진가는 식은 이후로도 계속됐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약간 두려운 마음으로 냄비 뚜껑을 열었습니다.

제아무리 싱싱한 도미로 밥을 지었다 해도 식으면 비린내가 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코를 가까이 대보지만, 비린내는커녕 고소함만 더욱 강해져 있는 게 아닙니까? 

전날에는 뜨거워서 잘 못 느껴졌던 고소함이 하루가 지나자 더욱 풍부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감칠맛도요.

뒤적거려보니 그 풍미는 도미의 육즙을 머금은 누룽지에서 더 많이 났습니다. 다만, 식어서 볼품이 없을 뿐.

저는 이것을 프라이팬에다 달달 볶았습니다.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볶다가 달걀 하나를 풀어 몽글몽글하게 볶아내니 '도미 달걀 볶음밥'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맛이 기가 차네요. ^^;

 

한국에서는 활어만이 싱싱한 생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활어를 취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입니다.

물론, 지리적인 특성, 국민성, 우리 고유의 식문화가 결합한 결과이지만, 일본과 미국의 경우는 대부분은 미리 손질된 선어를 숙성해 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싱싱하지 않은 생선을 먹은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건 아니겠죠.

요점은 활어만이 싱싱하다고 굳게 믿어온 우리 국민의 신의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 도미 솥밥은 48시간을 숙성한 것으로 밥을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식에서는 약간의 비린내 조차도 느낄 수 없었는데 이유는 '활도미'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좀 전에는 숙성했다면서 활도미를 사용했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바로 이 점에서 '싱싱함의 기준'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활어회든 숙성회든 싱싱함의 기준은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났느냐'가 아닌, '살아있을 때 피를 뺐느냐?'.

다시 말해, 그 생선의 활력이 가장 좋을 때 숨통을 끊고 손질했느냐가 곧 '싱싱함의 기준'이 됩니다.

이 기준을 정확히 지켰다면, 이후로는 바로 썰어 먹든, 몇 시간을 숙성해서 썰어 먹든지 취향의 차이가 됩니다.

'숙성'의 맛은 '감칠맛'의 극대화입니다. 매운탕이나 구이도 갓 잡은 것으로 요리한 것보다 일정 시간 숙성한 것으로 요리했을 때 맛도 있습니다

물론, 숙성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됩니다. 온도, 시간, 환경 등 삼박자가 모두 맞아야 하 것입니다.

 

어쨌든 48시간 숙성 도미로 만든 도미 솥밥은 처음 시도한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흡족한 맛을 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자연산 감성돔으로 도미 솥밥을 만들어보면서, 오늘 소개한 레시피가 완성되었습니다.

싱싱한 도미가 있다면 꼭 한 번 만들어보시기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 추신

얼마 전, '소고기 숙성'을 주제로 '먹거리 X파일' 촬영을 마쳤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9일) 밤 11시에 방송이 된다고 하네요. 이 방송으로 '숙성'에 관해 한 발짝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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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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