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생선회 '넙치농어'를 아십니까?


 

 

루어낚시 마니아로부터 인기 있는 농어는 양식이 활발해 횟집과 일식집이 선호하는 횟감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농어 대부분은 중국산 양식으로 최대 몸길이 65~70cm, 무게 3.5kg 정도까지 살을 찌워 출하되고 있죠.

크기가 작고 저렴한 농어를 가져다 쓰는 일반 횟집과 달리 3~4kg짜리 농어는 생선회 품질을 중시하는 고급 일식집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물론, 자연산 농어도 해마다 이맘때부터 잡히기 시작하므로 자연산을 취급하는 일부 호텔과 일식집으로 팔립니다.

이때 형성되는 자연산 농어의 입찰가는 1kg당 약 2.5만원. 즉, 4kg짜리 농어 한 마리를 10만원에 들여놓는 셈이지요.

이를 팔아서 남겨 먹으려면 2~3배 이상의 소비자가가 형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종만큼은 국내 어디서도 돈 주고 사 먹기 어렵습니다. 

훌륭한 제철 식재료를 취급한다는 고급 식당에서도 이 어종을 판 전례를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조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소수의 낚시 마니아들만 한정적으로 낚아내 그 맛도 그들 사이에서만 간간이 전해지는 이 어종의 이름은

 

"돈을 아무리 발라도 사 먹을 수 없는 불운의 생선회, 바로 넙치농어입니다."

 

 

지난 1월 가파도에서 낚인 넙치농어

 

넙치농어의 일본명은 '히라스즈키(ヒラスズキ)'

아시다시피 '히라메(ヒラメ)'는 우리나라의 국민 횟감인 넙치(광어)를 의미하며 '스즈키(スズキ)'는 농어입니다.

'넙치농어'는 일본에서 부르던 명칭을 그대로 번역해 우리나라의 어류도감에 농어의 한 종류로 등재했습니다.

난류를 좋아하는 아열대성 농어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남부 일대에서만 반짝 출현하고 있죠.

이 신출귀몰한 녀석을 잡는 이들은 어부가 아닌 루어낚시를 즐기는 전문 낚시꾼들.

그중에서도 극히 소수에 해당하는 이들이 넙치농어를 한두 마리씩 잡아내니 그 맛과 가치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위 사진은 제 블로그 단골이신 엘라님이 제공한 것으로 길이 80cm가 넘는 넙치농어를 낚은 뒤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엘라님은 일 년에 수차례 서울에서 가파도로 원정낚시를 다니는 넙치농어 전문 앵글러입니다.

이 넙치농어를 현장에서 해체한 뒤 얼음에 재워 그대로 공수하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 귀한 넙치농어를 서울 홍대 앞에서 맛볼 수 있었죠.

 

 

서울 홍대의 단골 주점에서

 

제주도에서 올라올 넙치농어의 공수에 맞춰 긴급 술 번개를 열었습니다. 참석해주신 분들은 평소 제 모임에 적극적이신 정예 멤버로 구성.

이날 넙치농어라는 특별한 회를 적당히 빛내줄 술과 함께.

 

 

품질이 우수한 생와사비와 전용 간장을 챙겨왔습니다.

이날 넙치농어를 위해 아낌없는 손질과 상차림을 제공해 주신 사장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넙치농어가 몇 접시로 나뉘어 서빙되었습니다.

 

 

그중 한 접시가 제 앞에 놓였는데 피를 잘 빼서 살점이 유난히 희고 윤기가 반질반질하는군요.

때마침 생와사비도 두 종류(녹미원과 705)가 있어서 비교할 수 있었고.

세팅한 회도 엘라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일반 농어와 넙치농어의 맛을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에 넙치농어로 표시한 걸 제외하면 모두 일반 농어입니다.

전날 가파도에서는 일반 농어와 넙치농어의 비율이 약 8:2 정도로 일반 농어의 개체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간간이 잡히는 넙치농어는 제주 가파도에서도 쉬이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

여기서는 일반 농어보다 넙치농어의 씨알이 좀 더 컸기에 회 단면적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눈여겨본 것은 이 둘 간의 색상 차입니다. 회의 색상 차는 맛과 일정 부분 관련이 있어 저의 주된 관찰 대상이 됩니다.

 

 

농어(위), 넙치농어(아래)

 

보시다시피 윤기가 흐르고 유백색을 띤 쪽은 넙치농어이며, 일반 농어는 자연산임에도 불구하고 무색에 약간 창백한 느낌이 듭니다.

 

 

넙치농어(위)와 농어(아래)

 

혈합육을 비교해도 이 둘의 차이는 크게 벌어졌습니다.

밝고 깨끗한 질감, 적당히 기름기가 낀 넙치농어와 달리 일반 농어는 검은 실핏줄로 인해 텁텁한 느낌을 줍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에서 양식 농어와 자연산 농어의 차이를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짧게 정리하자면, 양식 농어는 근육에 검은 실핏줄이 많으며 혈합육 색도 어둡고 진한데 비해, 자연산 농어는 양식 농어에서 보이는 검은 실핏줄이

거의 없고 혈합육도 마치 도미처럼 선홍색을 띠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 자연산 농어도 넙치 농어와 비교해 보니 윤기와 색상 면에서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백하고 무색을 띤 회일수록 회 맛의 근간인 지방질의 고소함과 단맛이 덜하며, 약간 붉거나 노르스름한 색일수록 고소함과 단맛이 앞서고

있음을 이제껏 무수히 많은 생선회를 통해 느껴왔는데 농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거죠.

 

 

기름층이 밴 넙치농어 회

 

넙치농어의 단면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연갈색의 혈합육만 보면 꼭 무슨 돼지고기 같군요. 잘 보면 섬세한 마블링이 있습니다.

회를 오래 씹으면 느껴지는 달짝하면서 고소한 맛. 반면에 농어는 그런 맛이 덜한 편입니다.

식감도 근육의 결 차이로 인해 넙치농어 쪽이 조금 더 우세했습니다. 명색이 자연산 농어임에도 이날 만큼은 농어가 넙치농어 앞에서 맥을 못 추는군요.

넙치농어가 일반 농어보다 맛이 좋음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제철이 서로 다르다.

농어의 산란기는 가을. 그래서 농어는 산란 직전인 여름에 가장 맛이 좋습니다. 

반면 넙치농어의 산란기는 봄에서 초여름으로 이어지므로 겨울에서 초봄까지가 가장 맛이 좋습니다. 

이때는 넙치농어가 제철이므로 당연히 넙치농어 쪽이 우세했죠.

 

2) 서식 환경이 맛의 차이를 낸다.

같은 어종이라면 고위도에 서식하는 개체일수록 맛이 좋음은 익히 밝혀진 사실입니다. (남반구는 저위도)

즉, 찬물에 서식하는 개체일수록 지방 함유량이 많고 육질도 쫄깃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같은 종'에 한해서입니다.

어종이 다르다면 찬물, 더운물보다는 담수(저염분)가 섞이는 강 하구, 삼각주, 기수역의 생활 습성이 상대적으로 적어야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감성돔과 숭어, 농어 일부는 기수역을 좋아해 강 하구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잡힌 횟감은 지방의 기품이 떨어지고

약간 흙내가 나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지요.

농어는 기수역을 좋아하는 어종인데 비해 넙치농어는 염분이 높은 외해를 끼고 회유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3) 먹잇감에 의한 맛 차이

보통 초식성보다는 잡식성이, 잡식성보다는 동물성 먹잇감을 취하는 어류의 풍미가 좋습니다.

농어와 넙치농어는 새우, 두족류(오징어), 멸치와 정어리 같은 베이트피쉬를 먹이로 하므로 이 부분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넙치농어 회

 

넙치농어의 왕성한 운동량을 나타내는 힘줄

 

근육을 자세히 보면 원형으로 둘러쳐진 결이 있습니다. 이 결은 식감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하지요. 결은 해당 어종의 운동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모든

어종에 조금씩 있지만, 같은 어종으로 비교했을 양식은 흐릿하고 자연산은 좀 더 선명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쫄깃한 식감만큼은 자연산이 양식보다 조금 우위에 있는 편입니다. 

 

또한, 넙치농어는 조류가 강하고 파도가 높은 돌무더기가 많은 해안가, 갯바위에 서식해 근육이 일반 농어보다 더욱 발달했습니다.

체고 또한 훨씬 높아서 넙치농어는 같은 씨알의 일반 농어보다 힘이 월등히 세 낚시 마니아들에게 당찬 손맛을 선사하지요.  

살에 적당한 탄력은 맛을 배가시키는데 넙치농어의 이러한 습성이 한몫했을 것으로 봅니다.

 

 

생선회를 가장 맛있게 음미하는 방법

 

간장에 고추냉이를 섞지 않는 것인 중요합니다. 회는 무순을 말은 뒤 고추냉이를 한점 올려 전용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제주도에서 김포 공항으로 또 거기서 홍대로 오면서 적잖은 시간이 흘렀을 텐데 살의 탄력은 크게 잃지 않았습니다.

활어로 맛보았다면 상당한 식감일 것이 예상됩니다. 숙성이 꽤 많이 된 넙치농어를 비교적 얇게 썰어져 냈는데도 식감이 충분했다는 것은 이 어종이 

'얇게 썰기(우스즈쿠리)'에 더 적합한 횟감임을 말해줍니다. 숙성에 의한 감칠맛과 함께 기름진 맛도 적당하네요.

평소 쉽게 먹을 수 없어서 그렇지 식감과 맛으로는 우리 국민이 아주 좋아할 만한 맛입니다.

 

 

 

#.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농어 종류

지금까지 보고된 종은 3종으로 농어, 점농어, 넙치농어가 있습니다.

이중 농어와 점농어는 국내와 중국에서 양식이 되고 있으며 넙치농어는 일본에서 양식돼 자국 내 시장에서만 소량 입고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서 자세한 설명 덧붙입니다.

 

 

농어

 

농어는 우리나라 동, 서, 남해, 제주도까지 두루두루 서식하며 최대 성장은 1m 이상 자랍니다.

가장 일반적인 농어이며 세 종의 농어 중 기수역(해수와 담수가 섞이는 삼각주) 생활 습성이 강한 편입니다.

등에는 적게나마 흑색 반점이 나타나며 등지느러미를 펼치면 반점이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점농어

 

점농어는 우리나라 서해에 집중적으로 서식하며 남해에서도 잡히지만, 동해에서는 잘 잡히지 않습니다. (어쩌다 잡히는 정도)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대양성 어류는 아니며 만과 곶을 끼고 회유하기를 좋아하는 농어입니다. 최대 전장은 농어보다 조금 작은 90cm~1m 정도.

일반 농어와 마찬가지로 기수역을 좋아하는 편이며 중국에서는 이 어종을 주로 양식해 국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진은 진도 앞바다에서 주낙으로 낚은 점농어로 보시다시피 등지느러미는 물론, 등에도 뚜렷한 검은 반점이 나 있어 점농어라 불립니다.

제철은 농어와 마찬가지로 여름에서 가을까지.

 

 

넙치농어

 

넙치농어의 주 서식지는 일본 남단인 규슈, 시코쿠, 이바라키 현 그리고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분포하는 남방계 어종입니다.

그러므로 제주도 남단(가파도, 마라도, 지귀도)은 이 어종이 출현하는 북방한계선에 해당하므로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어종이 아니지요.

생김새는 다른 두 농어와 달리 체고가 크고 널찍해 넙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이며 그에 반해 머리는 작고 뾰족한 편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다른 두 농어와 달리 꼬리지느러미가 일자이고 등지느러미에는 반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철은 봄에 산란하므로 겨울에 잡힌 것이 가장 맛있고 낚시 시즌 또한 제주도 남부 지역에 한해서 1~4월에 이뤄집니다.

 

이상으로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넙치농어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낚시를 오래 즐기고 다양한 횟감을 접하다 보면 회 맛에 눈이 뜨이는 시기가 반드시 오기

마련인데 여기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희귀하면서 맛있는 횟감도 있지만, 희귀하면서 맛이 떨어지는 횟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넙치농어는 전자에 속하며 우리나라보다 개체 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이 어종이 일부 지역에서만 낚이는 귀물로 여김과 동시에 맛도 뛰어나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저는 그동안 일본 낚시인들이 넙치농어를 시식하면서 쓴 글은 익히 보아왔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넙치농어가 국내 루어낚시 어종으로 알려진 것도 2007~2008년 경으로 오래되지 않았죠.

결론적으로 제철의 넙치농어는 '돔' 어종에 견줄만 한 식감에 적당히 고소하면서 단맛이 있어 약간의 텁텁함(민내)이 있는 농어와는 구분되었습니다.

이날은 귀한 넙치농어의 맛을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면서 내년 시즌에는 제가 직접 넙치농어를 낚아서 멋진 소식 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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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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