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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재건냉면 - 돼지고기 육전과 진주냉면의 담백한 맛
재건냉면, 경남 사천
사천에는 진주냉면의 계보를 잇는 오래된 식당 하나가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서니 마치 70~80년도에시간이 멈춘듯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끄는군요. 그 당시 부잣집 계층이 주로 이용할 만한 그런 분위깁니다.
규모도 엄청납니다. 3층짜리 독채인 재건냉면은 1층 좌석만 백여 석. 손님이 급증하는 여름철이면 3층까지 돌린다고 합니다.
아니 근방의 풍경으로 보아 유동인구도 적은 한적한 시골 길인데 그만한 수요가 주변에서 몰리나 봅니다.
그 식당의 청결도를 가늠할 수 있는 양념 통. 오래된 듯한 티슈와 식초 통에서는 노포의 느낌이 납니다.
쉽게 더럽혀질 수 있는 양념 통인데 이 정도면 위생 상태가 양호하다 볼 수 있지요.
메뉴와 가격은 이러합니다. 이 집의 주력 메뉴는 진주식 냉면과 육전입니다. 냉면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죠.
대도시도 아닌 이곳에서 이 정도 가격을 받는다는 것은 그것에 필적할 만한 맛과 전통을 내세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배짱 장사이거나.
이 부근에서는 워낙 유명한 냉면집이다 보니 전자임에 예상할 수밖에 없지만.
육전과 밑반찬
육전은 녹두 빈대떡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로 일반적인 육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소고기 육전이겠거니 했는데
돼지고기로 부친 육전이었네요?
이 집에 대해 사전 정보를 전혀 모르고 간 터라 돼지고기 육전은 개인적으로 반전이었습니다.
부침 옷을 걷어봅니다. 돈가스에 사용할 만한 고기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부침 가루와 달걀 물을 묻혀 지져낸 것으로 보이네요.
고기를 얇게 펴고 연육 작용을 위해 돈가스를 만들 때처럼 두들긴 자국도 보입니다.
소스에 찍어서 맛을 보는데.
두툼하게 씹히는 식감과 잡내 없는 담백함이 풍미로 먹는 소고기 육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군요.
비빔냉면
진주냉면가의 특징은 좀 전에 나온 돼지고기 육전이 잘게 썰어져 고명으로 올려진다는 점.
분식집의 새콤달콤한 맛에 기들어졌다면 이 집 비빔냉면에서는 삼삼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맵기도 강하지 않고요.
이런 집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캡사이신 용액이 주는 저렴한 매운맛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통깨는 그냥 올리기보다 대충이라도 빻아서 뿌리니 고소한 맛을 더하고 밋밋한 식감에 아삭함을 주기 위한 오이와 무도 두께가 적당합니다.
자극적인 맛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어필할 만한 맛으로 보이네요.
물냉면
역시 고명으로는 돼지고기 육전이 올려졌고 깻가루가 뿌려진 것은 비빔냉면과 같습니다.
다만, 오이는 썰어진 모양에서 비빔냉면에서 보았던 오이 질감과는 차별을 두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썰기에 따른 식감, 텍스처를 그 음식의 특성에 맞도록 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물냉면은 면과 함께 씹히는 고명이 튀지 않고 시원함을 더해야 하는 까닭에 배와 함께 길쭉하게 썰어내며 그 두께는 지역과 가게마다 차이가
있는데 재건냉면의 고명은 약간 투박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면발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장점을 흡수한 것처럼 보입니다.
면발에 촘촘히 박힌 거뭇거뭇함은 메밀을 의미하지만 씹어보면 입술로 끊어 먹을 정도의 메밀 함량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면의 탄력을 높이는 전분질 성분이 메밀보다 더 많이 들어간 것입니다.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고구마 전분이 사용되었고 메밀을 조금 섞어 반죽해 냈기에 메밀의 은은한 향보다는 찰기에 중점을 둔 면발입니다.
제 입에는 썩 맛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쫄깃한 식감이 있으니 대중적인 입맛에 어느 정도 부합할 것으로 보입니다.
재건 냉면 : 위치는 본문 아래 지도 참조
영업 시간 : 매일 08:30~20:00 (월요일은 휴무)
내비 주소 : 경남 사천시 사천읍 동성길 28
주차 시설 : 완비
참고로 진주냉면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로 발전해왔습니다. 평양냉면과 함께 과거에는 양반들이 먹는 고급 음식이었죠.
기방에서 기생을 불러다 질펀하게 술판을 벌인 뒤 선주후면의 입가심으로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던 것. 당시 그 지역을 순방하러 온 고관대작과 일본 관료,
지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전해지며 화려한 교방문화와 함께 전성기를 누리는데 일조한 음식으로 알려졌습니다.
진주의 하연옥을 비롯해 박군자, 재건냉면 등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진주냉면가라 할 수 있으며 다른 냉면과 달리 해물 육수로 냉면을 만든다는 점이
진주냉면만의 특징입니다. 주재료는 명태 머리, 건새우, 건홍합이 들어가며 우린 국물을 식힌 뒤 수 시간 동안 저온숙성해 깊은 맛을 내는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재건냉면은 그러한 진주냉면의 전통 방식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는 쇠고기로 육수를 낸 것으로 보이며 후추가 과하게 뿌려져 육수 맛이 반감된다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오롯이 평양냉면 맛에 익숙한 제 입맛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일반 분식집 냉면 맛에 길들인 이들에게는 평양냉면이든 진주냉면이든 맛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래된 유명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갔더니 싱겁고 밍밍하고 약간 짭짤한 맛만 나는 이 밍숭한 육수에 적잖이 당황하죠.
평소 먹던 습관대로 식초와 겨자를 듬뿍 타보지만 내가 알던 냉면 맛이 아님에 수백,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우리의 전통 냉면은 졸지에 형편없는 음식이
돼버리기도 하지요. ^^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 조선 시대 이전에 먹었던 냉면과 100% 일치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통 냉면은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그 시대의 문화와 변화하는 입맛을 쫓으며 일부는 변형되고 깎이고 하면서 진화 중이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명맥과 기품은 양반들이나 먹었던 고급 음식의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맛을 기껏해야 20~30년간 다져온 입맛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겠죠. 또한, 그 맛을 이해해가며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 입맛에 맞을 것 같다면 한 번쯤 찾아오는 것이고 맞지 않을 것 같으면 찾지 않는 것이 후회를 줄이겠지요.
이 글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을 글과 사진으로나마 판단할 수 있게끔 가이드라인을 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그 음식을 평가절하하거나 다른 누구에게 그 주장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제 입맛에 재건냉면은 평양냉면에서 맛 보았던 은은한 풍미가 육수에 녹아 있어 좋았습니다.
반 정도 훌훌 말아 마신 뒤 식초와 겨자를 탔는데요. 오히려 육수의 은은한 풍미를 헤쳐서 맛이 반감됐습니다.
면발은 탄성에만 초점을 둔 것 같아 제 입에는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이쪽이 더 좋을 것입니다.
재건냉면의 계보는 분명 진주냉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전반적인 맛의 느낌은 평양냉면에 가까웠습니다.
돼지고기 육전을 국물에 말았을 때 더해지는 약간의 비릿함, 고기의 풍미, 그리고 짭짤한 간 맞춤으로 보면 꼭 을지면옥의 그것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맛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맛없고 밍숭한 냉면일 뿐. 새콤달콤 쇠고기 다시다 육수에 식초, 겨자 양껏 뿌려서
먹어오던 이들에게는 이 냉면이 최악일 수도 있음을 알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더보기>>
순한 고깃국물은 으뜸이나 변해버린 평양 만두국, 장충동 평양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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