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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단란주점 삼겹살집
엊그제 여수에서 감성돔 낚시를 마치고 나서의 일이었다. 돌산도에서 나와 여수로 들어갔다. 나를 비롯해 선수들이 잡은 감성돔 열댓 마리는 수산시장에서 킬로 당 얼마를 주고 회를 떠서 삼겹살 집으로 가져왔다. 차를 몰며 적당히 먹을 만한 고깃집을 찾는데 마침 한 군데가 보여 들어갔다. 식당은 대체로 한산했고 자리도 넉넉해 열댓 명이 앉아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었다. 삼겹살을 주문하자 반찬이 깔리고 고기를 굽는데 30 후반에서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테이블을 전담하며 풀 서비스로 고기를 구워준다. 시커먼 남정네들만 열댓 명이 와서 매상을 올려주니 반가워서 그런가 싶었다. 고기를 다 굽자 희고 굵은 허벅지를 드러내며 앉더니 술을 따른다. 어리둥절한 일행은 말 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야말로 얼음 땡이다. 처음 몇 번은 그렇게 주는대로 받아 마셨고 고기도 집어 먹었다. 이어서 버섯을 굽고 직접 담근 신김치를 굽더니 노란 호박 고구마를 썰어서 구워준다. 어 이것봐라. 맛이 제법이긴 한데 서비스를 보아 왠지 팁을 줘야 할 분위기다. 하면서 나도 모르게 술이 들어갔다.
그러다가 술 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저쪽 테이블을 보니 어느새 여종업원과 일행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농담 따먹기도 곧잘 한다. 이제는 내 테이블에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언니, 오빠란 호칭이 오간다. 어디서 왔느냐. 뭐하다 온 것이냐는 질문이 오갔고 여긴 포항에서 왔고 저긴 서울에서 왔고, 방금 낚시하다 왔는데 이거 자연산 감성돔이니 함 잡숴봐 등등. 여수에 살면서 반듯한 자연산회 한번 못드셔봤는지 얇게 친 감성도 몇 점에 언니들이 아주 감탄을 한다. 쌈을 사서는 뒤에 주방을 보는 큰언니 입에도 넣어주고 하니 먹다가 남은 횟감은 그집 언니들 먹으라며 아예 놓고 왔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왜 이런 서비스를 하느냐였다. 영업중에 손님들 술잔 다 받아주면 안 취하는지도 궁금하고. 삼겹살 먹으러 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고기 굽는 서비스야 그렇다 치더라도 옆에 착 붙어 앉아서 술 따르는 문화는 처음 겪는다고 하자 언니들의 답변에 나는 무릎을 탁 하고 쳤다. 윗층이 단란주점이고 아래층이 삼겹살 집인데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같이 장사한단다. 헐. 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여수의 삼겹살 문화가 정말 특이하구나 정도로 받아들일 뻔 했다. (그 집은 물만 좋았다면 더 좋았을 뻔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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