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생선회, 위험할까 안전할까?


 

 

"덮고 습한 날에는 생선회를 먹지 마라."

"여름 생선회는 기생충, 식중독에 노출될 수 있으니 함부로 먹어선 안 된다."

 

여름 생선회에 대해 우리 국민이 갖는 가장 보편적인 인식입니다. 날이 더워 쉽게 부패할 수 있는 데다 날것으로 섭취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들먹이는 원인은 기생충과 비브리오 패혈증 같은 식중독 증상입니다. 해수온이 높아지는 여름에는 각종 박테리아와 균들이 생선에 침투하고 기생충도 활발하게 번식함으로써 감염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절로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여기에 60~70년대를 보낸 웃어른들의 경험담도 내용에 신빙성을 더해줍니다. 주문한 회가 죽은 생선인 줄 모르고 먹었다가 기생충에 감염돼 고생한 기억, 해마다 여름철이면 끓이질 않는 비브리오 패혈증 감염 소식, A형 간염에 걸린 지인의 이야기, 그리고 회를 잘못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린 수많은 사례가 여름 생선회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했으며, 실제로 여름철 생선회 판매량이 년 중 가장 저조했음을 통계적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쯤 되니 여름철 생선회는 그 자체로도 기생충 감염과 식중독의 온상으로 기피 대상이 돼버렸습니다.

 

반면에 이러한 논란을 두고 일부 지식인과 박사, 교수들은 '속설'에 무게를 실은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저도 이와 관련해 개인 저서와 블로그에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 글 : 여름 생선회의 오해, 더 맛있고 건강하게 먹는 법)

 

 

장마철 생선회 위험성, 속설에 가깝다는 보도 내용에 반기를 든 일부 네티즌의 댓글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는 '장마철 생선회의 위험성'에 관해 근거 있는 사실인지 속설인지 보도했는데 속설에 가깝다는 내용에 일부 네티즌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보도 내용의 핵심인 팩트 여부와 상관없이 철석같이 믿었던 기존 상식과 거리가 멀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 생선회는 균의 증식과 상관이 없음을 말해주어도,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부경대에서 습도와 세균의 증식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연구한 자료를 밝혀도, 또 그것을 인용한 기사나 뉴스가 수없이 보도되어도, 여름철 바닷물의 용승작용이 생선의 신선도를 떨어트린다는 소문이 근거 없는 낭설임을 말해주어도, 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이 바닷물의 순환과 정화 운동이 균 증식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설명해 주어도, 비브리오 균의 증식과 우리가 먹는 생선회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밝혀도, 비브리오 균이 생선 비늘과 내장, 아가미에만 붙어있을 뿐, 생선 근육에는 침투할 수 없음을 알려주어도..

 

우리가 먹는 생선회의 90% 이상이 양식산인데도 자연산에만 기생하는 기생충을 걱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문제의 논점이 흐려지고, 설사 자연산을 먹게 되더라도 위생적으로 처리한 횟감을 통해 감염될 확률은 통계적으로 1/10,000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어도, 배가 악천후로 출항하지 못해 수조에 있는 오래된 활어를 쓸 수밖에 없음을 양식산을 취급하는 우리 주변의 대다수 횟집과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음을 설명해주어도 적잖은 네티즌 특히, 양식산 활어가 없었던 시절, 열악한 운송수단과 이렇다 할 냉장시설 하나 갖추지 못한 옛 시대를 보낸 세대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여름에 생선회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술책이라고까지 하는 등, 충분히 설명하고 보도해도 해마다 여름철이면 끊이질 않는 생선회 안전성 논란. 

 

전문가와 방송의 공신력은 끊임없이 불신하면서도 백OO 삼대 천왕이다 무슨 맛집이다 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사실에는 관대히 받아들이는 국민성. 이 정도의 불신이라면,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만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것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위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여름 생선회를 먹지 않는 것이 맞으며, 다른 음식을 두고 굳이 회를 찾아 먹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분들은 이 글에 토 달기 보다는 다른 음식을 먹으면 될 것입니다.

 

허나 우리 주변에는 생선회를 없어서 못 먹는 이들도 많습니다. 전 세계 선어 소비량 1위이자 초밥 종주국인 일본이 지리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더욱 고온다습해도 우리처럼 여름 생선회 논란이 없는 것은 왜일까요? 초밥의 소비가 없으면 아예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 요식업계와 소비자 사이에 어째서 이런 논란이 불거져 나오지 않는지는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신용으로 똘똘 뭉친 일본의 국민성이라 가능하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는 올바르고 치밀한 선어 유통과 시스템이 일궈낸 결과입니다. 

 

 

불볕더위에도 믿을 만한 가게를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

 

이 글의 핵심은 생선회가 아닌 '위생 관념'에 있습니다. 여름에는 비단 생선회뿐 아니라 모든 음식이 부패에 취약합니다. 다만, 생선회는 날 것이므로 부패 속도가 빠르고 균 증식이 급속도로 늘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균 하나 없는 신선한 생선회를 숫자로 표현하면 '0'이고, 부패한 생선회가 '10'이라고 봤을 때, 우리가 평소 회를 먹고 탈이 나지 않는 선도의 마지노선을 '3~4'라고 규정한다면, 여름에는 '1~2'만 되어도 탈이 날 만큼 부패에 취약한 환경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장사하는 입장이라면, 누군가가 내 음식을 먹고 탈이 난 것만큼 치명적 손실은 없습니다. 더구나 인터넷과 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지는 오늘날에는 잘못된 음식 하나로 가게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존망의 문제가 달리기도 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여름 생선회의 안정성을 두고 해묵은 논쟁을 벌이지만, 저를 비롯해 생선회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활어나 선어회를 취급하는 가게라면, 마땅히 즐겨야 할 생선회와 먹으면 꺼림칙한 생선회가 각각 '0'과 '1'만으로도 충분히 구분됩니다. 이러한 논리는 '임산부가 먹는 생선회의 안전성'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여름 생선회의 논쟁의 중심에 회 자체가 되어선 안 되며, 횟집 위생을 빼놓지 말아야 합니다. 여름에 위생 관념이 불확실한 관광지나 수산시장의 좌판보다는 위생과 맛, 단골을 확보한 가게를 위주로 이용하라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소위 맛집과 미식의 시대라 여기는 오늘날,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이 정도 수준의 가게 하나 확보하지 못해 "믿고 먹을 데가 있어야지"라며 볼멘소리를 할 것이면, 생선회를 찾아 먹을 만큼의 취향이 아니거나 혹은 좋은 맛집을 찾아내는 정보의 변별력이 떨어지거나, 스스로 찾아 먹을 의지가 부족하거나 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굳이 생선회를 먹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여름에 굳이 (정서상) 위험을 감수하며 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여름 생선회에 근거 빈약한 안전성을 들먹이는 것은 회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만의 참견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회를 찾아서 즐기는 수준이라면, 한여름이라도 알아서 검증된 곳을 찾아가는 법이니까요.  

 

위생이 검증되고 활어 유통이 투명한 집은 우리 주변에 널렸습니다. 위생적으로 처리한 생선회라면, 낮 기온 30도보다 높은 일본 오키나와라 해도 균 하나 없는 상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포장해 아이스박스에 넣어 오면, 위 사진처럼 얼마든지 야외에서 돗자리 깔고 생선회를 즐길 수 있습니다.

 

 

위생적으로 처리한 생선회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무균' 상태이다

 

단지 여름이라는 사실만으로 이 생선회에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계절 상관없이 회를 자주 먹여왔고, 이 집 오너셰프도 아내분이 임신했을 때 단백질 보충으로 좋은 생선회를 직접 만들어 먹이고 밖에서 사 먹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여름 생선회의 논란은 대부분 기생충과 식중독에 초점이 모아지는데 그 원인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해주어도 사람들 뇌리에 박힌 고정관념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식품 과학이 발달한 현세대를 거쳐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나아지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더불어 선어회는 신선하지 않다는 고정관념도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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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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