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제주도 범섬에 도착

 

이날은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찾은 날. 사실 올해에만 제주도를 몇 번째 방문인지 모르겠습니다. 4월에 한 번 갔고, 9월, 10월, 11월에도 연달아 갔지만, 갈치 낚시를 제하곤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전에도 누누이 강조했지만, 벵에돔과 감성돔 낚시는 '정보전'입니다. 정보전에서 8할을 먹고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출조 전 정보 수집을 통해 현재 어디 어디서 고기가 나온다는 첩보를 듣고 가는 것과 대충 어림잡아서 가는 것에는 조과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작년 11월에 어느 섬에서 고기가 많이 나왔어도 올해도 그러란 법은 없습니다. 절기가 다르고 수온이 다르며, 해류의 흐름과 물길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제주도를 찾으면서 기필코 4짜 이상 벵에돔을 잡아내거나 또는 4짜가 아니더라도 마릿수는 잡아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염두에 둔 곳이 있었습니다.

 

최근(11월) 제주도 조황은 가파도와 우도가 주도하는 분위기입니다. 지인으로부터 때고기 조황도 확인했기 때문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재미있는 출조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가 어떤 섬이겠습니까? 올해 정말로 날씨 운이 안 따라주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재미를 보았던 갈치 낚시를 제하곤 대부분 풍랑 주의보라 원하는 포인트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직벽 자리에서 낚시에 열중인 꾼들

 

이날도 우도를 생각하고 왔는데 배는 뜨지 않는다고 하고, 형제섬 쪽은 아예 쉰다고 하여(이쪽은 배가 뜰만 한 날씨였는데 선장은 장사할 의지가 없으신 듯) 고기 나오는 곳을 알아도 날씨가 안 받쳐주면 차선책을 생각해야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그 차선책에 자비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울며겨자먹기로 찾아간 섬이 범섬.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편의점에서 2천원짜리 우비를 사 들고 왔는데 막상 포인트에 도착하니 비가 그칠락 말락 하고. (아놔~) 뭐랄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기분. 시간은 정오가 되어갈 즈음이라 주요 포인트는 이미 찼습니다. 바람이 북동풍이라(그러고 보면 제주도를 찾을 때마다 샛바람이 터지는 듯 ㅠㅠ) 내릴 만한 자리도 한정되어 있고.


 

 

시작부터 한숨이 푹푹 나오지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대충 빈자리를 찾아 적당한 자리에 배를 대면 내려야죠. 그런데 자리를 둘러보니 범섬에서는 꽤 유명한 직벽 코지입니다. 건너편에는 지난 9월, 저와 상원아빠님이 낚시했던 남편 직벽 자리가 보이고요. 아무래도 북동풍이 의지되는 곳이라 많은 꾼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반면에 제가 선 직벽 코지는 고기가 잘 되는 자리지만, 풍향 상 맞바람을 안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좋은 자리가 텅텅 비어 있는 이유겠지요.

 

 

 

우리는 직벽 코지라는 좋은 자리를 포기하고(어차피 물때가 들물이라 맞지도 않고) 그나마 맞바람을 피할 수 있는 구석 자리에서 낚시하기로 합니다. 참 이번 일정은 '제주도에서 한달살기'를 운영 중인 예찬씨와 닉네임 '일루바타'님과 함께합니다. 예찬씨가 빈방을 내줘서 숙소비 굳었어요. 땡큐. ^^

 

평소 제 블로그를 자주 찾는 예찬씨는 이제 막 낚시를 시작한 초보자입니다. 애월의 도보 포인트에서 벵에돔 낚시를 한 것이 전부라 이렇게 배를 타고 부속섬에 들어온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제가 채비를 봐주면서 이날은 예찬씨가 화끈한 손맛을 볼 수 있도록 어드바이스를 해줄 생각입니다.

 

 

이날 낚시는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예정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맞춰 밑밥은 크릴 3장, 빵가루 1장, 오로라 흰색으로 2장을 섞었습니다.

 

 

우선은 00(투제로) 채비로 시작

 

#. 나의 채비와 장비

로드 : NS 블랙홀 알바트로스 1-530

릴 : 다이와 임펄트 2500번 LBD

원줄 : 쯔리겐 프릭션 Z 2호 세미플로트

어신찌 : 쯔리겐 치누화전차 00호, 조수우끼고무 M

목줄 : 쯔리겐 울트라플렉시블 1.7 → 2호로 변경

바늘 : 벵에돔 전용 바늘 6호 → 미늘 없는 긴꼬리 전용바늘 7호 → 벵에돔 전용 바늘 7호

봉돌 : 상황에 맞게 가감

 

밑밥을 넣었는데 잡어의 반응이 없고 옆바람도 많이 불고 있어 처음부터 중하층 공략을 염두한 00(투제로) 채비로 가닥을 잡습니다.

 

 

잡어의 반응이 없으니 처음부터 입질 예상 지점에 다량의 밑밥을 넣어 봅니다.

 

 

아무래도 상황을 보니 초저활성의 벵에돔과 숨바꼭질을 해야 할 예감이 듭니다. 조류가 오른쪽으로 정처 없이 흘러가는데 제가 선 왼쪽에 여들이 많아서 포말이 왕창 일고 있습니다. 조류는 여가 많은 쪽으로 흘러야 벵에돔이든 뭐든 나올 텐데 지금의 조류 방향은 바닷속 텅 빈 공간을 향합니다.  

 

 

이럴 때 뒷줄이 손가락을 탁 치면서 후루룩 나가줘야 하는데 요지부동이네요. ^^;

 

 

반면에 예찬씨는 반유동만 해온 터라 0.8호 채비로 공략 중입니다. 웬만하면 제로찌를 달아주고 싶어도 사실 이런 험한 날에 전유동 경험이 없는 초보자가 제로찌를 달면, 십중팔구 미끼가 허공에 뜰 겁니다. 채비를 내리는 노하우가 없어 차라리 이럴 때는 수심 4~5m만 준 반유동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시간도 조류처럼 정처 없이 흘러만 갑니다. 사실 폭발적인 조과는 없어도 제주도를 자꾸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 대를 담글 때 힐링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두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저렴한 항공편도 한몫했죠. 이번에 구매한 항공권은 왕복으로 69,000원. 제 차로 거제도를 왕복하면 톨비까지 20만원이 나옵니다. 시간도 오가는데 10시간 이상 깨지고, 운전은 운전대로 해야 하니 답이 없죠. ㅠㅠ 

 

 

조류가 이쪽으로 흘러야 소위 포말빨을 받으면서 우다다다 물 것 같은데 말이죠. 보기에는 근사한 포말이지만, 이쪽으로 던지자마자 찌는 오른쪽 동굴 방향으로 휑하니 쏜살처럼 달립니다. 조금 물때인데도 조류가 시냇물이네요. 봉돌은 어느새 g3 분납을 넘어 B단위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예찬씨 앞에서 한 마리 낚는 모습을 보여줘야 희망이든 뭐든 가질 수 있는데 이거 체면이 말이 안 서네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도 현 상황에서는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류가 흘러가는 방향에 커다란 간출여가 하나 있어서 그쪽으로도 흘려봤지만, 아직은 잡어 입질도 없는 상황.

 

 

비는 완전히 그쳤고 바람은 더욱 강해집니다. 고르고 고른 날짜가 이 모양이라니 쩝.

 

 

조류가 너무 빨라서 낚시 불가입니다. 이럴 때 생각 없이 뿌려지는 밑밥은 포인트를 더 멀리 형성시킬 수 있어 조심해야겠죠. 차라리 밥이나 먹으면서 상황을 관망하는 편이 지금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낚시를 시작하는데 파도는 전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먼 바다에는 전에 없던 백파가 일기 시작하는군요. 날씨가 예보와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이때 줄이 쫙 하고 나가면서 자동 챔질이 됩니다. 대를 세우는데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힘에 깜짝. 4짜 넘는 벵에돔이 확실한 가운데 녀석이 파고드는 이 고비를 넘겨야 하는 순간에 팅! 올려보니 바늘 위 목줄이 깔끔히 잘렸습니다. 분명 독가시치 느낌은 아니고, 바늘이 깔끔히 나간 것이 긴꼬리 4짜가 의심됩니다. 이때부터 저는 미늘 없는 긴꼬리 전용 바늘을 달아 놓친 녀석을 추적해 봅니다.

 

 

그러고 나서 30분이 지나 두 번째 입질이 들어오는데 좀 전에 받은 힘보다는 약한 느낌.

 

 

그래도 제법 파고듭니다. 오오~~

 

 

꾸욱 하고 박는 것으로 보아 일단은 독가시치(따치)가 아닐 것이라는 희망. 최소 38cm급을 넘기는 벵에돔이 유력한 가운데.

 

 

아 이 녀석 지구력이 이래도 셌나? 이쯤되니 뭔가 이상합니다. 이 정도면 힘이 풀리고 올라와야 할 녀석이 계속 처박기만 하니 순간 벵에돔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제발 노란색만 올라오지 말아다오 하는데.

 

 

"악~~~!"

 

 

40cm급 독가시치

 

이건 아니잖아.  ㅠㅠ 그나저나 독가시치가 '따따따' 떨지도 않고 벵에돔처럼 쭉 처박고 들어가니 완전히 속았네요. 힘은 엄청납니다. 이거 한 마리 걸고 나니 팔이 다 욱신 거릴 정도.

 

 

아니 그런데 바늘이 바깥쪽으로 걸려있습니다. 이것도 드문 일인데 거참.

 

 

시간은 흘러 2시. 비는 완전히 그쳤고 햇볕이 비추려고 합니다. 예찬씨는 직벽 가장자리를 탐했는데 어랭이 한두 마리 외에는 소식이 없습니다.

 

 

해가 뜨고 바람도 조금씩 멎어갑니다. 이대로라면 해질 때 한두 번의 기회가 올지도.

 

 

이번에도 줄을 시원하게 가져가는 입질이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벵에돔을..

 

 

일단 기선을 제압하는 데는 성공.

 

 

자~ 올라오라 하는데 어어어~ 연신 처박으니 손맛 하나는 화끈합니다. 그런데 특유의 탈탈거림에 예감이 썩..

 

 

예상대로 독가시치. 거는 것마다 씨알이 좋아 팔이 아플 지경입니다. 어쩌면 오늘 이 녀석이 벵에돔을 대신해 손맛을 전해주려나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벵에돔은 어디에 다 숨었을까요? 표층부터 바닥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이때 조용하던 예찬씨에게 입질이 들어옵니다. 갑작스러운 입질에 살짝 당황한 눈치지만, 다행히 녀석이 크지 않아서(?) 적당한 손맛을 주는데 그 정체가..

 

 

다름 아닌 벵에돔이네요.

 

 

25cm급 긴꼬리벵에돔

 

것도 긴꼬리벵에돔을 올린 예찬씨. 저보다 낫습니다. ㅎㅎ 옆에서 지켜보던 일루바타님이 이상한 말을 하는군요. "이거 벵에돔 씨알 내기였으면 입질님이 진다고."

 

 

오후 2시를 넘어서면서 어두웠던 하늘은 오히려 밝아졌습니다. 제주도 날씨는 참으로 요란스럽네요. 한 시간 전만 해도 먹구름에 편광안경을 벗어야 했는데 이제는 눈이 부셔 다시 껴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세 시간. 화창해진 날씨만큼 입질도 화끈해질 것을 기대해 봅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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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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