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도다리, 가을 전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봄에는 도다리가 맛있고, 가을에는 전어가 맛있다는 말이죠. 봄에 먹어봐야 할 대표적인 음식으로 '봄 도다리쑥국'을 꼽습니다. 해마다 3월이면, 통영과 진해만을 중심으로 도다리가 많이 잡히는데 이 시기에 나는 여린 쑥과 함께 끓이면, 봄기운의 향긋함과 통통한 도다리가 만나서 아주 맛있고 훌륭한 별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봄 도다리를 소개할 때 빼먹지 않는 말도 있습니다. "산란을 마친 도다리는 봄에 새살이 차서 살이 아주 통통하고 맛이 좋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취지의 내용이 블로그는 물론, 인터넷 기사와 잡지 칼럼에도 인용에 인용이 거듭되면서 오늘날 도다리의 제철은 완전히 봄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도다리를 취재하면서 몇 가지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도다리에 새살이 차서 아주 통통하고 맛이 좋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여름에는 찼던 살이 도로 빠져서 맛이 없어질까요? 왜 유독 봄에 잡힌 도다리가 맛있다고 강조하는 걸까요? 봄 도다리 대신 가자미로 쑥국을 끓이면 어떤 차이가 날까요? 이러한 의문점을 풀고 여러분에게 쉽게 설명하고자 실험해 보았습니다.

 

 

<사진 1> 도다리(왼쪽), 가자미(오른쪽)

 

쑥국을 끓이기 위해 제 도마에는 도다리와 가자미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름지기 생선이란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저만한 것이 한 마리에 만 원이나 합니다. 반면에 가자미는 세 마리에 만 원입니다. 즉, 저 크기에서는 도다리 한 마리와 가자미 세 마리 가격이 같습니다.

 

 

<사진 2> 문치가자미와 물가자미

 

도다리의 학술적인 표준명은 문치가자미입니다. 하지만 통영 등 남해안 사람들은 예부터 문치가자미를 도다리 혹은 참도다리라 불렀습니다. 이날 도다리와 함께 쑥국을 끓이게 될 가자미는 여러 종류 중에서도 비교적 맛이 떨어지는 물가자미를 준비했습니다.

 

물가자미는 <사진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등에 난 6개의 반점이 특징입니다. 이 반점 때문에 시장에서는 '호시(별) 가자미'라 불리기도 하며, 서울 및 수도권에는 재래시장과 마트 할 것 없이 '참가자미'로 잘못 취급되고 있는 종입니다. 따라서 서울 및 수도권에 거주하는 분들이 구입한 참가자미는 대부분 물가자미라고 보면 됩니다.

 

진짜 참가자미는 관련 글을 참고해주세요. (관련 글 : 광어, 도다리, 가자미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도다리 한 마리와 가자미 두 마리로 양을 비슷하게 맞췄다

 

어쨌든 저는 같은 레시피로 도다리(문치가자미)와 물가자미로 쑥국을 끓일 겁니다. 그랬을 때 맛의 차이가 나는지? 난다면,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 결과가 기대됩니다.

 

우선은 들어가는 생선 양이 같아야 하는데 생물(生物)이라 크기가 모두 같을 순 없습니다. 도다리는 크고 두꺼운데 가자미는 그보다 작고 두께도 얇습니다. 아내와 함께 고심한 끝에 가자미 두 마리로 양을 맞추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양을 근사치로 맞추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어종 모두 산란 직후라는 비슷한 조건에서 조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부터는 같은 레시피 같은 물의 양으로 도다리와 가자미 쑥국을 끓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레시피를 보니 멸치 육수로 도다리쑥국을 끓이는데요. 그렇게 하면 도다리 자체에서 나오는 육수 맛이 멸칫국물에 상쇄돼 제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기서는 각각의 생선이 내는 고유의 육수 맛으로 맛을 판단해야 하니 모두 맹물로 끓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나박 썬 무와 된장을 한 톨씩만 넣어 팔팔 끓입니다.

 

 

팔팔 끓을 때 도다리 및 가자미를 넣습니다. 이어서 간마늘과 맛술도 한 숟가락씩 넣어줍니다. 국물에 매운맛이 우러나면 판단이 흐려질 수 있으니 고추는 마지막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7~10분간 센 불에 끓이다가 떠오르는 거품은 모두 걷어줍니다. 이쯤에서 소금 간을 하고 맛을 봅니다. 간이 맞으면, 해쑥을 듬뿍 넣고 한 번 휘 저어준 뒤 불을 끕니다.

 

 

도다리와 가자미로 끓인 쑥국이 완성됐습니다. 어느 쪽이 도다리이고 가자미인지 구분이 가시나요? 좀 전에 크기를 봤으니 눈짐작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봄 도다리쑥국입니다. 도다리도 결국에는 가자미의 일종이죠. 주로 문치가자미를 도다리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 음식을 표준명으로 풀어서 말하면, '문치가자미 쑥국'이 됩니다.

 

 

이것은 가자미 쑥국입니다. 가자미 중에서도 비교적 맛이 떨어진다는 물가자미(서울, 수도권에서는 참가자미란 이름으로 판매됨.)로 끓인 쑥국이 되겠습니다.

 

 

국물을 한술 떠서 빛깔과 탁도를 살펴봅니다. 먼저 도다리(문치가자미)쑥국의 국물입니다.

 

 

이것은 가자미 쑥국의 국물입니다. 외관상으로는 전혀 구별이 안 됩니다. 맛으로는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날 식구들을 불러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켰습니다. 그 결과는 뜻밖에도 만장일치가 나왔습니다. 스코어 3 : 0. 일단은 도다리(문치가자미)쑥국에 표심이 갔습니다. 

 

 

#. 비교 시식이 아니라면, 알아내기 어려운 근소한 맛 차이

제 차 맛을 보면 볼수록 도다리쑥국이 가자미 쑥국보다 국물의 감칠맛이 약간 더 도드라집니다. 이렇게 두 음식을 비교 시식하니 맛의 차이가 근소하게 나는 것은 알겠습니다. 만약에 비교 시식이 아닌, 개별 시식이었다면 여기에 들어간 생선이 가자미인지 도다리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저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은 '구별하기 어렵다.'로 입을 모았습니다. 분명, 도다리쑥국이 가자미 쑥국보다 감칠맛에선 조금 더 선명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 차이도 비교 시식을 통해서만 겨우 알아차릴 만큼의 미묘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소 조건이 다른 두 음식을 한 자리에 놓아 비교해가며 시식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평소대로 도다리쑥국을 한 그릇씩 주문해 먹습니다. 거기에 도다리가 들어갔건 가자미가 들어갔건 맛으로는 정확히 어떤 어종이라고 짚어내기 어려우며, 주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이 음식을 멸치나 다시마 육수로 끓이게 된다면, 생선 고유의 감칠맛이 멸치 다시마에 가려지면서 어종을 가려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국물 요리로 접근하게 되면, 살이 풀어지지 않는 단단함 속에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관건인데, 물가자미는 다른 가자미류보다 수분함량이 많아서 오히려 국물 요리에 유리한 면도 있습니다. (살에 수분 함량이 높은 혹돔과 호박돔의 경우 주로 미역국과 맑은탕에 이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생선 살에 수분이 많으면 튀겼을 때 속살이 부드럽고 촉촉해지므로 더 유리합니다. (수분 함량이 높은 붉은메기살과 대구살, 광어 등이 생선가스와 피쉬앤칩스에 적합한 것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런데 물가자미는 생선 자체가 작고 두께도 얇아서 탕과 튀김보다는 주로 말려서 찜이나 구이로 이용됩니다. 이를 탕으로 끓였을 때 도다리보다 감칠맛이 덜한 이유 역시 기본적인 골격(뼈)이 작고 얇아서 국물 맛에 영향을 준 것이지, 특별히 도다리가 봄에 제철이라서 더 맛있다는 관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 인식의 차이가 맛의 차이를 내는 것은 아닐까?

도다리 제철이 봄이 된 이유는 언론에서 보도한 '새살이 돋아나서'가 아닌, 단지 '많이 잡혀서'입니다. 남해 도다리는 12~2월 사이 산란합니다. 서해 도다리는 그보다 1~2달가량 늦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인 4월 초에 갓 잡은 도다리를 살피면, 남해 도다리는 열이면 열이 산란을 마쳐 배가 훌쭉한 편입니다.

 

서해 도다리는 산란 중이므로 일부는 알배기이고, 일부는 산란을 마쳐 배가 홀쭉합니다. 일단 산란을 마치면, 식욕이 대단히 왕성해집니다. 먹이활동을 위해 가까운 앞바다로 들어와 적극적으로 덤비기 때문에 3~4월에 집중적으로 잡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살이 돋아 통통해질 시기라기보다는 새살을 돋기 위해 먹이활동을 왕성히 하다가 대량으로 잡히는 시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여기서 새살을 찌운 도다리는 5~6월부터 다시 먼바다로 이동합니다. 6월에는 새살을 충분히 찌워 맛이 아주 좋을 때지만, 정작 맛이 오를 땐 먼바다로 빠지니 어획량이 줄어들며, 우리가 맛볼 기회도 현저히 줍니다. 지역 어민의 고민은 맛과 상관없이 한창 잘 잡힐 때 몸값을 최대한 비싸게 받는 것이겠지요.

 

3월에 도다리 몸값은 평소 3만 원 전후이지만, 이 가장 많이 치솟을 때는 kg당 4만 원까지 오르는 걸 봤습니다. 이렇게 비싼 봄 도다리로 쑥국을 끓여 지역 명물이 돼버렸으니 매우 특별히 여기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게다가 여리고 향이 좋은 해쑥도 3~4월이 아니면 맛보기 어렵습니다. 도다리가 해쑥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본 것입니다.

 

반면에 가자미는 굳이 지금이 아니라도 맛볼 수 있는 생선입니다. 사실 끓여놓고 보면 맛에 큰 차이가 나지 않아도 봄 도다리 마케팅과 특산화에 우리는 값이 비싸도 지갑을 스스럼없이 엽니다.

 

우리의 인식은 알게 모르게 마케팅과 언플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봄 도다리 마케팅과 함께 해마다 3월이면 때리는 언론 보도가 그래서 무섭습니다. 도다리는 도다리대로, 가자미는 가자미대로 각자 특성이 있지만, 어차피 쑥국의 주연은 해쑥입니다. 해쑥의 강한 향이 국물에 녹아 들어갔을 때 생선이 내어준 맛은 국물에 감칠맛을 더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생선 감칠맛은 IMP(이노신산)이라는 물질로 형성됩니다. 우리가 멸치 다시를 내는 것도 IMP로 국물의 감칠맛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감칠맛을 더 높이려면 다른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을 더해야 합니다. 글루탐산을 더하기 위해 다시마나 표고버섯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가장 저렴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은 미원과 같은 인공 조미료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맛을 내는 원리에서 바라본다면, 국물 재료가 도다리인지 가자미인지를 우리의 미각으로 가늠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도다리는 한 마리에 만 원, 가자미는 세 마리에 만 원이라고 했으니 가격 차이가 무려 세 배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자미나 광어로 끓인 쑥국이 도다리쑥국보다 좀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봄 도다리라서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관념이 실제로는 마케팅과 언플 효과로 형성된 인식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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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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