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도축한 지 2~3일 된 소의 지방

 

하루는 꽃등심을 사려고 집 근처 정육점을 찾았습니다. 28일 뒤에는 야유회가 있으니 미리 구입해 집에서 숙성해 둘 생각에서 입니다. 원래는 2등급을 사려했으나 동네 정육점에는 1+ 이상만 취급해 할 수 없이 사기로 합니다. 구입 시 도축 날을 묻자 한 달 전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즉, 이미 한 달 간 숙성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28일을 더 숙성해 날짜를 맞춰야 하는 저로서는 이 고기를 사기가 꺼려집니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지방 색이 <사진 1>과 같은 흰색입니다. 한 달 전에 도축했다면서 지방색은 갓 도축한 소처럼 하얗습니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알아봤더니 해당 정육점은 도축한 소를 잡아다가 직접 부위를 나누고선 전부 냉동시켜 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당한 시점에 꺼내 팔아왔던 것이지요.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지만, 이렇게 해서 팔면 손님에게는 상대적으로 퍽퍽한 냉동육만 공급하는 동시에 숙성이 전혀 되지 않은 고기를 파는 셈입니다.

 

언제 냉동실에서 꺼냈느냐고 묻자 오늘 꺼냈답니다. 그렇다면 이 고기의 숙성 기간은 도축 날이 아닌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한 시점부터 계산해야 합니다. 예전에 자주 언급했듯이 소고기 숙성은 20~30일 정도가 알맞습니다. 지금 이 고기를 구입해 28일간 숙성하면 적당히 먹기 좋은 상태가 됩니다. 저는 이 고기를 사기로 했습니다. 고기를 사면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어봤는데 정육점 사장님은 숙성이란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갓 도축한 소가 들어오면 곧바로 해체 작업을 하고 냉동시켰다가 적당한 시점에 파는 식인 것입니다.

 

 

#. 소고기 구입 및 집에서 숙성 팁

좀 전에 썼듯이 소는 지방 색이 밝고 흰색에 가까울수록 도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은 즉, 숙성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요즘 마트와 정육점에서는 일정 기간(5~15일) 숙성(진공 포장에 의한 웻에이징)한 것을 파는 경우가 많지만, 위 사례가 말해주듯이 시골이나 동네의 일부 정육점은 숙성해서 판다는 개념보다 도축한 소를 바로 팔거나, 바로 소진하기 어려우면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냉동실에 보관해 뒀다가 조금씩 꺼내어 팝니다. 

 

도축한 지 얼마 안 된 소나 혹는 도축하자마자 냉동시켜 숙성이 하나도 안 된 소를 싱싱하다며 팔곤 하는데 실제로는 질기고 땡땡한 소에 불과합니다. 소든 돼지든 산 생명은 죽은 직후 일정 시간 사후경직에 들어가는데 그 기간에는 육이 단단해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 이유로 소 도축장과 가까운 고깃집에선 고기를 얇게 썰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기가 질긴 상태라 얇게 썰어서 구워 먹는 맛도 소고기를 즐기는 또 하나의 형태지만, 이제는 숙성을 통한 *연육 작용과 감칠맛의 상승효과가 널리 알려진 상태이고, 숙성 소고기 맛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요구되는 소비자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육 작용 : 화학적 변화 및 각종 효소의 작용으로 육질이 부드러워지는 것.

 

흰색 지방의 소는 1++등급이 아닌 한 질길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추가로 숙성할 것이 아니라면, 썩 좋지 못한 선택입니다. 제가 소고기 숙성을 여러 차례 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소고기는 도축 후 최소 20일 이상 숙성하고 30일은 넘기지 않았을 때가 가장 맛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진공포장을 이용한 웻에이징을 기준으로 합니다.

 

웻에이징에 한정해서 말씀드리자면, (어차피 가정에서는 웻에이징밖에 할 수 없음) 소고기 구입 시 전표에는 가공일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모르면 물어서라도 가공일(또는 도축일)을 알아야 합니다. 가공일과 도축일은 1~2일 차이라 동일시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 가공일을 기준으로 최소 20일 이상은 숙성이 돼야 육질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아집니다.

 

만약에 20~30일 숙성한 고기를 판다면, 그 고기는 사서 바로 먹어도 됩니다. 가공일을 기준으로 20~30일에 미치지 못하면, 진공포장을 해달라고 해서 가정에서 추가로 숙성해 20~30일을 마저 채우는 것이 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소고기 구입 시 진공포장을 요청합니다. (마트는 어렵고 주로 정육점에서 할 수 있습니다.) 

2) 소고기 단위는 최소 한 근에서 1kg 이상을 권하며, 썰지않고 통째로 진공포장합니다.

3) 포장할 때 고기 앞뒤 면으로 흡수지(미트페이퍼)를 붙여달라고 요청합니다. 흡수지를 붙여야 피를 잘 머금어서 흥건해지지 않습니다.

4) 가정의 김치냉장고에서 숙성합니다. 숙성 기간은 가공일(또는 도축일)을 기준으로 20~30일 사이입니다. (일반 냉장고에서는 숙성 금지)

5) 숙성 온도는 0~1도 사이가 좋습니다. (얼지 않아요.) 다만, 온도를 직접 조절할 수 없는 김치냉장고인 경우 '김치보관'이나 '고기숙성'으로 설정한 서랍 칸에 둡니다. (온도가 높은 김치 숙성은 금지)

 

숙성이 완료되면, 진공포장을 뜯어서 고기에 붙은 잔여 핏기를 키친타월로 잘 닦아줍니다. 고기는 냉을 받은 상태라 매우 차갑습니다. 차가울 때 단칼에 썰어야 합니다. (실온에 뒀다 썰면 고기가 흐물흐물해 잘 안 썰립니다. 가공일로부터 20~30일 정도 숙성이 완료되고, 일단 진공포장을 뜯었다면 3일 이내에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 2> 도축한 지 한 달이 넘은 소

 

이러한 방법으로 약 30일 정도 숙성한 것이 위 사진입니다. 아무래도 마트보다는 동네 정육점이 고깃값은 저렴합니다. (안심 한우 제외) 사실 소고기 숙성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등급은 1~2등급이며, 육우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요즘 동네 정육점에서 2등급은 고사하고 1등급도 보기가 어렵습니다. 너도나도 1+이나 1++ 소를 키우기에 혈안이 됐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1+ 등급의 꽃등심을 구입했는데 보시다시피 100g당 7,000원으로 가격이 착해서 2kg 정도 사다가 숙성했습니다. 2kg 정도면 8~10인분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진공포장을 뜯어 고인 핏기는 버리고, 키친타월을 이용해 고기에 묻은 핏기를 꾹꾹 눌러주듯이 닦습니다. 여기서 불필요한 지방은 칼로 떼냅니다.

 

 

공기에 노출되면서 자주색이었던 고기가 점차 선홍색으로 되돌아온다

 

처음 개봉할 당시에는 고기가 자줏빛이 납니다. 이 자줏빛은 공기가 차단된 혐기성 상태에서 보이는 원래 근육 색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소가 도축되기 이전에는 모두 혐기성입니다. 도축이 돼서야 비로소 공기에 노출되는 것이며, 이때 근육에 다량으로 분포하는 미오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해 선홍색으로 바뀝니다.

 

 

다만, 소고기를 숙성하다 보면, 표면 일부가 갈변이 오기도 하는데 표면에 살짝 맺힌 갈변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썰었을 때 단면 안쪽에 갈변이 생기면 안 됩니다. 푸르팅팅한 빛깔을 띠거나 코를 댔을 때 시큼하거나 불쾌한 냄새가 난다면, 숙성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숙성이 잘못된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진공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다른 하나는 숙성 온도가 적절치 않았거나. 후자인 경우는 일반 냉장고에서 숙성할 때 주로 일어납니다. 일반 냉장고 온도는 주로 2~4도씨 사이이고 문을 자주 여닫으니 냉기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장시간 숙성할 때는 적합하지 않겠지요. 

 

소 지방이 흰색이면, 숙성하지 않은 것. 도축 후 수십 여일이 지났는데 지방색이 흰색이라면 그 고기는 냉동실에 들어갔다 나온 고기입니다. 반대로 소 지방에 핏기가 침착돼 붉은 기가 돌면 숙성이 어느 정도 되었다는 증거이며, 가공일(또는 도축일)을 확인해 그때부터 총 20~30일 정도 숙성해 두면 가장 맛있는 소고기를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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