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랏콕 마을

 

EBS <성난 물고기> 태국 편 촬영 5일 차. 이곳은 태국 동남부의 휴양지 섬 꼬창입니다. 꼬창의 섬 주민들은 어업과 관광으로 생계를 꾸리는데 이날은 대어의 단서를 수집하기 위해 무작정 찾아 나서는 씬을 촬영하기 위해 꼬창의 한 어촌 마을을 찾았습니다. 

 

 

입구에는 관광객 차림을 한 캐릭터가 반기는데요. 그만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마을인가 싶었는데 때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이라 소수의 유럽인을 제하면 관광객이 거의 볼 수 없었고, 또 관광 자원이라 내세우기에는 너무 소박한 어촌 마을입니다.

 

 

불교 국가 답게 입구에는 사찰이 있고, 담장 너머로 보이는 이것은 재단이라고 해야 할까요? 미니어처로 만든 작품 같단 느낌입니다.

 

 

 

이곳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입니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역류해 이곳까지 들어올 텐데요. 순전히 어촌 마을인 줄 알았는데 관광객을 태워다 주는 뱃사공이 수시로 다니는 걸 봐선 이 수로가 하나의 관광 자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변은 맹그로브 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원시림 같은 풍경을 자아냅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이곳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유람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저의 관심은 유람선보다 뒤쪽에 보이는 맹그로브 숲입니다. 저 숲 어딘가에는 분명 먹음직스러운 맹그로브 크랩이 서식할 것도 같은데 ^^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수상가옥

 

바닷물과 강물이 섞이는 기수역에는 학공치 사촌인 줄공치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학공치처럼 부리가 나왔지만, 담수성이 강한 어류죠. 이 줄공치는 우리나라 강 하구에도 서식합니다.

 

 

나무에는 왕지네 한 마리가 나무에 걸터앉아 햇볕을 쬐고 있습니다..는 아니고 누군가가 죽은 지네를 우리 앞에 보입니다. 약재로 쓸 법한 지네 같은데요. 이걸 보니 예전에 대마도로 낚시갔다가 왕지네에 물린 기억이 납니다.

 

때는 습한 여름이었는데 벗어놓은 갯바위 장화에 이 녀석이 들어가 웅크린 줄도 모르고 신었다가 보기 좋게 물렸지 뭐예요. 축축하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지네 특성상 장화만큼 좋은 안식처도 없었을 것입니다. 장화를 신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발가락이 따끔합니다. 처음에는 압정을 밟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따끔함을 넘어 강력한 턱으로 깨문다는 느낌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죠. 급히 장화를 벗어 던졌는데 그 안에서 사진에 보이는 크기의 지네가 기어 나오는 겁니다. 독이 있어 발가락이 부어오르기 시작하는데 사람에 따라 독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리까지 붓고 심하면 마비가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응급처치로 민숙집에서 준 연고를 바르긴 했는데 붓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죠. 일주일 간다, 한 달 간다 말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저는 반나절 만에 부기가 가라앉았습니다. 휴~ 이후로 저는 장마철에 낚시할 때마다 장화를 뒤집어 봅니다. ^^;

 

이 녀석을 보니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났지만, 이미 죽어버려 축 늘어진 상태입니다. 입에 가져다 넣는 시늉을 (방송분으로) 찍어둘까 하다가 죽어버린 녀석으로 해봐야 의미가 퇴색, 관두기로 합니다.

 

 

근처에 식당이 있길래 목을 축일 겸 들어갔는데요. 수조에는 웬 우리나라 갯가재(쏙)를 닮은 녀석들이 들어있습니다. 저는 갯가재를 낚시 미끼로도 쓰고 쪄서 먹어본 적이 있어서 제법 익숙한 모양이지만

 

 

흡사 사마귀의 앞모습을 빼닮은 태국의 대형 갯가재

 

우리나라 갯가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우리나라 갯가재가 다 성장한다고 해서 이렇게 될 리 없고. 아마 이 근방에 서식하는 대형 갯가재 종류로 보이는데요. 해산물 레스토랑이니 식재료로 사용할 겁니다.

 

 

녀석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해저 바닥에 드러누운 동물의 사체나 뜯어먹으며 살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또 다른 욕조 아니 수조에는 초어(백연어)과 어류로 추정되는 거대한 민물고기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칩니다...라고 썼는데 댓글에서 피라루크라고 알려주시네요. ^^ 관상용이겠죠. 

 

 

인기척이 드문 한가로운 어촌마을. 한창 조업할 시간이 지났으니 낮잠을 자거나 그물을 손질하겠죠.

 

 

나무로 된 길을 걸어 마을 깊숙이 들어가 봅니다. 가끔 나무판자가 썩었거나 너덜너덜해 잘 피해 다녀야 합니다.

 

 

처음에는 워낙 인기척이 없어서 유령 마을 같았습니다. 예상대로 마을에는 따가운 햇볕을 피해 낮잠을 자거나 그물을 손질하는 주민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입니다. 이쯤에서 낚시로 대물을 잡을 수 있는 포인트나 단서를 물었는데 아직은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와 우지원씨는 새우가 서식하는 곳에 대물이 많을 것이라는 추리로 대화를 풀었는데요. 어차피 설정입니다. 실제로는 게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대물 서식지인 것은 아니고요. 더군다나 우리가 찾는 대상어는 게나 새우 등을 먹이로 하는 물고기보다는 동족의 물고기를 잡아먹을 만큼 육식성이 강하고 포악한 낚시 대상어(루어에 반응하는)이기에 이쯤에서 중간 브릿지를 넣기 위해 찍은 것 같습니다.

 

 

투구게

 

대신에 마을에는 신기하게 생긴 생명체가 몇 마리 있었습니다. 아쿠아리움에서나 볼 법한 투구게인데요. 여쭤보니 놀랍게도 식용이라고 합니다.

 

 

우지원씨와 저는 돌아가면서 투구게를 살핍니다. 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이런 게 나와주면 촬영 분량을 채울 수 있으니 땡큐죠. ^^;

 

 

뒤집힌 모습은 그야말로 에일리언의 페이스 허거를 떠올릴 만큼 징그러운데요. 정지 컷이라 그 느낌이 제대로 와닿지 않지만, 실제로는 저 다리가 마구 움직입니다. (희한하게도 다리 끝부분이 집게로 되어 있네요.)

 

 

우지원씨가 투구게 좀 만져봤는지 투구게는 이렇게 해서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저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투구게로 제 얼굴을 덮어버리게 할까(얼굴 덮친 페이스 허거처럼) 잠시 고민하다가 '어류 칼럼니스트'라는 인식과 캐릭터상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참았죠. ^^;;

 

 

어쨌든 이 투구게는 여러모로 희한한 녀석입니다. 가만 내버려 두면 혼자 기어 다니는데요.

 

 

맹그로브 투구게(학명 : Carcinoscorpius rotundicauda)로 추정

 

딱딱한 갑옷 외에는 살이 없어 식용이 어려워 보이지만, 태국에서는 이 투구게를 스테미너 음식으로 이용합니다. 살은 별로 없기 때문에 통째로 찐 다음 노란 알만 먹는 것이죠.

 

투구게는 살아있는 화석이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지구상 생명체 중 가장 오랫동안(약 2억 년) 같은 형태를 유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생김새에서 알 수 있듯이 투구게의 모습은 그 자체가 방패와 같은 효율적인 신체구조를 가졌으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기에 굳이 진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투구게도 몇 단계 유생기를 거쳐 성체로 자라는데 이 유생기가 마치 삼엽충과 닮아서 삼엽충의 후손이란 말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분류로는 게와 같은 거미목에 속하는데 그 뒤로는 게와 분류가 다르며 혈액 성분상 거미류에 가깝습니다.

 

투구게가 재미있는 것은 단지 오래된 화석 같은 생명체만은 아닙니다. 약 4억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투구게는 포유류의 빨간색 피(헤모글로빈) 대신 파란색 피(헤모시아닌)가 들어서 전 세계 제약사들은 이 혈액을 바탕으로 질병에 대항하는 백신을 개발하는 등 신약 개발에 사용하고 있죠.

 

때문에 투구게의 혈액은 3.7L당 가격이 우리 돈으로 6,500만 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액체 4위에 오를 만큼 값지고 귀한 존재가 되었으나, 지금은 인류를 위해 과도하게 피를 빨리다 죽어버리거나 남획으로 개체 수가 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직은 멸종위기 동물이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남획을 막고 번식을 돕도록 해당 국가가 힘 써줘야겠지요.    

 

투구게는 전 세계적으로 5종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가 만난 이 투구게는 동정 결과 태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맹그로브 투구게(Carcinoscorpius rotundicauda)' 로 추정됩니다. 투구게는 이 녀석은 바닥을 기어 다닐 뿐 아니라, 물속에서 헤엄치며 이동합니다. 열 개의 집게발 다리는 수중에서 바위나 암벽을 타고 오르는데 탁월한 기능을 하죠.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세 종류의 투구게가 서식하는데 맹그로브 투구게는 일반 투구게나 남방 투구게와 달리 복어 독 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을 가끔 포함하기 때문에 식용에 주의해야 하는 종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중에서 몸이 뒤집힌 투구게는 몸을 비틀어 바로 세울 수 있지만, 물 밖에서 뒤집히면 스스로 뒤집기가 어렵습니다. 위협을 느끼자 날카로운 꼬리를 바짝 세우며 우릴 노려보는 느낌인데, 실제로는 물거나 찌를 만한 기관이 없어 딱히 위협이 되지는 않아요. ^^;

 

시간만 있었다면, 투구게 알 요리를 맛보는 건데 그러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아래는 이날 촬영분입니다.

 

 

 

EBS1 <성난 물고기> 태국 꼬창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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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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