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가 메케한 연기에 휩싸였다. 이유는 뭘까?

 

마나도 참치 훈제 거리,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계속되는 낚시 실패로 고생은 고생대로, 기분은 기분대로 축 처질 무렵. 저와 <성난 물고기> 제작진은 마나도 시티 인근에 있는 참치 훈제 거리로 나왔습니다. 평범한 도로변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연기 자욱한 노점이 즐비하면서 지나가는 행락객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합니다.

 

 

이방인을 향한 동네 아이들의 호기심과 반응이 재미있다

 

사실 이곳뿐 아니라 마나도 시티 자체가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탓에 동네 아이들이 몰려든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마치 한국의 50~60년대에 눈 파란 미국인을 신기하듯 쳐다보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카메라 장비까지 동원되는 풍경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합니다.

 

 

가는 발걸음마다 아이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두 피디님은 훈제 거리를 스케치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 틈을 타 저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촬영 동선을 체크하는데요. 여기저기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훈제 참치가 덩그러니 쌓여 있습니다. 좀 전에 온 마을을 휘감았던 메케한 연기가 참치 훈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가다랑어(차칼랑)가 훈제되는 모습

 

수천 개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국토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비행기로 여섯 시간이 걸릴 만큼 광범위합니다. 국토 대부분이 적도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어서 지리적으로 참치를 이용한 식생활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술라웨시섬 북부인 이곳 마나도에는 주로 황다랑어를 비롯해 '차칼랑'이라 불리는 가다랑어가 많이 잡힙니다.

 

이 중에서도 가다랑어는 전 세계에서 다랑어 종류 중 가장 많은 개체 수를 보유하는 그야말로 흔한 생선이기에 가격 부담이 적고 맛도 있는 생선입니다. 아시다시피 가다랑어는 우리가 평소 즐겨 먹는 참치 통조림의 원료이기도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획 직후 팔린 신선한 가다랑어를 사다 즉석에서 훈제하는데 그 모습을 길거리에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침샘을 자극하게 만들죠.

 

사진은 훈제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다랑어입니다. 연기가 잘 배라고 군데군데 칼집을 낸 모습인데요.

 

 

옆 가게는 훈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훈제에 쓰이는 코코넛 껍데기

 

이곳 일대는 모두가 하나같이 코코넛과 먹다 남은 옥수수 껍질을 훈연 재료로 쓰고 있었습니다. 일전에 몰디브에서 접한 훈제 참치도 코코넛 껍데기를 이용한 걸 보아 코코넛 껍데기가 참치와 잘 맞아떨어지나 봅니다.

 

 

통째로 훈제한 참치

 

그런데 거리를 둘러보면서 참치가 두 가지 유형으로 훈제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통째로 훈제한 참치가 있는가 하면.

 

 

반으로 갈라서 훈제한 참치

 

반으로 갈라 대나무에 단단히 고정한 채 훈제한 참치도 있습니다. 어딜 가나 두 가지는 공통으로 팔고 있었는데요. 이 둘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통째로 훈연한 참치는 소위 '속성 훈제'입니다. 단시간에 훈제해 빨리 먹을 수 있도록 한 건데요. 이러한 조리 방식은 주로 자카르타나 발리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반으로 갈라서 훈제한 참치는 오랜 시간 훈연한 것으로 5일 정도는 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격 차이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알아보니 속성으로 훈제한 참치는 한 마리에 2만 루피아, 우리 돈으로 약 1,600원입니다. 반면, 반으로 갈라서 오랜 시간 훈연한 참치는 3만 루피아, 우리 돈으로 약 2,400원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물가로는 그리 큰 차이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가격을 떠나 개인적으로는 반으로 가라 오랜 시간 훈연한 이 참치가 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요. 사진의 절반을 손으로 가린 채 둥그런 살점만 보고 있으면, 마치 잘 숙성된 커다란 치즈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현지에서는 그냥 먹기도 하고 굽거나 튀기기도 하며, 이곳 마나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특제 양념을 곁들인다고 해요. 우리는 즉석에서 훈제 참치를 구입해 시식하기로 했습니다.

 

 

마나도식 매운 소스 재료가 한데 모였다(고추, 깔라만시, 샬롯, 감)

 

옆 가게는 마나도식 매운 소스 재료를 팔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마나도가 추운 지방(?)이라 이곳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점입니다. 마나도는 술라웨시섬 최북단에 있는 주도입니다. 그래 봐야 적도 바로 위에 자리한 곳이라 추우면 얼마나 추울까 싶은데요.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섬인 술라웨시는 대부분 산악지형으로 되어 있어서 고산지 마을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온이 생각보다 후텁지근하지는 않아요. 스콜이라도 퍼붓고 난 뒤에는 선선함을 넘어 쌀쌀하기까지 합니다. 긴 소매와 긴 바지를 입고 다니는 주민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이런 기후 탓이겠지요.

 

마나도식 매운 소스는 우리 입맛에 얼마나 맞을까?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히 다루기로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재료의 면면으로도 벌써 군침이 흐르려고 하는데요.

 

우선 매운맛의 주체가 되는 고추가 들어가는데 이곳에서 재배된 동남아 고추 특유의 알싸하면서 톡 쏘는 매운맛이 가미될 것입니다. 가운데 라임처럼 생긴 것은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깔라만시입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한국에도 관련 제품이 나오고 있죠. 여기에 샬롯과 감이 단맛을 내면서 매운맛과 신맛, 단맛까지 균형을 맞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촬영 준비에 들어가는 배우 장동직 씨

 

이제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갑니다. 저와 장동직 씨가 이 일대를 구경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나도의 자랑거리인 훈제 참치를 맛보기로 합니다. 두 종류의 훈제 참치와 매운 소스. 여기에 말린 나뭇잎으로 감싼 것은 참치 내장을 훈제한 것인데요. 저는 간 부위를 먹어봤습니다. 굉장히 비릴 것이라는 편견으로 먹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비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간 특유의 철분 맛이 상당히 거슬리면서 아~ 계속 씹고 있으니 처음에는 잘 몰랐던 비린 맛이 입안에서 폭발합니다.

 

제 인생에서 참치 내장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느낌이 ㅠㅠ

 

 

<성난 물고기> 촬영장 분위기,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마나도의 참치 훈제 거리에서

 

우리는 시식을 위해 많고 많은 노점상 중 아무 곳이나 골라 들어갔습니다. 사전 협의나 섭외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촬영입니다. 이 일대 참치 가게는 식당이 아닌 포장만 해주는 곳이라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는데요. 마침 인터뷰에 응해주신 아주머니가 자리를 마련해 준 덕에 현장에서 맛보는 것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틈날 때마다 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는 아이들과 표정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낯선 이방인에 아이들이 대거 몰려들었는데요. 남자아이들은 카메라에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호기심과 경계 사이에서 저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눈치입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여지없이 피하고. 카메라를 내리면 다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카메라를 들면 잽싸게 피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저는 아이들과 눈 장난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녀석들... 진짜로 부끄러운지 안 찍혀주네요. ^^;

 

"야들아 한 번만 찍자"

 

통사정한다는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갑자기 셋이 약속한 듯 사진에 익숙한 포즈로 돌변합니다. ㅎㅎ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로 알려졌습니다. 마나도는 예외적으로 크리스천이 많은 곳이지만, 마을 곳곳에는 무슬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오른쪽에 히잡 쓴 아이의 부모는 아마도 신앙심이 매우 깊은 무슬림일 것입니다. 알라신에 대한 부모의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어린 자녀에게 히잡을 두르는 시기도 앞당겨진다는 사실. 심지어 우리 딸(만 3세)보다 더 어린 아기에게 히잡을 둘러쓰게 한 부모도 보았으니까요.

 

 

사진을 통해 외국의 낯선 환경에서 교감하는 작은 소통. 처음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어려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저는 전문 사진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심리에서 발동된 저의 망설임, 쭈뼛쭈뼛함은 표정에도 여실히 드러나면서 찍히는 사람도 경계를 가지고 어색한 표정을 짓게 하죠. 이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하나.

 

 

만국공통어인 '웃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부터 긴장을 풀고 웃음으로 다가가야..

 

 

필리핀에서

 

 

그리스에서

 

캐나다에서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웃음이라도 지어 보이면 십중팔구는 상대방도 경계를 풀고 웃어준다는 점. 그 점을 알고는 있지만, 이게 막상 찍으려면 잘 안 됩니다. 사진은 혼자 찍는 풍경보다 찍히는 상대방과 짧은 시간에 무언의 협의를 받아내야 하는 과정이 즉흥적인 자신감으로 나타나는 건데요.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게 참~ 어렵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통법은 웃는 것과 동양식 목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웃는 것도 잘 웃어야죠. 어색하게 웃으면 오해받습니다. ㅠㅠ)

 

 

배우 장동직 씨와 마을 아이들이 모두 모여 기념 촬영을 하고, 우리는 마나도의 독특했던 참치 훈제 거리를 떠납니다.

 

 

차에 오르는 와중에도 배웅해준 아이들의 순수하고도 초롱초롱한 눈빛. 당분간은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나도 인근의 생선구이 거리

 

저와 <성난 물고기> 제작진은 그 길로 인근에 있는 한 생선구이 거리에 들렀습니다. 잠시 드론을 띄워 이 일대 항공뷰를 촬영하고요.

 

 

전에도 썼지만, 방송에서는 술라웨시섬 편 1~2부가 모두 참치를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그려졌지만, 원래는 빨간퉁돔(레드 스네퍼)를 찾아가는 여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빨간퉁돔의 맛을 보기 위해 생선구이 거리를 찾았는데요. (방송에서는 통편집됐지만) 

 

 

빨간퉁돔 구이(가운데)

 

이 퉁돔과 어류를 비롯해 이 일대에서 잡히는 생선열대성이다 보니 색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마치 물감을 칠한 듯한 비주얼. 하지만 모두 자연색이죠.

 

 

파랑비늘돔(오른쪽에서 두 번째)

 

빨간퉁돔 사이로 초록 물고기가 한 마리보이는데요. 스쿠버다이버들에게 인기가 있는 놀래기과 어류인 '파랑비늘돔'입니다. 열대성 어류는 비늘이 크고 억셀수록 맛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파랑비늘돔은 예외인가 봅니다. 곳곳에 이 어종을 식용으로 활용하는 흔적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내장에는 맹독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잘 제거하면, 구이나 건어물로 이용하기에 손색없는 생선이죠.

 

여기서 저는 가운데 빨간퉁돔을 지목해 (한 마리 만 원을 부르는데 바가지인 듯) 장동직 씨와 함께 뜯어먹는 장면을 찍고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이 시기 마나도에서의 낚시가 1회 정도 남아 있었지만, 일전에 포스팅했듯이 쌍무지개를 보는 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아래는 이날 촬영분입니다.

 

 

EBS1 <성난 물고기> 술라웨시섬 편, 마나도 참치 훈제 거리 촬영씬

 

이후 우리는 술라웨시 최남동에 있는 부톤섬으로 향합니다. 참치의 고장 부톤에서는 어떤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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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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