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 블로그를 통해 활어회와 숙성회의 차이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활어회와 숙성회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활어회의 특징

- 쫄깃쫄깃한 식감

- 갓 잡은 활어라 믿고 먹을 수 있는 신선함

 

2) 숙성회의 특징

- 잘 숙성된 회에서 느껴지는 차진 식감

- 감칠맛 상승

 

그러나 이 숙성회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식감의 물러짐'입니다. 숙성회의 특징 중 하나가 '차진 식감'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짧은 숙성을 통해서만 구현해 낼 수 있습니다.

 

통상 일식집에서 내놓는 숙성회란 영업 개시 2~8시간 전, 산 고기를 잡아 미리 포를 뜨거나 통째로 숙성한 것을 씁니다. 우리가 먹는 일반적인 숙성회도 2~8시간 숙성이라는 범위 내에 있습니다.

 

문제는 2~8시간 숙성이 감칠맛과 단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어종과 크기마다 다릅니다만, 일반적으로 품질 좋은 횟감으로 선호되는 대형 횟감 예를 들면, 3kg 이상 대광어와 대도미(참돔), 농어, 8kg 이상 방어 등은 크기만큼 숙성도 잘 먹혀들기 때문에 짧은 숙성보다는 다소 긴 시간 숙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아서, 숙성회 및 선어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는 8시간 이상 심지어 2~3일 이상 숙성해서 내기도 합니다.

 

 

 

이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식감의 물러짐'인데요. 이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일본에서 건너온 이케시메와 신케지메입니다. 그렇다면 이케시메와 신케지메는 어떻게 다를까요?

 

 

※ 참고 1

오늘 글은 다소 잔인한 사진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 참고 2

이케시메의 원 발음은 '이케지메(이케지메)'이고, 신케지메의 원 발음은 '신케이지메'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흔히 통용되는 언어로 표현하고자 이케시메와 신케지메를 사용했습니다.

 

 

광어를 이케시메하는 모습

 

#. 이케시메(活け締め)란?

이케시메는 물고기의 뇌를 일격에 찔러 뇌사시키는 것입니다. 즉, 뇌가 있는 부위를 칼이나 송곳이든 찌르면, 물고기는 발버둥을 멈추고 얌전해집니다.

 

이러한 이케시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에너지 보존과 식감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물고기는 죽기 직전까지 발버둥 치며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 이 에너지는 운동 에너지와는 다른 *ATP로 이를 줄임으로써 횟감은 열화 현상을 줄이게 되며, 신선도를 좀 더 오래 가져가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맛과 영양소를 충분히 가두게 됩니다.

 

※ ATP

ATP는 이 세상 모든 생물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화학 에너지입니다. 기계를 가동하기 위해선 가솔린이 필요하듯,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에는 가솔린의 분자 구조보다 5배가량 무거운 ATP를 요구합니다. 물고기의 ATP는 죽고 난 후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IMP)'으로 전환되므로 ATP의 손실을 최대한 막아 이노신산으로의 전환을 돕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를 위한 것이 이케시메(급사)이며, 뇌를 찌르면 물고기는 즉시 움직임을 멈추면서 체내에 가지고 있는 ATP를 소진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둡니다. 즉살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숙성했을 때 맛의 손실이 적으면서 결과적으로는 좀 더 맛있는 숙성회가 완성됩니다.

 

 

 

<그림 1> 이케시메(뇌사)를 위한 찌르는 부위

 

<그림 1>에 표시한 것은 이케시메를 하는 부위입니다. 피를 빼기 전 송곳으로 저 부위를 가볍게 찌르는 것만으로 횟감의 이케시메는 완성됩니다.

 

 

신케지메가 이루어지는 모습

 

#. 신케지메(神経締め)

횟감의 전처리는 이케시메 단계에서 끝낼 수도 있지만, 하루 이상 숙성해야 한다면 신케지메가 유리합니다. 신케지메 자체가 이케시메를 포함합니다. 뇌를 찔러 급사시킴과 동시에 스테인리스 강선으로 척수를 관통해 척수를 파괴 및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횟감의 장기 보관'입니다. 생선은 사후 1~2시간 이내에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경직 상태가 옵니다. 이를 사후강직 또는 사후경직이라고 하는데요. 말 그대로 근육이 단단해진 상태이므로 이때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감이 됩니다.

 

문제는 사후경직이 유지되는 시간이 극히 짧다는 겁니다. 이케시메나 신케지메를 하지 않고 일반적인 피 빼기만으로 횟감을 장만하게 되면, 어종과 크기마다 다르지만 통상 5~8시간 후 근육이 풀어지기 때문에 이후로는 살이 무른 회가 됩니다. 숙성에 의한 감칠맛은 얻을 수 있지만, 식감을 잃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신케지메는 사후경직을 늦추어 근육이 단단해지는 시점을 뒤로 미루게 됩니다. 사후경직을 지연시킴으로써 12시간 또는 24시간 이후에도 제법 단단한 식감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진은 신케지메를 하는 장면입니다. 신케지메 도구가 따로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내 낚시 쇼핑몰에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먼저 송곳 모양의 날카로운 도구로 눈과 눈 사이를 찌릅니다. 좀 더 깊숙이 찔러 척수 구멍의 입구까지 관통시키면 결과적으로 뇌를 찌르게 되는 것이므로 이케시메와 같은 효과를 봅니다.

 

 

이 상태에서 스테인리스 강선을 넣어 대가리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긴 척수를 관통합니다. 이 척수 구멍을 찾는 것이 관건인데 처음 송곳으로 찌를 때 각도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아래 영상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입질의추억tv(https://www.youtube.com/입질의추억tv)

 

신케지메가 제대로 되려면 스테인리스 강선을 척수 구멍에 정확히 넣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물고기는 하얗게 질리고(벵에돔은 크게 표시가 안 나는데 참돔의 경우는 선홍색에서 하얗게 변하는 것이 보입니다.) 강선을 넣는 순간 하게 발버둥 치지만, 완전히 삽입하면 입을 쭉 벌리며 급사하게 됩니다. 이후 아가미와 꼬리를 찔러 피 빼는 과정은 똑같습니다. 

 

 

#. 피를 먼저 빼야 할까? 신케지메를 먼저 해야 할까?

순서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피를 먼저 빼고 신케지메를 해도 되며, 신케지메를 먼저 하고 피를 빼도 됩니다. 다만, 각 과정의 간격을 1~2분 이내로 신속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피를 빼고 나서 한참 있다가 신케지메를 하거나, 신케지메를 하고 한참 후에 피를 빼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강선을 넣는 것을 이케시메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케시메와 신케지메는 혼용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블로그의 과거 글을 검색해도 그렇고요. 일본에서도 어부들이 각 용어의 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혼용해서 쓰기도 하며, 지역별 차이도 있습니다. 때문에 스테인레스 강선을 이용한 신케지메를 이케지메라 부르기도 하고, 뇌를 찔러 급사하는 과정을 신케지메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용어는 지금까지 설명한 대로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신케지메는 사후경직을 지연시켜 장기간 횟감을 보존하는 목적이 큽니다. 그러니 활어회에는 적용이 안 되고요. 8시간 이하 숙성회에서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입니다. 

 

신케지메의 목적은 장시간 숙성을 통한 감칠맛과 단맛의 상승 작용도 있지만, 저처럼 산지에서 집으로 수 시간 이상 운반해야 할 경우, 효과를 봅니다. 가령, 대마도에서 낚시로 잡은 횟감을 서울로 가져오려면 최소 반나절은 걸리는데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회 먹기가그래서(보통 집에 도착하면 밤 10~11시) 다음 날 저녁에 지인들을 불러 회를 먹기 위한 목적으로 신케지메를 합니다.

 

그러면 식감이 크게 물러지지 않으면서 쫀득하게 씹히는 효과를 볼 수 있는데요. 언젠가 이 부분과 관련해서 신케지메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식감 및 탄력도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해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나 이케시메와 신케지메의 기본적인 개론입니다. 낚시를 즐기는 분,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이 자료가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 관련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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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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