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너무 흔하거나 맛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생선이 뒤늦게 주목받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해양 환경의 변화와 남획으로 어족 자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당시에는 풍부했던 어종이 현재 귀해져서 상대적으로 주목받게 된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저평가된 생선이 미디어와 입소문으로 재조명 받게 된 것인데요. 이는 관광지가 개발되거나 지역 특산물로 부각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물메기탕’이 있는데요. 대구탕과 함께 겨울에 맛봐야 할 생선탕으로는 으뜸으로 칩니다.

 

그런데 물메기탕이 처음부터 별미였던 것은 아닙니다. 

 

 

흔히 물메기라 불리는 꼼치

#. 옛날에는 버려졌던 물고기
옛날에는 아귀와 함께 ‘물텀벙이’라 불리며 버려지는 생선 중 하나였습니다. 그 이유는 흐물흐물한 식감과 맛도 맛이지만, 외형부터 썩 호감 가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우리 조상은 식용할 물고기를 바라볼 때 생김새를 중시하였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선'이라면 떠올리는 체구나 체형, 골격이 있습니다.

 

여기에 너무 이질감이 들면 거부감이 들고 특히,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차례나 제사상에 올리는 물고기를 ‘비늘 있는 어류’에 한정하였기에 물메기처럼 비늘이 없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것은 부정하다 여겼습니다.

 

게다가 물텀벙이는 조업을 방해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는데요. 그물을 엉키게 하거나 손을 많이 가게 해 조업 시간을 지연시키기도 하니, 잡히자마자 곧바로 내던져지는 존재. 즉, ‘첨벙(텀벙)’소리만 낼뿐,  별다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잡어 중의 잡어였습니다.

 

그런 물메기가 지금은 한 그릇에 만 원 이상을 줘야, 그것도 한겨울이라야 제대로 된 물메기탕 한 그릇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 물메기탕의 기원
물메기탕과 물회는 모두 어부식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쁜 조업 중에 밥을 차려먹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상업적 가치가 떨어지는 물텀벙이(아귀나 물메기)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 뒤 밥에 훌훌 말아먹었던 음식이 삼척과 강릉을 통해 퍼지게 되었고 이후 관광객들의 입소문으로 오늘날 별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김치를 곁들인 물메기탕

#. 물메기 탕에는 물메기가 없다
아시다시피 물메기 탕에는 물메기란 생선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물메기 탕에는 물메기가 단 1%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저는 국내의 어류 명칭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식 명칭(표준명)과 방언의 혼재 속에 한 물고기를 두고 여러 명칭이 뒤죽박죽 쓰이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실제로 어류대도감이나 각종 지식백과에 기제 된 학술적 명칭은 실생활에 쓰이는 명칭과 적잖은 괴리감을 보입니다.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명칭이란 상인과 어부, 식당과 소비자의 입에 오르내리는 실질적인 명칭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물메기 탕에서 물메기가 바로 실생활에 사용되는 물고기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꼼치’란 생선이 물메기 탕에 들어갑니다.

 

즉, 우리가 물메기로 알고 먹던 생선은 대부분 꼼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꼼치란 이름을 제대로 사용하는 지역은 동해뿐입니다. 같은 꼼치가 들어가더라도 서해와 남해에서는 ‘물메기탕’이라 부르는 반면, 동해에서는 유독 이 음식을 ‘곰치국’이라 불렀습니다.

 

참고로 꼼치는 쏨뱅이목 꼼치과에 속한 어류입니다. 다 크면 70cm 이상 성장하는데 시장에 나도는 크기는 대부분 50~60cm가 많습니다. 

 

 

표준명 물메기

그렇다면 물메기란 생선은 없는 걸까요? 정답은 ‘실존한다.’입니다. 어류도감에는 물메기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볼 수 있는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물메기(실제론 꼼치)와 달리 크기는 작고 왜소하며, 개체 수가 많지 않아서 상업적 가치가 낮습니다. 

 

많이 잡히지도 잡으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묵호항이나 속초 재래시장의 수조에 보이는 물메기는 어쩌다 혼획된 것입니다. 표준명 물메기를 멀리서 보면 흡사 거대한 올챙이처럼 생겼는데요. 앞서 살핀 꼼치와는 생김새와 크기에서부터 적잖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해에서 물곰이라 불리는 미거지

#. 꼼치보다 비싼 물곰 
동해(속초부터 포항까지)에 가면 물곰탕이란 메뉴를 접하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아선 물메기탕(곰치국)과 다를 게 없지만, 들어간 재료는 엄연히 다릅니다. 

 

서해와 남해, 동해에 모두 서식하는 꼼치와 달리 물곰은 동해에만 서식하는 매우 특별한 생선입니다. 정식 명칭은 ‘미거지’, 그래서 미거지로 만든 탕이 바로 물곰탕입니다.

 

 

꼼치보다 크고 둥그스름한 얼굴을 가진 미거지

동해에는 물곰탕과 곰치국을 함께 취급하는 식당도 있는데 대게 물곰탕이 곰치국보다 2~3천 원 비쌉니다. 그 이유는 물곰탕의 재료인 미거지가 꼼치보다 비싼 몸 값을 자랑하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외형까지 비슷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상인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미거지 사촌격인 ‘아가씨물메기’ 역시 동해에서 물곰탕 재료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꼼치는 다 커도 몸길이 60~70cm를 넘지 못하지만, 미거지(물곰)는 그 이상 크고 거대하므로 크기에서 압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단, 비슷한 크기일 경우 특징을 알지 못하면 이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꼼치를 넣고 선 물곰탕으로 둔갑한 사례가 있었고 최근들어 뉴스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의적인 둔갑과는 별개로 이 둘이 같이 나는 동해에서는 곰치국과 물곰탕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식당에선 곰치국과 물곰탕을 따로 표기하고, 가격 책정도 다르게 하여 구분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식당에서는 곰치국 하나만 파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미거지가 들어간 물곰탕인 경우를 말입니다.

 

다시 말해, 곰치국은 동해 삼척의 토속 음식이다 보니 예부터 미거지(물곰), 꼼치(물메기) 할 것 없이 곰치국이라 부른 것입니다. 앞으로는 미거지가 들어간 물곰탕과 꼼치가 들어간 곰치국(또는 물메기탕)의 구분이 명확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메기탕 재료인 꼼치

#. 꼼치와 곰치, 미거지의 차이 
앞서 살펴보았듯 꼼치는 물메기탕의 재료로 쓰입니다. 정작 물메기는 몸집이 작고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상업적 가치를 상실했지만, 꼼치는 11월부터 조업량이 늘면서 과거 물텀벙이 신세를 벗어나 제법 몸 값이 뛰고 있고 있습니다. 

 

 

물곰탕 재료인 미거지

미거지는 동해에서만 볼 수 있는 생선으로 생김새는 꼼치와 비슷하지만, 더 크고 더 밝으며, 꼼치와 달리 몸통에 나타나는 무늬가 없습니다. 

 

 

피부가 매끈하고 분홍빛을 띠는 암컷 미거지

미거지는 암수에 따라 색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수컷은 진한 암갈색에 매끈한 피부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피질이 나서 표면이 거칠거칠합니다. 반면, 암컷은 수컷보다 전반적인 채색이 밝고 분홍색을 띠며, 거친 피질이 나지 않습니다. 

 

 

표면이 살짝 거칠고 거뭇거뭇한 무늬가 나타나는 수컷 미거지

이렇게 외형적인 차이가 나는 암수지만, 막상 끓여보면 수컷의 식감이 조금 더 단단하단 차이 외에는 비슷한 맛을 가집니다. 

 

 

오키나와 같은 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곰치

가끔 꼼치와 곰치를 헷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꼼치는 물메기의 재료지만, 곰치는 아열대 해역의 굴속에 숨어 살며 물고기를 사냥하는 기다랗고 포악하게 생긴 어류입니다. 

 

 

도치 알탕으로 유명한 뚝지

#. 꼼치든 미거지든 맛 좋고 영양가도 좋은 효자 물고기 
물메기탕, 물곰탕은 도치와 함께 겨울에 맛보기 좋은 생선탕이자 미용과 해장에 좋은 성분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지방 고단백질 식품이며, 비타민이 풍부하고 감기를 예방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해부터 남해 거제까지 물메기탕에 이용되는 꼼치

다만, 꼼치와 미거지 모두 살아있을 때도 살이 흐물거리는데 이것을 탕으로 끓인다 한들 단단해지지 않으며, 마치 연두부 같은 질감으로 인해 호불호가 크게 갈립니다. 

 

 

동해 명물 물곰탕

특히, 꼼치와 미거지의 특징으로 흐물거리는 콜라겐을 들 수 있는데요. 이는 껍질과 살 사이에 있는 점막을 의미하며, 신선도를 가늠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콜라겐은 아무리 냉장 보관을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녹아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껍질과 살 사이 점막(콜라겐)이 풍부하다는 것은 잡힌 지 얼만 안 된 것을 의미하므로 신선도를 가늠하는데 좋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설렁탕처럼 깍뚜기 국물을 부어 먹으면 현지식
호불호 갈리는 콜라겐 덩어리지만 몸에는 매우 좋다

꼼치와 미거지는 식당에서 껍질을 벗기고 살을 토막 내어 끓이는데 신김치와 도치 알과의 조합이 매우 좋습니다. 비록, 콧물처럼 흐물거리는 콜라겐을 기피하는 이들도 있지만, 콜라겐은 여성 미용과 피부에 좋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지금도 남녀 할 것 없이 찾아 먹게 되는 대표적인 해안가 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두 어종은 후~하면 안경에 입김이 서리는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어획량이 증가하며, 겨우내 이어집니다. 서해안 일대와 거제도에선 물메기탕을, 동해로 가게 되면 도치 알탕과 물곰탕으로 얼큰하게 속풀이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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