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상편 : 보라색으로 멍든 최고급 생선회, 줄가자미(일명 이시가리)를 아시나요?
- 하편 : 줄가자미, 황홀한 맛의 비밀은 거미 불가사리에 있다?

전 세계에서 수산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초밥 종주국인 일본일까요? 아니면 인구수가 많은 중국일까요? 놀랍게도 한국이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1인당 소비량이 연간 70kg가 넘을 정도로 많은 양을 먹는데, 이중 과반수는 생선회가 차지합니다. 

즉, 생선회를 가장 많이 먹는 국가인 셈입니다. 이토록 생선회를 즐기는 한국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고급스럽고 값비싼 회가 궁금할 법도 한데요. 

보통 값비싼 회라고 한다면, 참다랑어나 다금바리, 참홍어 등이 거론될 것입니다. 일부 미식가들은 붉바리가 다금바리보다 더 비싸다고 합니다. 실제로 붉바리가 귀한 제주도에는 다금바리보다 붉바리를 약간 더 비싸게 팔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 마리가 1kg일 때 가장 비싼 횟감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변은 엉뚱하게도 ‘가자미'가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냥 가자미가 아닙니다. 심해에 서식하는 ‘줄가자미(일명 이시가리)’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줄가자미

줄가자미의 kg당 가격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재래시장 기준으로 약 8만 원선. 이는 작은 줄가자미 3~4마리를 더해 1kg일 때 가격입니다. 그런데 한 마리가 온전히 1kg 이상 나가는 비교적 큰 개체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귀한 줄가자미인데 이중에서도 어쩌다 잡히는 대형 개체는 상품성이 높아 부르는 게 값일 정도. 이 또한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1kg짜리 한 마리가 소비자에게 팔리는 가격은 대략 15~20만 원선. 이는 제주 다금바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비싼 수준입니다. 

게다가 줄가자미를 먹는 장소가 시장이 아닌 반찬과 요리가 깔리는 횟집이나 격식을 갖춘 고급 일식당이라면 가격은 더 많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줄가자미는 그만한 가격을 지불하고 먹을 만큼 가치가 있는 횟감일까요? 

2000m 짜리 저인망 그물로 잡는다

#. 가자미 400마리 당 한 마리 꼴
예전에 가자미 조업을 취재하러 나갔을 때 일입니다. 가자미의 고향이자 주산지라 할 수 있는 경상북도 울산 정자항. 이곳에서는 하루 수십 척의 배가 가자미 조업을 나가는데 특히, 겨울부터 봄 사이 시즌을 맞이합니다. 

용가자미(위), 기름가자미(아래)

이곳에서 거래되는 가자미는 크게 ‘용가자미’와 ‘기름가자미’ 등 2종인데 이를 현지에서는 각각 ‘참가자미’와 ‘물가자미(미주구리)’라 부릅니다. 보통은 이 두 가자미를 잡으러 출항합니다.

줄가자미의 경우 잘 잡힐 때는 100마리 당 한 마리꼴, 잘 안 잡힐 때는 500마리 당 한 마리 꼴로 잡힐 만큼 개체 수에서는 열세입니다. 

드디어 줄가자미가 어획되는 순간

이들 가자밋과 어류는 동해 북부 속초부터 부산에 이르기까지 제법 광범위한 해역에 걸쳐 서식하지만, 그 종류는 수심과 지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보통 가자미 조업 배는 수심 100~150m의 갯벌 바닥을 찾아가므로 항에서 최소 1~2시간 이상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랬을 때 지질이 사니질(모래)이지 갯벌인지, 혹은 암초나 자갈이 듬성듬성 섞인 곳인지에 따라 가자미 종류가 달라집니다. 줄가자미의 경우 암초나 자갈이 섞여야 잡힐 확률이 높다 보니 가끔 그물이 바위에 끼는 일도 있습니다. 

여러 척이 며칠간 잡아다 모은 줄가자미가 고작 열댓마리

이렇게 해서 잡은 줄가자미는 크기를 분류해 경매에 부쳐지는데 대부분 어른 손바닥만 하거나 그보다 큰 정도로 이는 3~4마리를 더했을 때 1kg입니다. 이 와중에도 커다란 줄가자미가 가끔 잡힙니다.

몸길이 40cm가 넘어가는 대형 개체는 1kg을 상회하는 것으로 전체 줄가자미 중에서도 귀해 그날 시세(시가)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매우 귀한 횟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줄가자미 성체는 무안측이 보라빛을 띤다

특히, 배가 보라색을 띠는 줄가자미는 그렇지 않은 것과 맛의 깊이가 다릅니다. 줄가자미는 어릴 때 배가 흰색을 띠지만, 성체에 이를수록 보라빛으로 물듭니다. 다시 말해, 사진과 같이 보라색으로 물든 것은 맛이 찼다는 증거이며 어린 줄가자미와 상품성에서 비교되지 않습니다. 


줄가자미 회가 완성되는 순간

#. 줄가자미의 제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로 소비되는 것은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이며, 흔히 ‘세꼬시’라 불리는 뼈째썰기로 줄가자미 회의 풍미와 구수한 뼈 맛을 함께 즐기는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뼈째 썰어먹는 횟감의 특성상 뼈가 물렁한 시기인 겨울을 제철로 손꼽히지만, 조업량은 오히려 여름에 증가, 가격도 이때가 저렴한 편입니다. 맛은 겨울이 좋지만, 여름에 잡힌 줄가자미도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 서식 환경을 꼽는데요. 줄가자미는 최소 수심 70~80m, 평균 수심 100~150m 정도에 서식하는 준 심해성 가자미입니다.

한여름 수온이 30도까지 오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층 수온일 뿐  햇볕도 닿지 않은 100m 이하에는 동해안 전역에 걸친 냉수대(수온 6~7도 이하의 차가운 물)로 인해 줄가자미는 연중 찬 수온을 견디기 위한 지방을 몸 안에 가둡니다. 이 때문에 줄가자미 특유의 구수한 향이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래 줄가자미의 제철이라면, 많이 잡히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여름~가을을 꼽기도 합니다. 특히, 한겨울(11~2월)에 나는 줄가자미는 지방의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기에 가격은 비싸도 겨울에 먹어야 제맛입니다. 

그런데 올해(2020년)의 경우,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통 줄가자미의 제철 하면 2월까지, 늦어도 3월이면 마무리가 되는데 올해는 겨울이 따듯해서인지, 수온 상승 여파 때문인지 3월 초순인 현재까지도 산지에서 줄가자미가 대거 판매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줄가자미가 많기로 유명한 산지라면, 경상남북도 해안가 도시입니다. 울산을 비롯해 포항, 부산, 진해, 통영 등이 있고 비록, 내륙이지만 대구에서도 줄가자미를 만나 보기 쉬운 곳입니다. 가격은 소폭 하락했는지 1kg(작은 것 3마리) 6만 원까지도 흥정이 됩니다. 때문에 줄가자미를 맛보시려면 앞서 거론한 도시의 수산시장을 찾아가 3월 중에 맛보시길 권합니다. 


단단한 피질이 몸 전체에 난 줄가자미

#. 줄가자미와 돌가자미, 혼동해선 안 돼
줄가자미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언으로 불립니다. 특히, '이시가리'로 알려졌는데요. 줄가자미를 지칭하는 이름을 열거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줄도다리
2) 거칠가자미
3) 사메가레이(일어명)
4) 이시가리(국적 불명)

여기서 줄가자미와 가장 많이 혼동되는 것이 돌가자미입니다.


등쪽에 뼈가 도드라진 돌가자미

돌가자미도 다양한 명칭이 있는데요. 

1) 돌도다리
2) 뼈도다리
3) 이시가레이(일어명)
4) 이시가리(국적 불명)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4)번 '이시가리'란 말입니다. 이시가리는 돌가자미의 일어명인 ‘이시가레이(イシガレイ)’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여기서 ‘이시(イシ)’는 단단한 돌을 의미하고, ‘가레이(ガレイ)’는 가자미를 의미하기에 그대로 직역해도 돌가자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한국으로 건너와 부르기 쉽게 변형되면서 ‘이시가리’가 되었고, 이는 엉뚱하게도 줄가자미에 더 많이 붙게 됨에 따라 동남부 해안 일대에서는 줄가자미란 말 대신 ‘이시가리’란 말이 메뉴판에 표기되곤 합니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돌가자미를 이시가리라 취급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시가리(イシガリ)’란 일본에서도 조차 사용되지 않은 국적 불명의 명칭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줄가자미와 돌가자미에 혼용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한 문제는 꽤 심각합니다. 


돌가자미회

Kg당 10만원 이상 호가하는 ‘이시가리’란 소문만 듣고 시장을 찾았지만, 먹게 된 것은 돌가자미인 경우도 수두룩 합니다. 줄가자미와 돌가자미의 가격 차이는 무려 2~3배. 

비단 가격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시가리’란 말은 줄가자미와 돌가자미의 구분을 흐리는 원흉으로 지적되면서 앞으로는 사용을 지양해야 할 순화어의 대상입니다.


줄가자미회

이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주어야 할 곳은 줄가자미를 취급하는 횟집(메뉴판 표기)을 비롯해 어업인과 상인, 수산업 종사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들이 앞장서서 우리말을 써주면, 지금의 세대는 물론, 후세에도 줄가자미와 돌가자미라는 구분이 명확한 명칭을 쓸 것이라고 믿습니다. 


쇠줄의 질감을 닮은 줄가자미

한편, 줄가자미란 말의 어원은 ‘쇠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실제로 줄가자미 등에는 딱딱한 피질이 몸 전체에 났는데 이것이 마치 쇠줄처럼 거칠기 때문에 붙은 말이며, 돌가자미는 가자밋과 어류 중 유일하게 비늘이 없는 가자미로 등에는 돌처럼 단단한 뼈가 2~3줄 난 것이 특징입니다.

돌가자미의 제철은 11~12월(남해), 2~4월(서해)로 나뉘며, 줄가자미는 11~3월까지 이어집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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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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