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 먹으면 흡사 버터나 우유 맛이, 조림은 한없이 부드럽고, 구이는 입에 살살 녹으면서 깨가 쏟아질 만큼 고소한 병어. 그런 병어를 장바구니에 담으려면 반드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격표. 어른 손바닥만 한 병어 한 마리가 4~5천 원. 조금만 커도 마리 당 만 원 이상을 호가하기에 쉽사리 지갑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맛은 천상인데 가계 부담으로 자주 맛보지 못하게 되는 비운의 생선이기도 합니다. 


병어의 모습

#. 병어가 비싼 이유
현재 국내로 유통되는 병어는 대부분 자연산입니다. 자연산은 어획량에 따라 가격이 조절됩니다. 어획량이 단 기간에 집중되면 그 기간 동안에는 가격이 내려갑니다. 반대로 어획량이 부진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 폭등이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는 병어가 비싼 이유를 전부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실 병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생선입니다. 병어의 뛰어난 맛을 일찌감치 알아챈 중국과 쿠웨이트에서는 자체적으로 양식에 성공해 일부는 내수용으로, 일부는 수출용으로 판매합니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도 서식하는 탓에 베트남, 인도 같은 국가에서도 즐겨 먹었던 생선이었죠.

그러다 보니 병어의 남획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번져 향후 안정적인 공급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특히, 중국과 쿠웨이트인들의 병어 사랑은 남다릅니다. 중국의 경우 철산강과 광서성 지역에서 병어를 양식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산 병어가 활발히 수입됐는데 당시 납 검출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1년에는 31톤에 그쳤고, 지금은 수입이 되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먹는 병어는 대부분 국산이고 자연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병어를 양식하면서도 한국으로부터 많은 양을 수입해갑니다. 현재 국산 병어 중 상당량이 중국으로 수출하며 좋은 값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남은 물량으로는 내수용을 감당하기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요. 수출로 외화벌이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내수가 줄면서 생기는 가격 부담을 국민이 지는 것이 맞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지방기를 품은 겨울 병어의 뱃살회  

#. 병어의 제철은 언제? 
병어의 제철은 여름과 겨울 두 차례라 볼 수 있습니다. 병어의 산란 시기는 5~8월 사이. 즉, 산란을 준비하는 여름 병어가 제철을 맞이하며 이때 가장 많이 소비됩니다. 해마다 5~6월이면 목포, 신안에서 병어 축제를 열 정도(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취소).

병어 산란기가 5~8월로 알려졌지만, 비대해진 알집이 주로 7~8월 경에 발견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내의 병어 산란 성기는 5~6월보다 7~8월에 가까우므로 초여름의 병어가 맛있는 이유일 것으로 봅니다.  


한편, 겨울 병어도 여름 병어 못지 않게 지방기를 품고 있습니다. 주로 먼바다에서 잡힌 병어이며, 제주도 이남으로 월동을 나는 병어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병어는 따듯한 물을 좋아하는 아열대성 어류입니다. 계절적 요인으로 수온 등락폭이 큰 한반도 연안에서는 주로 봄부터 여름 사이 북상하며, 이보다 수온 등락폭이 적은 남중국해에서는 세부 지역마다 상이하나 연중 잡히는 어류입니다. 


덕대(위)와 병어(아래) 

#. 병어와 덕자의 차이
병어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덕자’입니다. 어부와 상인들은 ‘덕자’ 또는 ‘덕자병어’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덕자가 곧 병어입니다. 즉, 같은 어종을 학계에서는 병어라 부르고, 어부와 상인들은 덕자라 불렀던 것입니다. 조금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잡히는 병어과 어류를 살피면 병어와 덕대 두 종류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표준명 병어(학명 : Pampus argenteus)
지역 방언으로는 덕자 또는 덕자병어라 부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먹는 ‘병어’ 그 자체이며, 제철은 5~7월이고 또 이때 어획량이 집중됩니다. 

2) 표준명 덕대(학명 : Pampus echinogaster)
지역 방언으로는 병어 또는 참병어라 부릅니다. 제철은 역시 5~7월이며, 또 이때 어획량이 집중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학계에서 말하는 병어를 어민들은 ‘덕자’라 부르면서 정작 덕대는 ‘병어’ 또는 진짜를 일컫는 ‘참병어’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맛에 대한 평가에서도 표준명 병어보다는 덕대(참병어)가 낫다는 게 중론이나, 어찌 됐든 학계에서 정한 이름과 어민이 부르는 이름이 서로 반대여서 병어와 덕자를 둘러 산 이름 논쟁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고흥의 위판장에 경매 중인 대형 병어(일명 돗병어)



#. 병어와 덕대는 어떻게 구별할까?

두 어종 모두 농어목 병어과 어류로 최대 성장 크기는 60cm까지 자란다고 보고됩니다. 다만, 치어일 때는 덕대가 병어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며, 성체로 자란 이후에는 병어가 덕대보다 먼저 최대 성장에 도달하므로, 병어 전문점에서나 맛봄 직한 대형 병어(흔히 이것을 돗병어, 덕자병어라 부름)는 표준명 병어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이 사항입니다. 그렇다면, 병어와 덕대는 어떻게 구분될까요? 

왼쪽은 병어, 오른쪽은 덕대

그림에서 알 수 있듯 각 부위별 차이가 존재합니다만, 일반인이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눈썰미를 가지고 살핀다면 1번부터 4번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두 어종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어의 넓은 파상 주름

1) 이마의 파상 주름 
병어과 어류는 이마 부근에 파상 주름이라는 독특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판독 난이도는 1)~4)번 중 가장 난해하지만, 동정의 정확도는 99%에 가까우니 알아 두면 유용할 것입니다. 병어의 파상 주름은 보시다시피 측선(옆줄) 아래로 침범하며, 제법 광범위하게 걸쳐 나타납니다. 


덕대의 좁은 파상 주름

반면에 덕대는 측선 아래로 깊이 침범하지 않으며, 그 주름이 좁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병어(덕자)의 부위별 지느러미

2) 옆지느러미 각도 
병어는 옆지느러미 각도가 옆으로 누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덕대(참병어)의 부위별 지느러미

덕대는 위로 섰습니다.  

3) 배지느러미의 깊게 파인 홈 
병어의 배지느러미는 어릴 때(자랭이 병어) 작다가 성장하면서 점차 커집니다. 이때의 배지느러미는 커진 만큼 안쪽으로 깊숙한 홈이 파입니다. 반면, 덕대는 배지느러미가 짧고 그 홈도 깊지 않습니다.  

4) 꼬리 지느러미 길이 
일반인이 가장 쉽게 판별할 수 있는 특징은 꼬리지느러미입니다. 위에 설명할 것 중 난이도는 가장 쉬우나 꼬리지느러미를 잘라버리거나 훼손된 경우 판독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병어의 꼬리지느러미는 위와 아래의 길이가 거의 일치합니다.

반면, 덕대의 꼬리 지느러미는 위보다 아래쪽이 더 길게 나타납니다. 어린 덕대의 경우 아래쪽 꼬리지느러미 끝이 검은색을 띠는데 이는 성장함에 따라 사라지므로 병어와의 차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병어를 손질하는 모습
부드럽고 고소한 병어 구이

#. 병어와 덕대의 맛 차이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두 어종 모두 조리거나 구워 먹었을 때의 맛은 비슷하며, 거래되는 가격은 크기에서 오는 차이가 압도적입니다. 다만, 같은 크기로 한정하면 덕대(참병어)가 병어(덕자)보다 조금 더 비싼 편입니다. 물론, 이러한 차이도 지역마다 상이하며, 무엇보다도 조업량에 따라 시세가 변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차이라 보기는 어렵고, 상대적으로 수시로 변화합니다.  

회 맛은 전반적으로 덕대가 낫다는 평가입니다. 덕대는 병어와 달리 껍질이 얇아서 껍질 째 썰어먹기 좋은 횟감입니다. 그래서 작은 씨알은 덕대가 낫고, 몸길이 30cm가 넘어가는 대형급은 병어를 통째로 포 떠서 부위별로 맛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부위 별로 뼈째 썬 병어회

병어와 덕대는 모두 잡히자마자 금새 죽어버리므로 활어 유통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때문에 병어과 생선은 선어 횟감으로 유통되며, 이를 적당히 얼렸다가 얇게 뼈째 썰어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병어과 어류가 원체 살이 부드럽고 무르기 때문에 냉을 받쳐 써는 것도 이유가 됩니다만, 특유의 버터 맛이 강하고, 또 뼈째 얇게 썰어야 제맛이 나므로 한 차례 얼렸다 써는 것입니다. 이는 얇게 썰어야 맛이 나는 차돌박이와 비슷한 원리라 보면 되겠습니다. 

드물게나마 시장에 입하되는 활병어(부산 다대포 어시장)

한편, 부산 등 지역 시장에서는 한시적으로 활병어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 경우 싱싱한 맛으로 즐길 수는 있지만, 살이 무르기 때문에 오히려 얇게 써는 데는 방해가 되므로 활병어는 조림으로 추천합니다. 


물렁뼈 씹는 맛이 각별한 병어 대가리

공통적으로 두 어종은 머릿고기가 맛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병어와 덕대는 생선 대가리를 뼈째 썰어 회로 즐기는데 워낙 뼈가 물렁뼈에 가깝다 보니 오도독거리면서 씹히는 식감과 고소함이 배가 됩니다. 흔히 알려졌듯 병어나 덕대회는 초고추장도 좋지만, 버터 같은 느끼한 맛이 있으므로 이를 잡아주는 쌈장 또는 양념 된장이 잘 어울리며, 삼겹살을 기름장에 찍어 먹듯 기름장과의 조합도 곧잘 어울립니다. 

병어돔이라 불리는 무점매가리

#. 병어로 둔갑되는 병어돔의 정체
수산시장을 둘러보면, ‘병어돔’이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활어를 곧잘 봅니다. 이는 병어가 나는 산지(남해안 일대)라도 예외는 아닌데요. 대부분 살아있으며, 크기는 어른 손바닥보다 약간 큰 것부터 몸길이 50cm가 넘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평균적인 가격은 kg당 3만 원 전후인데 ‘활병어’라며 가끔 4만 원을 부르는 경우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병어돔은 병어와 사촌에도 끼지 않은 전혀 다른 어류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병어는 농어목 병어과에 속하는데 병어돔이라고 불리는 이 생선의 정확한 이름은 농어목 전갱이과에 속하는 ‘무점매가리(영명은 라운드폼파노)’입니다. 즉, 전갱이와 친척벌이며 단지 얼굴이 병어와 닮았다고 하여 병어돔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무점매가리는 중국산 양식으로 통영 인근 어시장과 유료낚시터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작명은 대게 고급 어종의 대명사인 돔을 붙임으로써 좀 더 고가에 판매하기 위한 상술에 불과합니다. 이쯤에서 무점매가리의 원산지가 궁금해지는데 사실 무점매가리는 중국에서 양식되며, 일부는 유료낚싯터에 방류돼 낚시 대상어로 즐기고, 일부는 수산시장에 입하됩니다.

무점매가리는 남중국해에 서식하는 아열대성 어류인데, 수온과 환경이 맞지 국내 해역에서는 잘 잡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장에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중국산 양식 무점매가리(중국명 황라창)이며, 이것이 각 산지에서는 병어돔이란 말로 포장돼 그리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판매된 것입니다.

인터넷 포털에 병어돔을 치면, 이와 관련된 리뷰가 쏟아집니다. 대부분 동해나 남해안 일대 시장에서 kg당 3~4만원에 먹었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먹은 이들도 대부분 병어의 고급 품종 정도로 여기는 것으로 보아 ‘병어돔’이라는 작명 상술이 어느 정도 먹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골든폼파노도 시장에선 병어돔이란 말로 취급된다
샛돔(돌병어)

이 밖에도 병어와 닮았지만 병어와는 상관없는 골든폼파노, 병치매가리, 샛돔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골든폼파노는 대부분 외래산이고, 병치매가리는 가끔 자연 혼획된 것입니다. 샛돔은 농어목 샛돔과에 속한 어류로 주로 제주도 해역에서 잡혀 유통되는 맛이 좋은 물고기입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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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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