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줄로만 알았던 블랙푸드의 인기가 이제는 유행이 아닌 일상의 식탁에 오를 만큼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오징어 먹물로 색을 입힌 스파게티면이 판매되고, 레스토랑에는 먹물 파스타와 리조또를 찾는 이들이 꾸준합니다.

 

이미 외국에선 오징어 먹물을 이용한 갖가지 요리들이 선보이는 가운데 국내도 검색만 하면 먹물만 담은 제품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있었으니..

 

“오징어 먹물은 먹으면서 문어 먹물은 왜 안 먹을까?”

이 단순한 질문은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먹으면서 문득 떠오르게 됩니다.

 

 

오징어

 

문어와 함께 점착력이 낮은 편인 주꾸미의 먹물

#. 쓰임새부터 달랐던 오징어와 문어의 먹물 차이
먹물은 바다에서 포식자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입니다. 둘 다 포식자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 먹물을 분사하는 것은 같지만, 점착력이 달라 분사 시 모양에서 적잖은 차이가 납니다.

 

일단 오징어는 점착력이 높습니다. 즉, 끈적끈적한 먹물이 분사되기에 수중에서도 잘 뭉치며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먹물로 하여금 포식자로부터 교란을 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 사이 오징어는 신속하게 도망갈 수 있게 됩니다.

 

반면, 문어의 먹물은 점착력이 낮아 분사하자마자 흐트러집니다. 수중에선 일종의 연막탄처럼 퍼지며 그 틈을 타 문어는 바위틈으로 숨습니다.

 

 

오징어 먹물빵
먹물 리조또
먹물 입힌 굴 튀김

인간에게 있어서 ‘점착력’은 요리의 활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점성이 강한 오징어 먹물은 밥알이나 면발에 잘 흡착되어 예부터 파스타나 리조또에 널리 쓰이는데요.

 

반면에 문어의 먹물은 점착력이 낮아 재료에 붙질 못한 채 금세 풀어집니다. 염색과 식용에서 문어의 먹물은 적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먹는 먹물 파스타나 먹물 리조또는 대부분 오징어(또는 갑오징어) 먹물을 이용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동해 대문어
먹물을 소스로 활용한 주꾸미 볶음

#. 문어 먹물도 식용 가능해
문어 먹물이 점착력이 낮아 음식 활용도가 낮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못 먹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오징어 먹물처럼 면발에 잘 붙지만 않을 뿐, 흡착이 필요 없는 소스로는 이용 가치가 충분합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는 크게 대문어와 참문어를 식용하는데요. 동해 대문어(피문어)의 경우 활용되는 범위가 숙회에 집중돼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덩치만큼 내장과 먹통도 크기 때문에 손질 즉시 버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먹통이 손질 중에 터지기라도 한다면 도마를 비롯한 주변 식자재를 검게 물들이게 될 뿐 아니라 음식이 지저분해지므로 특별한 용도가 아닌 이상 식용하는데 인색한 편인 것은 사실입니다.

 

 

여수 돌문어
돌문어통찜

한편, 서해와 남해, 제주도 일대에서 주로 나는 참문어(돌문어)는 다 자라도 5kg 내외, 보통 1kg 내외가 많이 잡힙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바닷가 사람들은 통째로 삶아다 내장 통찜을 해 먹기도 하는데요. 이때는 먹통도 따로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식용합니다.

 

 

특유의 요오드와 감칠맛이 좋은 오징어 먹물찜
보기엔 그래도 먹물이 주는 각별한 맛이 있다

#. 오징어와 문어 먹물, 먹으면 뭐가 좋을까?
음식에 먹물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독특한 비주얼도 한몫 하지만 먹물만이 선사하는 특유의 감칠맛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이트 와인을 예로 들면, 가끔 소금 친 듯한 짭짤한 맛이 날 때가 있는데요. 이는 소금이 들어가서가 아니라 포도가 바다의 미네랄 성분을 머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스페인의 리아스바이사스 지역은 바다와 가까운 곳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알바리뇨 품종은 짭짤한 미네랄리티가 특징입니다. 먼 옛날 바다였던 지층이라 땅 속에 조개껍데기나 산호 등의 화석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인데요.

 

그곳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자란 포도다 보니 익으면 익을수록 토양의 영양분이 뿌리를 통해 과육에 맺히는 것입니다. 이 짭짤함을 다른 말로는 ‘요오드하다.’, ‘미네랄리티가 좋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징어 먹물이 사용된 파스타나 리조또는 사용되지 않은 일반 재료에 비해 뭔가 다른,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짠맛이 나지는 않지만 먹물이 주는 감칠맛과 고소함, 특유의 요오드한 맛이 매력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먹물이 주는 영양 성분과 효능 때문입니다. 오징어 먹물을 이루는 주 성분은 멜라닌(Melanin)이며, 그 외에 리조팀, 뮤코다당류, 타우린, 글루타민산염 등의 다양한 화합물이 들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효능은 향균 및 항암 작용으로 이미 여러 차례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가 있습니다.

 

특히, 오징어 먹물의 뮤코다당류 일렉신에는 종양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는데요. 1990년대 초 일본 아오모리산업연구센터 마쓰에하지메 박사 연구팀은 쥐에게 암세포를 주사했을 때 2~3주 뒤에 모두 죽었지만, 매일 오징어 먹물 속에 들어 있는 일렉신 화합물을 0.2mg씩 주입한 결과, 65%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일렉신은 암세포를 공격하는 대식세포를 활성화해 항암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유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항균 능력과 세균 용해서 효소인 리조팀이라는 방부 효과가 있어서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했을 때 제거하는 효과를 가집니다. 오징어 먹물은 토마토와 함께 먹었을 때 부족한 비타민 A를 보충할 수 있어 궁합이 잘 맞습니다.

문어의 먹물 또한 일정 부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여성의 생리불순 해소에 도움을 주며, 혈관계 질환 개선, 피로 해소, 시력향상, 두뇌발달, 노화방지, 당뇨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들 먹물은 빨리 상하기 때문에 반드시 신선한 것을 사용해야 하며, 당장 사용하지 못할 때는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되 최대한 빨리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담이지만 오징어와 문어 먹물이 때론 쓸모없는 일(?)에 쓰이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문어의 문은 ‘글월 문(文)’입니다. 종이에 매끌매끌 잘 써지니 잉크 대신 붓글씨용으로 그만인 것입니다. 지금도 문어 먹물은 음식에 잘 안 쓰이는 대신 서예용으로 제품이 판매됩니다.

 

그런데 오징어 먹물이든 문어 먹물이든 붓글씨를 쓰면 당장은 잘 써져도 며칠만 지나면 흐릿해지며, 1년만 지나도 사라집니다.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일러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고 비꼬았습니다. 옛 관인이 나라 간 교류 목적으로 지키지 못할 조약을 맺을 땐 이 먹물만큼 좋은 잉크(?)는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대목입니다.

※ 영양학적 내용에 대한 참고 및 인용
하이닥헬시라이프 칼럼(글쓴이 :윤새롬 건강의학기자) 

 

※ 글,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tvN<유퀴즈 온 더 블록>, tvN<난리났네난리났어>,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 JTBC <백종원의 사계>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 <수산물이 맛있어지는 순간>, <귀여워서 또 보게 되는 물고기 도감(감수)>가 있다.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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