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3대 바리가 있습니다. ‘다금바리’, ‘붉바리’, 그리고 해녀를 의미하는 ‘비바리’가 그것인데요. 오늘 소개할 붉바리는 한국에서 가장 값비싼 생선회 중 하나인 자바리(제주 방언 다금바리)와 늘 비교 대상이 되는 고급 어종입니다. 붉바리는 어떤 어종이며, 언제가 가장 맛있을까요? 

 

 

붉바리

#. 희소성을 지닌 최고급 어종
붉바리는 자바리와 같은 농어목 바리과에 속한 어류입니다. 살이 단단하고 차져서 맛이 좋기로 유명한 여러 그루퍼 중 한 종류인데 최대 성장 크기는 60cm 정도로 바리과 어류 중에선 비교적 작은 편입니다. 자바리와 마찬가지로 수온 20도 전후의 따듯한 해역에 서식하며, 수심 50m 전후에서 크고 작은 암초가 발달한 곳에 서식합니다.

 

붉바리의 상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온몸이 붉다는 점과 붉은 반점이 산재해 있는 것. 어린 붉바리일수록 붉은 반점이 크고 또렷하다가 성체로 성장할수록 반점이 작아지며, 선명한 붉은색에서 적갈색으로, 몸통 채색은 적색에서 밝은 노란색까지 다양하며, 각 부위별 지느러미 역시 갈색에서 노란색까지, 눈동자는 영롱한 에메랄드 빛깔을 내면서 고급 어종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낚시로 잡힌 몸길이 30cm 정도의 자연산 붉바리 

국내에서는 주로 전남 고흥과 여수, 통영 앞바다에 서식하는데 최근 십여 년 동안 치어 방류 사업이 활발한 탓에 개체 수가 제법 불어난 상황입니다. 하지만 자바리의 산지라 할 수 있는 제주도에서는 오히려 자바리보다 귀한 탓에 kg당 가격이 자바리보다 조금 더 비싸게 거래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자연산 전문 횟집에서는 각종 반찬과 요리를 포함한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한 상 차림이 kg당 20~21만 원에 판매된다면, 붉바리는 kg당 23만 원 혹은 그 이상(시가)으로 이는 붉바리의 희소성에 절로 고개가 끄떡여지는 대목입니다. 

 


#. 양식으로 대중화의 길이 열려
붉바리의 맛과 상업적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고급 음식점에서 내어주는 회는 물론, 초밥과 탕, 찜 등등.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국내의 서식지 특성상 개체 수가 적을 뿐 아니라 남획에 의한 자원 고갈이 염려되는데, 이러한 시점에서 붉바리의 자원을 늘리고 양식에 성공해 대중화의 길을 열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2013년에는 제주도가 붉바리 수정란의 대량생산을 성공시켰지만, 수온에 민감하고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에는 붉바리의 완전 양식이 성공하게 됩니다. 양식장 인근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수를 이용해 수온 조절이 용이해진 것입니다.

 

2020년에는 무게 약 1.5kg까지 키워내면서 상품성을 갖추었고, 지금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붉바리의 대중화는 시간 문제입니다. 참고로 양식 붉바리의 가격은 자연산 대비 약 30~40%가량 저렴해 가격 경쟁력도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여름에 잡은 붉바리 회 

#. 붉바리는 언제 가장 맛있을까? 
기본적으로 어류의 제철은 산란을 준비하며 살과 알을 찌우는 기간을 뜻합니다. 암컷은 난소(알집)를, 수컷은 정소(이리)를 찌우기 위해 먹이활동을 왕성히 하며 몸집을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산란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같은 길이라도 비육 상태가 좋아 무게가 많이 나가며, 소위 ‘빵’이라 불리는 체고가 높아집니다. 

 

근육에는 지방이 끼고, 내장에는 내장 지방이 끼게 됩니다. 항문과 창자 주변에는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래회충’입니다. 고래회충을 보유한다는 것은 고래회충의 2차 숙주인 작은 물고기를 충분히 섭취했다는 증거입니다.

 

때문에 해당 어류가 맛이 좋은 시기 즉, 지방이 많이 끼는 제철은 알을 방사하는 산란철을 기점으로 대략 한 달 전에서 3~4달 전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9~10월이 산란철이면 제철은 5~8월이 되는 셈입니다.  

 

 

회절현상(오로라)이 나타날 만큼 적당히 잘 숙성된 붉바리 회 

두산백과에서는 붉바리의 산란철을 7~9월로 표기하고,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6~8월로 표기합니다. 때문에 붉바리가 가장 살이 찌고 맛있는 제철은 그보다 두세 달 전인 5~8월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가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류의 산란은 위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같은 종이라도 저위도에 사는 개체는 수온이 따듯한 해역에 서식하므로 산란이 빠르고, 고위도에 사는 개체는 수온이 상대적으로 차갑기 때문에 산란이 늦습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대마도와 일본 규슈 등 남부 해역에 사는 붉바리는 앞서 거론한 두산백과와 국립생물자원관의 데이터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국내 붉바리 최대 서식지인 고흥과 여수 앞바다는 상대적으로 고위도이기 때문에 산란이 조금 늦습니다. 

 

 

한여름 나로도 위판장에 입고된 자연산 붉바리들 

한 예로, 고흥 외나로도 및 탕건여, 초도, 평도, 거문도 일대에 서식하는 붉바리는 산란과 월동을 나기 위해 살을 부쩍 찌우는데 그 시기가 9~10월 경입니다. 이 시기 붉바리 낚시를 하게 되면 6~8월보다 훨씬 큰 대물을 낚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월동을 앞두고 빅 사이즈의 붉바리가 근해로 북상해 활동 영역을 넓힘과 동시에 살을 찌우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기가 붉바리의 맛이 절정인 제철이 됩니다.

 

정리하자면 제주도를 비롯한 이남에서는 5~8월 정도가 제철이고, 그보다 고위도인 남해안 일대는 7~10월 정도가 제철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붉바리는 제철과 비제철의 경계가 모호한 편으로 산란 직후가 아닌 이상 맛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은 편입니다. 

 



#. 붉바리와 능성어, 자바리의 관계
국내에서 잡히는 3대 바리라면 자바리와 붉바리 말고도 능성어까지 거론됩니다. 능성어 역시 농어목 바리과에 속한 고급 어종입니다. 비록, 일찌감치 양식에 성공한 탓에 자바리와 붉바리보다 흔하고 가격도 조금 더 저렴하다는 특징이 있지만, 여타 생선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세 어종의 관계를 짚어보는 이유는 일부 지역에서 붉바리와 능성어를 같이 취급하는 등 구분을 흐리기 때문에 이 참에 분명히 해줄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고흥 방언으로 꽃능성어라 불리는 붉바리 

1) 붉바리
고흥, 여수, 외나로도의 일부 상인은 붉바리를 꽃능성어 또는 능성어라 부르면서 능성어와 구분 없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제주도에서 일부 상인이 구문쟁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구문쟁이는 능성어를 일컫는 제주 사투리로 붉바리와는 구분됩니다. 

 

 

능성어(제주 방언 구문쟁이) 

2) 능성어
제주에서는 통상 구문쟁이로 불리는데 문제는 거문도에서 이 어종을 다금바리로 부르고 있어 혼란이 야기되기도 합니다. 한때 능성어를 다금바리로 판매하다 적발된 사례가 많았고, 다금바리를 이용한 상술이 문제 되었는데 거문도의 경우 상술적 의도라기보다는 원래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에 지금도 횟집 메뉴와 수산 쇼핑몰에서는 다금바리란 이름을 당당하게 올리고 판매되는 실정입니다. 

 

 

자바리(제주 방언 다금바리) 

3) 자바리
제주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어종을 다금바리라 불렀습니다. 도감상에 기술된 표준명 다금바리가 따로 있으나 국내에서는 어획량뿐 아니라 유통량이 전무할 만큼 극소량이므로 표준명 다금바리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따라서 국내에서 다금바리라고 한다면 99.9%가 자바리를 뜻합니다.  

 

자바리는 가끔 동해 왕돌초와 거제 및 통영 앞바다 정치망에 잡혀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붉바리 산지인 고흥 앞바다는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고, 서식지 환경 때문인지 개체 수가 적은 편입니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에는 자바리가, 고흥 앞바다에는 붉바리가 많이 서식하는 편입니다.

 

 

갯바위 낚시 중에 잡힌 붉바리

#. 환상의 물고기, 붉바리를 낚시로 잡는다? 
붉바리도 제주 자바리와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암초가 발달한 해역에 서식하는데 수중 굴 지형이 발달한 곳이라면 어김없이 붉바리가 서식합니다. 이곳에서 붉바리가 잡혀 사라진다 해도 새 주인이 보금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붉바리가 서식하는 포인트는 이 드넓은 바다에서도 어느 한 지점으로 수렴되기 마련입니다.

 

붉바리 낚시는 이러한 지점에 배가 진입하면서 시작됩니다. 참돔을 노린 타이라바와 감성돔을 노린 갯바위 크릴 미끼에서도 종종 손님 고기로 올라오지만, 붉바리를 노리기에 가장 좋은 낚시는 살아있는 왕새우를 이용한 외수질 낚시입니다.  

 

 

붉바리 미끼로 쓰이는 흰다리새우

왕새우는 인근 양식장에서 기른 흰다리새우로 뇌를 다치지 않게 꿰어 바닥까지 내립니다. 그러면 흰다리새우는 일정 시간 동안 살아서 헤엄치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주변의 포식자를 자극하게 되며 만약, 그 근처에 붉바리가 있다면 걸려들 확률은 대폭 높아지게 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추를 바닥까지 내리면 릴 2~3회를 감아 바닥에서 약 50cm 정도 띄웁니다. 바닥 수심은 배가 조류를 타고 흘러감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40~50초에 한 번씩 바닥을 찍어보면서 미끼가 바닥층에서 놀 수 있게 꾸준히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민어 낚시 도중에 올린 씨알 굵은 붉바리 

입질은 아래에서 솟아오르듯 새우를 낚아채는데 입속에 넣게 되면 그대로 수직 강하해 굴 속으로 처박기 때문에 낚싯대가 고꾸라지듯 시원하게 이어집니다. 주요 포인트는 외나로도, 탕건여, 초도 권에서 행해지며, 평도와 거문도에서도 행해집니다. 일본 나가사키와 대마도에서는 타이라바와 비슷한 인치쿠 게임을 통해 붉바리와 능성어를 노리기도 합니다.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부레에 공기를 빼는 장면 

붉바리가 잡히면 수압 차로 부레가 부풀기 때문에 그대로 어창에 넣으면 허우적 대다 죽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생존률 및 보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피징(부레에 공기를 빼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피징을 하면 철수 때까지도 어창에 살면서 활력이 둔화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렇게 살려둔 고기를 전처리해서 숙성하게 되면 숙성회를 만들기에도 유리해집니다. 

 

 

명실상부 최고의 횟감인 붉바리
붉바리회
붉바리 뱃살 회 

#. 붉바리는 회와 곰탕이 최고
붉바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횟감 중 하나입니다. 자바리(제주 다금바리)와 마찬가지로 청초하고 깨끗한 느낌의 흰살생선이 특징이며, 씹는 식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평생 어부로 살아 회를 즐기지 않는다 하여도 붉바리 만큼은 입에 댈 만큼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활어회보다 적당히 숙성한 것이 더 맛있었습니다.

 

회 다음으로는 소위 ‘지리’라 불리는 곰탕입니다. 맑은탕이라고도 하지만, 붉바리의 뼈와 대가리를 푹 끓이게 되면 마치 소고기 곰국과 비슷할 만큼 뽀얀 국물이 나오기 때문에 출산이 임박한 산모에게 좋습니다. 만약, 회를 칠 선도가 아니라면, 비늘과 내장을 깨끗이 제거해 찜을 하는 것이 붉바리 맛을 오롯이 느끼는 방법일 것입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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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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