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달고 부드러운 대게

우리 국민이 대게를 먹기 시작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 기생충으로 화제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사진이 SNS를 뜨겁게 달굽니다. 

 

 

 SNS에서 화제가 된 기생충(출처 불분명)

사진 속 장면은 누가 봐도 처참합니다. 검은 실 지렁이 같은 것이 여기저기 널브러졌고. 또 어떤 사진은 살과 함께 뒤엉켜 있습니다. 킹크랩 속살에서 수십 마리 어쩌면 수백 마리 일지도 모를 기생충이 대거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주제는 대게에 붙은 알의 정체인데 왜 갑자기 킹크랩 속 기생충이 문제가 됐던 걸까요? 당시 사진을 올린 이는 킹크랩 살에서 기생충이 나왔다고 주장했고, 이를 본 누리꾼들은 대게 껍질에 붙은 알 때문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킹크랩에서 기생충이 나왔다는 사진(출처 : 일본 네이버 마토메)

사실 킹크랩과 대게는 엄연히 다른 종이지만, 이러한 전문 지식이 없는 누리꾼들에게는 킹크랩과 대게의 구분이 모호하였고, 평소 대게 껍질에 붙어 있던 검은 알에서 기생충이 부화하여 껍질을 뚫고 들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성 글은 한 기자의 손을 거쳐 기사로 보도되기까지 했습니다.

 

 

대게 껍질에 붙은 정체 불명의 알

#. 대게 껍질에 붙은 알은 기생충의 알일까?
지금도 수산시장에 가면 대게 껍질에 덕지덕지 붙은 검은 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했고, 또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이 알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부 비위 약한 소비자는 알이 없는 대게를 골라 먹기도 했습니다. 

 

대게 껍질에 붙은 알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기생충의 알일까요? 만약에 기생충이라면 대게 껍질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실은 거머리였다.” 

 

 

갓 부화된 게거머리 새끼

게 껍질에 붙은 알의 정체는 ‘바다 거머리류’로 흔히 게 껍질에 붙는다고 하여 ‘게거머리’라고 불립니다. 국내에는 게 거머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대게로 유명한 영덕 군청에도 대게에 관한 내용만 있을 뿐, 게 거머리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소비량을 자랑하는 일본의 경우, 일찌감치 게거머리에 관한 연구가 진행한 탓에 지금은 게 거머리의 생태가 어느 정도 밝혀졌습니다. 일본에서는 게 거머리를 '카니비루(カニビル)'라 부릅니다.

 

여기서 '카니(カニ)'는 게를 의미하고, '비루(ビル)'는 빌딩을 뜻하나, 거머리를 뜻하는 '히루(ヒル)'가 탁음이 되면서 카니비루로 발음합니다. 엄연한 해양생물종이기에 'Notostomobdella cyclostoma'이란 학명도 가지며, 이와 비슷한 종류가 바다에 서식합니다.



#. 거머리 알은 꽃가루, 대게는 꿀벌
게거머리는 번식을 위해 알을 낳는데 그 장소가 주로 암초(바위) 같은 딱딱한 장소입니다. 암초가 많은 곳에는 마치 따개비처럼 게 거머리 알도 덕지덕지 붙기 마련인데, 대게 껍질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기에 거머리는 알을 붙이고 이동함으로써 넓게 자손을 퍼트리기 좋은 수단이 됩니다. 

 

다시 말해, 거머리 알이 꽃가루라면, 대게는 꽃가루를 나르는 꿀벌인 셈입니다. 게 껍데기에서 부화한 새끼 거머리는 다시 대게를 떠나 바닷속을 떠돌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당히 헤엄치는 생선에 붙게 되는데요. 동그랗게 생긴 흡착판을 생선에 밀착해서 피와 체액을 빨아먹으며 삽니다. 

 

그런데 대게 등껍질은 딱딱하기 때문에 체액을 빨아먹지 못하며, 껍질을 뚫고 들어가 몸속에 기생하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게거머리는 일반 거머리와 비슷한 환형동물이므로 숙주의 몸속에서 기생하며 번식하는 기생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대게는 물론, 그 대게를 먹는 인간에게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찐 대게나 킹크랩에서 발견된 검은 실지렁이 모양은 기생충이 아닙니다.

 


#. 그렇다면 그 실지렁이는 뭐였을까?
SNS에서 화제가 된 사연을 들어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구입한 킹크랩을 증기로 찐 것이 아니라 끓는 물에 푹 담가서 삶았는데”라고. 결론부터 쓰자면. 이것은 기생충이 아닌, 변성된 게살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게살이 검게 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알려졌습니다.

1) 게살이 검게 변성
2) 혈액의 흑변 현상

첫 번째 원인은 게살이 검게 변하는 단백질 변성을 꼽습니다. 게를 찌지 않고 물에 담가 삶을 때, 그리고 신선하지 못한 게를 잘못 삶았을 때 종종 생깁니다. 특히, 수입산 킹크랩은 운반선으로 며칠씩 가져오는데 어획 시점이 오래되면 일부 게는 죽어버려 선어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선도가 떨어진 게를 증기로 찌지 않고 끓는 물에 삶게 되면 살을 검게 된다고 보고됩니다.

두 번째 원인 또한, 위 내용과 연관이 있습니다. 게의 혈액은 사람 혈액과 달리 투명합니다. 자세히 보면 살짝 푸른기가 도는데, 이는 구리 성분이 든 '헤모시아닌(hemocyanin)’에 의한 것으로 응고된 상태로 열이 가해지면 멜라닌(검은색 색소)으로 변합니다. 

 

SNS에서 문제가 된 사진은 혈액의 흑변보다는 게살의 변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혈액의 흑변은 응고된 피의 변성이므로 굳은 피가 몰린 곳에서만 나타납니다. 결론은 어느 쪽이든 기생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대게에는 있고, 킹크랩에는 없는 알
대게에 붙은 이 거머리 알을 우리말로 ‘난낭’이라 부릅니다. 난낭은 게거머리의 서식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일단 난낭은 킹크랩에는 거의 붙지 않습니다. 서식 환경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대게에는 무조건 붙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대게는 한반도 해역에서 유일하게 동해에만 서식합니다.

 

동해 깊은 바다의 차디찬 수온에서 서식하는 냉수성 게로, 이보다 위도가 높은 베링해, 캄차카 반도에 더 많이 서식합니다. 그래서 국내로 유통되는 대게는 크게 국산과 러시아산으로 나뉩니다.

 

 

러시아산 대게

우선 러시아산도 해역에 따라 차이는 있는데 대체로 난낭보다는 따개비류의 부착생물이 많이 붙고(이것도 마가단 같은 특정 해역에서 조업된 대게에 따라 따개비류의 부착 여부가 다름), 국산의 경우는 지질 구조나 서식 환경에 따라붙기도 하고 붙지 않기도 합니다.

 

 

게 거머리 알이 부착된 국산 대게
게 거머리 알이 없는 국산 대게

진흙이나 모래 환경에서 잡힌 대게는 거머리 알이 많이 붙고, 바위 같은 암초 지대에 살다 잡힌 대게는 알이 많지 않거나 거의 없습니다. 같은 동해에 서식하는 대게라도 물밑 지형에 따라 알의 부착 여부가 다른 것입니다.

 

 

대게 중 최고 상품성을 가진 박달대게

#. 난낭이 많이 붙은 대게는 살이 꽉 찼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대게 수명은 약 15~17년으로 추정됩니다. 평생 탈피(허물)를 반복하며 몸집을 불리는데요. 그럴 때마다 살집이 좋아지면서 상품성도 높아집니다. 그러니 수명이 10년 이상 된 대게는 크기도 크지만, 살이 꽉 차고 맛도 있는 최상품, 이른바 ‘박달대게’라 불립니다.

 

무조건 크다고 박달대게가 아닌 속살이 꽉 차고 오래 산 대게가 최상품이라는 겁니다. 오랫동안 탈피와 성장을 반복하다 보니 박달대게에는 거머리 알이 제법 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달대게에는 무조건 난낭이 붙어 있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좀 전에도 썼듯이 대게는 서식 환경과 조업 구역에 따라 난낭이 붙을 수도, 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난낭이 하나도 없는 대게라도 속살이 꽉 찰 수 있습니다.

 

 

대게의 난낭

같은 난낭 대게에 한정해서 따지면, 아무래도 난낭이 안 붙은 대게가 탈피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이 덜 찼을 확률은 있습니다. 하지만 대게 수율을 난낭으로만 보고 판별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대게의 탈피 시기는 다소 복잡한데요. 평균을 산출해 보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행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게 금어기가 6월부터 11월까지입니다.(일부 지역은 10월까지) 이 시기는 대게를 잡을 수도, 상품으로 팔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활어 상태로 구매하는 대게는 대부분 10월 이후부터 이듬해 5월까지라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대게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탈피를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금어기가 풀리는 11~12월까지 최대 2~3달가량 시간이 있습니다. 2~3 달이면 생체 주기가 빠른 게 거머리가 알을 붙이고 부화까지 하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난낭이 없다고 물렁게라 볼 수는 없고, 수율이 떨어진다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난낭이 많이 붙은 대게는 적어도 해당 어획분에 한해서는 탈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 지표이므로 수율에서 손해 볼 확률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찐 대게(이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결론을 맺자면, 거머리 알은 거머리 알일 뿐 우리와 대게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볼 수 있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됩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tvN <난리났네 난리났어>,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 <수산물이 맛있어지는 순간>, <귀여워서 또 보게 되는 물고기 도감(감수)>가 있다.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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