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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킹크랩이라면 매우 값비싼 바닷게로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는 진미로 여겼습니다. 한창 값이 나갈 땐 kg당 8~9만 원. 둘이서 먹으면 최소 2kg은 구입해야 하니 2kg짜리 킹크랩 한 마리만 구매해도 16~18만 원. 여기에 찜비와 주류, 식사를 포함하게 되면 20만 원을 훌쩍 넘기니 지갑 열기가 망설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오늘 소개할 킹크랩은 기존에 알려진 킹크랩보다 무려 50% 가까이 저렴하면서도 지금부터 초겨울까지 드시기에 가장 좋습니다. 다름 아닌, 시장에선 ‘하나사키’란 이름으로 알려진 ‘가시투성왕게’가 그것입니다.
#. 킹크랩과 대게의 차이
킹크랩은 우리 말로 ‘왕게’입니다. 국내에 유통되는 왕게과 종류는 총 4종이 있습니다.
1) 왕게(일명 레드 킹크랩)
2) 청색왕게(일명 블루킹크랩)
3) 갈색왕게(일명 브라운킹크랩)
4) 가시투성왕게(일명 사나사키크랩)
앞서 열거한 왕게과 게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꽃게 및 대게와는 전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결과는 다리 개수로 나타났죠.
꽃게를 비롯해 민꽃게(박하지), 톱날꽃게(청게), 민물 참게, 대게, 홍게 등은 집게발을 비롯한 다리가 10개이며, 앞서 거론한 왕게 종류는 집게발을 비롯한 다리가 8개입니다.
다리가 8개인 절지동물로는 거미가 있고, 바다에 서식하는 게 종류는 바다와 지상을 오가는 코코넛크랩과 게고동(흔히 소라 껍데기를 터전으로 삼는 소라게) 등이 있습니다. 이들 왕게(킹크랩) 종류는 꽃게나 대게보다 차라리 코코넛크랩과 게고동과 가까운 사촌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몸 구조가 비슷합니다.
가끔 우락부락하게 생긴 2kg 이상의 거대한 대게를 보는데요. 표면에는 각종 부착생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인상도 험악해 자칫 킹크랩과 혼동되곤 하나, 결과적으로는 다리 개수만 세어도 대게와 킹크랩을 혼동할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 왜 하나사키라 부를까?
사실 국명인 가시투성왕게가 도입되기까지는 이렇다 할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저 일본에서 유명한 바닷게이다 보니 일본에서 불리는 명칭을 그대로 차용해 쓰는데요. 하나사키 크랩은 이름 그대로 하나사키 항이라는 네무로 지역 최대 항구이자 하나사키 크랩이 가장 많이 잡히는 최대 산지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네무로는 홋카이도(북해도) 최동단에 위치한 곳으로 계절에 따라 왕게(레드 킹크랩), 청색왕게(블루 킹크랩), 털게, 대게 등 상업적 가치가 높은 바닷게들의 집결지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설은 하나사키 크랩이 익으면 빨갛게 변하는 모습이 마치 ‘꽃이 핀 것과 같다.’고 하여 ‘하나사키’로 불렀단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국명인 ‘가시투성왕게’란 이름을 쓰겠습니다.
#. 가시투성왕게의 제철과 가치
적어도 한국에서는 킹크랩이 사시사철 유통되므로 이렇다 할 제철 개념은 희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유통되는 킹크랩은 대부분 러시아나 노르웨이산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이는 가시투성왕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암컷은 연중 포획 금지이므로(노르웨이는 예외, 러시아만 해당) 올해처럼 코로나로 인해 공급량에 차질이 생기지 않은 이상 수컷 킹크랩은 사계절 내내 맛볼 수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물론, 이 중에서 살이 가장 많이 차고, 수율이 좋아 실패율이 적은 시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한겨울에서 봄까지 인데요. 레드 킹크랩의 경우 한겨울이 제철이라 할 수 있고, 블루 킹크랩은 늦겨울에서 봄까지 제철을 맞이합니다. 브라운 킹크랩은 계절 상관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산발적으로 들어오는 편이며, 킹크랩 종류 중에서는 유통량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시투성왕게도 사계절 내내 볼 수 있지만, 여름부터 유통량이 늘어나며 가을과 초겨울에 절정을 이룹니다.
보통 가시투성왕게의 제철을 여름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산에 한해서입니다. 일본은 가시투성왕게의 최다 소비국입니다. 산지인 홋카이도는 자국 내 내수용으로 쓰일 뿐 아니라 러시아산까지 수입합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러시아산을 수입해 오는데 북해도보다 더 고위도인 북태평양산이므로 제철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조금 더 넓게 보면 초겨울인 12월까지라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국내로 수입되는 러시아산 가시투성왕게가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교했을 때 품질과 크기 면에서 열세라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로 유통되는 가시투성왕게는 다른 킹크랩 종류에 비해 크기가 작으며, 크기가 작은 만큼 맛과 품질에 대한 만족도 역시 레드 킹크랩이나 블루 킹크랩에 못 미친다는 점입니다.
물론, 시장 논리상 수요가 많이 몰리는 소비국으로 좋은 품질이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렇게 따지면 연어와 꽃게, 참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산물들도 상등급은 일본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 가격 대비 맛이 나쁘지 않음에도 다른 킹크랩보다 맛이 떨어진다며 평가절하되는 가시투성왕게는 시작점부터 동등한 조건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고르는 법
가시투성왕게는 5~7월 사이 산란하는데 이때 태어난 유생은 최소 7년 이상 자라야 상품성을 지니게 됩니다. 우리가 먹는 가시투성왕게 또한 갑장이 8~9cm 정도로 이는 최소 7~8년 이상 자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다른 킹크랩 종류와 비교해 보면 30~0% 정도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큰 것은 대부분 일본으로 들어가고 남은 것이 국내로 들어오다 보니 다른 킹크랩과 비교하면 크기에서 이미 열세인 것입니다.
레드 킹크랩의 경우 작은 것은 2kg 남짓하며, 큰 것은 4kg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2~3kg대가 가장 많이 유통됩니다. 이에 비해 가시투성왕게는 1.5~2.5kg이 가장 많은 편이며, 약 2kg 전후인 것이 먹기가 좋습니다.
가시투성왕게의 구매 적기는 7월로 이 시기 유통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데(해마다 조업 상황마다 다를 수 있음) 다만, 이 시기에 유통되는 가시투성왕게는 탈피 직후 새 옷을 입은 지 얼마 안 된 개체들도 섞여 있습니다. 등 껍데기를 눌러보면 단단하지 않고 물렁한 느낌이 드는데 이런 것은 고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안정적인 맛과 수율을 원한다면 최소 8월은 돼야 하며, 9~12월 사이가 적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도 껍데기가 물렁한 개체가 있으니 손으로 눌러서 단단하고 특히 넓적다리를 눌렀을 때 푹푹 들어가지 않아야 하며, 단단한 탄력감이 들어야 좋은 게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팁은 탈피한 지 오래된 게(묵은게)를 고르는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눈썰미라면 고르기가 쉽지 않지만, 뒤집었을 때 배딱지 부근이 거뭇거뭇하거나 다른 부착생물로 인해 지저분해 보이면서 껍데기가 단단하다면 그 게는 탈피한지 오래된 게로 살 수율이 높을 확률이 큽니다.
사실 가시투성왕게는 온몸에 뾰족한 가시로 뒤덮고 있어서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만큼 괴팍한 생김새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품질 좋은 가시투성왕게는 그 가시 조차도 살이 차서 다릿살을 분리했을 때 그 많은 가시 하나하나에도 살이 꽉 차서 살에 가시가 돋아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수율 100%인 가시투성왕게가 바로 그런 모습인데 아쉽게도 국내 수산시장에서는 그런 품질을 접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편입니다.
#. 가시투성왕게의 가격
킹크랩의 가격은 그때그때마다 변동성이 매우 큰 수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Kg당 최저 4~5만 원에서 최고 8~9만 원까지 치솟기 때문에 수산시장에 가기 전에는 필히 그날의 시세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올해는 킹크랩 가격이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크게 떨어지지 않아서 지역에 따라 6~8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가시투성왕게는 킹크랩보다 평균 40~50% 저렴하였으니 이는 레드 킹크랩의 반값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8월 말 기준 레드 킹크랩이 kg당 7만원 전후였다면, 가시투성왕게는 4~4.5만원 가량 하였으며, 이 가격이 계속 유지가 될지 크게 변동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 시세는 계절 및 공급량에 따라 상이하니 구매 전에 시세를 미리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게장이 맛있는 가시투성왕게
혹자는 특유의 향이 강해 호불호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가시투성왕게의 서식지 환경과 먹잇감에서 비롯되는데요. 다른 킹크랩 종류와 달리 수심 100~400m의 비교적 얕은 바다에 서식하면서 다시마를 비롯해 갑각류, 요각류 등을 잡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를 먹게 되면 그 향이 오롯이 맛으로 반영됩니다. 때문에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게살을 선호한다면 레드 킹크랩을, 진한 향과 버터 같은 고소한 풍미를 좋아한다면 블루 킹크랩을, 쫄깃하면서 탄력 있는 게살과 녹진한 장맛을 선호, 그러면서 가성비가 높은 바닷게를 찾는다면 오늘 소개한 가시투성왕게가 제격일 것입니다.
게살의 맛은 같은 종이라도 잡힌 지역과 시기별로 차이가 납니다. 적어도 8월 말에 맛본 가시투성왕게에선 특유의 향이 느껴지지 않았고, 장맛은 레드 킹크랩보다 풍미가 진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이러한 장맛은 게장 비빔밥과 유분기가 있는 아보카도와 궁합이 좋고, 특히 아보카도를 이용한 게살 샐러드와 게살 크로켓, 된장국, 해물탕 등 단순히 쪄서 먹기보단 게살을 활용한 요리가 더 잘 어울리는 왕게 종류라 할 수 있습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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