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뱅이와 소라 독,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은 있습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식당에서 내주는 골뱅이 무침과 통조림을 이용해 왔기에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수산시장에서 직접 골뱅이와 소라를 사다가 삶아 드신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사진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하루는 속초로 여행 갔을 때의 일입니다. 수산시장에서 구입한 조개와 소라를 콘도에서 삶아 먹기로 하였습니다.

 

 

잘 삶아진 소라를 젓가락으로 콕 찍어 껍데기에서 빼냈습니다. 먹음직스러운가요?

 

 

소라 살을 빼내면 대개 이런 모양입니다. 큼지막한 육과 함께 뒤쪽에는 똥이라 불리는 내장이 있습니다.

 

 

육과 내장을 분리했습니다. 간혹 소라 똥을 즐겨 먹는 이들이 있는데 맛보기로 한두 점 정도 먹는 것이야 크게 상관없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이 역시 식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똥(내장)은 안 먹는 것이 좋으며 학술지에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입구를 틀어막는 딱딱한 뚜껑도 잘라냅니다.

 

 

문제의 독은 내장이 아닌 살 속에 있습니다. 육을 길게 반으로 가르면, '골'이라 부르는 침샘 기관이 있는데 이를 귀청이라고 부르며, 전문용어로는 '타액선'이라고 합니다. 이 타액선은 유백색의 덩어리로 반으로 가르면 양쪽에 한 덩이씩 자리 잡고 있는데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이 타액선에는 '테트라민'이라는 신경 독이 들어 있는데 익어도 분해되지 않으므로 익었다고 안전한 게 아닙니다.

 

한두 점 먹으면 그 증상이 미미하나, 여러 점 먹으면 사람마다 체질에 따라 증상이 다르지만, 가볍게는 어지럼증과 졸음을 유발하고, 심하면 구토와 설사, 식은땀 및 식중독 증세를 일으키며 위중하면 응급실을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어부 현종님은 타액선을 먹었을 때의 증상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맛은 혀끝이 싸하고 중독이 되면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어떤 사람은 수포가 생기기도 하며, 머리가 어질어질해 몸을 가눌 수 없고 눈과 혀, 그리고 남자의 그것이 안으로 당겨 들어가는 통증을 몹시 느낀다. 치료 방법은 딱히 없고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된다. 그런데 독이 있는 골뱅이는 대체로 맛이 좋다."

 

물론, 타액선을 먹어도 내성이 생긴 몇몇 사람들은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대다수 사람은 이 독에 내성이 없으므로 섭취를 삼가야 합니다. 삶기 전에는 타액선이 흐물흐물한 지방 덩어리처럼 생겼는데 익으면 위 사진처럼 굳어버리므로 초심자가 찾아내기도 제거하기도 훨씬 수월한 상태가 됩니다.

 

 

타액선을 빼 낸 자리는 저렇게 구멍이 뻥 뚫리게 됩니다. (이 소라의 타액선이 다른 소라나 골뱅이보다 큰 편입니다.) 타액선의 제거는 이것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소라, 어떤 골뱅이에 이런 타액선이 있느냐입니다.

 

자.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라, 골뱅이는 사실 한두 종류가 아닙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이 한반도 연안에 서식하며, 그중 다수가 술집이든 우리 식탁이든 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해 사람이 말하는 소라, 서해 사람이 말하는 소라, 제주 사람이 말하는 소라가 제각각 다릅니다. 그리곤 자기네 지역에서 나는 소라를 '참소라'로 제멋대로 부르고 있다는 데 함정이 있습니다.

 

 

#. 삐뚤이소라(타액선 제거해야 함)

예제에 사용된 소라는 '삐뚤이소라(표준명 갈색띠매물고둥)'입니다. 피투리라 부르기도 하며, 주로 서해와 동해에서 나는데 이 삐뚤이소라를 동해 사람들은 '소라', 혹은 '참소라'로 부릅니다. 좀 전에 보았듯 타액선이 클뿐더러 독성도 강해 반드시 제거하고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독성 강한 소라나 골뱅이를 팔 때는 상인이 손님에게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표준명 피뿔고둥(일명 참소라)

 

#. 참소라(타액선에 미미한 독, 그래도 제거하는 편이 낫다.)

서울, 수도권을 비롯해 서해 사람들은 위 사진의 소라를 '소라' 내지는 '참소라'로 취급합니다. 참소라(표준명 피뿔고둥)의 타액선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들어 있고 독성도 미미해 그동안 통째로 삶아 먹어도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성이 약하면, 어지러움과 졸음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될 수 있으면 제거하는 편이 낫습니다.

 

 

참소라(표준명 피뿔고둥)와 삐뚤이소라(표준명 갈색띠매물고둥)의 외형적 차이는 빗살무늬 여부로 쉽게 구분합니다. 참소라는 패각 입구에 빗살무늬가 나 있지만, 삐뚤이소라는 없으며 체형은 삐뚤이소라가 참소라보다 작고 날씬합니다.

 

 

참소라(표준명 피뿔고둥)를 썰면 이런 모양입니다.

 

 

표준명 소라

 

#. 뿔소라(타액선 없음)

제주 사람들이 말하는 소라는 대부분 뿔소라(표준명 소라)입니다. 뿔소라에는 타액선이 없습니다. 고로 내장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통째로 먹을 수 있습니다.

 

 

뿔소라를 썰면 이런 모습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1) 동해인들이 말하는 소라

삐뚤이소라(표준명 갈색띠매물고둥) → 타액선 독성 강함, 반드시 제거

 

2) 서울, 수도권, 서해인들이 말하는 소라

참소라(표준명 피뿔고둥) → 타액선 독성 약함, 가급적 제거

 

3) 제주인들이 말하는 소라

뿔소라(표준명 소라) → 타액선 없음

 

 

우리는 지금까지 소라 아니면 골뱅이라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소라는 단 한 종뿐이며, 골뱅이란 표준명을 가진 생명체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제주 뿔소라(표준명 소라) 한 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우렁이거나 고둥류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무슨 소라, 무슨 골뱅이라 제멋대로 이름 붙여 놓은 것이며, 자기네 지역에서 많이 나는 고둥류에다가 '소라' 내지는 '참소라'란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아예 고착화 되었습니다. 이런 지역 고착화가 때로는 잘못된 상식을 낳기도 합니다.  

 

 

 

엊그제 페이스북에서 타액선 제거 요령을 간단히 올렸는데 어떤 분이 '소라만 제거하면 된다.' 식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확인해 보니 동해 쪽에 거주하는 상인임을 알게 되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동해 사람들은 '삐뚤이소라'를 소라나 참소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말을 서해나 제주 사람이 읽으면, 각자 자기네 지역의 소라를 떠올릴 것이고 "이 외의 소라나 골뱅이는 독을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위험한 인식을 심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분은 백골뱅이(참골뱅이)만 취급해 오시다 보니 다른 골뱅이 종류에 독이 든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골뱅이도 종류가 매우 많습니다. 이것도 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짚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표준명 큰구슬우렁

 

#. 서해 골뱅이(타액선 없음)

서울, 수도권, 서해안 일대의 재래시장에서는 대게 이것을 골뱅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우렁입니다. 동해산 골뱅이보다는 다소 질긴 편이나 가격이 저렴한 편이고 육수가 잘 우러나와 포장마차 단골 메뉴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서해 아무 해수욕장에 가도 야간에 모래를 뒤집으면 저 우렁을 양파망 3~4개에 꽉 찰 만큼 담아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어 일부 해수욕장, 그중에서도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깊은 조간대에 서식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타액선은 표준명으로 무슨 무슨 고둥류에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큰구슬우렁은 내장을 제외한 나머지를 통째로 먹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어떤 골뱅이 통조림은 이것을 주원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왼쪽은 표준명 물레고둥(일명 백골뱅이), 오른쪽은 흑고둥(일명 논골뱅이)

 

#. 백골뱅이와 논골뱅이(독 없음)

골뱅이의 황제격인 백골뱅이(표준명 물레고둥)는 동해에서 참골뱅, 백고둥 정도로 불립니다. 독이 없어 내장을 비롯해 통째로 먹어도 되며, 맛도 가장 으뜸이고 가격도 비싸게 거래됩니다. 사진 오른쪽에 거무스름한 것은 논골뱅이로 똥골뱅, 흑고둥이라 불린다. 백골뱅이와 마찬가지로 그냥 먹어도 된다. 

 

참고로 저 사진을 찍은 장소가 노량진 수산시장인데 저 상인은 이 둘을 '백골뱅이'로 취급하면서 같은 가격에 팔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속반이 들이닥칠 것을 염두해 논골뱅이의 원산지 표기판을 뒤쪽에 눕혀 놓은 모습입니다.(여차하면 세우려고) 백골뱅이가 맛은 있다고 알고 왔는데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모른다면, 이와 같은 현장에서 논골뱅이를 백골뱅이 값을 주고 살 수도 있습니다.   

 

 

표준명 두드럭고둥

 

#. 두드럭고둥(독 없음)

골뱅이 독은 백골뱅이를 제외한 대부분 종류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따져가면서 먹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조금은 쉬울 수도 있습니다. 고둥과이면서 아이 주먹 이상 크다면 대부분 독이 있다고 간주하고 그보다 작으면 대체로 독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드럭고둥이 그러하며, 보말로 알려진 방석고둥이 그러합니다. 두드럭고둥은 제주도를 비롯해 동해 남부의 횟집에서 반찬으로 내는 작은 고둥류입니다.

 

 

 

#. 그 외 고둥류는 대부분 독이 들어 있다

이외에도 우리가 골뱅이나 소라라 여기는 고둥과 패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나팔골뱅이, 소라골뱅이(유동골뱅이 원료), 털골뱅이, 청골뱅이, 전복골뱅이 등등...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고 일일이 알고 먹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명칭은 모두 방언이라 표준명으로 무슨무슨 고둥으로 제각기 명명되어 있고, 이러한 고둥류는 살을 반으로 갈랐을 때 대부분 타액선이 있으므로 반드시 제거하고 먹어야 합니다. 

 

 

이 많은 종류의 골뱅이를 우리가 일일이 알고 먹지는 못한다

 

어느 지역에 가든 소라가 있지만, 학술적 의미에서 진짜 소라는 제주도 뿔소라 1종뿐입니다. 이 외에는 모두 고둥이며, 그것을 우리는 무슨 소라, 무슨 골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고둥과는 대부분 독이 있으므로 수산시장에서 직접 사다 드실 때는 잘 알고 먹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리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 타액선(독) 걱정이 없는 골뱅이 및 소라

1) 백골뱅이(참골뱅이, 백고둥이라 부른다.) 및 논골뱅이

2) 제주 소라

3) 큰구슬우렁(서해에서 골뱅이라 부른다.)

4) 그외 보말, 두드럭고둥 같은 작은 고둥류

5) 통조림

 

#. 타액선(독) 조심해야 하는 골뱅이 및 소라

1) 삐뚤이소라(피투리라 부르기도 한다.)

2) 피뿔고둥(참소라라 부르며, 독은 미미한 편이어서 어떤 이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3) 나팔골뱅이, 털골뱅이, 청골뱅이, 소라골뱅이, 그외 아이 주먹 크기 이상 되는 고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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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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