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는 안전이 최우선 순위죠? 안전상의 이유 그러니까 주의보로 결항만 내려지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출조를 강행합니다. 특히, 몇 달 전부터 미리 예약받는 선사 또는 동호회 같은 단체 예약의 경우 최근 조황이 좋지 못하다고 해도 예약한 것이 있기 때문에 취소가 어렵겠지요.

 

이 날은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이날 한조 크리에이티브(대표 박범수)는 저를 포함해 에깅 낚시라면 일가견이 있는 분들을 초청해 한치 낚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치 메탈 게임을 선도하는 쯔리겐의 몇몇 제품을 테스트할 겸, 나들이 겸 해서 말이지요. 

 

일단 출항은 가능한 날씨. 그런데 수온을 보고 출항 전부터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한치 낚시가 이뤄지는 무대는 주로 경남권. 그런데 수온이 심상치 않습니다. 거제도 연안은 15도 내외, 6월 중순에 접어든 수온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은 수치를 보여줍니다. 한치 메탈 게임이 이뤄지는 곳은 경남의 먼 바다인데요.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이동하는 한치 무리를 잡아내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수온의 반등폭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바로 지도에서 보이는 노란색인데요. 연안에 냉수대가 들어오면서 노란색 해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사진에 표기한 것은 한치 낚시가 이뤄지는 해역인데요. 보시다시피 가장 높아야 18도를 넘지 않습니다. 한치 낚시의 적정 수온은 최소 20도 이상이며, 22도는 넘어갈 때 적당한 조황을 보이는데요. 이날 지도 상에서는 그나마 'X3'구역이 나쁘지 않은 조황을 보일 것 같고, 그 외 지역은 뻔히 빈작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X3' 구역으로 나가는 것이 맞는데, 문제는 이 지역(대한해협)의 조류도 조류지만, 날씨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날 해상날씨를 살피면 바다가 뒤집어지고 있지요. 배가 버텨내지 못할 뿐더러 안전상으로도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경남 삼천포 항

그래서 선장과 긴급 작전을 짜야 했는데요. 출항지인 삼천포에서는 그나마 가까우면서 수온 20도를 보이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30분. 이제 막 출항한 배는 포인트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갑니다. 

 

 

 

다들 마음이 바쁜지 이미 채비를 마치셨네요. 저와 몇몇 일행은 채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요즘 날이 부쩍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포인트에 도착해도 해가 저물지 않을 텐데요. 아시다시피 한치는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두워져야 활동을 시작하니까요. 

 

 

이날 사용하게 될 한치 메탈과 슷테(쯔리겐의 메탈리스트 밤바)

하지만 채비까지 마친 분들은 이미 선실에서 자릴 잡은 상황. 저는 가는 풍경 찍고, 채비 찍고, 이것저것 촬영하다 보니 선실 바깥에 앉아갔는데 배는 전속력으로 달리지 바람은 불지.. 파도가 엄청나게 튀어버려 비좁은 선실로 급히 피신해야 했습니다. 

 

그 상태로 1시간 30분 동안 꼼짝없이 새우잠을 자며 가는데 멀미기도 올라오고, 졸리기는 엄청나게 졸리고, 아직 낚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겁니다. 속으론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이런 몸 상태로 어떻게 밤을 꼴딱 새지? 게다가 포인트 주변은 파도가 셀 텐데.. 

 

 

 

세존도

오후 8시경, 낚시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바위섬이 떡 하니 나타납니다. 이 섬의 이름은 '세존도'. 이곳 삼천포권에서는 원도권이라 할 수 있는 갈도보다도 더 아래에 위치한 섬인데 딱 봐도 여름철 난류성 어종이 득실댈 듯한 폼새를 하고 있습니다. 

 

가운데가 뻥 뚫린 독특한 지형을 하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하선이 금지됐지만, 과거에는 돌돔 민장대 낚시 포인트로 제법 명성을 떨친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존도의 물밑 지형은 생각했던 것보다 갯바위가 뻗어있지 않아서 사진에 보이는 돌섬이 전부인 곳. 때문에 물고기들이 넓게 퍼지지 않고 섬 주변에 붙어버려 포인트가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무늬오징어 팁런 같은 선상낚시가 성행하며, 아마도 제 생각에는 여름철 잠깐 벤자리나 부시리, 참돔 흘림 낚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세존도의 우람하면서 장대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낚시 시작도 하기 전에 갑자기 철수 명령이 떨어집니다.

 

"헉!"

 

파도가 세서 배가 풍을 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일 불어닥친 북동풍에 남해안 일대는 냉수대가 뻗친 상태고, 그 바람은 이곳 세존도까지 영향을 줘서 낚시가 어려운 상황. 배는 그 상태로 욕지도로 향합니다. 

 

 

이날 한치낚시를 위해 새 낚싯대와 릴까지 준비했는데.. 

욕지도를 바람막이로 삼은 배는 풍을 놓고 낚시를 개시합니다. 확실히 좀 전보다는 낚시하기가 좋은 여건. 바람은 여전히 불지만, 견딜 만하고요. 풍을 놓았기 때문에 파도에 의한 롤링이 현격히 줄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세존도에 비해 천국인지라 낚시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한치 낚시를 아는 꾼들이라면 이런 상황도 썩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다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대를 흔들어보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찼습니다. 이거 시작도 전에 복수전부터 계획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채비는 엔에스 사의 한치 메탈게임 전용대인 메탈리코에 수심계가 표시되는 베이트 릴, 그리고 쯔리겐의 메탈리스트 밤바와 이카스킷테를 사용했습니다.

 

 

낚시 시작한지 10분쯤 되었을까요? 저녁 먹으랍니다. 엇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싶어 시계를 보니 9시. 오랜만에 충무김밥으로 요기하고 일어나는데 아까와는 달리 힘이 솟구칩니다? 김밥 좀 먹었을 뿐인데 허기가 가시니 의욕도 생기고 체력도 재충전되는 기분도 들어서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밤 11시. 낚시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지만, 초반에 옆 분이 살오징어 새끼(화살촉오징어, 총알오징어) 한 마리 올린 것 외에는 조황이 없습니다. "허걱!" 제가 한치낚시를 자주 다녀보진 않았지만, 이런 날은 처음이네요. ^^; 

 

 

낚시 시작 두 시간에 새끼 오징어 한두 마리가 이 배의 전체 조황이라니. 이쯤이면 더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습니다만, 그래도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억울함이 들어서 말입니다. 오죽하면 이 와중에 한 마리 올리면 이 배에서 스타가 되겠단 생각에 더욱 열심히 흔들었을까요. 

 

왼손 오른손 번갈아가며 팔이 나가도록 흔들고 또 흔들고. 패턴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수심층도 다양하게 샅샅이 훑어본다는 기분으로. 하지만 바다는 대답이 없습니다. 수면에 가끔 호래기가, 수심 2m권에는 살오징어 새끼가 한두 마리 보였다 사라지는 것 외에는요. 

 

 

답답한 마음에 조타실로 가서 어탐기를 살펴봅니다. 수심은 약 45m. 수온은 18.4도. 중요한 것은 어군(화면에 흰점)인데 많이 잡히지 않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잠깐 선실에 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쯔리겐 FG의 이동수 씨가 한치를 낚아 보이고 있다

깨어나 보니 일행이 한치를 올리고 있는 게 아닙니까? 하지만 한치 조과는 이것으로 끝. 

 

 

이날 한치 낚시를 처음 하는 허창영 씨도 금쪽 같은 한치를 낚아 올렸다.

한참 지나자 또 다른 일행이 한치를 낚아 올립니다. 한치가 나오자 모두가 후속타를 기대하고 열심히 흔들었는데요. 이날 제가 직접 확인한 한치 조과는 이게 전부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하자 한치 낚시를 대하는 꾼의 태도도 시간대 별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사진은 오후 10시 상황. 

 

 

이 사진은 자정 무렵의 상황. 때는 한치 낚시가 한창이어야 할 6월 중순이자 새벽 1시경. 밤새도록 해야할 한치 낚시는 이례적인 냉수대의 폭격에 조기 철수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마릿수 장원이 작은 오징어 4마리였다.

낚시를 마무리하고 다른 분들의 쿨러를 확인하는데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이날 마릿수 장원이 새끼 살오징어(화살촉오징어) 4마리.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월간낚시21 원고 마감을 앞두고 쓰는 조행기가 이렇게 될 줄이야물론누군가에게는 겪고 싶지 않을 시행착오를 이렇게 보여 줌으로써 교훈이 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은 그저 쓰라리기만 합니다.

 

 

한치 물회

일행이 잡은 한치 두 마리는 제 쿨러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금쪽 같은 한치 두 마리를 이용해 한 마리는 물회를..

 

 

다른 한 마리는 회를 쳐서 가족과 함께 회포를 푼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결론을 짓자면 여러분, 냉수대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날 연안의 최저 수온으로 9도를 기록한 곳도 있는데 이 정도면 영등철 저리 가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년 같았으면 6월 중순에 한창 여름 어종으로 낚시가 성행할 텐데, 이날 거제도 주변 수온이 15도라면, 벵에돔 낚시도 전멸 수준이 아니었나 예상해 봅니다. 

 

물론, 이러한 저수온 현상은 일시적일 확률이 높습니다. 쿠로시오 해류가 어떻게 방향을 잡는지 또는 그 세력이 어디로 뻗어나가는지에 따라 한반도 해역의 수온이 결정되니까요. 아마도 이 글이 발행되고 며칠이 지나면 그때는 수온이 반등해 한치 낚시가 호조황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치뿐 아니라 어떤 어종으로 낚시를 계획하더라도 연안의 수온 정보는 꼭 참고하셔서 꽝 없는 즐거운 낚시가 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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