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철 먹는 황제 식재료, 갯장어

“갯장어를 아십니까?”

십중팔구는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주어를 바꿔서 

“하모를 아십니까?” 

대부분은 여기서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하모는 갯장어의 일본명. 그만큼 국내 수산업계는 일본 명칭이 생활 깊숙이 뿌리 박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갯장어 전문 식당 메뉴판에도 하모란 말이 많이 쓰이고, 더욱이 처참한 것은 네이버의 검색 결과입니다.

 

블로그 탭에 ‘갯장어’로 검색하면 25,000여 건, ‘하모’로 검색하면 무려 76,000만여 건이 검색될 만큼 일본어의 생활 속 침투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합니다. 비단, 일본 명칭이라서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 명칭이든 외래어보다 우리말이 우선이지, 우리말보다 외래어가 우선시되지는 않습니다. 자라나는 후세에게 바른말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갯장어를 통해 담아봅니다.

 

무엇보다도 일식과 수산 관련 종사자들이 솔선수범하여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주시길 당부하면서 여름 한철 먹는 황제 식재료, 갯장어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갯장어

#. 갯장어는 성질 포악한 대형 바닷장어  
갯장어는 뱀장어목 갯장어과에 속한 바닷장어의 일종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면 뭐든 물려고 할 만큼 성질이 포악한데, 심지어 뭍에 올려 두어도 사람을 공격할 만큼 유별난 공격성을 가집니다. 언뜻 보면 붕장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갯장어는 주둥이가 길고 뾰족하게 튀어나왔으며 이빨이 매우 날카롭습니다. 다 자랐을 때 크기 또한 차이가 납니다.  

 

갯장어의 이빨은 그야말로 '개 이빨'처럼 강하고 날카로우며, 무엇이든 눈앞에 움직이는 것이면 물어뜯고 비틉니다. 작은 것은 그대로 삼키는데 일단 삼키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안으로 굽은 이빨 때문에 장어류 중에선 가장 포악한 종으로 알려졌습니다.

 

 

붕장어

반면, 붕장어(아나고라 알려진)는 대가리 생김새만 봐도 갯장어와는 느낌이 다른 순둥이 같습니다. 둥글둥글한 주둥이와 뾰족한 주둥이의 차이만으로도 이 둘은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인데요. 다만, 붕장어도 갯장어만큼은 아니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기에 어설피 몸통을 잡으려다 몸을 90도로 비틀어 깨무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1m를 훌쩍 넘기는 대형 갯장어  

다 자란 크기를 비교하자면, 붕장어는 약 1m, 갯장어는 무려 2.2m로 크기에서 압도합니다. 주산지는 통영, 여수, 고흥, 목포에 이르는 남해안 일대인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암반이 많이 발달한 동해에서는 보기 드물다는 것입니다.

 

갯장어는 갯벌과 암반, 자갈 등이 고루 섞인 지형을 선호하는 탓해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어획되며 다른 장어류와 마찬가지로 야행성이라 밤에만 조업이 이뤄집니다. 500m 길이의 주낙을 사용하는데 미끼는 주로 전어를 썰어 뀁니다.  

 

 

한창 손질 포장 중인 갯장어(외나로도 공판장)

따듯한 바닷물을 좋아하기에 겨울에는 정착하지 않으며, 먼 바다로 월동을 나는 계절 회유를 합니다. 겨울에는 제주도 이남에서 월동을 마치고 연안에 붙기 시작한 5월경부터 10월까지 어획되기에 한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식재료로 통하는 것이지요. 

 

민물장어에 버금갈 만큼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가 있는데 특히, 고성 자란만과 고흥 외나로도 앞바다에서 잡힌 것을 각별히 여깁니다. 여름철 외나로도 공판장에 가면 어김없이 갯장어 경매와 손질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위판된 갯장어는 손질과 포장을 거쳐 식당으로 들어가며, 일부는 택배로 단골손님에게 배달됩니다. 

 

 

뼈째썰어 먹기 좋은 붕장어회

#. 붕장어보다 3배 비싼 갯장어, 맛과 영양소 차이는? 
우리가 주로 먹는 장어는 ‘뱀장어(민물장어)’를 비롯해 갯장어와 붕장어, 먹장어(곰장어) 등이 있습니다. 이들 장어류가 유독 보양식 재료로 인기 있는 이유는 장어의 끈질긴 생명력과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름에 한껏 오른 지방질과 풍부한 단백질 등 스태미나 식품으로서 그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붕장어와 갯장어는 모두 단백질과 비타민 A, 칼륨, 칼슘, 콜레스테롤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콜레스테롤과 칼슘은 갯장어가 붕장어의 절반 밖에 안 되면서, 단백질, 비타민 A, 칼륨은 붕장어보다 조금씩 우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 주요 영양성분(100g 기준) 
- 붕장어 
니아신 3.10mg, 단백질 15.70g, 비타민 A 360.00㎍RE, 칼륨 370.00mg, 칼슘 201.00mg, 콜레스테롤 160.00mg

 

 

일본인들에겐 절대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갯장어

- 갯장어 
니아신 2.90mg, 단백질 19.60g, 비타민 A 540.00㎍RE, 칼륨 490.00mg, 칼슘 84.00mg, 콜레스테롤 75.00mg 

 

맛은 샤브샤브보다 회로 먹었을 때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뼈와 가시인데 붕장어 가시는 얇고 뼈는 연해 일명 ‘세꼬시’라 불리는 뼈째썰기가 가능하지만, 갯장어는 뼈가 억세기 때문에 포를 떠서 썰어 먹습니다. 회로 먹었을 때 식감은 붕장어가 부드러운 편이고, 갯장어는 조금 더 단단한 편입니다. 

 

지방 함량은 붕장어가 갯장어보다 높은 편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서 선호되는 장어류에도 차이를 보이는데 한국은 지방이 많은 붕장어를 선호하고, 일본에선 담백하고 깔끔한 갯장어를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갯장어가 가진 의미는 한국에서 선호되는 붕장어 그 이상입니다. 뱀장어(민물장어)와 함께 국민 장어라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아 한때는 잡히는 족족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해마다 치솟는 인기와 제한된 어획량, 비싼 가격 때문인지 내수용 감당도 벅찰 정도입니다. 

 

 

손질 전의 갯장어들

#. 하모(ハモ)는 수탈의 역사
일본에서는 갯장어를 ‘하모(ハモ)’라 부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면 뭐든 물어대는 습성 때문에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ハ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모’란 명칭이 일본 명칭을 넘어 수탈의 역사였단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서두에서도 지적했지만, 국내에서는 갯장어보다 하모란 말을 더 자주 씁니다. 

 

이는 전형적인 일제의 잔재인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은 국내에서 잡힌 갯장어를 자국으로 모두 빼돌렸으며 그 과정에서 갯장어는 ‘수산통제어종’으로 지정돼, 우리 국민은 잡아도 먹을 수 없었고, 전부 일본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하모란 말도 이때부터 불러졌는데 9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생활 곳곳에 침투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모와 아나고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입니다. 

 

 

갯장어의 대표적인 음식 샤브샤브

#. 왜 황제 식재료인가? 
앞서 영양 성분 표시에서 보았듯 갯장어와 붕장어는 맛에서 미묘히 다르고, 영양소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괄목할 만큼의 차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가격은 2배 심지어 3배까지 벌어지기 때문에 과연 갯장어를 그 가격 주고 먹을 만 한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루는 갯장어 샤브샤브를 맛보기 위해 갯장어 샤브샤브로 유명한 가게를 찾았습니다. 맛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이 육수에 붕장어 살을 담갔다면 갯장어와의 맛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알아 차리기 어렵다.’에 소심한 한 표를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갯장어에 자부심이 강한 오너셰프의 생각은 어떨지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갯장어 대신 붕장어로 샤브샤브 한다면 과연 맛 차이가 있을까요?”

제게 돌아온 답변은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탱글탱글한 식감을 위해 얼음물에 살짝 담가 먹기도 한다

저는 당연히 갯장어가 낫다는 답변을 예상했는데, 단지 가격만으로는 맛의 우위를 점하기 어려움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갯장어는 감성으로 먹는 식재료일까요? 

 

뭐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맛을 수용하는 수용체가 다르고, 먹는 감성 또한 개인차가 있으니까요. 적어도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샤브샤브는 붕장어를 넣으나 갯장어를 넣으나 비슷비슷하다. 모르고 먹으면 미묘한 차이마저 느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를 테면, 갯장어의 식감이 붕장어보다 더 탱글탱글하고 깔끔한 맛이라는 것. 앞서 이야기했듯 지방함량은 붕장어가 우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갯장어의 살 맛이 깔끔하게 느껴지는 것도 납득이 가는 대목입니다.

 

 

미나리와 함께 폰즈소스에 찍어먹는 갯장어 샤브샤브의 매력인란

맛과 식감에서는 미묘한 차이지만, 붕장어와 갯장어의 가격 차이는 실로 엄청납니다. 한창 철인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의 시세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붕장어 가격은 kg당 25,000원 선, 같은 날 갯장어는 kg당 6~7만 원입니다. 이유는 많이 안 잡혀서. 붕장어는 사시사철 잡히며 어획량도 갯장어를 압도합니다.

 

결국, 5~10월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갯장어가 여름 한철 보양식을 찾는 수요 몰림에 공급량이 달리면서 가격 상승이 불가피했던 것. 귀한데 많이 찾으면 비싸고, 흔한데 덜 찾으면 저렴해지는 자연산 수요 공급 법칙에 매우 충실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갯장어는 정녕 황제 식재료가 아니란 말인가요? 황제 식재료 맞습니다. 단지, 귀하고 비싸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각종 채소와 함께 싸 먹는 갯장어의 고소한 회와 샤브샤브가 간절히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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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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