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면 떠오르는 횟감이 있습니다. 바로 ‘농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우럭, 광어, 참돔, 방어 등은 대부분 겨울이 제철입니다. 겨울 횟감은 차가운 바닷물로 인해 살이 탱글탱글할 뿐 아니라 봄 산란을 앞두고 한창 살을 찌우기 때문에 지방의 맛도 한층 뛰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비량이 많은 국민 횟감 3종(우럭, 광어, 참돔)이 그러하니 “역시 회는 겨울에 먹어야 제맛”으로 알고, 실제로도 겨울에 맛이 오르는 제철 횟감이 우리가 먹는 횟감의 과반을 넘습니다. 이러한 기류에 농어는 제대로 반기를 듭니다. 농어는 왜 여름에 맛이 좋은 제철 생선회로 통할까요? 농어도 종류가 있다는데 우리에겐 어떤 농어가 맛있을까요? 

 

 

주낙에 잡힌 점농어(전남 진도) 

#. 왜 농어인가?
농어는 한자어로 ‘노어(鱸魚)’라 적고 ‘농어’로 불렀습니다. 서유구의 『전어지(佃漁志)』에서는 ‘노(鱸)는 흑(黑)이다. 그 색이 검어서 글자가 노(鱸)자를 따른 것이다.’ 라 하였는데 후일에는 농어 노(鱸)자를 쓴 농어가 음차만 같을 뿐 실제로는 바닷물고기인 농어가 아닌 강에서 나는 꺽정이였음이 밝혀집니다. 

 

실학자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는 ‘농어(農魚)라고 부르는 것이 농어(鱸魚)라는 것은 전혀 옛날의 근거가 없다.’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닷물고기는 ‘농어(農魚)’이며, 꺽정이의 또 다른 말인 ‘농어(鱸魚)’와는 다른 종임을 고증했습니다.

 

 

농어

#. 농어도 종류가 있다고? 차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농어는 농어와 점농어, 넙치농어 등 세 종류로 분류됩니다. 이 중에서 농어는 우리나라 삼면에 고루 서식하며, 점농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남중국해 등 따듯한 해역에 서식합니다.

 

 

농어도 점이 있지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농어는 자갈 및 암반이 섞인 지질 그러니까 동해와 남해안 일대로 회유하고, 점농어는 갯벌이 섞인 자갈 및 암반층으로 회유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 일대와 서남해(진도, 고흥)에 주로 출현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중국산 양식 농어도 대부분 점농어인데 이 역시 서식지 특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점농어

농어와 점농어의 차이는 ‘점’의 유무입니다. 몸길이 30~40cm까지는 두 어종 모두 등과 등지느러미에 검은 반점이 고루 산재합니다. 다만, 농어보다는 점농어에 박힌 점이 크고 두드러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점농어는 검은 반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두 어종이 50cm를 넘어서면서 점농어의 검은반점은 더욱 또렷하게 자리 잡고, 반대로 농어에선 점이 사라지거나 흐릿해집니다. 

 

 

넙치농어

점농어의 분포지와 정반대 양상으로 보이는 종이 넙치농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서귀포와 가파도, 부산, 포항에서만 한시적으로 출현합니다. 난류성 어류로 일본 남부 지방에 더 많은 개체가 서식합니다. 어릴 때 강 하구(기수역)에 살다가 성장하면서 점차 깊은 바다로 빠지는 농어 및 점농어와 달리 넙치농어는 외양의 먼바다 섬 또는 도서 지역의 연안에서 유어기 생활을 하다 깊은 곳으로 이동하며, 농어보다 더 따듯한 바다에 고염도를 선호합니다. 

 

 

농어(위), 넙치농어(아래) 

겉모습이 농어와 흡사해 두 어종이 함께 잡히는 제주도 및 포항에선 농어와 넙치농어를 구별해야 할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두 어종 모두 겉모습은 흡사하나 체고는 넙치농어가 크며, 꼬리지느러미를 반듯이 폈을 때 농어는 가운데가 쏙 들어간 V자 라인이고, 넙치농어는 일자에 가깝습니다. 

맛은 저마다 자기 지역에서 나는 농어를 최고로 칩니다. 동해 및 경상도에서는 민농어를 치켜세우고, 서해 및 전라도 일대에서는 점농어를 치켜세웁니다. 마찬가지로 제주도와 일본에서는 넙치농어를 최고로 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세 어종을 모두 맛보았거나 인구 2천만 명이 밀집된 서울, 수도권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맛의 평가는 넙치농어 > 점농어 > 농어 순이고, 가격은 넙치농어의 경우 유통량이 거의 없어 시세 조차 형성되지 않았다면, 산지에서는 점농어가 농어보다 조금 비싸게 거래되는 편입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매점에서는 농어와 점농어를 따로 구분하지 않으며, 가격 또한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소금 복사열을 이용한 브란지노농어 구이(장소는 그리스 아테네 시가지의 한 레스토랑) 

최근에는 고급 일식당 및 레스토랑에서 일명 ‘브란지노농어’를 수입해 회와 초밥, 스테이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브란지노농어는 유럽농어로 대서양에 서식하는 종입니다. 현재 지중해에서 양식되며, 냉장 횟감으로 수입돼 고급 식당으로 납품됩니다. 회 문화가 없는 현지 유럽에선 소스를 곁들인 냉채의 일종인 ‘카르파쵸’와 소금 복사열을 이용한 ‘오븐소금구이’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작은 농어들(일명 깔따구 까지매기)

#. 농어를 일컫는 다양한 별칭들 
농어는 성장 크기에 따라 이름이 다른 ‘출세어’의 성격을 가집니다. 서해안 일대 및 전라도에서는 50cm 이하의 농어를 깔따구라 부르고, 경상도에서는 ‘까지메기’라 부릅니다.

 

 

몸길이 50cm는 넘어야 농어로 취급된다

‘농어’란 말은 몸길이 50cm가 넘어서야 비로소 붙는데 이는 일본에서 50cm가 넘는 농어에만 ‘스즈키’로 불리는 것과 같습니다. 스즈키는 농어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가장 흔한 성씨이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김이박’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성씨로 그만큼 농어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흔한 생선이란 의미입니다. 

 

 

농어 낚시인들의 꿈인 따오기

한편,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가장 잡고 싶은 크기인 80cm 이상의 대형급을 종류 불문하고 ‘따오기’라 부릅니다. 종류에 따른 방언도 있습니다. 동해 북부에서 포항, 부산, 거제, 통영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주로 ‘농어’란 종이 잡힙니다.

 

이 농어를 점농어와 구별하기 위해 ‘민농어’라 부릅니다. 한편, 서해 북부에서 목포를 거쳐 진도, 완도에 이르는 서남해 일대에서는 점농어가 주로 잡힙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점농어를 농어와의 차별을 두고자 ‘참농어’라 부르기도 합니다. 

 

 

6월의 자연산 농어회 

#. 농어가 가장 맛있는 철은 정확히 언제일까?
겨울이면 따듯한 바다를 찾아 남하하고, 이듬해 봄이면 북상하는 계절 회유를 합니다. 4월경이면 남해안 일대로 들어온 농어가 먹이 활동을 활발히 하다가 주낙에 걸려들고, 5~6월부터는 서해안 일대로 진출하면서 십이동파를 비롯한 군산 앞바다에 농어 낚시 시즌이 열립니다. 

 

어느 쪽이든 여름철을 중심으로 어획량이 증가하기에 제철도 여름으로 인식된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농어가 많이 잡히는 5~7월 경을 제철로 인식하지만, 농어의 비육 상태가 최고조에 이를 시기 즉, 산란철을 앞두고 몸집을 불리면서 가장 맛이 좋은 시기는 6~11월이고 그중 최고는 9~11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점농어는 농어보다 조금 이른 시기인 5~9월이 제철이고, 넙치농어는 9~2월까지 제철이라 할 수 있지만, 국내 바다 여건상 3~4월경 가파도에서 낚시로 잘 잡히는 탓에 넙치농어의 제철을 1~4월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 자연산 농어와 양식 농어의 차이
농어 종류는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가 외형적 특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조금만 눈썰미가 있으면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두 어종 모두 활어 상태라야 하며, 수조에 오랫동안 방치되지 않은 싱싱한 활력을 가진 점을 전제로 합니다. 

 

 

자연산 농어

자연산 농어는 꼬리지느러미가 흠집 없이 말끔합니다. 양식 농어의 꼬리지느러미는 헤지거나 흠집이 있어서 선이 말끔하지 않습니다. 자연산 점농어는 대가리와 등쪽으로 옅은 금빛이 나고, 배는 은백색 광택이 납니다. 자연산 농어는 등 쪽이 어둡지만 배 쪽으로 갈수록 밝아지며, 엷은 금빛으로 광택이 납니다. 

 

 

양식 농어 

반면, 양식 농어는 종류를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어둡고 짙은 회색 빛이 납니다. 양식으로 키워 출하되는 최대 크기는 몸길이가 약 70cm에 무게 4kg 정도인데 이 크기를 넘어선다면 대부분 자연산으로 봐도 무리는 없습니다. 농어는 회를 떴을 때도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린 농어는 맛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50cm가 넘어가는 개체일수록 자연산 농어가 맛있습니다. 

 

 

자연산 어린 농어에서 나타나는 검은 실핏줄

어린 농어는 자연산과 양식할 것 없이 텁텁한 회색 빛 근육에 검은 실핏줄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50cm가 넘어가는 성체부터는 회 빛깔에 적잖은 차이를 보이므로 육안으로 구별이 가능합니다. 

 

 

자연산 농어회의 희고 잡티 없는 살점 

자연산 농어는 희고 밝은 근육이 특징이고, 검은 실핏줄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혈합육은 마치  참돔과 비슷한 선홍색이라 그런지 우리 눈에 익숙합니다. 

 

 

양식 농어회에서 나타나는 검은 실핏줄 

반면, 양식 농어는 그보다 어두운 회색 빛 근육에 여전히 검은 실핏줄이 산재돼 있습니다. 검은 실핏줄은 햇볕이 들지 않은 한정된 공간에 가두어 사육하는 양식장 환경과도 관련이 있지만, 오랜 기간 갇혔을 때 나타나는 스트레스성 징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연산 성체라도 수조에 며칠 이상 가두거나 다양한 요인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양식 농어처럼 살빛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검은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경매를 위해 어창에서 꺼내지는 자연산 점농어 

#. 농어는 회로만 먹을 수 있을까?
농어회 외에 다른 음식이 딱히 떠오르지 않은 이유는 양식의 발달과 활어 유통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국산 자연산 농어는 가격대가 제법 나가는 고급 식당으로 나가고, 양식 농어는 일반 횟집이나 포차, 수산시장으로 나가는데 사실 우리가 먹는 농어회 대부분은 양식이고, 그중에서도 상당수가 중국산입니다.

 

중국산에다 양식이지만, 요새는 워낙 양식 기술이 발달한 탓에 2kg 이상인 양식 농어는 맛에서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숙성 농어회
따오기급 활농어 뱃살회

다만, 농어는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크면 클수록 맛있고, 특히 몸길이 60cm 이상 넘어가는 중대형급은 숙성했을 때 살의 탁도가 죽고 빛깔이 어두워지면서 단맛과 감칠맛이 매우 좋아지는 횟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를 제하면, 소금복사열을 이용한 오븐 구이와 서양권에서 인기 있는 농어 스테이크가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을 냅니다.

 

자연산 농어는 맑은탕이 어울리고, 양식 농어는 회를 뜨고 난 서덜을 이용해 매운탕을 끓이면 개운한 국물 맛이 납니다. 단, 농어를 이용한 탕감은 서식지에 따라 맛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습니다. 앞바다에 서식하는 농어보다는 먼바다에 서식하는 농어가 깔끔한 국물 맛을 내며, 기수역(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서식하는 농어는 흙내가 날 수 있으니 유의합니다. 

 

 

농어 회덮밥
농어 조림

이 밖에도 작은 농어(깔따구, 까지메기)는 회덮밥과 매콤한 양념을 곁들인 조림이 맛있고, 통째로 쪄서 마늘 기름을 부은 중식 스타일의 찜 요리도 일미입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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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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