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맛이 없어서 천대받는 생선은 뭐가 있을까?"

국내에 본격적으로 활어 양식이 발달한 것은 198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이렇다 할 양식이 없고 자연산에 의존해야 했기에 생선회는 제법 값비싼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굳이 바닷가가 아니어도 사철 생산되는 양식 활어가 지천인데요. 마음만 먹으면 대형마트, 횟집, 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데 최근에는 당일 배송으로도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지금이야 풍족한 먹거리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다양한 생선을 맛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한때 물메기(표준명 꼼치)나 아귀처럼 괴팍한 생김새로 버려진 생선이 오늘날 없어서 못 먹는 인기 어종이 됐는가 하면, 예나 지금이나 맛이 없어서 천대받는 생선도 있습니다.

 

특히, 낚시인들이 이 생선을 잡으면 처치를 못해 곤란을 겪기도 하며, 애초에 잡히는 것을 바라지 않기도 합니다. 과연, 얼마나 맛이 없길래 이렇게나 천대하는 걸까요? 오늘은 맛이 없어 천대받는 생선을 소개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면 오해도 풀어보겠습니다.

 

※ 지면이 길어 상, 하편으로 나눕니다.

 

 

숭어
가숭어

1. 숭어
숭어는 크게 두 종류로 숭어와 가숭어가 있습니다. 보통 숭어를 개숭어, 보리숭어라 부르고, 가숭어는 시장에서 참숭어, 밀치 등으로 불립니다. 생김새가 꽤 다르니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또렷하게 느껴지는 차이는 눈에 있습니다.

 

 

기름 눈꺼풀이 발달한 숭어

숭어의 눈은 검고, 가숭어의 눈은 노란빛을 띱니다. 숭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눈에 기름 눈꺼풀이 발달해 눈 전체를 뒤덮습니다. 그 시기가 11~2월 정도로 기름 막에 시야가 가려진 숭어는 곧잘 그물에 잡힙니다. 또한, 3~4월이면 진도 앞바다를 헤엄쳐 올라오는데 특히, 진도 울돌목에선 숭어 뜰채 잡이가 유명합니다.

 

 

노란색이 선명한 가숭어 눈

가숭어는 숭어와 달리 대량 양식을 하며 겨울에 출하해 전국의 횟집과 시장으로 유통됩니다. 한겨울 서남해에서 잡힌 거대한 가숭어(자연산)도 있지만, 수조에 몸길이 30~40cm의 고만고만한 크기가 여럿 들었다면 양식일 확률이 높습니다.

숭어와 가숭어 모두 겨울이 제철이며, 숭어의 경우 보리싹을 틔울 4~5월까지 제철을 맞습니다. 숭어가 제철을 맞으면 가격도 저렴한데 맛도 있어 인기가 많은 횟감입니다. 

 

그러나 일부 섬 지역 사람들은 ‘맛이 없다.’는 이유로 숭어를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백령도로 취재를 갔을 때 일입니다. 백령도의 먹거리와 수산물을 알아보던 중 어촌 마을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린 숭어 안 먹어” 그 말은 즉, 맛있는 고기가 지천인데 굳이 숭어를 먹겠느냐. 라는 것. 지역마다 숭어를 대하는 인식의 차이가 크고, 계절에 따라서도 숭어를 먹는 이들의 희비는 크게 엇갈립니다.

 

 

낚시로 잡힌 서해산 숭어

특히, 3~4월 산란을 마친 가숭어는 서해 및 서남해가 주 서식지로 5~6월이면 떼 지어 나타나 장관을 이룹니다. 이때 낚싯바늘에 곧잘 걸리는데 적어도 기름기가 빠진 서해산 가숭어는 특유의 흙내와 갯내가 나서 회는 물론, 익혀 먹는 음식으로도 선호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잡내를 가리기 위해 카레가루를 뿌려도 보지만
결국 실패한 서해산 가숭어 튀김

오죽하면 감성돔 낚시를 대비해 스파링 상대로 숭어가 제격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숭어나 가숭어 모두 여름이면 살이 맹해지고 맛이 빠지는 대신 비린내가 올라오고 특유의 갯내가 나기도 해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겨울에 밀치회
한겨울에 씹히는 맛과 단맛이 일품인 개숭어회

하지만 모든 숭어가 맛없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가을 숭어는 기름지고, 겨울 숭어는 달며,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 또한 일품입니다. “겨울 숭어 앉았다 나간 자리 뻘만 훔쳐먹어도 달다”란 말은 겨울 숭어가 돔 못지않게 맛이 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속담입니다.

밀치라 불리는 가숭어 또한 겨울이면 식감이 단단해지는 동시에 지방층이 끼면서 고소한 맛을 냅니다. 지역적으로는 종류 불문하고 남해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숭어가 가장 맛있고 그 다음이 동해 > 서해 순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황어

2. 황어
해마다 봄이면 동해안 일대를 휘젓고 다니는 황어 무리를 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안전 지역을 비롯해 경상도 및 섬진강까지 분포하는데요. 연어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살다 산란기가 찾아오면 남대천 등 동해안 일대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와 산란을 합니다.

 

이때 황어는 말그대로 짙은 황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혼인색을 띱니다. 산란이 임박한 황어 무리는 수중보를 힘차게 뛰어넘으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오며 거기서 알을 낳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대부분 바다로 나가지만, 간혹 강에 남는 육봉형도 있는 것이 꼭 송어(산천어)와 닮았습니다.

동해안 일대에서 낚시를 하다 보면 황어가 종종 잡히는데 크고 손맛이 좋아 물고기와 힘겨루기를 연습하기에 좋으나 살은 무르고 잔가시가 많아 발라먹기 힘든 데다 맛도 없어서 철저하게 외면받아온 생선 중 하나입니다. 그런 황어도 개천에 용 될 때가 있으니 그 시기가 바로 초봄입니다.

 

 

농어와 흡사하게 생겼지만 잉어과 어류로 다소 어벙하게 생겼다

황어는 벚꽃이 필 무렵 혼인색을 띄며 하천을 찾는데 이 시기에 잡힌 황어는 지방이 올라 횟감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초봄의 황어 맛을 아는 지역민들에 한해서 말이지요. 이 외에 황어 맛은 악명이 높으니 아직은 황어를 잡기 위한 별도의 조업도, 지역 특산물로써의 인기도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이렇게 황어가 맛으로 천대받고 있지만, 의외로 동해안 일대 포구나 시장에서 황어 파는 모습을 종종 발견합니다. 황어를 황어라 팔면 문제가 없는데 일부 상인에 의해 황숭어, 황농어라는 이름을 들이대면서 관광객에 바가지를 씌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자연산 모둠회로 세트를 구성할 때 값싼 황어를 끼워넣기도 하니 이 부분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용치놀래기

2. 용치놀래기
용치놀래기는 낚시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잡어 중의 잡어입니다. 어떤 어종이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그것을 잡기 위한 조업도 발달하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용치놀래기는 풍족한 어족자원을 가졌음에도 철저히 외면 받아왔습니다. 이유 중 하나는 크기가 작고 왜소하며 살점도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경제성도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용치놀래기는 다 커야 20cm 남짓한 소형 어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를 제외한 전해역에 서식하는데 특히, 부산과 거제, 통영, 삼천포에 많은 자원을 자랑합니다.

 

 

용치놀래기 수컷

용치놀래기는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무리지어 생활하는데 개체수도 많은 데다 탐식성도 많아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뭐든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에 낚시꾼이 던진 미끼를 곧잘 삼키고 올라와 뒤처리를 곤란하게 하고, 또 어떨 때는 작은 입으로 미끼만 따먹고 도망가기에 미끼 도둑이란 별명도 붙었습니다.

 

 

용치놀래기 암컷

그러다 보니 생활낚시가 아닌 이상은 잡자마자 방생하는 편이며, 회 맛도 인상적이지 않기에 식재료로서 경제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용치놀래기도 반전 매력이 있습니다.

 

 

놀래기과 어류를 사용한 물회

보통 암컷보다 수컷이 크게 자라며 봄부터 가을사이는 물회로 맛이 좋습니다. 일본에선 초밥용으로도 일가견이 있는데 모두 덩키 큰 수컷에 한해서입니다. 한편, 용치놀래기는 무리 중에 덩치가 크고 힘에 센 우두머리가 수컷을 맡는데 이렇게 낚시로 잡히거나 포식자로부터 사라지게 된다면, 여러 암컷 무리 중에 힘이 센 녀석이 수컷으로 성전환해 다시 무리를 이끄는 독특한 생활사를 가지기도 합니다.

 

 

용치놀래기 튀김
경남 일대 해안가와 인접한 횟집 수조에는 용치놀래기를 곧잘 볼 수 있다.

용치놀래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튀김입니다. 하루는 반찬으로 통째로 튀긴 용치놀래기 수컷을 맛보았는데 그 맛이 보리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빼어났습니다.

 

경남에선 이러한 용치놀래기를 술뱅이(또는 술배이)라 부르며 특히, 덩치가 큰 수컷을 각별히 취급해왔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용치놀래기는 사실 저평가된 생선이 아니었을까. 향후 용치놀래기를 활용한 음식이 좀 더 개발된다면 여름을 전후로 제철 생선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혹돔
호박돔

3. 혹돔 & 호박돔
혹돔과 호박돔은 ‘돔’이란 말이 붙지만 실제로는 도미과와 거리가 멀고 오히려 용치놀래기와 사촌입니다. 놀래기과 어류 중 가장 크게 자라는 대형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안 전 지역을 포함, 제주도에서 주로 서식하는 어류입니다. 혹돔은 최대 몸길이가 1m 이상이며 수컷의 경우 자라면서 이마에 혹이 발달합니다.

 

 

색채가 화려한 호박돔 수컷

호박돔은 색채가 화려한 쪽이 수컷이며 크기도 더 큽니다. 암컷은 수컷보다 작고 비교적 차분한 색을 보입니다. 두 어종은 크고 손맛도 좋지만, 살에 수분함량이 많다 보니 식감이 무르고 질척거려 인기 대상어가 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대물 돌돔을 사냥하는 돌돔 꾼들에게는 모처럼의 큰 입질에 한껏 상기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나타난 것이 돌돔이 아닌 혹돔이라면?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돌돔 낚시꾼이라면 다들 공감하실 텐데요. 그만큼 혹돔과 호박돔은 덩치만 큰 잡어로써 철저히 외면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어린 혹돔은 미역국으로 좋다
혹돔 미역국
혹돔 탕수육도 맛있다

가끔 지역 수산시장에 거대한 혹돔과 호박돔이 보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호박돔을 회로 내는 횟집도 있습니다만, 보통은 국거리로 이용됩니다. 특히, 혹돔과 호박돔은 맑은탕과 미역국이 일미이며 국물 우러나는 것이 마치 곰국처럼 진해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 챙기는 효자이기도 하지요.

 

 

 

망상어(위) 인상어(아래)

4. 망상어, 인상어
용치놀래기와 함께 바다낚시 대표 잡어로 취급받는 망상어. 살은 맹하고 부드러우며 잔가시가 많아 일찌감치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미끼 도둑으로 낙인 찍혀 낚시꾼들한테도 외면받았으니 이쯤이면 최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나마 망상어라도 잡히면 손맛이라도 있어서 다행. 바다낚시 입문자들이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인 대상어지만, 인상어는 먹을 것도 없고 맛도 떨어지는 데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무는 탓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봄에 잡힌 떡망상어
겨울 사이 낚시로 잡힌 씨알 좋은 망상어들

겨울~봄 사이 망상어는 일명 떡망상어라고 몸집도 비대해 꽤 짜릿한 손맛을 안겨줍니다.

 

 

망상어 구이

제철은 겨울에서 봄 사이로 이 시기에는 그나마 망상어로서 최선을 다한 맛이 나는데, 어른 손바닥 만한 망상어에 칼집 내고 소금 뿌려 굽게 되면 흡사 조기 맛이 납니다. 다만, 육질은 여전히 무르니 해안가에서 여력이 된다면 반건조로 꾸덕히 말려 굽기를 권하며, 잔가시가 제법 있는 편이므로 회와 조림은 차라리 다른 생선으로 조리하길 권합니다.

 

 

매퉁이
매퉁이의 날카로운 이빨

5. 매퉁이
서해권에서 선상낚시 도중 어쩌다 한 마리씩 올라오는 정체모를 생선. 생김새는 길쪽하고 비늘은 억세 보이고, 이빨은 매우 날카로운 것이 성질이 사나워 보입니다. 녀석의 정체는 매퉁이. 인지도가 없는 생선입니다.

 

저는 우연히 대마도에서 한 마리 낚아봤는데 한국, 일본을 막론하고 매퉁이를 즐겨먹는 지역은 없고, 대부분 방생합니다. 그 와중에도 매퉁이를 활용한 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곱게 간 살로 만든 어묵입니다. 매퉁이는 몸통에 비해 살이 많이 나오지 않으며, 그마저 맛이 충분하지 못해 어묵용으로 쓰였습니다.

 

 

베트남 남부의 한 재래시장
제법 많은 양을 어획해 식용하는 베트남의 매퉁이

한 예로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매퉁이를 대량으로 조업해 시장에 내파는데 적잖은 물량이 어묵 재료로 쓰이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 다음 편 -> "얼마나 맛이 없으면.." 최악으로 취급받는 바닷물고기 BEST!(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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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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