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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특성상 일본명이 자주 등장할 수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횟감 중 하나이면서, 미식가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줄가자미(일명 이시가리). 먹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보통의 회와 다르다."라고..
줄가자미가 내는 깊고도 오묘한 맛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한 가자미 전문 횟집 대표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거미 불가사리의 먹어 독특한 향을 내는 줄가자미
줄가자미는 갯지렁이 같은 요각류를 비롯해 갑각류를 즐겨 먹지만 특히, 동해안 깊은 바다 저질에 서식하는 거미 불가사리류를 즐겨 먹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증거로 줄가자미의 배를 갈라 위장을 뒤집어 까면 어김없이 거미 불가사리의 잔해가 나오는데, 우리가 줄가자미를 먹었을 때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풍미를 느끼는 것도 이 거미 불가사리의 독특한 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거미 불가사리를 사료화해서 수많은 양식 어종에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동해안에 분포한 수많은 조업배는 그물 작업 시 거미 불가사리가 꽤 많이 올라옵니다.
이 거미 불가사리를 바다에 놓아주지 않고 폐기처분하겠다면, 모아 다가 사료로 활용하는 것도 양식 횟감의 풍미를 조절하는데 일조하지 않을는지.
사실 그 많은 양식 횟감에 거미 불가사리를 적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특정 어류에만 적용한 고급 브랜드화 전략도 추진해 볼만하다는 점에서 거미 불가사리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진 해양 생명체라 볼 수 있습니다.
#. 써는 방향에 따라 독특한 식감을 내는 줄가자미
한번은 취재차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가자미 전문 횟집을 찾았습니다. 줄가자미만 15년 동안 다뤘다는 채상훈 대표는 써는 각도에 따라 회 맛이 전혀 다르다고 자부합니다.
다시 말해, 어떻게 써느냐에 따라 줄가자미 특유의 육즙을 살릴 수도 있고, 뼈의 연한 맛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것을 '칼맛'으로 정의하면서, 서로 다른 칼질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직접 시연해 주었습니다.
사진은 칼을 직각으로 세워서 얇게 친 일명 '이도기리'. 우리 말로는 얇게치기 혹은 길게썰기에 해당합니다. 오른쪽은 칼을 사선으로 뉘우고 회 면적이 넓게 나오도록 썬 '홍기리'. 적당한 우리말이 생각나지 않은데 굳이 표현하자면, 넓게 뼈째썰기 정도일 것입니다. 이렇게 꾸민 줄가자미 회는 시가로 각각 18만원과 20만 원 상당입니다.
먼저 칼을 직각으로 세워서 얇고 길게 썬 이도기리는 가자미 뼈째썰기에 자주 사용되는 방법으로 속살 단면적은 좁지만, 얇으면서 길게 썰었을 때 주는 식감과 함께 줄가자미 특유의 육즙과 풍미를 살린 칼질의 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칼을 직각으로 세워 썰면 줄가자미 단면에 특유의 엠보싱이 나타나게 되며, 씹으면 톡 하고 터지는 재미있는 식감과 달큰하고 구수한 육즙의 맛이 특징으로 줄가자미의 회 맛을 가장 잘 말해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살짝 들어서 조직감과 투명 감을 살핀 다음 배춧잎을 앞 접시 삼아 놓습니다. 처음에는 소스를 배제하고 오로지 생고추냉이만 살짝 올려서 맛보는데 소설가인 무라카미 류의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혀 위에서 미끄러져 목구멍 속으로 증발했다. 안타까웠으나 황홀했다. 사라졌는데 머릿속에서 몸속에서 붉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아니 이런 맛이..." 말은 거기서 멈추고 더 이상의 표현은 끊어졌다. 관능 그 자체였다. 이제 더 이상 다른 회는 먹지 못할 것 같다.”
감성에 기댄 표현 같지만, 완전히 허황된 말은 아니었습니다. 씹으면 터지는 육즙의 구수함,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찰랑한 식감, 씹을수록 느껴지는 미려한 단맛에서 다른 생선회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흰살생선의 기품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 기품은 등푸른생선(방어. 전갱이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고소함과는 다른, 흰 살 근육이 머금은 지방 맛이 극대화한 상태라 혀에 오래 들러붙습니다. 계속 먹다 보면 맛에 둔감해지기도 해 먹는 동안에 오챠와 초생강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칼을 옆으로 뉘여서 뼈와 함께 빠르게 친 줄가자미 회입니다. 줄가자미는 전형적인 흰살생선이면서 불그스름한 색이 군데군데 보이는데요. 이는 핏기가 아닌 심해성 어류에 나타나는 지방으로 우리가 줄가자미 회를 먹고 '맛이 구수하게 받친다.'라고 느끼는 근간이 됩니다.
칼 각도를 뉘여서 뼈와 함께 넓게 쳐내면 이런 형태가 되며, 앞서 맛본 '이도기리'와 달리 회의 단면적이 넓고 뼈 맛이 가미된 형태입니다. 젓가락으로 윗부분을 잡고 흔들면 찰랑거리는 탄력이 느껴지는데 근육 사이사이에 자리한 근섬유질이 자친 식감을 주면서 뼈와 함께 붉은 기가 도는 끝 부분은 주로 운동량이 많은 지느러미에 가까운 부위로 고소한 맛을 더해 줍니다.
이렇게 탄생한 줄가자미 넓게 뼈째썰기한 회를 한 점 맛봅니다. 보기와 달리 뼈가 억세지 않으며 손으로 만져보면 말랑말랑합니다.
가자미는 산란기인 겨울부터 봄에 뼈가 연해져 주로 뼈째썰기(세꼬시)로 먹고, 여름이면 억세지는 경향이 있는데 한겨울에 맛보는 줄가자미 뼈회도 가시가 씹히는 느낌보다는 꼬들꼬들한 식감이 맛을 더해줍니다. 그것을 극대화한 방법이 일명 '홍기리'. 넓게 뼈째썰기입니다.
운동량이 많은 지느러미는 광어, 도다리, 가자미 할 것 없이 귀하고 젓가락질이 자주 가는 부위입니다.여기서는 지느러미를 지탱해주는 가시와 함께 썰었는데 붉은 기가 살짝 도는 저 가시는 보기와 달리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워 또 한 번 놀랬습니다.
그만큼 이 시기 산란철을 앞두고 뼈가 연해졌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출산(또는 산란)을 앞두고 뼈가 약해지고 탄성이 늘어나게 되는 것은 사람이나 생선이나 비슷하니까요.
앞서 대표께서 말한 대로 홍기리와 이도기리에 따라 회 맛은 상당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각도를 세워서 엠보싱 형태의 단면에 육즙을 가두어두느냐 혹은 칼을 뉘어 썰어냄으로써 단면적을 넓히고 연한 뼈 맛을 살리느냐의 차이.
개인적으로 줄가자미는 육즙을 살린 길게썰기(이도기리)에 좀 더 매력을 느꼈지만, 씹는 맛을 좋아하는 우리 국민의 취향에는 넓게 뼈째썰기(홍기리)가 잘 맞을 수도 있겠고 이는 오로지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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