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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돔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제주도의 토속 음식이자 봄철 별미로 한 번쯤 거론되는 자리돔. ‘돔’이라는 이름 때문에 돔의 한 종류로 여기거나 돔 가문의 막내 취급을 받지만, 실제로는 돔과 상관없는 농어목 자리돔과의 소형 어류입니다.
여기서 ‘자리’는 한 자리에 머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돔’은 참돔, 감성돔과 마찬가지로 등지느러미로 솟은 뾰족한 가시를 뜻합니다. ‘돔’자가 붙은 생선을 함부로 맨손으로 만지면, 자칫 찔리거나 상처 나기 쉽다는 것. 하지만 자리돔은 가시가 날카롭지 않아 아이들의 맨손잡이 체험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축제장에서 맨손잡이 체험이 가능한 어종을 꼽으라면 숭어와 광어, 방어, 송어, 그리고 자리돔이 있는데 그만큼 자리돔은 ‘돔’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등지느러미 가시가 날카롭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죠. 사실 ‘돔’이라는 말은 그 속뜻과 별개로 고급 어종이란 인식에 기대기 좋아서 왠지 제주도에 가면 한 번쯤 맛봐야 할 것 같은 특산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소문만 듣고 맛보았는데 기대와 달리 실망한 이들도 적잖습니다. 자리 물회 먹고 나서 한치 물회만 찾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며, 심지어 자리 물회를 한 번 먹은 사람은 있어도 두 번 먹은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인데요. 그렇게 자리돔은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 속에서도 묵묵히 제주 특산물로써 열일 중이며, 여전히 미식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자리돔은 어떤 생선이며, 어떻게 먹어야 후회 없이 먹을 수 있을까요?
#. 열대어를 닮은 자리돔
자리돔은 한반도에 서식하는 어류 중 가장 따듯한 바닷물을 좋아하는 아열대성 어류입니다. 관상용으로 키워도 될 만큼 앙증맞은 크기와 귀여운 모습이 특징입니다. 가까운 사촌으로 노랑자리돔, 연무자리돔, 해포리고기 등이 있습니다. 이들 어류는 제주도뿐 아니라 일본 남부 해역과 대만, 필리핀에도 서식할 만큼 난류성 어류입니다.
그나마 이 중에서는 자리돔이 찬 바닷물에도 적응하는데 한겨울 수온이 10도씨까지 떨어지는 겨울에도 비교적 잘 적응하며, 대부분 무리 지어 서식합니다. 자리돔이 발견되는 지역은 쿠로시오 난류와 지류가 닿는 통영, 거제, 부산, 동해, 울릉도 해역이며, 연중 수온이 두 자릿수를 가지는 제주도 해역에도 많이 서식합니다.
최대 성장 크기는 약 20cm 정도이나, 대게 10cm 전후의 개체가 많이 잡힙니다. 작은 몸집과 달리 큰 비늘을 가졌고, 옆 지느러미에 선명한 검은색 반점이 나타나며(사진의 1번), 뒷부분의 흰색 반점(사진의 2번)은 신선할수록 선명하고, 죽고 나면 점차 흐릿해집니다. 따라서 흰색 반점의 여부만으로도 자리돔의 선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리돔은 날렵한 제비꼬리(사진의 3번)가 특징인데, 언뜻보면 세찬 조류를 거슬러 다니기 좋은 신체적 형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차게 흐르는 조류를 싫어하며, 수심 30m 이하의 얕은 바다에 느리 조류를 좋아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 자리돔의 제철과 수난 관계
횟감은 클수록 맛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자리돔 만큼은 반대입니다. 몸집이 작아서 뼈째 썰어먹어야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나기 때문에 ‘연한 뼈’가 관건입니다. 자리돔은 4월부터 산란을 준비하고 6~7월이면 산란기에 접어듭니다. 이 시기 자리돔은 알을 배는 동시에 뼈가 연할 시기입니다.
사람도 만삭이면 뼈가 약해지듯, 자리돔도 산란철이면 뼈가 연해지는데 이것이 인간에게는 또 다른 미식의 기회로 주어지는 셈이죠. 결국, 자리돔 회가 맛있는 시기는 곧 자리돔의 산란철이므로 한창 산란할 시기 조업량이 증가함에 따라 지난 몇 년간 과도한 남획으로 개체수가 줄고 있다는 점을 지자체에서는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자리돔의 개체수가 급격히 준 지난 10여 년은 제주도 여행 산업의 발달과 방문객 수 증가와 완벽하게 겹친다는 점에서 수요와 어획량의 동시 증가로 인한 자원 감소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뒤늦게나마 이러한 경각심을 갖고 금어기를 시행하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이 조차도 자리돔이 알을 배고 있을 시기(4~6월)가 아닌, 산란이 이뤄질 확률이 높은 7월 이후라는 점에서 그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상황입니다.
#. 자리돔은 어떻게 잡나?
자리돔은 군집을 이루며 다니며 크릴이 섞인 밑밥에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특히, 수면에 떨어지는 밑밥과 그 착수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모여들기 때문에 초보 낚시인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습니다. 자리돔 낚시로 알맞은 곳은 제주도 전역과 거제, 통영이며 갯바위, 방파제 할 것 없이 날이 따듯해진 5월부터 가을까지 손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낚싯대는 아무거나 써도 되지만, 씨알이 작기 때문에 손맛을 극대화기 위해 가능한 짧고 얇은 낚싯대가 좋으며 개인적으로 낭창낭창한 볼락 루어대를 추천합니다.
채비는 자리돔용 카드 채비를 권합니다. 보통은 벵에돔을 노리다가 곧잘 걸려들고, 개체 수가 많으면 미끼 도둑으로 천대받기 때문에 전문 낚시인들 사이에서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도 합니다.
낚시가 아닌 조업 방식은 조금 복잡하다. 제주도 자리 잡이는 테우를 이용한 그물 잡이가 정통이었으나 최근에는 대량 어획을 위해 본선 1척과 부속선 2척이 합동으로 그물을 내려 자리돔이 지날 때 퍼 올리는 방식을 이용합니다. 이를 현지에서는 '자리들망'이라 부르는데 뜰망어법의 하나입니다. 자리돔은 철저히 주간성이므로 해가 떠야 시작됩니다.
자리 산지로 유명한 제주 보목리 앞바다는 자리 선점을 위해 해 뜨기도 전에 나가 있다가 해가 뜨면 어군탐지기로 자리돔의 이동 경로를 포착, 선장의 지시로 그물을 내렸다가 자리돔이 지날 때 퍼 올리는 방식입니다. 주로 아침부터 오전 사이 행해지며, 자리돔 자체가 거친 물살을 싫어하기 때문에 조류가 잦아드는 조금 물때와 하루 3번 정도의 정조 시간대를 노립니다. 이렇게 잡은 자리돔은 활어로 위판되며, 대부분 현지에서 소진됩니다.
#. 자리돔 요리는 크기에 따라 달라
자리돔은 예부터 제주 도민들의 중요한 식재료이자 주요 단백질 보충원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용은 생선회입니다. 뼈째 썰어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 자리돔 강회와 물회는 자리돔의 고소한 맛을 즐기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자리 물회는 어부들이 시간을 아끼고자 대충 물에 말아 먹던 것이 시초가 되었습니다.
뼈의 고소한 맛에는 늘 된장과의 궁합이 따라다녔는데 제주도에서도 자리돔을 먹기 위해 늘 된장을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된장은 제주도식 물회에 빠지지 않는 양념입니다. 된장을 푼 갖은 양념에 물을 붓거나 혹은 자리돔 머리를 푹 고아 만든 육수를 식혀서 말아먹는 자리돔 물회는 감칠맛과 고소함의 절정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자리돔의 꺼슬꺼슬한 식감이 낯설었던 외지인들도 한번 맛 들이면 생각나게 하는 그런 물회입니다.
한 가지 특징이라면, 같은 자리돔이라도 크기마다 다르고 산지별로도 다르게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자리돔 산지로 유명 제주도를 예로 들면, 제주 북부와 서부, 모슬포산 자리돔은 씨알이 크고 뼈가 억세므로 자리 구이, 자리 조림 등에 알맞습니다. 반면, 제주 남부인 서귀포 특히, 보목리 일대 자리돔은 씨알이 잘고 뼈가 연하므로 뼈째 썬 자리 강회와 물회 용으로 인기입니다.
자리돔은 비늘이 크지만, 껍질은 질기지 않아서 따로 토치고 굽거나 뜨거운 물로 익히는 숙회가 아니어도 그냥 통째로 썰어 먹기 편리한 생선입니다. 구이나 조림의 경우는 아예 비늘조차 치지 않은 상태에서 통째로 조리한 것이 제주도 전통 방식입니다.
자리젓은 통째로 젓갈을 담그며, 곰삭았을 때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데 이 향이 처음에는 낯설어도 한 번 익숙해지면, 따끈한 밥 위에 올려 먹거나 혹은 돼지고기 구이를 쌈에 올려 먹을 때 절로 생각나게 합니다. 제주도 동문이나 올래시장에서는 자리돔 된장을 팔기도 하는데 이 자체가 쌈장으로 별미입니다.
#. 제주도 하면 자리 물회
“자리 물회냐 한치 물회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고민되겠지만, 저는 무조건 자리 물회를 선택할 것입니다. 한치 물회의 경우 냉동 한치도 충분히 맛있지만, 그래도 제주도에 왔으면 활한치 물회를 맛봐야 합니다. 그런데 한치는 한시적으로만 잡힙니다. 한치가 많이 잡히는 여름~가을이 아니면 대부분 냉동을 씁니다. 자리 물회 역시 연중 먹을 수 있지만, 처음 맛보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5~8월 사이에 맛볼 것을 권합니다.
특히, 관광지 식당이나 횟집에서 판매하는 자리 물회 중 상당수는 외지 관광객 입맛에 맞추고, 일부 뼈가 억센 자리돔을 썰어내어 첫 인상부터 ‘자리돔은 씹기가 어렵고 까슬까슬한 횟감’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대부분 소문만 듣고 왔다가 자리 물회 한 그릇 맛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주도식 전통 자리 물회는 된장 비율이 고추장 비율보다 많아야 합니다. 여기에 제피(초피) 잎을 빻아 넣어 특유의 청량함을 더해야 하며, 씨알 작은 자리돔을 얇게 썰어 뼈가 까슬까슬하게 씹히는 것을 최소화해 목 넘김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야 합니다. 이런 자리 물회를 맛보려면 모름지기 현지인들로부터 검증받은 ‘현지 식당’을 이용하길 권합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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