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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도의 진미가 너무 많아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고, 사람마다 취향도 다릅니다. 제 주변에는 비린내가 싫어 해산물 자체를 입에 안 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제하고 남도의 진미를 논한다면 육고기나 채소류보다는 아무래도 다양한 해산물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데요. 이를테면, 얼마 전 연재했던 금태(눈볼대)를 비롯해 멸치, 곰장어, 갯장어(하모), 붕장어(아나고), 도다리, 멍게, 미더덕, 심지어 탕감에 쓰이는 식용 말미잘까지 일일이 거론하기엔 지면이 모자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빠지면 서운한 것이 바로 생선구이의 최강자라 해도 모자랄 ‘볼락’입니다. ‘볼락’.. 들어본 이도 있고 생소한 이들도 있을 겁니다. 우럭은 알아도 볼락을 모른다면 그건 필시 서울, 수도권이나 내륙 지방 사람들일 것이고, 최근엔 유튜브나 SNS가 정보통으로써 확산력이 크다 보니 이제는 볼락이란 생선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도의 진미 볼락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도 있다는데?
#. 볼락은 우럭 친구
전국민이 흔히 즐기는 생선회는 그 소비량으로 보았을 때 1위가 광어이고 2위는 우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우럭이란 말이 익숙한데 이는 ‘울억어’란 옛 이름에서 파생되었을 뿐 실제 표준명은 ‘조피볼락’입니다. 결국, 우럭도 수많은 양볼락과 어류 중 한 종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신 대량 양식어로써 용이하고 맛도 좋아서 현재까지 양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조피볼락과 가까운 사이로 볼락을 꼽습니다.
농어목 양볼락과 어류에는 쏨뱅이를 비롯해 다양한 ‘쏘는’ 어종이 포진되어 있는데 쏨뱅이는 말할 것도 없고 볼락과 우럭 모두 등지느러미 가시에 약한 독이 있어서 찔리면 한동안 붓고 쓰라립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낚시로 잡은 우럭이나 볼락을 무심코 쥐었다가 찔림으로써 한동안은 울상을 지어야 했던 경험, 분명 초보 꾼들의 기억 속에는 한둘 씩 자리할 것입니다.
양볼락과에 속한 어류는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좀 전에도 말했듯이 대부분 어류에서 독선을 가진 지느러미 가시가 발달했단 점이고, 두 번째는 국물 맛이 시원하게 우러나와 탕감으로 인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 특징으로는 새끼를 낳는 난태생 어류란 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끼를 낳기보다 뱃속에 알을 부화시켜 거기서 태어난 새끼를 방출하기 때문에 포식자로부터 알을 잃을 염려가 매우 낮습니다. 이러한 진화 방식은 생존을 높이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제는 볼락도 양식
볼락은 양식이 매우 까다로운 어종입니다. 진작에 양식에 성공해 대량으로 출하하는 우럭(조피볼락)과 달리 볼락은 소형종인데다 다 자라는데도 5~7년이 걸리며, 그렇게 자라도 우럭 크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은 분명 상업적 이용가치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락 양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지금은 거제도 일원에서 양식이 되고 있으며, 거제, 통영을 비롯한 경남 일대에서 대부분 소진될 만큼 인기가 있는 어종입니다.
과거에는 낚시꾼의 전유물이었던 볼락. 그 맛도 낚시꾼 사이에서 전해졌지만 이제는 경남 일대를 중심으로 볼락을 취급하는 횟집이 많아짐에 따라 어느 누구도 손쉽게 볼락회를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외형으로 양식과 자연산을 구별하기란 어려우며, 맛은 근소한 차이가 있으나 한 자리에서 비교 시식하지 않은 이상 양식과 자연산의 맛 차이를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볼락은 연중 맛볼 수 있지만 봄이 제철로 늦게는 6월까지 제철로 보고 있습니다.
#. 새롭게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 볼락도 종류가 있다?
볼락도 종류가 있음을 아시나요? 물론, 볼락의 종류라고 한다면, 우리가 익히 아는 조피볼락(우럭)을 비롯해 불볼락(열기), 개볼락, 황점볼락, 흰꼬리볼락, 노랑볼락, 세줄볼락, 띠볼락 등 무수히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볼락’이란 종에 한해서도 세분화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몇 년 전 볼락의 DNA 미토콘드리아 염기 서열을 조사해 그동안 의견이 분분하던 부분을 말끔히 해소한 적이 있습니다. 핵 DNA 같은 물질 여부를 확인, AFLP(DNA 분석 기법 중 하나)로 조사한 결과 세 종을 고유 식별할 수 있는 염기 배열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방법에 따르면 볼락은 채색과 가슴지느러미 배열 수에 따라 세 가지 유전 형질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어류대도감에 기술된 ‘볼락’은 향후 단일종이 아닌 이종이나 아종으로 분류해 새로운 표준명을 도입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잡힌 볼락이 단지 서식지 환경에 따라 그 모양과 채색이 나뉜다.”는 가설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며, 이제 우리나라도 볼락의 분류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입니다.
다음은 세 가지 종에 대한 정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국내에서는 이러한 분류체계가 없기 때문에 표준명(국명) 또한 없습니다. 따라서 낚시인들이 주로 부르는 ‘애칭(임시 명칭)’으로 표기합니다.
- A타입
명칭 : 갈볼락
학명 : Sebastes cheni Barsukov 1988
일명 : 시로메바루(シロメバル)
최대 몸길이 : 35cm 이상
가슴지느러미 배열수 : 17개
채색 : 은빛 바탕에 갈색 줄무늬가 선명한데 점차 커가면서 검게 변합니다. (이를 삼천포 같은 볼락 산지에서는 먹볼락이라 부르는데, 알고 보면 갈볼락과 같은 종입니다.)
맛 평가 : 세 종류 중 상급
국내에서는 A, B, C 타입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볼락입니다. 서해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해역에 서식하며, 특히 경남과 전남 해안 일대에 집중 서식합니다. 주로 암초와 해조류에 무리 지어 서식하며, 야행성인 탓에 밤에 먹이활동이 잦습니다. 이 때문에 겨울~봄 사이 방파제와 갯바위에서는 초록색 집어등을 켜 놓고 낚시하는 이들을 흔히 봅니다. 추광성이기 때문에 빛이 있는 곳이면 모여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 B타입
명칭 : 금볼락
학명 : Sebastes inermis Cuvier,1829
일명 : 아카메바루(アカメバル)
최대전장 : 35cm
가슴지느러미 배열수 : 15개
채색 : 몸 채색은 적색과 황금빛입니다. 유어기 때는 갈볼락처럼 줄무늬가 나타나다가 성어가 되면서 희미해집니다.
맛 평가 : 세 종류 중 최상
금볼락은 조류가 세지 않은 연안에 주로 서식하는데 암초와 해조류가 무성한 곳의 중층까지 곧잘 떠오릅니다. 어릴 땐 무리 지어 살다가 성어가 되면서 단독으로 서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금볼락을 마릿수로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앞서 갈볼락과 달리 낮에도 곧잘 잡히는 종입니다.
- C타입
명칭 : 청볼락
학명 : Sebastes ventricosus Temminck and Schlegel, 1843
일명 : 쿠로메바루(クロメバル)
최대전장 : 30cm
가슴지느러미 배열수 : 16개
채색 : 등지느러미는 청색이 돌고 배는 노란빛이 납니다. 등에는 불규칙한 점들이 산재하는데 멀리서는 줄무늬처럼 보입니다.
맛 평가 : 세 종류 중 중하
청볼락은 세 종류 타입 중 한계 성장이 가작 작지만, 잡히는 평균 씨알은 가장 큽니다. 다른 갈볼락과 마찬가지로 야행성인데 정오를 기점으로 오전 시간에도 무리 지어 활동하다가 낚시에 곧잘 걸려듭니다. 청볼락은 세 타입의 볼락 중 가장 따듯한 바다에 서식합니다. 국내에는 제주도를 비롯해 추자도, 거문도에 집단 서식하며 규슈와 관동 지방에도 서식합니다.
맛은 다른 볼락류 중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입니다. 어디까지나 다른 타입의 볼락과 비교해서일 뿐, 여타 어종과 비교하면 여전히 맛있는 어종임엔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여담이지만, 과거 임금님 수라상에는 볼락 구이가 곧잘 올려지는데 당시 볼락이란 종에 대한 분류가 없다 보니 맛이 좋은 남해산(갈볼락)이 수라상에 올랐고,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지는 제주산(청볼락)과 동해산(청볼락)은 선호도에서 밀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볼락이 단일종이 아닌 세 가지 유전 형질로 나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불과 십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루어 낚시인들 사이에서나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논쟁이 바로 ‘서식지 환경에 따른 차이일 뿐, 종은 한 종류다’와 ‘아니다. 종 자체가 다르다’가 첨예하게 대립한 것입니다.
만약, 전자에 해당하는 ‘단지 서식지 환경에 의한 차이’라면? 세 종류가 한 곳에서 모두 잡히는 현상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DNA를 비롯한 다양한 검사와 연구로 세부 종을 밝혀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사실입니다. 국내 학계에서 이러한 사실에 대해 그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이나 자료를 표명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어쨌든 지금은 단일종인 줄로만 알던 볼락이 일본의 DNA 염기 분석에 의해 세 종류로 나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도 볼락에 대한 새로운 분류와 재조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 볼락 유전자와 관련해서 참고한 문헌
일본산 어류 검색 모든 종류의 분류 제 3 판(中坊 徹次 편 토카이 대학 출판회 20130226)
#. 볼락은 무슨 맛? 어디에서 맛볼 수 있을까?
11월부터 5월까지는 볼락 낚시가 성행합니다. 볼락낚시로 유명한 곳은 경남 삼천포를 비롯해 통영, 거제 일대이고, 전남 완도와 진도, 고흥 앞바다에서도 곧잘 잡힙니다. 뭐니 뭐니 해도 볼루(볼락 루어)라 하면 동해 남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상도권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방조제와 방파제에서는 볼락을 잡기 위한 꾼들이 절반일 만큼 낚시면 낚시, 음식이면 음식 어느 쪽이든 팔방미인입니다.
또한, 추자도, 여서도, 제주도에서도 볼락 낚시가 성행하는데 이들 해역에서 잡힌 볼락은 대부분 청볼락이며, 서해 일대에서 잡히는 볼락은 ‘황해볼락’이란 종으로 맛과 상업성에서는 볼락에 비해 한참 뒤떨어집니다.
볼락은 쏨뱅이와 마찬가지로 매운탕이 일미인데, 기름기가 둥둥 뜨는 돔 매운탕의 구수함과 달리 깔끔하면서 시원한 국물 맛이 나는 것으로 정평 났습니다. 얼갈이배추를 곁들인 볼락탕은 그 어떤 생선 매운탕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입니다.
비늘만 대충 치고 칼집만 내서 굵은소금을 척 뿌려 구운 볼락 구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할 뿐 아니라 구수한 맛도 일품이라 주당들이 가장 선호하는 안줏거리이기도 합니다. 볼락의 활약상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작은 볼락은 젓볼락이라 하여 젓갈을 담그고, 일부는 뼈째 썰어 뼈 회로 즐기는가 하면, 일부는 생볼락을 뼈째 썰어 깍두기를 담그거나 김장에 쓰이기도 합니다.
작은 볼락은 가위만으로 손질할 수 있을 만큼 손질이 용이합니다. 다른 뼈째 썬 회(일명 세꼬시)가 그렇듯 된장과 잘 어울리며, 큰 것은 포 떠서 일반적인 생선회로 이용됩니다. 참고로 볼락의 포획 금지체장은 15cm이며, 주로 잡히는 크기는 10~20cm가 일반적입니다. 5년 이상 자라게 되면 30cm를 넘기는데 이는 한평생 낚시해도 마주칠까 말까 한 귀물로 5짜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을 정도입니다.
볼락에 얽힌 말도 다양합니다. 경남에서는 보통 뽈라구, 뽈래기 같은 애칭을 쓰며 15cm 이하는 젓볼락, 20cm가 넘어가면 왕사미이고, 25cm가 넘어가면 신발짝이라 부릅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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