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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리는 여름 한철 불꽃같은 존재감을 과시하는 어류로 최근 낚시꾼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정된 서식지, 적은 어획량, 여기에 여름 한 철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탓에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진귀한 자연산이죠.
귀하다고 반드시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벤자리는 특유의 고소함과 차진 식감으로 남부럽지 않은 회 맛을 자랑하며 이제 막 미식가들로부터 입소문 나기 시작한 횟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벤자리는 언제 맛있고, 어디로 가야 맛볼 수 있을까요? 벤자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봅니다.
#. 여름 한철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벤자리
벤자리는 수온 20도를 넘나드는 난류성 어류입니다. 국내에선 쿠로시오 난류가 지나는 경남 홍도를 비롯해 추자도, 여서도, 사수도, 제주도로 회유하는데요. 최근 한반도 수온이 올라감에 따라 가끔 여수나 고흥에서도 출현했다는 소식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지역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선 구경할 수 없는 매우 한정적인 분포지를 가집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벤자리는 대표적인 난류성 어류로 여름에 발달되어 올라오는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북상합니다. 한반도 해역보다는 좀 더 남쪽인 일본 규슈와 동중국해에는 국내에 비할 수 없는 벤자리 자원이 있죠. 즉,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 먼 바다 및 섬 지역은 벤자리가 회유하는 북방한계선인 셈입니다.
수온이 크게 오르는 5~6월이면 남해 먼바다에 상륙, 더는 북상하지 않은 채 따듯한 바다에만 머물다가 9월 이후면 다시 따듯한 바다를 찾아 남하합니다. 자원도 한정적인 데다 출현 시기도 제한적이어서 더욱 귀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바로 벤자리입니다.
#. 맛있는 벤자리와 맛이 없는 벤자리
벤자리는 농어목 하스돔과에 속한 어류입니다. 우리에겐 낯선 생물학적 분류군에 있는데요. 비슷한 사촌으로는 조상인 하스돔을 비롯해 동갈돗돔과 어름돔이 있으며, 여수의 명물 군평선이(딱돔)도 알고 보면 벤자리 사촌입니다.
제주도 재래시장에는 ‘벤자리’와 ‘돔’을 합쳐 ‘벤자리돔’이란 말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돔’에 기댄 고급어종 마케팅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정확한 명칭은 아니지만, 벤자리의 회 맛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벤자리를 맛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벤자리는 제대로 된 벤자리와 그렇지 않은 벤자리로 나뉩니다. 쉽게 말하자면 맛있는 벤자리와 맛이 없는 벤자리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벤자리가 맛이 있는 계절은 여름입니다. 그런데 여름이라고 모든 벤자리가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벤자리가 맛 있으려면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벤자리는 그저 평범한 잡어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이쯤이면 벤자리가 정말 맛있는 횟감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좀 더 냉정히 말하자면, 언제 먹어도 맛있는 고급 어종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자리가 최고의 횟감 중 하나라고 추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몇몇 조건을 충족한 그야말로 ‘제대로 된 벤자리’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환상적인 맛을 자랑하기 때문이죠. 이제부터 그 조건에 대해 알아봅니다.
1) 반드시 산란전 벤자리라야 한다.
벤자리 산란철은 7~8월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벤자리의 제철은 여름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상충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벤자리는 7~8월경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마다 절기마다 산란 시기가 달라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해는 7월 초인데 산란 전이고, 또 어떤 해는 7월 초인데 이미 산란해 버리기도 합니다.
전자라면 벤자리 맛은 보장됩니다. 알이 가득 들었어도 알은 알대로 살은 살대로 맛있습니다. 하지만 후자에 속한다면? 회보단 조림에 이용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좀 더 안전하게 5~6월 벤자리는 괜찮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벤자리는 6월 벤자리를 최고로 치고, 운 좋게 산란이 늦어지면 7월 벤자리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입니다.
<사진 1>은 7월 초 낚시로 잡은 50cm급 벤자리 회입니다. 알과 정소가 가득 든 것으로 보아 산란 전이며, 보시다시피 붉은 혈합육에는 하얀 기름층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 벤자리 회는 지금까지 맛본 생선회 중 TOP 3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진 2>는 다른 해 7월 초에 잡힌 50cm급 벤자리 회인데 보시다시피 혈합육에 있어야 할 기름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날 잡힌 벤자리의 배를 모두 열어보았으나 알과 정소가 발견되지 않음에 따라 이미 산란을 마친 것으로 보입니다. 식감은 물컹했으며 고소한 맛도 빠져 있습니다. 이렇듯 벤자리는 횟감으로써 양날의 검이지만, 제대로 된 벤자리라면 꼭 한 번 맛봐야 할 가치가 있는 횟감임엔 분명합니다.
※ 예외도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벤자리의 회 맛은 산란전과 후로 나뉘는데 그 시기가 7월 초를 기점으로 갈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점은 해마다 다르고, 지역과 서식지 환경(일본 남부와 한반도 근해의 수온 차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꼭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제주도에서 잡힌 벤자리는 8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기름기가 차서 맛이 좋았는데요. 이쯤이면 벤자리 회 맛은 사실상 종잡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2) 반드시 50cm에 근접하는 돗벤자리라야 한다.
벤자리는 성장에 따라 이름이 다른 출세어입니다. 30cm 이하는 아롱이, 30cm가 넘으면 벤자리, 그리고 50cm가 넘는 대형 개체를 돗벤자리라 부르고 있죠.
40cm만 넘어도 회 맛이 좋지만, 여기서 말하는 환상의 맛은 다름 아닌 돗벤자리에 있습니다. 같은 돗벤자리라도 산란 후라 생식소가 없고 배는 홀쭉합니다. 즉, 2)번은 충족하는데 1)번은 충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벤자리 역시 회보다는 조림에 쓰는 나을지도 모릅니다.
3) 반드시 활어라야 한다.
벤자리는 흰살생선 치고 회유성이 높습니다. 혈합육에는 회유어의 특징인 미오글로빈이 다량 함유돼 색이 매우 붉습니다. 이 같은 성질을 가진 횟감은 숙성회보다 활어회가 좀 더 어울립니다.
실제로 벤자리는 흰살생선임에도 불구하고 죽고 나면 살이 급격히 물러지는 특성을 보입니다. 마치 고등어처럼 물컹해지는데 더욱이 산란을 마쳤다면 숙성 과정에서 살은 더욱 푸석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벤자리는 그 크기가 크든 작든 활어회로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숙성하더라도 2~3시간짜리 짧은 숙성이 유리합니다.
#. 당찬 손맛이 일품인 벤자리 낚시
사실 벤자리 낚시를 즐기는 곳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더욱이 갯바위 낚시라면 한여름부터 9월까지만 가능한데 그 지역도 여서도나 추자도, 관탈도, 마라도 같은 먼 섬의 일부 포인트만 가능한 일입니다. 비록, 국내는 아니지만 대마도에서는 섬 전역에서 벤자리의 입질을 기대할 만큼 많은 자원량을 보유합니다.
국내에서 벤자리 낚시는 경남 홍도 및 제주도 근해에서 하는 선상 흘림 낚시가 제격입니다. 주로 벵에돔, 긴꼬리벵에돔을 노릴 때 손님 고기로 걸려드는데요. 어지간하면 40cm가 넘어가고 간혹 50cm를 넘기는 돗벤자리도 잡히기 때문에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채비는 선상에서 하는 벵에돔 흘림 채비와 동일합니다. 낚싯대는 보통 530-1.7호를 쓰며 2호까지 가능합니다. 원줄은 4~5호, 목줄은 원줄보다 한 치수 낮은 3~4호면 충분합니다. 찌는 갯바위와 달리 마이너스 찌가 유리합니다.
외해권에서 찌 흘림 낚시를 하려면 거센 조류에 찌가 멀리 흘러가지 않아야 합니다. 마이너스 찌는 말 그대로 부력이 아닌 침력으로 가라앉히는 잠길 찌입니다. 갯바위에서는 흔히 투제로(00)나 쓰리제로(000)를 이용해 잠길찌 조법을 쓰지만, 선상에서의 환경은 그보다 더 빠르고 강한 조류가 흐르기 때문에 찌가 조류를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도 다양한 수심층을 탐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이너스 기울찌로는 조류 속도에 따라 -G2부터 -3B까지 다양하게 씁니다. 그 아래 조수고무를 달아 찌멈춤봉 역할을 하고 도래에 목줄을 달며 바늘은 벵에돔 바늘 7~9호를 주로 사용합니다.
벤자리는 활성도에 따라 다르지만 수심 5~7m 사이로 떠올라 입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끼(크릴)를 물면 쏜살같이 달리는데, 문제는 조류도 쏜살처럼 흐르고 있어서 입질 파악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베테랑 꾼들은 베일을 열고 원줄이 풀리는 속도를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속도가 변할 때를 놓치지 않고 챔질 합니다.
※ 아래 벤자리 낚는 영상을 참고하세요.
이렇게 잡힌 벤자리는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해 수분 이내 숨을 거둡니다. 벤자리를 잡으면 지체없이 어창(또는 물칸)에 넣어 보관합니다. 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물차에 넣고 살려 두는데 일본의 경우 신케지메를 이용해 신경과 철수를 마비시키며, 이러한 전처리 기법을 활용해 품질 좋은 선어 횟감으로 유통합니다. 이 경우 숙성회로 먹어도 살이 물러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조림이 특히 맛있는 생선
벤자리는 일본식 간장 조림이 맛있는 생선입니다. 벤자리가 없으면 참돔이나 황돔이 알맞습니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 주재료
토막 난 벤자리 1마리, 무 4조각, 당근 약간, 연근 4조각, 통마늘 5~6알, 매운 고추 2개, 대파 4조각, 생강채
- 조림 양념
진간장 1컵, 맛술 4컵, 설탕 100~120g, 다시마 육수 3컵, 물엿 조금
1) 궁중팬에 고추와 대파, 생강채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습니다.
2) 조림 양념을 모두 붓고 센 불로 10분간 팔팔 끓입니다.
3) 불을 낮춘 뒤 대파와 고추를 넣고 조림 양념이 처음에 비해 반으로 줄 때까지 몽글몽글 조립니다. (중간중간 뒤집어줍니다.)
4) 접시에 담고 생강채를 올려 마무리합니다.
#. 소금 구이는 독특
특이하게도 벤자리는 불로 구웠을 때 부드러웠던 살이 다시 단단해집니다. 그 질감이 마치 복어와 비슷하며, 생선계의 토종닭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씹고 뜯는 맛이 특징입니다. 단순히 칼집만 내어 굵은소금 쏠쏠 뿌려 굽기만 하면 되는데, 이왕이면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굽기보다는 야외에서 직화로 굽는 것을 추천합니다.
#. 벤자리 회 맛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양식도 있다?)
벤자리 회 맛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도입니다. 제주도 중에서도 서귀포가 으뜸입니다. 동문시장보다는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그리고 성산과 표선, 서귀포를 지나 중문, 모슬포에 이르기까지 자연산을 취급하는 횟집이라면 벤자리를 취급할 확률도 높습니다. 다만, 벤자리는 회유성 어류로 그날그날 해류와 수온에 따라 어획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태풍과 같은 주의보가 며칠 이상 이어지거나 다른 원인으로 어획량이 줄면 보기가 어렵습니다.
한편, 벤자리는 중국에서 양식으로 길러지고 있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수입된 양식 벤자리가 일부 유료 낚시터로 들어가고, 일부는 수산시장으로 들어갑니다. 맛은 물론, 크기도 자연산 벤자리에 비할 수 없으니 제주도까지 가서 먹는 벤자리 회라면 자연산인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참고로 제주도에는 겨울에도 벤자리가 잡힙니다. 다만. 이 시기에는 기름층이 얇고 맛도 여름보다 못하기 때문에 5~9월 사이에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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