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물고기는 3월 첫 회 방송이었던 돗돔 편부터 출연하기로 이야기가 오갔다가 프로그램 컨셉이 여러 번 바뀌면서 출연이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EBS 성난 물고기로부터 정식 출연 섭외를 받았습니다. 시즌 2를 앞두고 새로운 제작사가 참여했고, 저와 개그맨 강성범씨가 호흡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빠듯한 일정 가운데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촬영지를 물색했으며, 몇 가지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습니다. 알래스카의 초대형 넙치나 전설의 물고기 재방어(저립)도 고려 대상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태평양 할리벗은 시즌이 끝나가고 있었고, 재방어(잿방어와 다릅니다.)는 일생일대에 한 마리 만날까 말까 한 녀석이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물색지를 알아보다가 호주의 그루퍼와 몰디브의 참치로 의견이 좁혀졌고, 아직은 방송에서 자주 다루지 않았던 몰디브의 현지식 참치잡이 체험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떠난 8박 10일 몰디브 촬영은 그야말로 벼락치기 시험을 치러야 할 수험생의 기분으로 떠나게 됩니다. 방영 일자가 9월 15일로 정해진 가운데 열흘간 촬영을 하고 돌아와서 편집 및 자막, 나레이션 작업까지 마치려면 늦어도 8월 중순에는 떠나야 했던 것.

 

기획서가 통과되고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가게 된 것도 출발일로부터 일주일 전. 비행기 티켓팅은 출발일로부터 3~4일 전에 이뤄졌습니다. 한창 여름 휴가 한창인 8월 중순이다 보니 항공편이 여의치 않더군요. 내심 대한항공의 직항(스리랑카 콜롬보를 경유하지만, 급유만 하고 바로 출발하니 직항이나 다름 없음)을 기대하고 비행기를 탔는데..

 

 

저비용 항공사의 대명사인 에어아시아입니다. 닭장처럼 좁고 미어터지는 곳에서 여섯 시간을 날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면, 거기서 4시간을 대기하고 다시 4시간을 비행해야 닿는 우리들의 지상낙원 몰디브. 앞으로 이 좁은 곳에서 여섯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하는 걱정이 밀려드는데..

 

 

피디님이 유료 좌석을 구입하셨더군요. 덕분에 모두가 편히 갈 수 있었습니다. 강성범씨와 저는 일전에 미팅에서 인사를 나누었지만, 지금은 촬영을 앞두고 있으니 호칭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저보다 두 살 위 연배라 저는 방송상에서든 카메라 오프에서든 형이라 부르기로 하였고, 성범이 형은 제 이름을 부르기로 합니다. 가는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도 필요했는데 비행기 좌석은 서로 떨어졌습니다.

 

제작진과 자리를 바꿔 저는 성범이 형 옆에 앉아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프로그램 특성상 두 패널의 합이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가 초면인 듯한 어색함을 가는 동안에라도 지우려 한 것이겠지요. 성범이 형도 낚시 좋아하고, 저야 말할 것도 없으니 남자 둘이서 낚시 이야기를 시작하면 길고 지루한 비행이 조금은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가벼운 음주 가무도 장시간 비행에 도움이 되겠지요. 성범이 형이 보드카를 쏘길래 평소 거의 먹어보지도 못한 보드카를 다 먹어 봅니다. 

 

 

크~ 탄산수에 적당히 섞어 마시니 좋네요. 평소 보드카가 아주 독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마시니 기분도 좋아지고 긴장도 풀립니다.

 

 

그렇게 홀짝홀짝 마시던 우리 좌석은 어느새 술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두 병 정도 마시니 취하네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 뒤로는 푹 잤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깨보니 쿠알라룸푸르에 도착. 4시간이라는 긴 대기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먹고 마시고 대충 적당한 자리를 찾아 쉬는 것. 오는 동안 배가 고팠지만, 에어아시아의 기내식이 그리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는지라 꾹 참고 왔습니다.

 

 

공항 내 식당에선 대충 요런 메뉴를 파는데요. 홍콩이나 대만식 누들인가 봅니다.

 

 

타이완 비프누들을 주문해 봤는데 처음 받아든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누가 먹다 남은 건 줄 알았죠. 그런데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랍니다. 그릇이 불필요하게 커서 적어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도 몇 젓가락 안 든 것이 테이스팅 메뉴 수준이었죠. 저뿐 아니라 제작진이 주문한 메뉴도 모두 이런 식.

 

 

다 먹고 일어서는데 여전히 배가 허전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공항 2층에 올라왔는데 이런 푸드코트가 있었네요. 

 

 

앞으로 3시간의 대기에 4시간의 비행이 남아 있으니 지금 든든히 먹어두면 안 된다는 피디님의 말에 저녁만 두 끼를 먹게 되었습니다. 쭉 둘러보다가 치킨 라이스로 메뉴를 통일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싱가폴스러운 음식도 맛봐야겠죠.

 

 

저는 덮밥 형식의 치킨 라이스를 상상했는데 막상 받아본 음식은 우리네 백반 정식과 비슷했습니다. 꼭 시래기 된장국을 닮은 싱가폴식 국물이 자스민 밥과 함께 나오고요. 맵고 알싸한 생강과 칠리 소스는 셀프로 가져왔습니다. 숙주는 우리나라의 것과 달리 아주 통통하죠.

 

 

메인인 치킨은 바싹하게 구워진 느낌보다 스팀에 찐듯한 식감에 매운 소스가 뿌려져 나왔는데요. 부드럽고 살짝 이국적인 맛이 나면서 알싸한 것이 맛은 있습니다.

 

 

바삭한 튀김 도우 안에 그린 망고 샐러드가 들어있는 반찬도 특이했죠. 우리 입맛에 썩 잘 맞는 편은 아니지만,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 풍의 식사를 통해 외국에 나와 기분 전환하기에는 충분하였습니다.

 

 

남은 시간은 카페에서 보냅니다. 4시간이 참으로 깁니다. 갯바위에서 낚싯대 하나 들고 있으면 땅바닥에 엉덩이 한 번 붙이지 않고도 5~6시간을 잘도 버티는데 말이죠.   

 

 

늦은 밤, 몰디브 훌후말레 공항에 도착

 

몰디브에 도착한 첫인상은 지상 낙원이 아닌 이런 모습입니다.

 

 

공항에는 두 개의 통신사가 있는데요. 앞으로 열흘 동안 인터넷도 틈틈이 해야 하니 유심칩을 사기로 합니다. 유심칩은 14일 무제한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하여간 가격이 2만 원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공항에는 리조트 손님을 받는 부스가 따로 마련돼 있습니다. 우리와는 1도 상관없는 몰디브의 휴양지 리조트들. ㅠㅠ

 

 

예약한 호텔에서 픽업 차량이 왔습니다. 내일부터 일정이 빠듯하기에 빨리 가서 쉬어야 합니다.

 

 

10분간 달려서 도착한 곳은 공항 섬(훌후말레) 내에 있는 어느 호텔. 애초에 휴양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리조트로 빠지니 이곳에 올 일이 없겠지요. 그래서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은 대부분 항공 트렌스퍼나 다른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방에 짐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마침 근방에는 동네 식당이 영업 중이군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일단 들어가 봅니다.

 

 

햐~ 조명 좀 보세요. 꼭 시골 마을에서나 볼 법한 통닭집 분위기입니다.

 

 

한쪽에는 만든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음식을 진열해 놓았는데요. 문을 열고 가져가란 것인지, 단순 디스플레이인지 그 용도가 묘연합니다.

 

 

직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는데 펼치기 두려운 이 기분은 뭐죠. 왠지 담대한 마음으로 펼쳐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펼쳐 보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가 생각났습니다.

 

 

직원이 오더니 사진의 왼쪽 메뉴(그릴드 씨푸드 플래터)를 먹으라고 강하게 어필하길래 살폈더니 가격과 사진이 진정 실화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이 메뉴의 가격은 무려 MVR 950.(처음에는 인쇄가 잘못된 줄 알았어요.). 우리 돈으로 약 8만 원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에 보이는 저것이 8만 원이라고?(뜨악)

 

※ 여기서 잠깐

몰디브의 화폐단위는 루피야인데 우리 돈으로 환산할 때 쉬운 계산법이 있습니다. 루피야에 0 두 개를 붙인 다음, 그 가격에서 약 1/5를 빼면 대충 맞아떨어진다는 것. 예를 들어, 위 음식이 950루피야니 00을 붙여 95,000원. 여기에 1/5을 제하면 대략 8만 원 전후가 됩니다.

 

 

다른 메뉴도 보는데 갈수록 태산입니다. 새우 몇 마리 구워서 385 루피야면 우리 돈으로 약 3만 원.

 

 

 

가격도 가격이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음식은 실로 끔찍한 수준.

 

 

이것은 황다랑어 스테이크입니다. 우리가 몰디브에 온 것도 황다랑어 때문이니 일단 맛을 봐야겠지요~~ 하는데 읔 짜요. 짜. 완전 소태입니다. ㅠㅠ

 

 

디스플레이도 맛도 심히 테러블한 수준.

 

 

이건 뭐(...) 오징어 모양을 한 고무 링. ㅠㅠ 

 

 

몰디브에 도착해서 먹은 첫 끼니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이 집만 그런 것인지 다른 몰디브 식당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물가가 정말 무시무시해요. 새우가 나지 않은 청청해역(?)이라 그런지 일단 새우와 랍스터가 들어간 음식은 엄청나게 비싸진다고 보면 됩니다.

 

사실 몰디브는 참치와 코코넛을 비롯한 소수 품목 외에는 전부 수입입니다. 어느 정도 비싼 것은 일면 이해가 가는데 뻣뻣하다 못해 딱딱한 참치 스테이크, 고무 씹는 느낌의 오징어, 타버린 간장 뭉칫조각(새우), 감자튀김은 먹다가 기름 쩐내에 웩~ (도대체 기름을 얼마나 쓴 건지 헤아릴 수도 없고) 어차피 동네 식당이라 기대하지 않았고,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고든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보다 더 심각한 상태의 음식을 접하니 앞으로 우리가 열흘간 촬영하면서 먹고 기운을 내야 할 음식이 대체로 이러한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되긴 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향후 우리가 먹게 될 음식에 대한 복선이 되었다는 ㅠㅠ)   

 

 

배정받은 방입니다. 몰디브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오전 6시에 눈을 떴습니다. 밤에 도착해 이 동네가 어떤 분위기인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조금은 낯선 이국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우리가 묶었던 호텔인데요. 밤에는 전혀 몰랐는데 색채가 제법 예쁜 건물이었군요.

 

 

뒷골목은 깨끗하다 못해 청정한 느낌마저 듭니다. 현지인들이 사는 골목길치고 너무 깔끔한데요. 오토바이가 많아서 분위기는 좀 깨지만, 초록의 싱그러움이 느껴지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렇게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아까부터 제 귓가를 울리고 있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습니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한 이 소리가 파도 소리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건물 사이를 통과하자.

 

 

건물 뒤쪽으로 이런 해변이 있을 줄이야~

 

 

 

"이야~ 해변이 다르네. 이것이 몰디브구나."

 

 

현지인들이 사는 공항 섬에 이런 멋들어진 해변이 있을 줄이야. 그냥 여기서 수영하고 놀아도 하루 정도는 금방 지나갈 것 같아요. 그렇게 해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곧 떠난다는 호출에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콜택시를 불러 5분쯤 달리자 항구가 나옵니다.

 

그곳에서 몰디브인이 타고 다니는 수상 교통수단인 '도니'를 타고 수도 말레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이날 오후쯤 수산시장을 찾아가 촬영할 계획이었는데 이른 아침에 황다랑어 잡이배가 들어온다는 정보에 급한 대로 그 장면만이라도 찍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수산시장 촬영 에피소드는 따로 지면을 할애해서 소개하겠습니다.

 

 

EBS 성난 물고기 캡쳐 화면

 

수산시장을 둘러보고 저와 강성범씨(이하 성범이 형)는 다시 공항에 돌아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갑니다. 정해진 대사나 멘트 하나 없이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말과 표정으로 가감 없이 나타내야 한다는 점을 촬영 내내 유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거나 잘 찍혀야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다면, 더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하겠지요. 그러한 사실을 그간의 방송에서도 느껴온 터라 그냥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끼리 놀러온 기분으로 마음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제부터 카메라맨은 투명인간. 내 눈에는 안 보인다 생각하고 내 역할에만 충실하자."

 

이제 카메라에 첫 빨간불이 들어왔습니다. "저쪽에서 두 분이 걸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시면 됩니다. 레디 액션!"이란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공항을 나와 항구로 걸어 나오는데 도착할 당시에는 밤이라 확인할 수 없었던 에메랄드 물색이 지금은 선명히 들어오는 겁니다. 공항 앞 항구인데도 물색이 이렇게 푸를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여기에 청명하고 짙푸른 하늘, 금방이라도 탈 것 같은 따가운 햇볕에 몰디브는 역시 몰디브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쯤에서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데요.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성범이 형이 먼저 말을 건넵니다.

 

성범 : 나는 사실은 낚시를 좋아하긴 하는데 내가 기껏해야 제주도에서 참돔, 부시리 가끔, 근데 여기는 어종이 다를 텐데?

지민 :  뭐 달라봤자죠. 그래봐야 참치 정도?

같이 : 하하하

성범 : 모든 낚시인들의 꿈 아닌가? 참치 한 번 잡아보는거. 목표 크기는?

지민 : 최소 1미터

성범 :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 할 수 있겠어?

지민 :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성범 : 지민이만 믿네. 자 그럼 몰디브에서 2미터짜리 참치 한 번 도전해 봅시다. 우리 크로스 한 번 할까?

지민 : 2미터요? 알겠습니다.

 

성난 물고기의 촬영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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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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