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미코노스에 가다

 

원래는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계획하였다가 우연히 리틀 베니스를 보고선 그 풍광에 빠져 미코노스로 행선지를 바꾸었던 것. 몇 년 전 그리스 여행을 하고 싶다던 아내의 말에 "그리스 하면 산토리니지"라고 생각했다가 미코노스를 알게 된 뒤로는 줄곧 미코노스를 꿈꾸며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 사업을 하는 동생이 산토리니의 투어+숙박을 지원해줄 수 있다는 말에 산토리니 여행을 계획해버렸고, 이참에 다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미코노스- 산토리니 - 아테네 자유 여행 코스를 짜고 출발합니다.

 

문제는 9박 11일 동안 발생하게 될 어마어마한 비용. 유럽만큼은 아니지만, 동남아 여행만 줄곧 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리스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온 가족과 함께 이국적인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실상은 그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던 것. 여행은 가고 싶은데 통장 잔고를 걱정해야 한다면 보통은 참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24개월 된 딸도 있어 장기간 여행에 대한 걱정도 들었죠. 왜 굳이 먼 곳으로 가서 돈을 쓰고 고생할 걱정을 해야 하는 걸까? 그냥 편하게 일상생활이나 잘 영위하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것이 그렇지 않더군요. 일단 꽂힌 것은 해결해야 그다음 일도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이 여행이 갑작스레 결정한 사안도 아니요. 꽤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품어 안았던 여행인지라.

 

그리스가 뻔한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미코노스처럼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으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곳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겼으니까요.

 

마침 최근에는 일이 많아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기도 했습니다. 미지의 여행지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힐링하고 올 수 있다면, 그 기억으로 더 나은 삶과 활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죠. 여행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통장 잔고와 각종 염려를 눌러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가게 된 그리스의 첫 행선지는 꿈에 그리던 미코노스입니다.

 

 

리틀 베니스

 

 

언덕에서 바라본 미코노스의 올드 포트

 

미코노스의 호라 마을

 

 

#. 우리 가족 여행 경비 공개

여행사 패키지로는 도저히 답이 없는 9박 11일 그리스 여행. 그것도 미코노스 - 산토리니 - 아테네로 이어지는 일정을 원했기에 답은 '자유 여행밖에 없다.' 였습니다. 자유 여행이라도 경비 부담이 큰 것은 마찬가지. 어떻게 하면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 여행을 준비하면서 숙박비와 품질 사이에서의 고민이었습니다.

 

어른들끼리 놀고 잘 것이면 대충 게스트 하우스를 잡아도 되는데 문제는 어린 딸도 있어서 숙박 환경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숙박 환경이 좋으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마련. 고민 끝에 저는 이러한 결과를 도출하였습니다. 아래는 우리 가족이 11일간 여행하면서 쓴 대략적인 여행 경비입니다. (※ 참고로 우리 가족은 3명입니다.)

 

1) 인천 아테네 왕복 항공권

- 에미레이츠 항공 A380, 두바이 경유

- 좌석 지정비 포함해 1인 80만 원.

- 총 합계 : 3인 240만 원

 

2) 산토리니 4박 5일 투어(Dream Trip Tour) 

- 4성급 리조트 4박 숙박권, 5번의 조식, 3번의 석식 포함.

- 선셋 요트 투어 + 씨사이팅 마을 투어 + 와이러니 투어 포함. 

- 1인 470$ (약 530,000원, 어린 딸은 무료)

- 총 합계 : 2인 106만 원 (동생이 쌓아둔 포인트로 전액 지원)

 

3) 미코노스 숙박

- 4성급 Leto Hotel, 2박

- 총 합계 : 1객실 당 52만 원

 

4) 아테네 숙박 1

- 첫날 공항 환승을 위한 민박(Apartment Elaionas) 1박

- 총 합계 : 3객실(2층 전세) 총비용 15만 원 (동생이 지원)

 

5) 아테네 숙박 2

- 호텔 바이런, 2박

총 합계 : 28만 원

 

6) 아테네 - 미코노스 편도 국내선

- 1인 3 만 원(새벽 6시 이륙), 20kg 짐 수송비 4만 원

- 총 합계 : 3인 13만 원

 

7) 미코노스 - 산토리니 여객선

- 1인 8만 원(어린 딸은 무료)

- 총 합계 : 2인 16만 원

 

8) 산토리니 - 아테네 편도 국내선

- 1인 7만 원(오후 1시 이륙), 20kg 짐 수송비 4 만 원

- 총 합계 : 25만 원

===================================

여기까지 총 합계가 374만 원.

여행에 든 총 경비는 대략 530만 원.

다시 말해, 530 - 374 = 156만 원이 현지에서 식사, 쇼핑, 대중교통으로 쓴 금액이 됩니다.

 

결론, 530만 원으로 3인 가족이 9박 11일 그리스 여행이 가능 하단 사실. 물론, 산토리니 투어는 동생의 포인트로 지원받았으니 실질적으로는 약 106만 원을 더 들었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아테네 4박에 산토리니 2박으로 구성된 신혼여행 패키지 상품이 우리가 여행한 6월을 기준으로 1인 350만 원임을 참작한다면 꽤 선전하지 않았나 자평하고 있습니다. ^^;;

 

 

산토리니에서 당나귀 타기

 

아무디 베이에서 쌉싸래한 맥주 한 잔의 여유

 

 

 

산토리니 피르고스 마을 정상에서

 

 

 

처형과 조카, 산토리니 페리사 블랙 샌드 비치에서

 

 

산토리니 이아마을

 

이제 미코노스 - 산토리니 - 아테네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쓰고 길었던 그리스 여행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미코노스와 산토리니는 모두 지중해 남애게해에 속한 섬 여행지입니다. 산토리니야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미코노스는 산토리니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입니다.

 

유럽에서는 복잡한 산토리니를 피해 미코노스로 휴양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코노스는 게이들의 천국이기도 하고요. 밤 문화도 크게 발달한 섬이죠. 여기서 밤 문화 하면 태국의 밤 문화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그런 게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클럽과 파티 문화입니다. 밤이 되면 해변에는 선남선녀들이 모여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서로가 원한다면 원나잇도 하는 그런 것 외에는 특별히 유흥가가 발달하지 않았죠.

 

섬 지형이 완만한 미코노스가 제주도와 비슷하다면, 우람한 절벽을 가진 산토리니는 울릉도 같았습니다. 구불구불한 S자 도로에서 서행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관광버스도 그러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고요. 풍경 자체가 예술인 산토리니는 그야말로 유명 관광지다운 면모를 가졌음에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만 알고 가면, 아이나 혹은 가족과 함께 여행하기에 적절한 곳과 적절치 못한 곳이 절로 나뉩니다. 그런데 직접 가본 느낌은 정반대였습니다.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한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

 

#. 많은 문제점에 직면한 산토리니

산토리니의 여행 수요는 심각한 포화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주민들이 수없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해 더는 외부 관광객을 받아들이거나 환영하지 못하게 된 것처럼,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 주민들도 비슷한 문제를 앓고 있었습니다.

 

여행 수요가 분산되지 않고 6~8월에 집중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는 산토리니의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산토리니에서 수영을 즐기고, 요트를 타고, 크루즈 투어를 하는 것은 모두 바다에서 행해집니다. 그런데 바닷물이 매우 찹니다. 우리 가족이 여행한 시기는 6월 초인데도 아이가 수영하기 적절치 못한 수온이었습니다. 어른도 몸만 담갔다가 올라오면, 몹시 추워 타월로 감싸야 합니다.

 

9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는 바람도 많이 붑니다. 그 바람이 보통 센 게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로 산토리니와 미코노스의 여행 성수기는 6~8월에 집중됩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관광객이 한 섬에 집중되다 보니 이들을 수용할 만한 시설과 도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공항 대합실에 의자가 100석이면 사람은 200~300명입니다. 버스 터미널에는 우리나라보다 몇 배는 따가운 햇볕을 피할 공간이나 그늘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렌터카를 빌리자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산토리니 관광은 피라 마을과 이아 마을이 중심입니다. 두 마을을 잇는 도로는 좁은 2차선인데 관광버스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서행은 기본이고 서로 긁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통과해야 할 만큼 열악하죠.

 

차는 어찌나 밀리는지. 그런 상황에서 렌터카를 몰고 다니는 것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친구나 연인들끼리 ATV(산악 바이크)를 빌려서 타고 다니다 길이 막히면 골목길로 우회해서 다니곤 하는데요. 확실히 산토리니에서는 ATV가 탁월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레스토랑과 카페는 섬의 급격한 관광 발달로 인해 배짱 장사를 하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친절을 잃었습니다. 이아 을은 선셋을 보러오는 인파들로 아비규환의 진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최소 2시간 전에 와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일부 매너가 없는 관광객(특히, 중국인)들이 맡은 자리를 넘보거나 계속 밀고 들어오기도 하였죠.

 

선셋이 끝나고 해산할 때도 워낙 사람이 많아(아마 산토리니를 찾은 인구의 1/5은 선셋을 보러 모여들었는지도) 발 디딜 틈 없는 길을 겨우 걸어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그곳에도 버스를 타려는 줄이 한가득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배차 간격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토리니를 찾은 모두가 불편을 겪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일부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으며, 공공장소에서 서로 에 순서를 지켜나가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산토리니의 선셋 요트 투어는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소 실망한 여행지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투어가 나왔다는 모순도 산토리니라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북적이는 인파와 혼잡함, 약간의 불친절함을 제한다면 그래도 산토리니는 산토리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선 그저 평범한 골목길 풍경, 그리스 미코노스

 

손예진 씨가 출현한 포카리스웨트 CF의 골목길 배경은 산토리니가 아닌 미코노스란 사실 

 

리틀 베니스에서, 그리스 미코노스

 

#. 사랑스러운 미코노스

남성미 넘치고 박력 있는 풍경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곳이 산토리니였다면, 미코노스는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잘 나타낸 여행지였습니다. 미코노스도 성수기에 북적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산토리니 만큼은 아닙니다. 대체로 한적해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생활 터전이 우리 눈에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보일 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촌 마을의 소박함이 느껴지고요. 우리가 잡은 호텔 앞에는 해변이 있어 아이들과 수영하고 놀기에도 좋았습니다. 렌터카 사고만 나지 않았더라면, 계획대로 섬 구석구석을 여행했을 것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누드 비치도 가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미코노스에는 리틀 베니스라는 걸출한 여행 스팟이 있습니다. 실제로 베니스가 지배할 때 지어진 건물이라 일부는 바닷물에 잠겼는데요. 이 풍경이 너무나 독특해 알만한 사람들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곳입니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한 발짝 옆에 바다를 두고 식사한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테네에서

 

아테네 플라카 지구

 

#. 에필로그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 외에도 처형 가족과 동생, 동생의 후배까지 함께했습니다. 아이를 돌봐주는 삼촌이 많아 한결 수월했는데요. 안 그랬음 산토리니에서 고생 꽤 했을 겁니다.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건대 산토리니는 아이는 물론, 부양가족이 함께하는 가족 여행지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아이와 함께 온 관광객도 손에 꼽는 편이죠. 대부분 신혼 아니면 연인이나 친구들이 많습니다. 

 

미코노스도 처음에는 가족 여행지와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보통은 게이 커플이나 남녀커플이 많이 오고, 중년의 부부가 휴양차 찾기에 좋은 섬이죠. 다만, 완만한 사면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지중해 특유의 이국적이고 분위기가 났고, 골목길이 예뻤으며, 멋진 해변이 많고, 쇼핑 천국이라는 점이 산토리니와 다릅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산토리니나 미코노스 중 하나만 가면 된다는 댓글을 많이 봤는데요. 이 둘은 풍경과 놀 거리부터 완전히 다른 특색을 가진 섬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미코노스에 몰표를 주었습니다. 처형과 조카도 미코노스에 마음이 더 간다고 합니다. 동생과 후배는 산토리니에 한 표를 주었습니다. 젊을 때 경험하는 산토리니의 혼잡함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산토리니의 압도적인 풍경과 함께 요트 투어의 특별함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코노스냐 산토리니냐의 선택은 앞으로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고민해야 할 몫일 겁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약간의 소스와 정보를 공유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아무쪼록 그리스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의 지난 여행기를 통해 충분한 영감을 얻고 가시길 바라며, 그리스 여행기를 마칩니다.

 

※ 이어서 얼마 전에 방영한 EBS <성난 물고기> 몰디브의 참치 낚시 여행, 촬영 에피소드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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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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